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령천하, 나의 검 너의 노래-3화 (3/168)

003화. 신주삼괴(神州三怪)

“왜 쓰러지지 않습니까? 쓰러져야 할 때가, 이미 한참이나 지나지 않았습니까?”

저이계는 매우 공손하게, 웃음기마저 띈 얼굴로 물었다.

멀리에서 본다면, 사람 좋은 주인장이 단골손님에게 식사를 권하는 장면으로 보일 터였다.

은교교가 미간을 찡그렸다.

“내가 왜 쓰러져야 하느냐?”

“우리 신주삼괴 중에는 저의 둘째 형님이신 독괴 좌득생이 있으니까요.”

“!”

“독괴의 독은 헤헤 냄새가 나지 않고 맛도 느껴지지 않아서 음식에 섞어 내기가 매우 좋지요.”

은교교는 자신의 앞에 쌓인 음식을 다시 한 번 보았다.

기름이 많고 향기가 강해, 독괴의 독이 섞였다면 당연히 구분해 낼 수가 없을 것이다.

저이계가 히죽 웃었다.

“쓰러지십시오, 손님.”

“하지만 분명 네가 먼저 맛을 보지 않았느냐, 돼지?”

“돼지는 먹성이 좋아서, 음식을 먹기 전에 해독약도 미리 먹어둔답니다, 꿀꿀.”

“교활한.”

“칭찬 감사합니다. 본래 교활한 자만이 언제나 승리하는 법이니, 어서 쓰러지세요.”

“흥!”

은교교가 자신의 허리를 쳤다.

딸랑 딸랑 딸랑

은방울이 소리 내며 흔들렸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먼저 시식하는 자를, 나는 결코 믿지 않는다. 나는 오직 나의 방울을 믿을 뿐이다.”

저이계는 은교교의 방울이 검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독에 반응하는 은.

은교교의 은방울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독이 들었기에 단 한 점도 먹지 않았는데, 내가 무슨 이유로 쓰러지겠어?”

저이계는 은교교의 앞에 수북한 음식을 보았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 음식들에는 손을 댄 흔적이 어디에도 없었다.

저이계가 고개를 흔들었다.

“헤헤. 그래도 쓰러지셔야 합니다. 독괴의 독은 먹지 않는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갑자기 사도명이 몸을 앞뒤로, 그리고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이마를 힘껏 식탁에 찧으며 쓰러졌다.

쿠-웅!

“이, 이게 무슨… 아아!”

은교교도 어지러움을 느꼈다.

돌연 사물이 여러 개로 겹쳐 보이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독 증상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분명 모든 독을 검사했는데 어떻게….”

“헤헤. 좌득생 형님은 이미 독인의 경지를 이루었지요. 그의 독 중에 가장 지독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체독(體毒)입니다.”

은교교는 손바닥으로 입과 코를 막고 주변을 살폈다.

체독은 몸에서 흘러나온다.

독인이 체독을 풍기려면 그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

그런데 대체 지금 어디에 독괴 좌득생이 있단 말인가?

“아!”

주변을 살피던 은교교의 시선이 한 점에 고정되었다.

바닥에는 도합 여섯 구의 시체가 있다.

태행사적의 시체 외에도 두 구의 시체가 더 있는 것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바닥에 있었고, 목도 손도 잘리지 않았다.

“서, 설마….”

“무림맹의 순찰당 산하 특별당주 은령선자 은교교.”

시체 중의 하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는 눈을 뜨고 천천히 앉았다가, 이윽고 벌떡 일어섰다.

“너는 설마하니 우리 신주삼괴가 태행사적 정도를 방패로 삼아 천라옥벽의 행방을 묻으려 계획했을 거라 보았나?”

“아무래도 그랬던 모양입니다, 둘째 형님. 헤헷.”

저이계가 웃었다.

“제가 똑똑하다고 추켜세워 주었더니 헤헷 그 자신이 정말로 똑똑한 줄 알더라니까요.”

시체가 일어서자, 은교교는 어지럼증세가 한층 더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손으로 막아도 소용없었다.

독인의 체독은 모공을 타고 전해지기에, 숨을 쉬지 않아도 전염을 피하지 못한다.

“부, 분명히 심장이 뛰지 않는 것을 확인했는데….”

“그 점은 큰 형님에게 물어보는 편이 좋겠습니다, 헤헷.”

저이계가 또 다른 한 구의 시체를 보았다.

그 시체가 말했다.

“묻고 대답할 것이 무엇 있느냐? 살아 있는 것은 반드시 언젠가 죽고, 죽지 않는다면 죽게 만들면 그만이다.”

시체는 눈을 뜨지도 않고, 몸을 굽히지도 않은 채 그야말로 강시처럼 벌떡 일어섰다.

은교교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시체의 심장은 지금도 여전히 뛰지 않았다.

그는, 일어서자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던 독괴 좌득생과는 전혀 달랐다.

누워 있을 때나 말하고 일어선 지금이니 똑같이 심장이 뛰지 않고 있었다.

은교교는 그가 누군지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망괴(亡怪) 악휘?”

망은 사망, 죽음을 뜻한다.

