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202화 (202/206)

<기적의 이혼대법 202화>

*   *   *

길게 늘어선 관도.

그 길을 빽빽하게 둘러싼 상점과 주점. 그리고 건물 사이사이 빈 공간을 차지한 노점 좌판.

그곳은 일정 규모 이상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적사결은 그런 시장 풍경을 보며 의아함을 내비쳤다.

‘내가 왜 갑자기 여기 있는 거지?’

주변을 둘러보아도 무허와 당연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갑자기 이곳에 떨궈진 것만 같았다.

‘……한데 이상하게 어디서 본 것 같단 말이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익숙했다.

그때 반대편에 장년 사내의 손을 쥐고 있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한 손에 당과를 두 개를 쥔 아이는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기 때문일까 아이는 아비가 물건을 사는 틈에 적사결에게 다가왔다.

“이거 먹고 싶어?”

“……뭐?”

“내 동생 줄 건데…… 음…… 너 줄게. 하나 너 먹어.”

예닐곱 살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잠시 고민하더니 당과 하나를 내밀었다.

적사결은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들었다.

“이걸 왜 날 주는 것이냐?”

“먹고 싶어서 쳐다본 거 아니었어? 너 고아지? 아빠가 그랬어. 엄마, 아빠 없는 애들은 고아라고. 불쌍한 애들이라고.”

“……!”

적사결은 내심 크게 놀랐다.

지금의 만남은 과거 겪었던 일이었다.

기억도 희미한 천마신교에 입교하기 전, 여자아이의 말대로 고아로 거리를 떠돌던 시절이었다.

“아빠가 불쌍한 사람들은 도와줘야 된다고 그랬어. 그러니까 그거 너 먹어.”

“…….”

적사결은 물끄러미 손에 쥐어진 당과를 내려다보았다.

당시 자신은 그렇게 소리쳤었다.

-나 고아 아니야! 거지도 아니고!

그러고는 당과를 바닥에 내던지고 씩씩거렸었다.

그러자 여자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곧 아이의 아비가 달려와 딸을 진정시켰다.

그 사내는 적사결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불쌍한 눈으로 일견한 후 딸과 자리를 떠났었다.

적사결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었다.

하나 겉으로만 화를 낼 뿐 속내는 달랐다.

‘부러웠지. 미치도록…….’

당시에는 역병 같은 돌림병, 가뭄과 홍수로 인한 흉년, 나라 내부의 반란이나 외부의 외적 침입 등 여러 이유로 고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었다.

적사결 역시 그중 한 명이었고 그렇게 부모를 잃은 것이었다.

그러다 중원에서 활동하는 천마신교 소속의 상인을 만나 입교를 하게 되었고 교주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이후로는 부럽다거나 하는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은 언제나 최고였고 교의 형제들은 허전했던 외로움을 채워 주었으니까.

적사결은 부족함 없이 마인이라는 데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온 것이었다.

“안 먹어?”

여자아이가 입을 삐죽 내밀고 말했다.

당과를 보기만 하고 먹지 않으니 재차 물은 것이었다.

“내가 불쌍해 보여?”

“……응.”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의 눈은 무척이나 순수했다.

과거의 자신이 보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잘 먹을게.”

적사결은 싱긋 웃으며 꼬치에 끼워져 있는 당과 하나를 빼먹었다.

우물거리는 입은 무척이나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여자아이는 자신도 침을 꼴깍 삼키고는 손에 들고 있던 당과를 입에 넣었다.

둘은 마주 보고 웃으며 입안에 퍼지는 달콤함을 만끽했다.

곧이어 아이가 사라진 걸 알아챈 아비가 다가왔고 그는 딸을 데리고 떠나려 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다 적사결이 문득 아이를 불렀다.

“참! 나 있잖아, 고아 맞아.”

“……?”

두 사람은 등을 돌려 적사결을 바라보았다.

“네 말대로 불쌍한 것도 맞고.”

“…….”

“근데 불행하진 않아. 그러니까 앞으로는 불쌍하게 보이지도 않을 거야. 그걸 말해 주고 싶었어. 당과, 고맙다.”

적사결이 당과를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아이도 손을 흔들며 활짝 웃었다.

‘아아, 이런 마음이었던가.’

