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화. 소용돌이
“도대체 왜? 왜 그랬는지를 말하세요, 사부.”
사도명의 질문은 울음과 다르지 않았다.
양일생은 가쁜 숨을 쉼 없이 토해냈다.
“하늘은… 내게 넓디넓은 꿈을 주었다. 하지만 재능은 너무 좁게 주고 말았지.”
양일생의 눈 속에 가득 고였던 눈물이 좌우로 흘러내렸다.
“단숨에 알아보았다. 네겐 재능이 있어. 재능이 넘친다. 계기만 주어진다면 내가 못 이룬 꿈을 이룰 수 있다 믿었다. 나는 그 계기를 너에게 주고 싶었다.”
“당신을 누구라 불러야 합니까? 당신은… 누굽니까?”
“너의 사부. 정후의 친우. 그리고 너의 원수. 말했잖느냐. 사부는 너에게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난 너의 원수를 찾아냈고, 원수를 갚을 기회를 만들었어.”
양일생은 죽어가면서 웃었다.
“통쾌하구나.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쿨럭. 네가 자라서 부모의 원수를, 내 친우의 원수를 스스로 갚을 수 있기를, 아아 정말 오래 기다리고 기다렸다.”
양우생은 떨리는 손을 들어 사도명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사도명은 그 손길을 피하고 싶었고, 또한 피하고 싶지 않았다.
“도명아. 네가 자랑스럽다.”
“…….”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할 말이 너무 많았지만, 또한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부모의 친구.
부모를 죽인 사람.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준 사부.
영원히 용서 못 할 원수.
“이것으로 모든 은원이 해결되었다. 너는 이제 강하다. 창천문이란 이름은 영원히 세상에 남을 것이다. 나는, 나의 야망과 내 사문에도, 최선을 다했다.”
“최선, 이라 했습니까?”
“남에게 휘둘리지 말고 살거라. 강하다면 자유로울 수 있다. 나는 하지 못했던 일. 너의 명운을 네 스스로 이끌어라.”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맥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것이… 그것이 이 사부가 너의 이름을 도명이라 지어 준 이유. 네가, 자랑스럽다.”
양일생은 죽었다.
사도명은 사부의 죽음 앞에서 울어야 할지, 원수의 죽음 앞에서 웃어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하늘과 땅이 어두워졌다.
어두운 하늘에 수천, 수만 자루의 검이 매달려 있는 환상에, 사도명은 몸을 떨었다.
매달린 검은 하나씩 떨어졌다.
떨어지는 검이건, 떨어지지 않는 검이건 모두 부러졌다.
사도명은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한 채로 서 있었다.
“그냥, 그렇게 떠나면 어떡합니까? 나는 어떻게 하죠?”
사도명은 세상의 모든 검이 부러지는 환상 속에서 비틀거렸다.
“내 삶을 스스로 이끌라고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부가 원했던 일을, 하지 않을 겁니다. 무림을 떠납니다. 다시는 무림이라는 땅으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두 번 다시는.”
**
적당히 덩굴과 풀을 엮어 잘 곳을 마련했다.
오랫동안 산 속을 떠돈 사도명에게, 밤을 새울 잠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간단하고 익숙했다.
“덮으시오.”
사도명은 나뭇짐 아래 바닥의 천을 꺼내 은교교에게 건넸다.
“내공이 있으니 춥진 않을 거요. 등이 배기면, 깔아도 좋고.”
밤이 깊자, 별빛은 더욱 초롱하게 빛났다.
달빛은 사방에 내려앉았고, 이름 모를 봄꽃의 향기가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처음 만났을 때가 꼭 이랬대요. 달빛이 교교. 그래서 내 이름도 교교. 아 참. 이 얘기는 했던가요?”
“했던 것 같소.”
사도명은 자신의 이름 유래를 생각하고 한숨을 애써 참았다.
양일생은 사도명과 부모의 인생을 모두 망쳤다. 그러나 사정후와 사도명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인생이란 왜 이토록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일까?
