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부러진 검
검몽(劍夢).
검을 손에 쥔, 세상 모든 무인들의 꿈이라는 의미다.
검몽은 20년마다 열리는 천하비무의 우승자를 뜻한다.
나이와 출신 내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시합!
천하비무의 우승자는 당대의 검몽이라 불리며, 무림태자의 직위에 봉해진다.
그리고 무림태자는 다음 대의 무림맹주가 된다.
천하비무의 우승자는 대대로 19성좌(星座)에서 나왔었다.
19성좌는 무림맹의 근간을 이루는, 열아홉개의 방파를 일컫는다.
구파일방의 십대문파와 신주구룡 구대세가.
그런데 6년 전 벌어졌던, 제7대의 천하비무에서 그러한, 전통 아닌 전통이 깨어지고 말았다.
일천사백아흔세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우승한, 당대의 검몽은 명문정파 출신이 아니었다.
불과 16세의 소년!
세상이 열광했다.
검몽 역사상 최연소.
이름 없는 문파 출신.
그의 이력은 명문 정파에 속하지 못한 수많은 무림인에게 희망을 주었다.
자신도 노력하면 언젠가 꿈을 손에 쥘 수 있으리라는 희망.
하지만 모두의 희망은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십자무림맹에서 거행된 무림태자 책봉식에서 검몽이 갑자기 눈물을 터뜨렸다.
“검이 부러졌어요.”
그는 뜻 모를 말을 남긴 후 실종되었고, 무림태자 책봉식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무림맹과 무림맹 산하의 아흔아홉 개 방파가 일제히 사람을 풀어 세상을 뒤졌으나, 검몽의 흔적은 세상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소문이 퍼졌다.
“19성좌가 뒷배 없는 검몽을 암살했다는군.”
“다음 대의 무림맹주도 19성좌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래.”
사라졌던 검몽의 시체는 장백산 깊은 계곡에서 발견되었다.
절벽을 굴렀는지 몸 곳곳의 뼈가 부러졌고, 호랑이에게 신체의 일부를 뜯긴 상태였다.
무림맹의 조사관들은 시체가 입은 옷과, 품속에 들어 있던 청옥소검으로 죽은 자의 신분을 확인했다.
청옥소검은 검몽의 증표였다.
무림맹은 즉시 비무의 준우승자를 새로운 검몽으로 임명한 후, 무림태자 책봉식을 다시 강행한다.
소문은 더욱 흉흉해졌다.
“봐. 역시 검몽을 죽였잖아.”
“검몽의 몸에서 화산파의 무공 흔적이 나왔대. 준우승자, 그러니까 새로운 검몽이 화산파 출신인 거, 너희도 모두 알지?”
무림맹은 공식적으로 그런 내용이 거짓임을 밝혔다.
그러나 한 번 퍼진 소문은 잦아들지 않고 오히려 더욱 빠르게 퍼져 나갔다.
하지만 결국 가장 강한 존재는 시간이다.
세월은 모든 것을 삭힌다.
6년의 시간이 지나자, 시끄럽던 소문은 잠잠해지고 대신 다른 소문이 세상을 덮었다.
“무림맹주가 병에 걸렸대.”
“그 틈을 노리고 세외팔천이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던데.”
민심이 아무리 흔들려도 하늘의 이치는 변함이 없다.
겨울이 물러가면 어김없이 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001화. 장백산의 봄
장백산에 봄이 왔다.
산은 꽃으로 뒤덮였다.
금낭화가 잔뜩 매달린 가지는, 꽃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아래로 휘어졌다.
바람이 붉은 꽃잎을 짤랑짤랑 흔들었다.
“세월은 위대하다.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들면서도 또한 변하지 않도록 처음으로 되돌린다.”
꽃잎을 조심스레 매만지는 나무꾼은 젊었다.