그는 칠십 년 전에, 무공을 익히는 도중 주화입마를 당해서 이미 한 번 죽었다.

그리고 심장이 뛰지 않는 상태로 타인의 피와 생명력을 먹으며 지금까지 살고 있는, 신주삼괴의 우두머리가 바로 악휘였다.

은교교는 등에서 돋는 오한을 애써 달래며, 자신을 둘러싼 세 사람은 찬찬히 살폈다.

망괴 악휘.

독괴 좌득생.

그리고 식괴 저이계.

은교교는 처음에 자신이 태행사적을 쫓아 여기에 도착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신주삼과는 그런 와중에 우연히 만난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신주삼괴는 미리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걸려든 거냐, 돼지?”

“헤헷. 지금과 같은 상황에도 여전히 저를 돼지라 부를 용기가 있으니, 과연 무림맹의 특별순찰답습니다, 은령선자 님.”

“내가 필요한가?”

“태행산의 네 도적 따위가 천라옥벽을 갖고 잠적한다면 말이 되지 않지요. 하지만 무림맹의 은령선자가 천라옥벽을 욕심내어 잠적한다면, 그건 대충 이해할 수 있는 수준 아니겠습니까?”

은교교는 한숨을 길게 내쉴 도리밖에 없었다.

그녀는 여러 가지 실수를 했다.

교만했으며, 지나치게 스스로를 믿었다.

자신의 머리 씀씀이가 뛰어나다면, 다른 사람의 머리 씀씀이 또한 마찬가지로 뛰어날 것이라 생각해야 했건만, 은교교는 너무 쉽사리 자신을 최고라고 믿었다.

“세상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속일 생각 없습니다. 둘째 형님의 독에 녹아버린 은령선자를, 세상은 찾아내지 못할 겁니다. 헤헷. 우리는 시간을 벌 것이니 그것으로 충분하죠.”

은교교는 상상했다.

어딘가로 숨은 신주삼괴가 천라옥벽의 비밀을 풀고 천하를 쟁패할 힘을 얻어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 날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까?

얼마나 많은 참혹과 절망이 세상을 덮을까?

“정말로 너희들이 천라옥벽을 가졌느냐?”

식괴가 망괴를 보았다.

“한 번쯤 보여주는 것도 재밌지 않겠습니까, 큰 형님?”

망괴가 손을 내밀었다.

내민 그의 손에 저이계는 식칼을 올렸다.

식칼을 건네받은 망괴가 갑자기 그 칼로 자신의 배를 갈랐다.

“무슨?”

놀라는 은교교의 앞에서 망괴 악휘는 담담한 얼굴로 자신의 갈라진 배를 열고, 기름종이에 쌓인 무엇인가를 꺼냈다.

망괴 악휘의 몸은 이미 죽었다.

죽었으니 고통을 느끼지 않으며, 내장을 꺼내도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악휘는 기름종이를 벗겼다.

눈부시게 빛나는 천라옥벽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어른의 주먹보다 조금 큰 구슬.

그곳에 천라대제가 남긴 세 가지의 보물이 들어있다 하였다.

“헤헷. 열심히 보십시오. 죽어 저승에 가면 만나는 귀신마다 알리십시오. 은령선자 은교교가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를. 그 아름다운 몸이 무슨 이유로 녹아내렸는지를, 헤헷.”

“나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그런 사람을 헤헷, 나는 정말 좋아합니다.”

식괴 저이계는 계속 웃었다.

“패배를 알면서도 끝까지 싸우는 얼굴은. 절망과 고통이 생생해서 매우 귀엽거든요.”

“나에게서 끝낼 순 없나?”

“무슨 뜻인가요?”

은교교는 이마를 찧은 채 기절해 있는 사도명을 보았다.

“그는 무공을 모르는 사람이다. 무림인이 아냐.”

“그런 것 같더군요. 천라옥벽을 모르고. 나를 보고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걸 보니.”

식괴는 금낭화를 보며 웃었다.

“꽃을 빗댄 말장난에 깜빡 속아서, 헤헷 저는 그가 활검의 술을 사용하는 반박귀진의 고수인 줄 알았지 뭡니까?”

은교교는 사도명과 주고받았던 대화를 후회했다.

당시 은교교는 내공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막았으나, 독괴와 망괴가 바로 옆에 누워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는 내버려 둬라.”

“살려주고 싶습니까?”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나뿐이지 않느냐?”

식괴 저이계가 빙그레 웃었다.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은교교는 심장이 털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저이계에게 좋은 생각이 그녀 자신에게는 결코 좋은 생각일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했다.

“나의 이름은 두 가지의 규칙을 뜻합니다. 두 가지의 경우에는 결코 죽이지 않지요. 헤헤”

저이계가 히죽히죽 웃었다.

은교교는 고개를 저었다.

“저 사람은 이미 정신을 잃었다. 음식을 먹을 방법이 없어.”

“그러나 먹을 수 있는 입은 헤헷 아직 하나가 남아 있지요.”

은교교는 마른침을 삼켰다.

싸워서 신주삼괴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이제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음식을 먹는 한, 저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는 뜻이냐?”