“사람의 사랑과 증오는 실타래처럼 얽혀있어서, 참으로 가려내기가 어려워요.”
사도명은 깜짝 놀랐다.
은교교가 마치 자신의 생각을 미리 읽은 듯 말한 것이다.
“주무시오, 어서.”
몸을 돌리면서 생각했다.
저 여자에게도 남에게 말하지 못할 사정이 쌓여 있는 거구나.
“요녕까지 이틀에 가려면 빨리 움직여야 하오. 힘이 들 거요.”
“절대독고라고 불린대요.”
“…무슨?”
“무림맹주 설청산과 무림태자 화운악. 두 사람이 당한 독의 이름. 그냥 독이 아니라 고를 이용한 독이며, 설사 독인이라도 해도 녹아내릴 수밖에 없는 종류라고 하더군요. 오죽하면 절대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자지 않을 거요?”
“세외팔천에서 유래된 독이라 들었어요. 알겠어요. 잘게요. 마지막으로 말할게요.”
은교교는 몸을 옆으로 돌려, 사도명을 보았다.
그는 은교교의 나무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나무에 잠자리를 마련하여 누워 있었다.
“생명을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요구가 억지임을 알면서도 받아들여 준 것도 고마워요. 약속드릴게요. 언젠가는 반드시 보답을 하겠습니다. 반드시요.”
산의 아침은 이르게 온다.
사도명은 일찍 일어나 주변을 돌아 먹을 것을 모았다.
먹을 수 있는 약초와 버섯을 찾아내고, 지나는 토끼를 잡았다.
토끼 기름에 과일즙을 더해 냄새를 없앴고, 향초를 짜내 향기가 배게 만들었다.
산속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금이다.
사도명은 언제나 소금을 가지고 다녔다.
간을 맞출 걱정을 하지 않는다는 건, 산속 생활에 중요하다.
은교교는 구수한 토끼 고기 냄새를 맡고 웃었다.
“하하!”
차려진 음식을 보고, 은교교의 입끝이 양쪽 귀에 걸렸다.
“배가 고팠어요. 저이계의 음식은 하나도 먹을 수 없었으니까. 그랬는데 산속에서 이런 진수성찬이라니. 상상도 못했어요.”
“내 요리의 대부분은 곽노가 알려준 것이오. 그래서 나는 곽노의 원한을 꼭 갚아야만 했지. 나는 받은 것은 잊지 않소.”
“하지만 곽노의 요리는 대부분 맛이 없었다고 했잖아요.”
“곽노가 나를 몰라서요.”
“예?”
사도명이 새로운 고기를 돌판 위에 올리면서 말했다.
“자신이 해주는 요리가 맛이 없으면, 곽노는 내가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던 거요.”
“당신에게 돌아갈 집이 없다는 걸 몰랐군요.”
“곽노의 마음을 알기에, 나는 언제나 곽노의 음식을 즐겁게 먹을 수 있었소.”
“그랬군요.”
은교교는 주변을 둘러보며 화제를 돌리려고 했다.
“아름다운 곳이에요. 설령 돌아갈 집이 있어도 이런 곳에 머무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세상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으니까.”
“나도 언젠가는 무림을 떠나, 이런 곳에 정착하고 싶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자고 일어나 이런 음식을 먹으면 행복하겠죠?”
“하면 되잖소? 어려운 일은 아니오.”
은교교가 쓰게 웃었다.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어요. 어떤 사람에게 매우 쉬운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힘들어요.”
사도명이 식사를 멈추고 은교교를 물끄러미 보았다.
은교교가 얼굴을 만졌다.
“왜 그렇게 보시죠?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아쉬움. 슬픔. 어쩌면 절망. 그런 것이 덕지덕지 묻었군.”
“…그게 보이나요? 그렇다면 당신도 슬픈 거군요.”
은교교가 갑자기 허리의 방울을 짤랑짤랑 흔들었다.