“이 위대한 시간의 힘을, 나는 정말로 붙잡을 수 있을까? 아니, 그 옅은 뿌리나마 잠시 엿볼 수라도 있을까?”
젊은 나무꾼의 손가락은 매끈했고 길면서도 단단해 보였다.
그의 얼굴은 아주 잘 생기지도 않았고 못 생기지도 않았으며, 키는 심하게 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작지도 않았다.
몸에는 군살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르지도 않아서 걸으면 매우 날렵하면서도 탄력 있게 움직일 것만 같았다.
다른 모든 것은 평범했으나, 꽃잎을 들여다보는 나무꾼의 눈빛만은 특이했다.
깊고 맑아서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느낌이었다.
한참 동안 꽃잎을 보고 있던 젊은 나무꾼은 아주 길게 한숨을 쉬었다.
“휴우. 더 이상은 꿈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사라진 꿈을, 나는 다시 한 번 꿀 수 있을까?”
**
한상객잔.
장백산 태원봉 인근에서는 유일한 객잔이다.
유람 삼아 산행을 오르는 이들이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약초를 캐어 내려오는 약초꾼들은 모두 한상객잔에 들러 배를 채운다.
내부는 넓지 않다.
식탁이 겨우 네 개였다.
지금, 그 네 개의 식탁 모두에 사람이 앉아 있다.
하나의 식탁에 한 명의 사람.
모두 네 명의 사람이 식탁에 앉아 있었고, 그들 외에 두 명의 사람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식탁 위로 산더미처럼 쌓인 음식이 보였다.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한 식탁 위에 놓인 음식만으로도 네 명 모두가 먹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식탁에 앉은 네 명은 정신없이 음식을 먹었다.
와구와구 쩝쩝쩝.
산더미처럼 쌓인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 게걸스레 먹어대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음식과 전쟁을 벌이는 듯 보였다.
음식물을 씹는 소리가 넓지 않은 한상객잔에 가득했다.
네 사람은 이마에서 땀을 흘리고 눈으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음식을 먹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에 비해 바닥에 누운 두 사람은 전혀 음식을 먹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숨이 멈춘 사람은 당연히 음식을 먹지 못하니까.
주방의 문이 열리더니, 주방 모자를 쓴 뚱뚱한 남자 한 명이 빼꼼 머리를 내밀고 물었다.
“음식이 입맛에 맞으십니까? 헤헤. 그런데 맛이 없는 모양이네요. 먹는 속도가 헤헤, 처음 같지 않습니다. 헤헤헤.”
둥근 얼굴 속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자, 네 개 식탁의 사람들이 먹는 속도는 갑자기 빨라졌다.
“아, 아닙니다.”
“먹고 있습니다.”
“너무 맛이 있어서 계속, 끝까지 먹고 싶습니다.”
“헤헤헤. 좋습니다. 그렇다면 계속 드십시오. 음식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헤헤헤.”
뚱뚱한 주방장은 다시 주방 안으로 사라졌다.
바로 그 순간에 한상객잔의 낡은 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삐-걱!
등 뒤에 나뭇짐을 잔뜩 진, 젊은 나무꾼 한 명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나무꾼은 실내를 둘러보았다.
정신없이 음식을 먹고 있는 네 명의 사내.
그리고 바닥에 누운 채로 숨을 쉬지 않는 두 구의 시체.
나무꾼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휴우. 오늘은 식사를 할 수가 없는 건가?”
주방의 문이 다시 열렸다.
돼지 머리의 뚱보가 고개를 내밀고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헤헤. 음식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나무꾼의 나뭇짐 사이에는 나뭇가지 하나가 꽂혀 있었다.
가지에 매달린 꽃은 바람이 없는데도 찰랑거렸다.
나무꾼은 식탁에 앉은 네 명을 한 명 한 명 살폈다.
그들 중, 가장 체격이 작은 한 사람의 안색이 창백했다.
그는 답답한지 음식을 먹을 때마다 가슴을 치고 있었다.
