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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205화 (205/206)

<기적의 이혼대법 205화>

*   *   *

“천풍 대협! 혈마의 시신이라도 본맹에서 거두어 야 하오!”

“소림을 불태우고 그 후예인 적운 대협까지 죽인 놈이니 응당 소림에 넘겨야 합니다!”

의천맹 측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적사결의 눈빛에 숨죽이고 있던 그들이 그의 죽음과 동시에 숨통이 트였는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었다.

‘한심하구나. 혈마의 시체라도 챙겨 의천맹이 혈교를 막았다는 체면치레를 하려는 것이겠지.’

그렇지 않다면 시신을 거두자는 말이 나올 리가 없다.

백리검은 미간을 찌푸렸으나 의견분열이 특기였던 의천맹답지 않게 단결된 목소리로 주장하니 이를 무시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저들이 저렇게 주장할 수 있는 것도 병력의 우위가 명백했기 때문이었다.

의천맹을 제외한 천마신교와 사천회, 그리고 혈교는 지금까지 악전고투한 탓에 그렇지 않아도 수가 줄었고 기력을 거의 소진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반면 의천맹은 수뇌부가 당했다지만 대부분의 전력이 온전한 상태였으니까.

그때 앞으로 나선 자가 있었다.

“혈마의 시신은 본교의 것.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

마령존 흑사광이었다.

적사결보다 성취가 낮으나 그 역시 천마신공을 익힌 자.

그가 내뿜는 천마기의 위세는 만만치 않은 압박감을 행사했다.

그 뒤로 관패와 흑랑대, 마검귀면대, 수라혈검대가 목숨을 걸고 뒤를 받치니 의천맹의 무인들이 주춤거릴 정도였다.

또한 그들의 조력자.

“본회 역시 천마신교의 손을 들어 주겠소. 혈마의 시신을 취하려면 우리들도 상대해야 할 것이외다.”

암룡신존 당백산이 피로한 기색을 숨기고 당당하게 외쳤다.

천하 십대고수 중 사마오대존에 속하는 두 절대 고수가 나서니 의천맹으로서는 백리검의 눈치만 살폈다.

그들로서는 의천오무제 한 명도 없는 마당에 강동 십대고수의 배후에라도 숨겠다는 의도였다.

‘휴우, 이래서 절대 고수가 중요한 것이지.’

백리검은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쓴웃음을 지었다.

무인들의 수가 많고 체력을 보존했다 한들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단 두 사람에게 기세가 꺾여 꼬리를 내릴 뿐인데.

“둘 다 숨기고 있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하오. 천풍 대협, 밀리지 마시오.”

개방의 장로, 발천개가 옆에서 조언이랍시고 거들었다.

그 말에 백리검은 짜증이 치솟았다.

호랑이가 아무리 지친들 똥개들에게 밀리겠는가.

그의 눈에 들어온 의천맹은 똥개들의 집합소나 다름없었다.

그때 그를 구원하는 중재자가 나타났다.

“이거 다들 많이도 상하셨구려.”

두 집단 사이에 홀연히 나타난 선풍도골의 노인.

그는 서 선생이었다.

“죽은 시체에 그만들 관심가지고 돌아들 가시오. 혈마의 시신은 노부가 거두어 정성껏 장례를 치를 것이니.”

그의 말에 의천맹 측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노인장은 대관절 누구기에 그런 말을 하시오!”

“나 말이오? 흐음, 예전에 세인들이 생사신의라 곧잘 불러 주었소. 낯부끄러운 별호이나 그만하면 내세울 만한 듯싶소만.”

“……!”

정사마를 가리지 않고 인술을 베푼 천하제일 명의.

전대에 활약했던, 아니 지금도 그 전설적인 별호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에게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으니.

“백리세가의 가주, 백리검입니다. 부족하지만 임시로 맹주직을 맡고 있습니다.”

백리검이 앞으로 나서 서 선생을 향해 포권했다.

“반갑소이다. 서환이라 하오.”

“아까 말씀하신 정성껏 장례를 치를 것이란 의미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가 죽기 전 그 목숨을 대가로 저주를 내렸으니 그것을 풀기 위해서라오. 혈교로 인해 더 이상 해를 입는 이들이 나와서는 안 되지 않겠소이까?”

“그렇군요.”