“깊은 슬픔은 같은 슬픔이 있어야 보이죠. 방울 소리를 들으세요. 쓸데없는 슬픔 따위 날려버리라고 호호. 제 방울은 흔들립니다.”
식사를 마친 후, 사도명은 갈 길을 서둘렀다.
산길을 빠르게 걷는 사도명의 걸음은, 은교교가 내공을 끌어올려도 따라가기 어려웠다.
“조금만 천천히. 왜 그렇게 서두르죠? 마치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 같아요.”
“요녕에 당신을 데려다주고, 나는 하남으로 가야 하오.”
“하남에 뭐가 있기에?”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있소. 곽노의 딸이 그곳에 시집을 가서 살고 있지.”
“아!”
“딸은 아비의 죽음을 알 권리가 있소. 또한 알아야 하는 의무도 있지.”
“당신에게도 보조를 맞출 의무가 있는 것 아닌가요?”
사도명은 걸음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하하. 어제 내가 당신의 독을 몰아냈던 일을 떠올려 보시오.”
사도명은 여전히 걷는 속도를 유지한 채 말했다.
“나는 독을 몰아내기 위해 창천일해, 와를 당신의 몸속에서 움직였소. 와는 소용돌이로 하나의 흐름을 이용해 정반대의 흐름을 이끌어 내는 구결이오.”
“그런 것이 가능한가요?”
“내가 이미 죽은 망괴를 다시 한 번 죽이는 것과, 독괴의 독안개를 되돌려 주는 걸 이미 보았잖소?”
“아! 보긴 봤지만….”
“익숙한 뱃사람은 맞바람을 맞으면서도 앞으로 나갈 수 있소. 이미 눈으로 본 것을 믿지 못한다면 무얼 믿을 수 있을까?”
사도명의 말에 은교교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어제, 난 마치 몸속에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기분이었어요. 독이 더욱 빨리 퍼져나가는 듯했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니 모여 있었죠.”
“모든 흐름은 파도와 같소. 결코 한쪽으로만 치우칠 수 없지. 밀려가면 밀려와야 하오.”
사도명은 손으로 커다란 태극 문양을 허공에 그렸다.
“이것은 해가 뜨면 져야 하고, 달이 차면 기우는 것과 같소. 진 태양은 다시 뜨고, 기운 달은 다시 차는 것과 마찬가지. 해서 밀려가고 밀려오는 흐름의 연쇄는 이런 모양이 되는 거요.”
사도명이 걸음을 더욱 빨리하여 순식간에 앞으로 멀어졌다.
“아!”
사도명의 손동작이 무슨 의미인지 고민하던 은교교는 사도명의 발자국을 보고 탄성을 뱉었다.
사도명의 발자국이 서로가 서로를 맞무는 무수한 태극의 모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은교교는 불현듯 깨달았다.
“흐름에 대한 순응. 하지만 그 속에 숨은 반향을 잊지 않는 것. 이건 음 속에 양이 깃들고 양은 다시 음을 포용하는 태극.”
은교교는 머릿속에서 무엇인가가 잡히는 것 같아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어떤 흐름도 일방적일 수는 없네요. 소용돌이, 와류. 알 것도 같아요. 순응함으로써 오히려 거스를 수 있는 힘이 생기네요.”
은교교의 걸음도 사도명 못지않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내공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사도명이 알려준 이치의 일부를 깨닫기만 했는데도, 은교교는 내공의 소모 없이 더욱 빠르게, 더욱 쉽게 걸을 수 있었다.
사도명은 은교교가 자신을 따라잡자, 웃었다.
“놀랍군. 이렇게 빨리 깨달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소.”
“말했잖아요. 나 은교교예요. 무림에서 가장 예쁘고, 가장 똑똑하죠.”
은교교의 두 발도 사도명과 마찬가지로 태극의 사슬을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계단을 하나 더 올라 봅시다.”
사도명이 다시 한 번 더 걸음의 속도를 올렸다.
