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204화 (204/206)

<기적의 이혼대법 204화>

*   *   *

꽈과과과광.

지진이 난 것 같은 진동과 벽력대제가 강림한 듯한 굉음.

그 소리에 화인현의 모든 무인들이 한 곳을 바라보았다.

먼 거리에서도 보일 정도의 충격파가 그곳에서 비산하고 있었다.

그렇게 터져 나온 기파가 화인현 일대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흑사광이었다.

‘이것은 설마 천마신공?’

내부에서부터 일어나는 공명.

그 지독한 비통함과 한스러움에 흑사광은 심혼이 뒤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두 천마신공으로 심상이 증폭된 것이었다.

그렇게 흑사광의 평정심이 흔들리자 그 영향은 혈교도들에게 이어졌다.

천마신공의 제압이 풀리며 도망치기 시작한 것.

그들이 향하는 곳은 그 기파가 터져 나온, 적사결과 무허가 생사결을 치르는 장소였다.

그것은 더 강한 천마기에 이끌리는 본능적인 귀속 행위이라 할 수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파리한 안색의 흑사광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 이는 관패였다.

그를 걱정하는 듯 보이나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혈교도가 향하는 곳을 왔다 갔다 했다.

“본좌는 괜찮소. 전 교도들에게 명을 하달하시오. 혈교도를 쫓아 태상교주가 계신 곳으로 갈 것이라고.”

“알겠습니다.”

관패는 흑사광에게 포권한 후 수하들에게 군령을 내렸다.

그러고는 자리를 옮겨 사천회의 무인들에게 다가갔다.

그곳에는 운기 중인 암룡신존 당백산이 있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사천회에 합류했고 남궁건에게 당한 심신을 다스리는 중이었다.

흑사광의 등장으로 전쟁이 소강상태에 빠진 덕분이었다.

호법을 서고 있던 당천십위가 관패를 저지하며 말했다.

“접근은 불허합니다. 용건을 말씀하시면 회주님께 전해 드리겠습니다.”

“본교는 혈교도들을 쫓아 저곳으로 갈 것이오. 사천회는 어찌할 것인지 답변 바라오.”

그 말에 핼쑥한 얼굴의 노인이 또 다른 당천십위의 부축을 받으며 다가왔다.

운기 중이었던 당백산이었다.

“막 운기가 끝난 참이네. 우리도 가야지, 동맹군인데. 그리고 저곳에 우리 사위가 있지 않은가. 허허허.”

“그리하시지요. 신존께서도 이 전쟁의 마지막을 보셔야지 않겠습니까.”

관패가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 시선의 끝에는 여전히 싸움의 여파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   *   *

의천맹과 흑랑대의 대치 장소.

그곳에서도 두 집단의 의식은 적사결과 무허의 싸움이 벌어지는 곳으로 향했다.

멀리서도 느낄 수 있는 강대한 마공과 불가기공.

무린을 비롯한 흑랑대는 마기에서 적사결 태상교주를, 백리검을 비롯한 의천맹은 불가기공에서 무허의 제자인 적운을 떠올리고 있었다.

특히 의천맹의 무인들의 기대감은 대단했다.

무허대사에게서도 느껴 보지 못한 강력한 기운.

그 제자인 적운의 신위가 스승을 뛰어넘어 새로운 정도제일인의 탄생을 알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맹의 수뇌부를 잃은 그들의 좌절감은 그렇게 새 시대의 기대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렇게 대치할 것이 아니라 저곳에서 모든 매듭을 짓는 것이 어떻겠소?”

백리검이 무린에게 제안했다.

의천맹을 수습한 그는 현재 임시 의천맹주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말은 맹도들의 심정을 대변한 것이었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우리도 저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무척 궁금하니까.”

무린은 오른편에 선 광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흑랑대가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먼저 이동하기 시작했다.

“제안을 받아 주어 고맙소.”

“별 말씀을. 우리 역시 그쪽과 생각이 같으니 고마울 것 없소. 서로의 이해가 일치한 것이니까.”

그렇게 외곽에서 대치중이던 두 집단도 움직였다.

모든 싸움이 종착지를 향해.

*   *   *

“으으으윽!”

남운적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꼬맹아, 왜 그래? 어디가 안 좋으냐?”

묘 선생이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하나 대답 없이 떨어져 내리는 진땀에 재우쳐 묻지 못하고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일다경이 지났을까.

“허억, 허억, 허억.”

남운적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생각했다.

‘어떻게 된 거지? 이 통증은 도대체…….’

그 자문 같은 물음에 사왕이 답했다.

-계약이 새롭게 이뤄졌다.

‘그게 무슨 뜻이야?’

-너와 내가 이룬 계약은 기존 주인의 사후, 계약이 이행되는 방식이었다. 그 사전 계약이 완성된 것이다. 한 마디로 주인과의 기존 계약이 해지된 것이라 할 수 있지.

‘뭐? 네 말대로라면 사부님께서 잘못되셨다는 거야?’

-그것이…… 조금 애매하다.

‘그건 또 무슨 뜻이야? 애매하다니?’