백리검은 고개를 주억거린 후 의천맹의 맹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본인은 의천맹의 맹주로서 혈마의 시신을 생사신의께 양도하는 것을 동의하오. 만약 내 결정이 탐탁지 않다면 누구라도 앞으로 나서시오. 단, 신의를 대신해 혈마의 저주를 풀 수 있는 방안이 있어야 할 것이외다!”

“…….”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생사신의라는 이름값도 무거웠거니와 혈마의 저주에 대한 방안이 없기 때문이었다.

“본맹은 이만 돌아갈 것입니다. 부디 강호의 안녕을 위해 장례를 잘 치러 주시길 바랍니다.”

“걱정 마시오.”

“신의만 믿겠습니다.”

백리검은 곧바로 맹주령을 내렸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가장 지척에 있는 문파, 화산파였다.

그곳에서 죽은 수뇌부의 시신을 수습하고 마지막까지 천마신교와 사천회의 철군을 주시할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솜씨 좀 발휘해 볼까.”

서 선생은 가슴에 칼을 박고 있는 적사결, 그리고 수레에 옮겨지고 있는 당연희를 떠올리며 소매를 걷었다.

간만에 대수술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   *

“으음.”

나직한 신음 소리가 분홍빛 입술 사이로 새어 나왔다.

“정신이 드느냐?”

“다, 당신은…….”

당연희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떨며 침상 옆의 사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정신 차린 거예요?”

“그래.”

“역시 이겨 낸 거로군요?”

“당연히.”

“그 말 쓰지 말랬죠?”

“후후, 깜박했구나.”

“재미도 없는 농을 듣고 나니 실감나네요. 제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그녀는 고개를 살짝 들어 가슴을 바라보았다.

붕대로 단단히 동여매진 그곳은 통증만으로 꽤 대수술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절 살린 거예요? 분명 심장이 박살나고 척추가 끊어졌었는데.”

천축유가신공이라도 타인의 신체에 그 정도 회복공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물은 것이었다.

“만났다며? 그럼 알 거 아니냐?”

“……혹시.”

“그래, 생사신의. 서 선생이 널 살렸다.”

“어떻게요? 심장을 재생하지 않으면 살릴 수 없었을 텐데.”

상식적인 의술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그녀는 당가에서 자랐기에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그러더군. 다른 사람의 심장을 집어넣었다고. 다만 이식된 심장이 네 것이 아니기에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지만 살아 있는 것이 어디냐.”

“다른 심장…… 말도 안 돼.”

장기 이식은 당가에서도 떠올려 본 것이었으나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은 상태.

의학적으로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었다.

“노사님은 어디 계시죠?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어요.”

“천천히 하거라. 곧 네 상태를 살피러 올 것이니. 너 지금 중환자다. 죽었다 살아났단 말이다.”

그 말에 당연희는 몸에 힘을 풀고 편안히 누웠다.

“왜 그랬느냐?”

“뭐가요?”

“왜 본좌의 앞을 막아서서 귀한 목숨 버리려 했느냔 말이다.”

“몰라요. 그땐 그냥 그랬어요.”

“그게 대답이 된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냐.”

“진짜라니까요. 나도 모르게 움직인 거예요.”

그녀는 콧잔등을 긁으며 쑥스러워했다.

“하여간 골칫덩이로 타고났구나, 넌.”

“그런가요? 헤헤. 어떡해요? 그런 여자를 배필로 삼았으니.”

“…….”

적사결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넌 누가 뭐라 해도 본좌의 반려다. 내가 약도 꼬박꼬박 챙겨 주고 앞으로는 아프지 않도록 해 주마.”

“뭐, 뭐예요? 지금?”

“뭐가 말이냐?”

“나 쫌 닭살 돋는데.”

“추워서 그러느냐? 잠시만 기다리거라.”

곧바로 주변 공기가 따뜻해졌다.

적사결이 삼매진화를 약하게 발휘해 공기를 훈훈하게 데운 것이었다.

“와아…….”

“불편한 것이 있으면 뭐든 말하거라. 그리고 네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뭔데요?”

“본좌는 공식적으로 무림에서 죽은 존재다. 앞으로도 강호에 나갈 일은 없을 게다. 그것은 너도 마찬가지고.”

“저도요? 왜요?”

“심장이 꿰뚫린 너를 본 무인들이 부지기수다. 그런 네가 살아 있으면 그곳에 나타났던 서 선생의 솜씨라 생각할 테고 유혹을 이기지 못한 놈들은 네 몸을 열어 보려 하겠지.”

