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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10화 (10/168)

010화. 금왕(禽王) 탁호강

은교교가 미간을 찡그리며 창 쪽을 가리켰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네요. 이상해요. 사람이 움직이는 기척이 아니라도 바람 소리 정도는 들려와야 하는데.”

“들려오는 소리가 없다면, 우리 또한 들려 나갈 소리를 없애버려야 하지 않겠소?”

“누군가가 바깥의 소리를 우리가 듣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는 뜻인가요?”

“바깥소리를 막은 사람이, 우리 또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만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점이 궁금했소. 그랬더니….”

“그랬더니?”

사도명이 창문을 보았다.

“저 녀석이 날아왔잖소.”

아까부터 날아와 앉아 있던 매 한 마리가 여전히 두 사람을 보면서 혼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은교교는 그제야 매의 생김새가 특이함을 알았다.

머리에서 뒷등으로 이어지는 황금색 갈기를 본 것이다.

은교교가 놀라서 손으로 입을 막았다.

“설마 금왕님?”

“알고 있는 매요?”

사도명이 오른손으로 주변을 슬쩍 한 차례 휘저었다.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일단의 파문이,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사도명이 막아 놓았던 소리의 벽을 스스로 푼 것이다.

사도명의 음성은 비로소 주변으로 확산되었다.

매가 또다시 고개를 흔들었고, 사도명은 매를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은령선자는 당신이 누군지를 알고 있는 모양이오. 그나저나 가까이 와서 살피니 어떻소? 궁금증이 좀 해소되시오?”

매가 부리를 흔들며 물었다.

“너는 대체 누구냐?”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매는 본래 말할 수 없는데도, 사도명은 전혀 놀라지 않고 오히려 웃고 있는 것이다.

“귀하는 왜 스스로를 내게 먼저 소개하지 않고서, 묻기만 하오?”

바깥의 소리는 여전히 사도명의 귀에 들리지 않고 있었다.

매는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은교교를 보았다.

“너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보고도, 왜 인사를 하지 않느냐?”

은교교가 급히 포권했다.

“금왕 노선배님께서 부리시는 매인 줄, 미리 눈치채지 못한 저의 불찰을 용서하세요.”

금왕 탁호강은 무림팔왕 중의 한 명이었다.

또한 무림맹 사대 호법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반드시 나타나야만 하는 사람인 것이다.

은교교의 눈빛 속 놀람이 차츰 기쁨으로 변해갔다.

“다행입니다. 정말 잘 와 주셨어요, 노선배님.”

매가 부리를 주억거렸다.

“나를 보아서 반가우냐?”

“동심결의 공격 앞에 정신을 못 차리던 참입니다. 어찌 반갑지 않겠습니까?”

사도명은 미간을 찡그렸다.

“반가워야 하는 사람이 반가워야 할 상황에 나타나는 것이, 반드시 반가워해야 하는 일이겠소?”

“무슨 말이에요? 이 분은 팔왕 중의 금왕으로 제 사부의 오랜 친구시기도 해요.”

은교교가 매를 가리키며 사도명에게 말했다.

화왕(花王) 소빙유와 금왕 탁호강의 우정은 강호에서 유명했다.

같은 팔왕이면서 동시에 무림맹의 사대 호법에도 속하는 사람.

때로 남다른 사이일 거라고 의심받기도 할 정도였다.

“저는 사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금왕님을 뵈었어요. 아아. 이제 안심입니다.”

활짝 웃는 은교교와는 달리, 사도명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소?”

“동심결이 아무리 억세어도, 금왕 노선배께서 나서주시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면 그렇겠군.”

매가 날개를 퍼덕거리면서 껄껄 크게 웃었다.

“하하하. 네가 날 너무 띄워주는구나, 교교야.”

“있는 그대로 말했습니다.”

“아무튼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 천라옥벽은 내가 직접 맹으로 가져갈 테니, 이리 다오.”

매가 한쪽 발톱을 들어올렸다.

은교교는 품에서 나무 상자를 다시 꺼냈다.

“오늘도 정말 힘들었어요. 매일이 계속 힘이 들었죠.”

매의 발톱에 나무 상자를 쥐어주려고 걸어가면서, 은교교는 다시 한 번 더 한숨을 쉬었다.

“휴우. 어제는 하마터면 정말 큰일을 당할 뻔도 했고요.”

매의 발톱이 상자를 쥐었다.

“그래. 신주삼괴는 결코 다루기가 쉬운 녀석들이 아니지.”

매가 날개를 푸덕거리며 날아오르려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은교교가 나무 상자를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상자를 놓지 않느냐?”

매를 향해 은교교가 되물었다.

“저는 신주삼괴의 얘기를 해드린 적이 없어요.”

“!”

“말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어떻게 아시는 거죠?”