-보통 계약의 종료는 계약자의 죽음과 함께 혼백이 사라지며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계약서 자체가 사라지므로 끝난다는 것이지. 한데 이번 주인과의 계약은…… 뭐랄까, 마치 계약서가 검게 변해 계약 내용 자체가 보이지 않으니 자동 해지되었다고 해야 할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나도 설명을 하기가 어렵군.

듣고 보니 애매하고 복잡하다.

남운적은 이마의 땀을 훔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찮아, 꼬맹이?”

“네, 괜찮습니다. 걱정 마세요. 그보다 어서 움직이시죠.”

“응? 어딜?”

진법도 파괴된 마당에 또 어딜 가자는 것인가.

묘 선생은 불안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사부님이 계신 곳이요. 가 봐야겠어요.”

남운적의 시선이 향한 곳은 두 개의 무시무시한 기운이 충돌하는 장소였다.

“야, 미쳤어!? 저기 갔다간 뼈다귀도 못 건져!”

“빨리 가요. 여기 남아서 어쩌시려고요.”

“뭘 어떡해! 그냥 가만히 있는 거지. 기껏 환영진까지 다시 만들었는데. 위험하게 여길 왜 나가냐?”

묘 선생은 벌러덩 드러누워 배 째라는 식으로 나왔다.

“진짜 안 가실거죠?”

“안 가, 죽어도 못 가.”

“네. 그러세요, 그럼.”

남운적은 걸음을 옮기며 속으로 말했다.

‘사왕. 저기 진축에서 지기 빼 버려.’

‘알았다, 주인.”

남운적을 새롭게 주인으로 받들며 사왕이 첫 명령을 이행했다.

대지의 기운을 다루는 사왕에게 환영진의 핵심인 땅의 기운을 이동시키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어? 어? 이거 왜 이래?”

진의 변화를 알아 챈 묘 선생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저 멀리 걸어가는 남운적을 바라보았다.

“야! 이거 니가 그랬지!?”

묘 선생은 황급히 일어나 뛰기 시작했다.

“야아, 치사한 놈아! 같이 가!”

사부나 제자나 하는 짓이 판박이다, 판박이.

*   *   *

파아아아아.

무허의 광명범천이 내뿜는 광휘는 태양빛처럼 강렬했다.

그 서기에 적사결을 보호하듯 둘러친 어둠이 일순간 밀려날 정도였다.

‘생명을 불살랐기 때문인가. 굉장하군.’

오 갑자가 아니라 십 갑자라도 믿을 정도.

천마신공 덕분에 이룩한 화경이 아니었다면 천마진혼갑이라도 진즉에 뚫렸을 것이다.

끝없이 공급되는 자연지기와 이를 천마기로 화하는 무한의 방벽.

그 덕분에 적사결은 여유를 가지고 광명범천을 상대하고 있었다.

파스스스스.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오 갑자라는 막대한 공력이라도 힘의 한계는 자명했다.

무한한 기운의 공급을 받는 적사결의 천마기를 뚫지 못하고 도리어 잡아먹히기 시작한 것이다.

“크으윽.”

동귀어진으로도 적사결을 어찌하지 못한 무허가 그 빛을 꺼트리며 비틀거렸다.

먹먹한 어둠 속의 그는 촛불이 막 꺼진 빨간 심지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자리한, 두 사람의 강렬한 기운이 뒤섞인 공간.

바깥에서 보이지 않는 그곳은 오직 둘만이 존재하는 전장이었다.

“같잖군, 동귀어진이라니. 본좌가 네놈 따위와 같이 죽을 것이라 여겼더냐!”

뻐어어억.

일권에 턱이 부서지고 누런 이로 보이는 파편이 비산했다.

“너 때문에!”

뿌아악.

코가 주저앉고 왼쪽 눈알이 터지자 하얀 진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이들이 죽었고!”

으지직.

내뻗는 각법이 늑골을 부수고 폐를 터트려 버렸다.

“본좌가 혈마라는 개 같은 멍에를 짊어졌다. 빌어먹을!”

콰아앙.

벌레를 죽이듯 짓밟힌 무허는 바닥에 드러누워 연신 피를 토했다.

이미 전신은 너덜너덜했고 모든 공력을 소진한 그는 죽음만 기다리는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다.

“크헉. 쿨럭, 케헥.”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놈 같으니.”

“미, 미안하오. 내…… 쿨럭, 면목이 없소. 허억, 헉.”

“면목은 니미럴! 네놈은 예전부터 낯부끄러운 것이 뭔지 몰랐잖아!”

퍼억.

적사결은 시정잡배처럼 무허의 대갈통을 후려 차버렸다.

이제 와서 고승처럼 말하는 그가 마뜩잖은 것이었다.

“본좌가 말했지? 억겁의 시간 속에 가둬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고통을 맛보게 해 주겠다고.”

양손을 펼쳐 아래로 향했다.

그러자 드드드 거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두 개의 검이 쑥 하고 올라왔다.

앞서 무허가 빼앗아 땅속 깊숙이 박아 넣었던 적령검과 적혈검이었다.