“좋아요.”
은교교도 더욱 빨리 달렸지만, 이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한계가 만들어지네요. 바람이, 그리고 땅이 속력을 높이는 것에 저항해요.”
“그런 저항도 일종의 흐름으로 보면 어떨까?”
“저항도 흐름으로? 으음… 순응함으로써 거스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으니….”
은교교가 외쳤다.
“잠깐만요. 아무것도 말하지 말아주세요. 뭔가가 잡힐 것도 같아요. 분명히 무엇인가가?”
은교교의 걸음이 갑자기 한층 더 빨라졌다.
그녀의 두 발이 만들어내던 태극 문양의 연쇄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사도명은 은교교의 속도에 보조를 맞출 때마다 그녀가 순간순간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았다.
사부 양일생이 생각났다.
그때 양일생이 짓던 미소가, 지금 사도명의 입가에 떠올랐다.
제자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던 양일생의 웃음은, 분명히 진심이었다.
은교교의 두 발이 만들던 태극 문양의 연쇄가 어느 순간부터 매우 흐려져 보이지 않았다.
사도명의 두 발은 이미 오래전부터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있었다.
아까의 흔적은, 은교교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사도명의 두 발이 바닥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둥실 떠올랐다.
“신기해라. 저 지금 초상비를 시전하고 있어요.”
은교교의 외침에 사도명은 다시 한 번 웃었다.
“하하하. 틀렸소.”
“초상비가 아니라고요?”
“초상비는 한없이 몸을 가볍게 만들어 풀을 휘지 않고 밟을 수 있는 경공. 이건 숫제 공간의 흐름 그 자체에 순응하면서 움직이는 거요. 굳이 표현한다면 허공답허가 옳소.”
“빠르게 움직이면 저항이 생기고, 그 저항을 이용해 더욱 빨리 움직일 수 있다면, 설마 무한대로 속력을 높일 수 있는 건가요?”
“그렇진 않소. 순응하여 거스르는 그 거스름조차 사실은 하나의 흐름으로 보아야 하니까.”
사도명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내 사문의 창천사해는 모두 자신의 힘을 아무런 외부의 저항 없이 온전하게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라 볼 수 있소.”
“…….”
은교교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저항은 달릴 경우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손에 검을 쥐고 휘두를 때도, 장력을 쏘기 위해 팔을 밀어낼 때도, 분명하게 생긴다.
‘이건 응용할 방법이 많겠는데.’
사도명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 은교교를 지켜보았다.
자신도 그랬었다.
와의 깨달음을 얻은 뒤, 응용할 방법을 찾아 아주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었다.
사도명은 지금까지 온 거리와, 앞으로 가야 할 거리를 계산했다.
은교교가 와의 깨달음을 받아들인 후, 두 사람의 이동 속도는 세 배 이상 빨라졌다.
본래 이틀의 거리로 생각했는데, 그 시간이 반으로 줄었다.
‘오늘 밤이면 도착하겠구나. 중간에 객잔에 들러 요기를 할 시간도 충분하다.’
두 사람의 움직임은 이제 그야말로 바람 같았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아주 빨랐고, 조금도 힘이 들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움직이는 두 사람의 머리 위 높은 곳으로, 한 마리의 매가 날았다.
머리에서 뒷등으로 이어지는 황금색 갈기가 특이했다.
매는 푸른 장공이 날며, 땅 아래의 두 사람을 응시했다.
매가 부리를 흔들었다.
“은령선자를 둘러싼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해졌군.”
마치 사람처럼 말하면서 매는 사도명을 보았다.
“저 기묘한 녀석은 누구인가? 누구건 상관은 없다. 이미 파천의 맹세는 완벽하니까. 누가 끼어들어도 되돌릴 순 없어. 설사 왕년의 천라대제가 다시 깨어난다고 해도, 그건 변하지 않는다.”
철검산장의 입구로 이어지는 청석로(靑石路)는 철검산장이 가지는 힘과 명예를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