소랑이라 불렸던 어린 시절, 자신은 독기 하나로 똘똘 뭉친 고집불통이었다.

그 시작이 호의를 베풀었던 어린아이를 오해하고 시기했던 상처뿐인 마음인 것이었다.

아이에게 한 마지막 말은 적사결이 스스로에게 해 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의 시기심과 열등감이 아직 남아 있어 과거의 상황이 재현되었다고 여겼기에.

“나는 그저 나로서 완전한 것을 뭐 하러 남을 부러워한단 말인가. 어리디 어렸군, 나도.”

적사결은 피식 웃으며 당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순간, 입안에 감도는 단맛은 꿀맛 같던 반선주의 그것으로 변화되었다.

*   *   *

눈을 깜박였다 뜬 순간 시야가 변했다.

그 눈앞에는 피투성이의 여인이 있었고 저 멀리 대머리를 한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적사결은 곧바로 자신이 원래의 몸으로 돌아온 것을 알았다.

몸을 내려다보니 붉은 혈포와 가사가 입혀져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혼대법이 제대로 기능을 한 것이 분명했다.

‘드디어…… 돌아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불현듯 눈앞이 시뻘게지며 가슴속 깊은 곳에서 살심이 치밀어 올랐다.

“……허억!”

스멀스멀 배어나오는 것이 아닌 가득 찬 둑이 한꺼번에 터지는 듯한 감정의 홍수.

지독한 살의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오로지 두 손에 피를 묻히고 싶어졌다.

“크으. 끄으으으.”

어금니가 부러져라 악물고 흐려지는 정신을 다잡으려 했지만 살의에 중독된 마음은 쉬이 제어되지 않았다.

본래 적사결이 지니고 있던 내공, 혈마기는 시전자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광기를 일깨워 목숨이 다하지 않는 한 싸울 수 있게 만드는 희대의 마공이다.

그것이 무허가 신마지경에 이르러 혈마신기로 변화시킨 것이었다.

지금의 적사결은 그 광포한 기운에 의해 잠식되는 중이라 할 수 있었다.

죽음과 파괴를 갈구하는 욕망의 극대화.

혈마신기는 오직 그것을 위해 피를 탐하는 것이었다.

‘……지독…… 하다. 지금 상태라면 모든 인간을 죽여도…… 이 갈증은 끝나지 않아.’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자신까지 죽어야 끝나는 엄청난 살의.

극마지경을 이룩했었기에 적사결은 혈마신기가 원하는 바를 마주할 수 있었다.

하나 마주할 수 있을 뿐, 이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극마지경은 상위의 경지인 신마지경에 저항할 수 없었고, 적사결의 또 다른 신공인 천축유가신공은 외공에 특화되어 있어 중단전을 장악해 살의를 불어넣는 혈마신기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크아아아아!”

마지막 발악인 듯한 포효와 함께 지독한 살기가 주변으로 폭사되었다.

그 모습에 당연희가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교주님! 왜 그래요!?”

싸움의 여파로 전신이 상처투성이인 그녀는 비틀거리며 그에게 다가가려 했다.

자신이 몸을 되찾았듯 적사결도 본래 몸으로 돌아갔을 텐데 지금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의술로 할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크아아악! 도…… 도망…….크르륵. 쳐…… 끄륵.”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목구멍을 쥐어짜는 적사결이었다.

이성이 끊어지기 전에 내뱉는 말에는 그 어떤 때보다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하, 하지만.”

“크아아아!”

괴성과 함께 튀어 나가려는 적사결이 다시금 멈칫거렸다.

마음속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저항하는 중인지 보여 주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정신 차려요! 이런 모습을 보여 주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잖아요!”

소리를 지르자 토혈이 왈칵 쏟아졌다.

마음이 격앙되자 내상이 악화된 것이었다.

“쿨럭, 정신 차려요. 제발!”

그녀는 내상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다시금 부르짖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그의 마음에 닿길 바라면서.

*   *   *

“아아아아악!”

무허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엎드려 오열했다.

그러고는 주먹을 쥐고 땅바닥을 마구 내리쳤다.

쾅. 쾅. 쾅. 쾅.

“무슨 짓을 한 거냐! 도대체 무슨 짓을!”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가슴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본래의 몸을 되찾자마자 마성이 제거되었기 때문이었다.