“그렇겠네요. 귀수 규흘처럼 인체 해부를 제멋대로 일삼는 의원들도 많으니까요.”

당연희는 한숨을 쉬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나 그럼 마후도 아니고 뭐도 아니네요?”

“왜? 아쉬우냐?”

“아뇨, 그건 아닌데 그래도 죽은 사람처럼 평생 숨어서 살아가기는 좀 그러네요.”

타고난 미모 탓에 늘 주목받는 삶을 살아왔던 그녀였다.

시기를 받는 등 안 좋은 점도 많지만 결국엔 그것을 즐기는 쪽으로 발전하지 않았던가.

자유분방한 기질 탓에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은거해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면 나와 함께 밀월여행이라도 가 보겠느냐?”

밀월은 달콤한 신혼의 첫 달을 의미한다.

적사결은 그 기간에 여행을 가자 권하는 것이었다.

“피, 강호에 나가지 않겠다면서 무슨 여행이에요?”

“본좌가 이번 일로 느낀 것이 있다. 중원, 아니 중화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지.”

천축유가신공이라는 천축의 무학.

다마스커스와 연금술이라는 서역의 비술.

왜구를 통해 만났던 가라스텐구와 사기를 품은 요도.

적사결은 무림 강호, 그 너머가 보고 싶었다.

“왜국이든 조선이든 천축이든 가 보자꾸나. 그곳의 문물을 겪어 보고 무학을 배우고 시야를 넓히는 것이다.”

“지금 이국으로 가자고요?”

“왜? 싫으냐?”

“완전 좋죠! 한데 한 달로 되겠어요? 그러지 말고 한 몇 년 돌아보는 건 어때요?”

그녀는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그리 좋으냐?”

“제 어릴 적 꿈이 천하를 주유하는 여걸이 되는 거였어요. 하물며 이국이라니! 대박이에요!”

“하면 승낙한 것으로 알고 있으마. 그만 쉬거라.”

적사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려고요?”

“아직 혈교로 인해 입은 피해를 수습하지 못했다.”

“마령존에게 교주직을 넘겼잖아요.”

“음지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있는 법이지. 자주 찾아올 테니 몸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거라.”

적사결의 대답에 당연희는 우물쭈물하며 입을 오물거렸다.

“휴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거라.”

그가 다시 앉자 그녀가 물었다.

“파황무존은 어쩔 거예요? 그와 약조하셨잖아요.”

당연희가 걱정하는 것은 백천악과의 대전이었다.

천하 십대고수의 일인이라지만 그는 천하제일인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라는 평을 듣는 절대 고수.

그녀로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게 염려되었던 것이냐? 걱정 말거라. 말했다시피 본좌는 이미 강호에서 죽은 사람이니까.”

“믿어도 돼요?”

“전에도 말했다시피 백천악, 그놈은 본좌에게 안 돼. 뭐 하러 내 존재를 노출시키면서 약자와 싸우겠느냐?”

“…….”

그렇게 말하니 더 불안하다.

노백의 술도가에서 철혈권 철비환이 말한 걸로 짐작하건대 분명 진 것이 확실했으니까.

“휴우, 한 마디만 할게요. 싸우든 말든 바깥일에는 간섭하지 않을게요. 다만 나 과부만 만들지 마요.”

당연희는 말려도 소용없다는 생각에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걱정 마라, 안 싸울 테니까.”

적사결은 피식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킨 후 밖으로 나섰다.

한 겨울의 냉기는 처마에 고드름을 드리울 정도였으나 수화불침인 그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벌써부터 바가지 긁는 줄 알았더니……,훗. 그나저나 날씨 참 시원하니 좋구나.”

적사결의 발걸음은 곧바로 천산으로 향했다.

전대의 교주 암혼마제와 전대의 사무련주 사령천존의 비밀회동이 있었던 장소였다.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천산산맥 가장 깊숙한 곳.

그곳으로 향하는 적사결의 눈에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때의 상흔들이 곳곳에 보였다.

파괴된 고목과 거암, 그리고 그 위를 덮은 이끼와 수풀.

무언가에 홀린 듯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며 발걸음을 걷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곳은 청수한 계곡에 자리한 넓적바위였다.

그리고 그곳엔 한 명의 중년인이 뒷짐을 진 채 자리하고 있었다.

“역시 죽을 리 없지. 죽여도 죽지 않는 놈인 것을…….”

백천악이 안광을 번득이며 적사결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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