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5화 (5/168)

005화. 대가를 요구합니다

“너는 결코 네 손으로 날 해치진 못할 것이다-!”

저이계가 고함을 질렀다.

동시에 오른손의 끝을 하나로 모아 날카롭게 만든 다음, 자신의 목을 찔렀다.

피는 튀지 않았다.

조금 전 달아나려고 했을 때, 두 다리의 힘이 방향을 틀어 반대로 작용했던 것과 같았다.

저이계는 분명 스스로 죽으려고 자신의 목을 찔렀는데, 그 힘이 헛되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아아!”

죽음으로 던져버리려 했던 공포가, 비로소 해일처럼 저이계의 온 마음에 밀려왔다.

“사람을 죽이기 좋아하고, 죽기 전에 그 사람이 공포에 떠는 걸 보기 좋아한다고 말했지?”

사도명이 그에게 다가갔다.

“너는 공포와 고통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죽으려고 하는 거겠지.”

“사, 살려주십시오, 손님.”

“널 만난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말했을 거야. 그리고 너는 나처럼 말했을 것이고. 거절이다.”

“그, 그럼 죽여주십시오. 두 분 형님처럼 단숨에. 고, 고통이 없이 죽게 해 주세요.”

“그것도 거절.”

“으으.”

덜덜덜 몸을 떨던 저이계가 갑자기 소리쳤다.

“서, 설마 당신인가? 기억이 난다. 6년 전에 나는 분명히 당신을 봤어. 16살의 나이.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서… 큭!”

사도명의 왼손이 저이계의 목을 움켜잡았다.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는 저이계의 얼굴은 뻘겋게 달아오르더니, 이내 창백하게 식었다.

“계속 거기 있을 거요?”

사도명이 은교교에게 물었다.

“이미 목적한 바를 이루었잖소? 천라옥벽을 무림맹으로 가져가는 일이 임무 아니었소?”

“나, 나는….”

“이제부터 나는 곽노를 죽인 일에 대해 저이계에게 책임을 물을 거요. 보기에 편한 광경이 아닐 테고, 매우 역겨울 거요.”

은교교는 천라옥벽을 품에 갈무리했다.

그리고 사도명에게 포권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사도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교교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문을 열고 한상객잔의 밖으로 나왔다.

봄바람이 상쾌했다.

해는 서천으로 절반만 기울었고, 일몰까지는 한 시진 이상이 남아 있었다.

은교교는 한상객잔을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지금 안에서는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저이계는 사람을 죽였다.

매우 잔혹하게 죽였기 때문에, 그 자신도 똑같은 잔혹함을 되돌려 받아야 마땅하다.

은교교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남에게 베푼 은혜도, 원한도 돌아오지 않는 법은 없다.

이 간단한 도리를 사람들은 왜 모르고 살아갈까?

은교교는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윽고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려 할 때, 객잔의 문이 열렸다.

사도명이 등에 나뭇짐을 진 채, 한 구의 시체를 안고 나왔다.

떠나지 않고 서 있는 은교교를 보고도 말없이 지나쳤다.

“할 말이 있어요.”

은교교가 말했지만, 사도명은 그저 걷기만 했다.

“할 말 있다니까요.”

사도명은 매우 빨리 걸었다.

은교교는 경신술을 전개하고도 그를 따라가기 힘겨워 소리쳤다.

“멈추세요.”

사도명은 산속으로 계속 들어갔고, 노을이 세상을 붉게 물들인 후에야 멈췄다.

“곽노는 이곳을 매우 좋아했소. 특히 노을이 지는 지금과 같은 시각을.”

사도명은 비로소 곽노의 시체를 바닥에 내렸다.

“때로는 장사하는 것도 잊고 여기에 앉아 있곤 했지.”

슬픈 사람은 노을을 좋아한다.

은교교는 왠지 몰라도, 사도명 역시 노을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바닥 한 부분의 돌과 흙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보이지 않는 손이 땅을 파는 듯, 무서운 속도로 무덤 구덩이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어기섭물의 공력을 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무지막지한 내공은 본 적이 없네요.”

“내공이라는 것은 전체적인 총량도 중요하지만, 또한 어떻게 쓰느냐, 집중하느냐도 중요하오.”

사도명은 정신을 집중하여, 내공으로 땅을 파고 있는 것이다.

“창천일원의 심법은 넓고 성긴 것을 뭉쳐서 좁고 단단한 것으로 만드는 묘용이 있소. 작은 내공도 강하게 쓸 수 있지.”

마침내 무덤 구덩이가 완전하게 만들어졌다.

사도명은 손가락 끝으로 곽노의 시체를 가리켜, 그 시체가 둥실 떠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미안합니다, 곽노. 조금 더 일찍 왔으면 좋았을 것을. 봄꽃이 하도 좋아 그만 늦었네요.”

사도명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곽노의 무덤에 흙을 덮었다.

무덤을 팔 때는 내공을 이용했지만, 흙은 손을 이용했다.