제마멸사의 항마기공, 보리연화공.

심신을 보호하는 소림제일신공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혈마신기의 살의를 정화했기에 그는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떠오른 기억.

그것은 수많은 인명을 해하고 종래에는 자신의 손으로 사문을 불태웠던 과거였다.

“아아아, 무산. 무산. 무사아안!”

주먹을 쥔 손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눈물은 피눈물이 되어 바닥을 적셨다.

사제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비릿하게 웃던 자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하나 무허는 알고 있었다.

사제를 그렇게 만들고 싶었던 마음이 자신에게 있었던 것을.

처음 사부의 유서를 보았을 때의 감정.

그 부산물이 끝내 무산을 죽이게 된 것이란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이 멍청한 놈아아! 천하의 망종같으니이이!”

스스로에게 욕을 퍼붓는 무허는 후회와 죄책감에 미칠 것만 같았다.

신마결을 익힌 부작용?

그런 건 변명거리도 되지 못한다.

구결을 해석했을 때부터 욕망이 극대화될 것이라 짐작했고 자신이라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도 있었다.

아니, 그보단 신공에 대한 탐욕이 신마결을 익히게 만들었기에 입이 여러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본좌를 평생 거짓 속에서 살게 한 죄다. 죽어서도 억겁의 고통을 면치 못하리라.

점점 뚜렷해지는 기억 속에서 무산에게 했던 말이 비수가 되어 자신의 마음을 난도질했다.

무허는 자신이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스윽.

고개를 들고 오른손을 치명적인 사혈인 천령개에 갖다 대었다.

자결을 하려는 것이었다.

“미안하구나, 무산. 모든 것이 나의 죄요, 나의 업보다. 나야말로 죽어서도 억겁의 고통을 면치 못할 것이오,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 영원토록 무간지옥을 떠돌 것이다.”

스스로를 저주하며 손을 내리치는 그때였다.

“정신 차려요, 제발!”

간절함이 가득담긴 외침에 무허의 눈길이 당연희를 향했다.

그리고 그녀의 너머, 이지를 상실해 가는 적사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광혈존?”

멀리서도 그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만들어 낸 혈마신기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는 것.

무허는 적사결이 곧 인세에 다시없을 살인귀로 화할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그의 시야에는 오로지 적사결의 모습만 들어왔다.

곧이어 삶을 포기했던 눈빛이 죽음을 각오한 눈빛으로 바뀌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났다.

그 목적은 오직 하나, 세상에 미칠 해악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투앙.

황금빛 궤적이 쏘아져나가고 부처의 일권이 전면으로 쇄도했다.

‘미안하오, 적교주. 내 그대에게도 너무도 큰 죄를 지었소. 하나 이 늙은이의 결정을 이해해 주시오. 내 지옥에서 만나면 사죄하리다.’

겪어 보았기에 너무도 잘 안다.

저것은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오욕칠정을 오직 죽음과 파괴의 욕망으로 바꾸기에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었다.

무허는 적사결이 본능적으로라도 피할 새라 모든 의식을 그에게 집중하며 권을 떨쳤다.

후우우우웅.

구법연화권의 경파가 회오리쳤다.

적중된다면 그 대상이 무엇이든 소멸시킬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한데 그 순간.

휘익.

적사결과 자신 사이를 끼어드는 인영이 있었다.

당연희가 앞을 막아선 것이었다.

퍼어억.

초식이 전개되는 와중이었으나 그 위력은 결코 낮지 않았다.

“……커흑.”

“소, 소저!”

무허는 당황한 얼굴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구법연화권의 경력이 흩어지고 초식이 와해된 것도 있지만 가슴이 꿰뚫린 당연희가 그의 팔을 움켜쥐었기 때문이었다.

절대 놓지 못한다는 듯이.

“대, 대사…… 크웩.”

“……어찌 그런 것이오. 도대체 왜…….”

“저분…… 이라면 이겨 내실…… 쿨럭. 거예요. 지켜…… 봐…… 주세요. 헉. 헉.”

당연희는 슬픈 눈빛으로 무허를 바라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 순간이었다.

[오오오오오오.]

가슴이 저미도록 시린 울부짖음이 하늘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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