“헤헤헷.”

저이계가 새로 가져왔던 음식은 독으로 범벅이 된 것이었다.

은교교는 이미 중독되었다.

독이 든 음식을 더 먹는다면, 죽음의 때는 빨리 올 것이다.

“영원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없지. 언젠가는 멈춰야 한다.”

망괴 악휘가 억양 없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도 없지. 언젠가는 죽어야 해.”

“하지만, 죽음을 안다고 해서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은교교는 식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손으로 음식을 집어, 입안에 쑤셔 넣었다.

그녀는 열심히 씹었다.

꼭꼭 열심히 씹었고, 또한 열심히 삼켰으며 멈추지 않았다.

은교교가 음식을 먹는 모습은 조금 전 도대광이 음식을 먹는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겉보기만 같을 뿐, 그 속은 완전히 달랐다.

도대광은 살고자 먹었다.

하지만 은교교는 살리고자 먹고 있는 것이다.

망괴 악휘의 말은 옳았다.

영원히 음식을 먹을 방법이 없다면, 언젠가는 멈추어야 하는 순간은 올 것이다.

그 사이에 기적이 벌어질까?

은교교가 혹은 사도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은 과연 있기나 할까?

“헤헤헷. 절망을 알면서도 희망을 품는 겁니까?”

저이계가 웃었다.

은교교는 꾸역꾸역 먹었다.

“아직은 살아 있으니까.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은 희망을 품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은교교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새 저이계는 더 이상 웃지 못하고 그녀를 보았다.

독괴도 망괴도 말이 없었다.

“망할!”

갑자기 저이계가 소리쳤다.

그는 망괴 악휘에게로 달려들어 식칼을 돌려받더니, 곧장 식탁에 엎어져 있는 사도명을 덮쳤다.

“이래서 나는 정파의 미친놈들이 싫단 말이다-!”

저이계가 식칼을 사도명의 목을 향해 내려찍었다.

“약속을 어길 참이냐?”

은교교가 검을 뽑았다.

청상검의 푸른 기운이 서릿발처럼 날아 사도명의 목 바로 위에서 식칼과 격돌했다.

까-앙!

쇳소리와 함께 저이계가 휘정거리며 옆으로 물러났다.

중독된 상태에서 억지로 내공을 끌어올린 은교교는 입에서 터져 나오는 핏물을 막아야 했다.

“야, 약속을 지켜. 신주삼괴가 한낱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는 소인배였나?”

“흐흐흐. 약속을 지키는 장난보다 몇 배는 더 재밌는 일이 생각이 났거든요.”

저이계가 식칼을 빙글빙글 돌려 잡으면서 웃었다. 그는 더 이상 여유를 부리지 않았다.

능글맞은 말투를 잊고 살기를 흘리는 모습이야 말로, 저이계의 진짜 모습이었다.

“다른 놈들은 목만, 손만 잘랐어. 하지만 이 녀석은 목과 손, 다리까지 모두 잘라내자.”

“저이계!”

“그래서 녀석을 지키지 못한 자괴감에, 네가 몸을 떠는 모습을 보겠다. 크흐흐.”

“이 돼지 새끼야아-!”

“두 분 형님은 계집을 붙잡아 주십시오. 막내가 지금부터 정말 재밌는 걸 보여드리겠습니다.”

“제발 그만해. 관계없는 사람이잖아. 함부로 죽이지 마.”

은교교는 저이계를 막으러 갈 수가 없었다.

독괴 좌득생이 왼쪽에서 그녀를 막았고, 망괴 악휘가 오른쪽에서 그녀에게 다가왔다.

청상검을 잡은 은교교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지금처럼 자신의 약함을 절감해본 적은 없었다.

힘이 없으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며. 남을 지킬 방법 또한 더더욱 없는 것이다.

은교교는 털썩 주저앉았다.

사도명이 내려놓은 나뭇짐 사이에 꽂힌 금낭화.

붉은 꽃잎이 바람이 없는데도 하늘하늘 흔들렸다.

꽃은 생생했다.

독인의 체독이 공간에 떠돌고 있건만, 꽃은 마치 갓 피어난 것처럼 맑고 고왔다.

‘가만! 체독이 떠도는 데도… 라고?’

나직한 탄식이 들려온 것은 바로 그 순간의 일이었다.

- 왜? 도대체 왜?

나직했으나, 또한 또렷했다.

분명히 혼잣말이었는데, 모두의 귀에 명확하게 들렸다.

그 음성을 듣자, 은교교는 중독으로 답답하던 가슴의 통증이 시원하게 씻겨나감을 느꼈다.

- 어이해 스스로와의 약속조차 지킬 수 없게 만들지? 도대체 너희는, 무슨 이유로?

다음 순간 빛이 일었다.

번쩍!

망괴 악휘는 고개를 내려 자신의 가슴을 보았다.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칠십 년만의 일이었다.

망괴 악휘는 주화입마를 당한 이후에 처음으로 자신의 가슴에서 터지는 피를 보았다.

바람이 없는데도, 금낭화가 또다시 살랑살랑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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