천천히, 정성스레 흙을 덮고 나자, 노을은 이미 사라지고 하늘이 완전한 어둠으로 덮였다.

달과 별이 나와 그 어둠을 교교히 밝히고 있었다.

무덤을 모두 만든 후에야, 사도명은 비로소 은교교를 보았다.

“떠나라고 말했소. 한데 왜 아직 남아 있소?”

“할 말이 있다 했잖아요.”

“그 할 말이라는 게 내가 우려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라오.”

은교교는 사도명의 눈빛이 주변의 어둠보다 더욱 깊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오한을 느껴, 그녀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어떡하죠? 아무래도 제 할 말은 우려하는 것이 맞나 보네요.”

은교교는 용기를 끌어 올렸다.

“나는 이제 당신이 누군지를 알게 됐어요, 사도명.”

어둡던 사도명의 눈빛이 불현듯 서늘해졌다.

어둡고 차가운 눈앞에서, 은교교는 자신의 심장이 요란한 경고음을 내며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 도망쳐. 달아나!

망괴 악휘를 마주했을 때 느꼈던 두려움과도 달랐다.

악휘의 기운이 몸만 누르는 답답함이었다면, 사도명이 지금 건네는 살기는 영혼 자체를 죄어오는 압박이었다.

“나는 당신을 살려주고자, 사부와의 약속도 어겼소.”

“알아요.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일이지요.”

“내 마음이 바뀔까 봐 빨리 떠나라고 말하기까지 했었소.”

사도명의 살기가 강해졌다.

은교교는 두려움과 마주 싸우고 싶어,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나를 죽일 건가요? 당신이 죽지 않았다는, 살아 있다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생각 중이오.”

“그렇다면 한 시라도 빨리 결정해주시면 좋겠네요.”

은교교는 품에서 천라옥벽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부탁하는데, 만약 절 죽일 거라면, 그 후에 이걸 무림맹에 좀 전해 주세요.”

“아무리 보물이라고 하나, 그걸 전달하는 일이 스스로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단 거요?”

“네. 옥벽에 두 사람의 목숨이 달렸어요. 그중의 한 목숨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의 것이구요.”

사도명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하는 수 없군.”

은교교는 전신을 누르던 압력이 순식간에 사라짐을 느꼈다.

“나에 대한 얘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겠소?”

“맹세할게요. 6년 전 16살의 나이에 검몽의 자리에 올랐던 영웅이 죽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저는 지금부터 숫제 머릿속에서 지우겠어요.”

“겨울임에도 얇은 옷을 입은 나무꾼이 가련해 보였소. 옷을 바꿔 입었는데 청옥소검이 그 옷 속에 들어 있음을 깜빡했지.”

“아! 모든 일이 그렇게 됐던 거군요. 우연의 중첩이었어요.”

우연이 여러 개 겹치면 운명으로 변한다.

옷을 바꿔 입은 나무꾼이 호랑이에게 습격당해 죽게 될 줄은, 사도명도 짐작 못 했었다.

“이제는 정말 가시오. 밤의 산은 위험하니 조심하시오.”

은교교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은 갈 수 없죠.”

“!”

“전 도박을 했어요. 날 구해주려고 맹세를 깨뜨린 사람이라면, 비밀을 지키려고 날 죽일 리가 없다고 판단했던 거예요.”

사도명이 버럭 소리 질렀다.

“나를 농락하고 싶은 거요?”

“그리고 결심했어요. 만약 나를 살려준다면, 그리고 비밀을 지켜 달라 부탁한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요구해야겠다고.”

“대체 무슨 소리요?”

“여자는 입이 가볍고 비밀이란 지키기 어려운 거예요. 그런데도 저는 그쪽을 위해 비밀을 지켜주겠노라 대답했어요. 공짜론 안 돼요. 비밀을 지키는 일에 대한 대가를 요구합니다.”

사도명이 멍한 표정으로 은교교를 보았다.

달빛은 말 그대로 교교했다.

교교한 달빛의 모습을 이름으로 삼은 은교교의 모습은, 그 달빛 아래에서 마치 그림 같았다.

“하하.”

사도명는 결국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화난 것이 아니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사도명은 은교교를 죽이지 않을 이유를 찾았는데, 은교교를 그 이유를 핑계 삼아 대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무척 황당하고 말이 안 되는 여자군.”

“은령선자 은교교. 저처럼 예쁘고, 총명하며 무공도 뛰어난 여자가, 황당하지 않고 말이 되게만 행동한다면 세상의 모든 남자가 좋아하지 않겠어요?”

은교교가 붉은 옷을 흔들었다.

허리에 매달린 은방울이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울었다.

사도명은 웃음을 그친 후에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내게 요구하고픈 게 뭐요?”

“천라옥벽에 대한 소문은 이미 강호에 퍼졌어요. 옥벽을 노리는 건 신주삼괴만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 힘으로는 옥벽을 무림맹까지 가져갈 자신이 없어요.”

사도명은 길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은교교의 요구는 명확했다.

“나더러 무림맹까지 호위를 해달라는 소리요?”