매의 눈빛이 변했다.

“나를 의심하느냐?”

매가 계속 날개를 퍼덕거렸지만, 은교교의 손을 뿌리치고 날아오를 힘은 없었다.

매는 어딘가에 있는 금왕의 목소리와 뜻을 전할 뿐이었다.

금왕 탁호강의 힘 자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놓지 못할까?”

은교교는 매의 고함을 무시하고서, 사도명을 보았다.

“눈치채고 있었던 거죠?”

사도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략을 꾸미는 자가 바보가 아니라면, 필요한 사람이 필요할 때 나타날 순 없소. 필요할 때, 필요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아야만 비로소 계략은 성공하니까.”

사도명이 걸어왔다.

은교교의 옆으로 걸어오더니, 갑자기 손을 뻗어, 날갯짓 중인 매의 목을 움켜쥐었다.

“칠마 중의 풍마가 동심결에 속해 있다면, 팔왕 중의 금왕이 동심결에 속해 있는 것도 전혀 놀랄만한 일은 아니지.”

“삐잇.”

매가 울었다.

금왕의 말이 아닌, 본능의 울음을 우는 매를 잡은 채로, 사도명이 물었다.

“오래전부터 우릴 따라온 것은 안다. 장백산에서 내려올 때부터 줄곧 허공에 떠 있었지.”

“정말로 그렇다면….”

은교교가 미간을 찡그렸다.

“왜 미리 일러주지 않았나요? 내가 속았으면 어쩌려고요?”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그는 미리부터 준비하고 있던 대답을 마침내 꺼내 놓았다.

“나는 많은 여자를 알고 있지만, 누구도 당신처럼 주변을 차분히 살피는 사람은 없었소. 당신 같은 사람은 절대 남에게 속아 넘어가는 법이 없지.”

“아!”

은교교는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사도명의 대답은 은교교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웃어도 좋은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사부의 친구이자, 무림맹의 호법인 금왕이 동심결에 속해 있다.

‘그렇다면 나의 사부는?’

은교교는 ‘무서운 상상’을 떠올리고는, 어지럼증마저 느꼈다.

사도명이 움켜쥐고 있던 매의 목을 조금 풀었다.

“금왕! 귀하는 동심결에서 몇 번째의 자리를 갖고 있나?”

“나는 동심결의 7번째 자리를 맡고 있다.”

매가 부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장척기는 9호. 하하하. 팔왕이 칠마의 뒤에 설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은교교가 고함을 질렀다.

“맹을 지켜야 하실 분이 어떻게 맹을 배신할 수 있나요?”

매가 다시 웃었다.

“가라앉은 것은 반드시 떠오른다는 말을 듣지 못했느냐?”

“들었어요. 유흥경이 말하더군요. 대체 무슨 뜻이죠?”

“사라지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겉모습이 변할 뿐. 그 사실을 이해한다면, 나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은교교가 미간을 찌푸렸다.

막상 설명하는 듯했지만, 설명된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뜻이 무엇인지를 물었어요.”

“알고 싶으냐? 정말로 알고 싶다면… 삐익!”

매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사도명의 손이, 매의 목줄을 다시 움켜잡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왜 그래요?”

은교교의 물음에, 사도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금왕은 수다스런 성격이오?”

“그렇진 않아요.”

“그런데도 지금은 대체 왜 묻지도 않은 것까지 대답을 하고 있을까?”

사도명이 매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금왕. 나는 장척기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그리고 너희들의 복수에 대해서도 물었던 바가 없어.”

매가 부리를 딱딱 부딪쳤다.

“우리의 말이 복수에 대한 것임을, 너는 본래 알고 있었구나.”

“몰랐는데 지금 알게 됐군.”

“뭐?”

사도명이 은교교를 보았다.

“복수에 대해 넘겨짚었소. 금왕을 아는 당신이 말해 보시오. 금왕은 왜 굳이 시간을 끌려 했을까?”

은교교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금왕에게는 선천적인 능력이 있어요.”

“능력?”

“그들의 집안 내력이에요. 그들 가문에는 짐승을 이용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 자주 태어났고, 금왕은 그 중에서도 새를 조종해요.”

사도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건가? 그래서 바깥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건가?”

“푸하하.”

매가 웃자, 지금까지 막혀 있던 소리가 갑자기 들리기 시작했다.

열려 있는 창과 부서진 벽, 그리고 문, 모두를 통해 들려왔다.

무수한 웅성거림.

푸드드드드드드득!

서로 비비는, 공기를 치고 흔드는 소음이 순식간에 자라더니 사방에 가득 찼다.

“날갯짓 소리. 새다.”

탁호강은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의 동생인 탁호천에게는 세상의 들짐승을 부리는 능력이 이어졌고, 탁호강에게는 세상의 날짐승을 부리는 능력이 나타났다.