그것을 허공섭물만으로 뽑아 올린 것이었다.

“자, 앞으로 네놈이 영원히 살 집이다.”

적사결은 적혈검을 무허의 가슴 위에 던져 올렸다.

“무슨 짓을…… 헉, 헉. 하려는 것…… 이오. 쿨럭. 쿨럭.”

“개 같은 짓.”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적사결의 전신에서 천마기가 실타래 풀리듯 흘러나와 적혈검과 무허를 감싸갔다.

영체를 구속시키는 계약은 사왕을 통해 영혼에 새겨 본 경험이 있는 적사결이었다.

그는 이를 변형시켜 무허의 영혼을 적혈검에 봉인하려는 것이었다.

치지지지직.

“끄아아아악!”

천마기가 무허의 영혼에 계약의 인을 새기기 시작하자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엉망이 된 육신보다 영혼에 새겨지는 고통에 더한 통증을 느끼는 것이었다.

“흐흐, 미안. 미안. 본좌가 아직 시술에 서툴러서 말이지. 이쁘게 해 줄 테니 조금만 더 참으라고.”

발버둥 치는 무허를 천마기로 억누르며 적사결은 끝까지 계약의 인을 새겼다.

그러고는 그 술력을 적혈검과 잇자.

쑤우우욱.

강제로 뽑아낸 혼백이 소용돌이치듯 검신으로 빨려 들어갔다.

봉인을 끝낸 적사결이 손짓하자 적혈검이 허공을 날아 손아귀로 들어왔다.

“본좌가 죽을 때까지 잘 보관해 주마. 아니, 아주 가보로 삼아서 영원토록 그 안에서 살게 해 줄 테니 참회하고 또 참회하거라.”

적사결은 적혈검을 품에 넣고 적령검을 휘둘렀다.

사아앗.

그러자 공간이 갈라지며 햇살이 비춰 들었고 내부를 채우고 있던 기운이 충격파가 되어 밖으로 터져 나갔다.

콰콰콰콰콰콰쾅.

그 폭발에 화산의 가장 바깥 봉우리이자 입구라 할 수 있는 입매봉이 무너져 내렸다.

적사결은 장막이 거두어 진 무대 위에 오른 주인공처럼 모습을 드러낸 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천지사방에 무인들이 가득했다.

천마신교, 사천회, 의천맹 그리고 혈교.

적사결의 시선이 그중 혈교도에게 이르렀을 때 잠시 멈췄다. 그리고 흑사광에게 이어졌다.

[아직 대성하지 못했구나, 그래서 그런 것이냐?]

현 시대에는 사라진, 오래전 전음이라 불렸던 기예.

적사결은 화경에 오르며 그것을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 것이었다.

자신에게만 들리는 그 물음에 흑사광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사결은 한숨을 쉰 후 천마기를 일으켰다.

그러자 그곳에 자리한 모든 무인들은 몸을 부들거리며 안색이 창백해졌고, 혈교도들은 각혈을 하며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무형의 기운이 모든 이의 심혼을 제압하고, 특히 혈교도는 단전을 폐함과 동시에 정신을 지배하던 혈마열반결의 기운을 제거한 것이었다.

예전의 눈빛을 되찾은 교도들은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오체투지한 채 눈물을 흘렸다.

어떤 이는 자발적으로, 또 어떤 이는 강제로 혈마열반결을 익혔으나 자신의 손으로 행한 잘못을 후회하고 뉘우치는 것이었다.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다.]

적사결은 전음으로 혈교도였던 그들의 마음을 보듬었다.

[모두가 본좌가 부덕한 탓. 모든 과오는 내가 짊어질 것이니 스스로를 탓하지 말라.]

그 말을 끝으로 적사결의 입술이 다시금 달싹거렸고 그 시선은 흑사광과 관패를 향해 있었다.

두 사람은 침중한 눈빛을 띤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본좌는 혈마. 이 세상을 피로 물들이기 위해 강림한 혈신이다.”

묵직한 중저음이지만 육합전성이 되어 각 세력, 무인들의 귀에 똑똑히 전달되었다.

“내 비록 대업을 이루지 못했으나 죽어서도 이 피 맺힌 원한을 잊지 않으리라.”

적사결은 천천히 적령검을 뒤집어 검첨을 심장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망설이지 않고 힘주어 당겼다.

푸우우욱.

“크헉.”

심장이 꿰뚫린 상처에서는 선혈이 줄줄 흘러내렸고 입에서도 토혈이 왈칵 쏟아졌다.

새하얗게 뒤덮인 설원 위로 뿌려진 핏물은 무척이나 선명한 붉은색을 띠었다.

“나 적사결. 혈교의 지존으로서…… 쿨럭. 내 목숨을 제물로 바쳐 너희를 저주한다.”

털썩.

허물어지듯 무너진 적사결은 무릎을 꿇고 가슴에 박힌 적령검을 놓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적사결은 그렇게 자신의 죽음, 아니 혈마의 죽음으로 혈교의 공식적인 멸문을 공표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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