“대가는 치를게요.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어요. 아주 마음에 드는 대가일 겁니다.”

“천라옥벽을 가져가면 두 사람을 살릴 수 있다 했소?”

“네.”

은교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라옥벽에 남겨 둔 천라대제의 세 가지 기보 중에는 두 방울의 백옥유액이 있어요.”

은교교가 천라옥벽을 만지작거렸다.

“옥벽을 깨뜨리면 나오는 유액만 있으면 두 사람의 중독을 치료할 수 있죠.”

“두 명 중의 한 명이 혹 무림맹주 설청산이오?”

“강호의 소문을 이미 들으셨군요? 맞아요.”

“다른 한 명은 누구요?”

“설청산 맹주의 후계자이자, 현 무림 최고의 후기지수. 화산파 출신의 화운악.”

사도명은 준수한 외모에 큰 키, 오만한 웃음이 얼굴을 떠나지 않던 사내 한 명을 떠올렸다.

사도명보다 다섯 살이 많았던 화운악은 마지막 결승 비무에서 사도명에게 패배한 후 믿을 수 없다는 말만 줄곧 되풀이했었다.

사도명은 묻고 싶었다.

‘당신의 가장 소중하단 생명이 혹시 그 화운악이오?’

하지만 결국 묻지는 않았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으며 먼저 말하지 않는 사정을 묻는 것만큼 큰 무례는 없다.

“알겠소.”

사도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요구를 받아들이겠소. 하지만 무림맹까지는 너무 멀어. 산 아래로 내려가 이틀 정도의 거리에 무림맹의 요녕 지부가 있소. 그곳까지 데려다 주지. 이틀이면 충분할 거요.”

**

“화운악을 이겼다고?”

사도명이 검몽의 이름을 얻은 후에, 양일생은 똑같은 질문을 열 번도 넘게 물었다.

“정말로 화산파의 제자이며 화산이 낳은 백 년의 기재라는 화운악을 네가 이겨냈다고?”

사도명은 자신이 창천사해를 이용해 화운악의 매화영롱검법을 어떻게 방어했으며, 어떻게 되돌려 주었는지를 하나하나 설명했다.

칠절산수에 응대하면서 창천사해의 네 가지 해법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양일생은 숫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웃었다.

“하하하. 재능이란 실로 놀라운 것이다. 나처럼 어리석은 놈이 망가뜨릴 뻔한 우리 사문의 무공이 너에게 인연이 닿아 꽃으로 활짝 피었구나. 하하하.”

양일생은 오랫동안 마시지 않았던 국화주를 꺼내 사도명과 함께 마셨다.

“마셔라. 첫 잔은 본래 아버지가 주는 것인데, 정후가 이미 먼 곳에 있으니 이 사부가 정후 대신에 따라 주마.”

“사부님.”

“나는 정후의 친우이며, 너의 사부다. 알지?”

“알고 있습니다.”

“나는 네게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도 알지?”

“어찌 모르겠습니까?”

“정후를 해친 흉수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사실 오래 전에 찾아냈으나, 너의 무공이 발전하길 기다리며 말하지 않았었다.”

사도명이 으드득 이를 갈았다.

“어디에 사는 누구입니까? 알려주시면 제자가 당장 죽이러 가겠습니다.”

“그래 꼭 복수해라.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

양일생은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며 흉수의 행방을 말했다.

“그는 너에게는 부모의 원수고, 나에게는 친우의 원수이다. 그러니 반드시 일검에 베어라. 주변의 사람들이 엮이어, 또 다른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라. 또한 너는 무림태자가 될 몸이니 서둘러 빠져 나와야 한다.”

사도명은 사흘을 기다려, 마침내 흉수를 만났다.

손목의 검은 점과 양일생이 알려준 옷차림을 확인했다.

사도명은 창천 제이해, 출의 기세로 날아갔다.

그의 검은 흉수의 가슴을 정확하게 찔렀다.

그 길로 돌아섰어야 했다.

몰려드는 주변 사람을 피해, 자리를 피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사도명은 묻고 싶었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를 알고 싶었다.

“차라리 나도 부모님과 함께 죽이지 그랬나? 그랬다면 매일 밤마다, 아니 눈만 감으면 피 토하는 부모님을 보지 않았을 것인데.”

사도명은 흉수의 얼굴 일부가 어색하다고 느꼈다.

면구를 벗기자, 그 속에서 낯익은 얼굴이 드러났다.

사도명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마, 말도 안 돼.”

떨리는 손으로 손목의 검은 점을 붙잡았다.

밀어내자, 점은 허무하게도 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본래 있지 않았던 점을 일부러 붙이고 나타난 사람은, 가슴의 상처 때문에 계속 피가래를 토했다.

사도명은 힘없이 물었다.

“왜요? 도대체 왜?”

“무림태자가 될 몸이니, 서둘러 빠져나가라 하지 않았느냐?”

“말하세요. 도대체 왜? 왜 그랬는지를 말하세요, 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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