나무꾼은 지고 있던 나뭇짐을 그의 앞에 내려놓고 앉았다.
뚱보가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왼손과 오른손에 각각 커다란 쟁반을 들었다.
“환영합니다, 손님. 저이계라고 합니다. 저팔계라고 말할 때의 그 돼지 저, 입지요.”
저이계는 쟁반 위에 담은 산더미 같은 음식을 나무꾼 앞에 내려놓았다.
“헤헤. 그러니까 저를 부르실 때는 그냥 편하게 돼지, 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헤헤헤.”
젊은 나무꾼은 저이계가 가져온 음식의 향내를 맡았다.
기름 냄새가 고소했고, 향신료의 향이 달콤했으며, 고추의 알싸함이 입맛을 돌게 만들었다.
“맛있어 보이는군요.”
“당연합니다. 저이계의 음식은 언제 먹어도 맛있지요.”
“팔계가 아니라 이계?”
“헤헤. 여덟 개의 규칙이 아니라 두 개의 규칙입니다. 자아, 마음껏 드십시오. 헤헤. 음식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젊은 나무꾼은 천천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먹는 나머지 네 사람과는 달리, 그는 작은 양의 음식을 입에 넣고 꼭꼭 오래 씹었다.
“크흑!”
젊은 나무꾼의 맞은편에 앉은, 덩치가 작은 남자가 가슴을 쳤다.
“도, 도저히 더 이상은….”
그는 벌떡 일어났다.
나무꾼의 옆 식탁에서 음식을 먹던, 머리가 반쯤 벗겨진 남자가 고함을 질렀다.
“그러면 안 된다, 막내야. 힘을 내야 해.”
“하, 하지만 큰형님. 저는 더 이상… 끄웨엑.”
막내라 불린 남자는 지금까지 먹었던 음식을 모조리 토했다.
“아아!”
큰형님이란 남자가 탄식했다.
음식을 토한 남자는 부들부들 떨더니, 갑자기 문으로 달려갔다.
“으아아!”
주방 쪽에서 웃음이 들려왔다.
“헤헤헤. 이제 음식이 더 이상은 입맛에 맞지 않다면….”
그리고 웃음보다 더욱 빠르게 차가운 한 줄기의 빛이 솟구쳐 나와서 공간에 흘렀다.
콰-앙!
흐름은 문을 열고 나가려던 막내의 목을 스친 뒤에 벽에 깊숙하게 박혔다.
한줄기 후끈한 바람이 젊은 나무꾼의 얼굴로 불었다.
막내가 그 자리에서 멈췄다.
“…죽어야지요.”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말투로 말하면서, 저이계가 주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벽에 깊숙하게 박힌 식칼을 오른손으로 뽑았다.
피는 튀지 않았다.
분명 칼이 목을 그었건만, 막내의 목에는 그저 빨간 선 하나가 나타났을 뿐이었다.
막내는 열려고 하던 문을 놓고, 옆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후, 그의 몸뚱이와 머리는 천천히 분리되었다.
미리 바닥에 누워 있던 두 구의 시체처럼, 이제 그는 더 이상 억지로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다.
피는 튀지 않았고 심지어 흐르지도 않았다.
젊은 나무꾼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불어왔던 열기.
저이게는 식칼을 휘두르며 뜨거운 열기를 함께 뿜어, 상처를 순간적으로 지져버린 것이다.
“아아. 막내야.”
머리 벗겨진 남자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저이계가 웃었다.
“이제 더 이상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습니까, 손님?”
머리 벗겨진 남자가 정신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저희는 막내와 달리….”
“달리?”
“음식이 아, 아직도 매우 입에 맞습니다.”
남은 세 명의 사내는 또다시 음식을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저이계가 젊은 나무꾼의 앞으로 다가왔다.
“이름을 물어도 됩니까?”
나무꾼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도명.”