푸득! 푸드득!

사도명의 손아귀에 잡힌 매가 날개를 흔들며 웃었다.

“큭큭큭. 감당… 할 수 있겠느냐? …삐잇.”

매는 한 차례 짧게 울고는, 목을 축 늘어뜨렸다.

“주, 죽였나요?”

은교교의 물음에 사도명이 고개를 저었다.

“매가 무슨 죄겠소? 그저 금왕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밤이었다.

어둡던 바깥이 갑자기 더욱 더 짙은 칠흑으로 바뀌었다.

푸드득!

푸드드드드드득!

창문으로 새들이 들어왔다.

뚫린 벽과 열린 문으로 수백 마리, 아니 수천 마리의 새들이 날아들었다.

“아, 아무리 새에 불과해도 이 정도의 숫자라면….”

은교교가 신음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빽빽하게 들어온 새들은 서로 부딪쳐 바닥에 떨어졌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숫자가 은교교에게, 그리고 사도명에게 부딪쳐왔다.

“벗어나야 해요. 왕유 장주의 시신은 나중에 수습하기로 해요.”

새는 밤에 날지 않는다.

밤에 나는 수많은 새는 탁호강의 능력을 증명하고 있었다.

은교교는 연달아 장력을 쳐내면서 빠른 속도로 지쳐갔다.

“아아! 숫자가 너무 많아요. 청상검도 갖고 있지 않는데….”

은교교는 검을 괘검지에 걸어두고 이곳으로 왔다.

“내 뒤로 오시오.”

사도명은 호신강기의 벽을 만들어 몸 주변에 둘렀다.

그리고 허공의 어딘가를 향해 소리쳤다.

“새들을 물러나게 해.”

“푸하하. 적이 나에게 무엇인가를 부탁한다면, 나는 당연히 그 반대로 행동해야지 않겠느냐?”

바깥의 먼 곳에서 금왕 본인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악!”

은교교가 놀라 비명을 질렀다.

“상자를 빼앗겼어요! 까마귀가 상자를 쥐고 달아났어요. 되찾아와야만 해요.”

주변이 모두 새였다.

어느 새가 상자를 훔쳐갔는지 알려면, 사도명은 주변 수만 마리의 새를 모두 베야 할 것이다.

은교교가 소리쳤다.

“왜 이러나요, 노선배? 왜 낙수의 맹세를 배신합니까?”

금왕이 다시 한번 웃었다.

“푸하하. 나는 아무 맹세도 한 적이 없다. 맹세는 나의 사부의 사부가 했을 뿐이야.”

“무림맹을 버리십니까?”

“동심결은 무림맹을 없애고자 하지 않고, 가지려 한다. 설청산이 사라진 자리는 우리가 메꾸마.”

은교교의 안색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상자를 잃은 일로 그녀가 얼마나 당황했으며, 금왕의 대답에 얼마나 낙심했는지를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이, 이젠 끝이에요. 맹주가 회복되지 못하면 동심결과 싸울 방법은 없는 겁니다.”

은교교는 호신강기를 펼쳐 새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주고 있는 사도명을 보았다.

“이제는 그만해요.”

은교교의 말에 사도명이 눈을 빛냈다.

“뭘 그만하라는 거요?”

“금왕마저 배신자라면, 맹에 더 많은 배신자가 있을 겁니다.”

은교교가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가 이길 가능성은 없어요. 가망 없는 일에, 무림맹의 사람도 아닌 당신이 목숨을 걸 필요는 더더욱 없고요.”

사도명이 빙그레 웃었다.

이미 기절한 매의 목을 놓더니, 오른손 손바닥을 활짝 편 채로 들어 한쪽 벽을 가리켰다.

“금왕 탁호강. 당신 같으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겠소?”

금왕의 진짜 목소리가, 먼 곳에서 다시 들려왔다.

“어떻게 하다니?”

“자신이 진짜 위험해 빠지자, 날더러 정말로 그냥 가라 말하는 이 여자를, 어찌 하겠느냔 말이오?”

사도명은 막상 물었지만 대답을 기다리지는 않았다.

벽을 향해 치켜든 그의 오른손바닥에서 힘이 폭발했다.

“은교교. 당신에게 집중하시오. 이번 일은 당신에게 닥친 위험이오. 때문에 당신이 스스로 풀어내는 것이 마땅하오.”

콰-앙!

벽이 폭발했다.

은교교는 폭발한 벽 사이로 날아드는 푸른빛을 보았다.

“아!”

청상검이었다.

까마득한 거리의 괘검지에 걸어두었던 청상검!

사도명이 내쏜 기운의 조종을 받으며, 검이 날아오고 있었다.

“허, 허공섭물이라고요? 아아! 대체 거리가 얼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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