“삶의 명운을 스스로 이끈다, 인가요? 좋은 이름이네요. 헤헤.”
저이계는 계속 웃었다.
“저의 이계는 두 가지의 규칙을 뜻합니다. 두 가지 경우에는 절대 죽이지 않는다는 규칙.”
사도명은 동료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미친 듯이 음식을 먹어대는 세 명의 사내를 힐끗 곁눈으로 보았다.
“먹을 때는 죽이지 않는다?”
“헤헤. 맞습니다.”
저이계가 퉁퉁한 손가락을 두 개 들어 보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나보다 무거운 자는 죽이지 않지요.”
사도명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휴. 귀하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열심히 먹어 당장 귀하보다 뚱뚱해져야 하는 건가?”
“헤헤. 정답입니다.”
“그런 말을 왜 나에게 하는 거요? 내가 음식을 더 이상 먹지 못하면 죽이겠다는 뜻이오?”
“궁금해서요.”
“뭐가 궁금하오?”
저이계가 갑자기 웃음을 거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무서운 사람인데, 손님은 왜 전혀 무서워하지 않지요?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도명은 저이계를 물끄러미 보다가,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이 있었다.
사도명의 왼쪽 식탁에 앉아 있던 수염투성이 사내였다.
“으아아. 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습니다, 큰형님-!”
수염 사내는 저이계를 덮쳤다.
그와 동시에 오른쪽의 사내도 자신이 뜯던 돼지 다리뼈를 무기 삼아 몸을 날렸다.
“죽어라. 이 돼지야!”
두 사람은 함께 고함을 지르며 저이계를 등 뒤에서 공격했다.
저이계의 오른손에는 여전히 식칼이 잡혀 있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자세히 보세요, 손님.”
저이계가 시선을 사도명에게 고정한 채 웃었다.
그는 몸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저 오른손의 식칼을 한 차례 몸 주변으로 휘둘렀을 뿐이다.
번쩍!
뒤에서 달려들던 두 명의 몸이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그들의 목에도 죽은 막내와 똑같은 붉은 선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쓰러졌고, 목과 몸통은 그 후에 분리되었다.
두 사람의 목에서도 피는 튀지 않고 흐르지도 않았다.
식칼을 빠르게 휘두르는 일은 어렵지만, 동시에 내공으로 열기를 뿜어내는 일은 더욱 어렵다.
“아아! 보이지 않았어. 카,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 보이지도 않았어. 둘째야. 셋째야.”
큰형님이란 사내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들은 언제나 네 명이 함께 다녔다.
오늘도 네 명이 같이 왔는데, 다른 세 명은 모두 죽고 자신만 혼자 살아남았다.
“저 사람의 이름은 도대광. 태행사적이라 불리는 도적 형제 중의 맏형이지요. 헤헤.”
저이계가 다시 웃었다.
“동생들 세 명이 죽었는데도 저렇게 떨고만 있습니다. 비겁하지요? 사람이 비겁해지는 이유는, 헤헷 두렵기 때문입니다.”
“…….”
사도명은 대꾸 없이 도대광을 보았다.
그는 덜덜 떨면서 다시 자리에 앉아, 음식을 꾸역꾸역 입속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언제나 함께 다녔던 형제.
그들 중의 세 명이 죽었음에도, 도대광은 젓가락을 놀리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머, 먹겠습니다. 저는 얼마든지 먹을 수 있습니다.”
떨리는 손이 젓가락을 제대로 잡지 못하자, 도대광은 손으로 음식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먹으면 죽지 않는다.
계속 먹어야 산다.
저이계가 사도명을 보았다.
“손님도 어서 마음껏 드십시오. 음식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사도명은 젓가락을 들었다.
그는 음식을 조금 집어 차분하게 입안에 넣고, 천천히, 아주 오래 씹었다.
입 속의 음식을 모두 씹어서 삼킨 후에, 사도명은 말했다.
“곽노의 음식에도 고소함도, 향내도 거의 없었소.”
“곽노가 누굽니까, 손님?”
“하지만 신선했지. 정성이 담겨 있는 요리였소.”
“곽노가 누군지 물었습니다.”
“신선함은 영양분의 질이 좋다는 의미요. 좋은 영양은 건강과 힘을 주지. 그래서 나는 그의 요리를 아주 많이 좋아했소.”
사도명은 주방 쪽을 보았다.
저이계가 알겠다는 듯 웃었다.
“알겠습니다. 바로 이 가게의 주인을 말하는 것이군요.”
“곽노는 지금 어디에 있소?”
“헤헤헤. 그야 당연히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겠지요?”
“하아.”
사도명은 길게 한숨을 내쉰 후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저이계가 들고 있는 식칼은 본래 곽노가 쓰던 것이었다.
곽노는 언제나 그 칼로 요리를 했고, 사도명에게 자신이 정성껏 만든 요리를 내어 놓았다.
저이계가 다시 웃었다.
“만약 손님께서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면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헤헤, 그 음식을 그만 드시면 됩지요.”
“하아!”
사도명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이것으로 곽노의 행방은 더없이 확실해졌다.
사도명은 바닥의 다섯 구 시체를 보았다.
그리고 눈이 허옇게 뒤집힌 채 꾸역꾸역 음식을 먹고 있는 도대광도 다시 살폈다.
“끄으윽! 끅! 끅!”
도대광이 갑자기 두 손으로 자신의 목을 잡았다.
사람은 음식을 먹지 않으면 죽지만, 지나치게 많이 먹어도 버티지 못한다.
도대광은 결국 뒤로 쓰러져서 가쁜 숨만 내쉬었다.
“허억 허억 먹을 수 있습니다. 저는 더 많이 먹을 수 있습니다. 살려 주세요. 죽이지 마세요.”
저이계가 바닥에 쓰러진 도대광의 옆으로 다가갔다.
손에 든 식칼을 높이 들었다.
“제, 제발 살려 주세요.”
“죽이지 않을게요, 손님.”
저이계는 사도명을 한 차례 보더니, 그대로 칼을 찍었다.
콰앙!
“크아악!”
목은 잘리지 않았다.
잘려나간 도대광의 오른손목이 사방으로 피를 튀겼다.
저이계는 멈추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식칼을 휘둘러, 이번에는 도대광의 왼쪽 손목마저 잘라 버렸다.
그는 더 이상 상처를 열기로 지지지 않았다.
잘려나간 도대광의 양쪽 손목에서 콸콸콸 피가 흘렀다.
도대광은 빈손으로 계속 허공을 허우적허우적 저었다.
“으아아. 먹어야 하는데 손이… 손이 없어서, 으아아.”
“공포란 참 재미있지요?”
잘려서 펄떡거리는 도대광의 양 손목을 발로 지그시 밟으며, 저이계는 사도명을 보았다.
“헤헤. 세 동생의 죽음 앞에서도 복수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합니다. 공포란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잠식합니다. 헤헤.”
사도명이 물었다.
“왜 그랬소?”
“음식을 만들기 좋아하니까요. 그리고 내가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이 먹으며 맛있다고 하는 것도 매우 좋아하고, 헤헤.”
“그거 말고.”
“나는 또한 사람의 얼굴이 고통과 공포로 일그러지는 것을 보는 것도 아주 좋아하거든요.”
“내가 뭘 묻는지 모르는 거요?”
“손님이야말로 내가 무엇을 묻는지를 모르는군요.”
저이계가 지금까지의 웃음을 거두고 말했다.
“사람의 목을 베고, 피까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손님은 대체 왜 나를 보고 무서워하지 않는 겁니까?”
“내가, 그 질문에 대신 대답해도 될까?”
여자의 목소리가 창문 쪽에서 들려왔다.
단지 듣는 것만으로도 귀가 상쾌할 정도로 고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