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201화>
처처척.
화인현이 내려다보이는 둔덕에 흑랑대는 멈춰 섰다.
그들 뒤로 일만 명이 넘는 마인들이 전열을 가다듬었다.
하나같이 가슴을 들썩이고 땀을 비오듯 흘리는 모습은 그들이 얼마나 서둘렀는지 말해 주는 듯했다.
“무린.”
“하명하십시오.”
“섭천, 광혼과 함께 전 병력을 이끌고 의천맹을 견제하거라. 서북쪽으로 오 리 정도 달리면 놈들이 있을 것이다.”
“……!”
무린은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감지범위가 오 리에 달할 정도라니.
폐관수련을 마친 주군의 무위는 가히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 기쁨에 무린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자신의 주군이 진정한 천마로 거듭났다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평산, 진강, 단혁, 주태.”
흑사광의 부름에 각 조장들이 절도있게 읍했다.
“너희들은 본좌와 함께 현 내로 진입한다. 따르거라.”
“존명!”
흑사광은 오직 네 명의 조장만 대동한 채 둔덕을 내려갔다.
그 순간에도 화인현 안 밖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주군. 저희들이 길을 열겠습니다.”
평산이 날카로운 눈빛을 발하며 앞으로 나섰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물러서거라.”
“예?”
흑사광은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그 어떤 기세도 흘리지 않는 평범한 보보.
하나 신기하게도 누구도 흑사광과 그 뒤의 네 명의 조장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이 지닌 마기 특유의 강렬한 기운에도 그러한 것은 마치 극도의 은신술을 펼친 것만 같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지.’
네 명의 조장은 똑같은 생각을 한 채 묵묵히 흑사광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향한 곳은 화인현 중심. 정확히는 관패와 천마신교의 지휘부가 있는 장소였다.
“흑랑대주!”
관패가 흑사광 일행을 발견하고 반색했다.
“이장로님. 교주님이십니다. 정식으로 임관하지 않으셨다지만 대외적인 공표가 있었으니 예를 갖춰 주십시오.”
진강이 관패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청했다.
“허허, 미안하네. 내 실언을 했군. 교주님, 이장로 관패 인사 올립니다. 신교출세, 만마앙복!”
그는 포권을 하며 극진하게 예를 올렸다.
“괜찮소. 허례의식은 전쟁이 끝난 후에 해도 늦지 않으니 평소처럼 대해 주시오. 그리고 전황은 어찌 흘러가고 있소? 내 오다 보니 모두가 가만히 있다 갑자기 전투가 벌어졌던데.”
“그것이…….”
관패는 역천환시대진에 대한 설명과 그것이 해제된 탓에 전투가 재개된 것을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흑사광이 오른쪽 뒷산 어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저곳이 진의 핵이 있는 장소인 것이오?”
“그렇습니다.”
“그랬군. 아까 느꼈던 기운은 그것이었나.”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진이 해제되기 전 저쪽 부근에서 일어났던 싸움이 있었소. 기의 느낌상 아마도 창궁검제의 것이 아닌가 생각되오.”
“……!”
관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가 난색을 표하는 것은 남궁건의 무위 때문이 아니었다.
“적아는 무사하니 걱정하지 마시오. 검제의 기가 사라지고 없는 걸 보아 당한 건 놈인 듯하오.”
“정말 태상교주님의 제자분이 무사하시단 말입니까!?”
“그렇소. 크게 다치지도 않은 것 같으니 안심해도 될 것이오.”
흑사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행입니다. 그분께서 잘못되었다면 이 늙은이 천추의 한을 남겼을 것입니다.”
관패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렇고 태상교주께선 아직 몸을 되찾지 못한 것이오?”
흑사광의 시선이 화인현 외곽 너머 동북쪽 방향을 보며 말했다.
그곳에는 천하를 뒤덮을 듯 불길한 기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기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불쾌한 무언가.
그는 그것에서 적사결이 아직 본래 몸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것을 짐작한 것이었다.
“예, 아직 염대주가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반선주에 대한 임무를 맡았는데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호교대법사라면 오는 길에 보았소. 진법 때문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더군.”
“오오, 그가 도착했단 말입니까!?”
핏기가 사라졌던 관패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흑사광에 이어 염마천까지.
그토록 기다렸던 이들이 도착했으니 희망이 보이는 듯했다.
“자, 그럼 우리는 이곳을 정리하도록 합시다.”
흑사광이 담담하게 일보를 내디뎠다.
그의 전신에서 암흑을 연상케 하는 기운이 뭉클 피어났다.
그렇게 오직 기운을 일으켰을 뿐이었다.
한데 곧바로 혈교도와 신교도의 움직임이 덜컥 멈춘 것은 물론 모두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 영향은 화인현 안쪽은 물론 외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흑사광이 내뿜는 존재감만으로 마기를 품고 있는 모두가 그의 지배력에 영향을 받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천하 마인들의 숭앙을 받는 만마앙복, 그 자체였다.
저벅. 저벅.
혈교도 한 명에게 다가가자 그는 아무런 반항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곧이어 흑사광의 오른손이 그의 머리를 짚었다.
그러자 칠공에서 붉은 기운이 스멀스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천마신공에 의해 혈교도의 심신을 장악하고 있던 혈기가 제거되는 것이었다.
혈기가 제거되자 그는 곧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져 버렸다.
하나 그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다행히 통하는구나.’
가능하다는 결과를 확인하자 흑사광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다 주먹을 꽈악 쥐었다.
이는 폐관수련이 길어진 이유이기도 했다.
암흑천마공과 천령마기를 합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그 성취가 문제였던 것.
교도들을 제정신으로 돌리려면 낮은 성취로는 어림도 없었다.
하나 결국 오성에 만족해야 했고 더 이상 시기를 늦출 수도 없었다.
‘천마신공으로 혈마열반결을 제압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나…….’
문제는 교도들 모두의 혈기를 제거하지 못하니 한 명씩 지난한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생각보다 심력의 소모가 상당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즉, 어디까지 자신이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든 것이었다.
‘후우, 일단 하는 데까지 한다.’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흑사광 역시 패도를 걷는 자.
그의 거침없는 손길이 빠르게 혈교도들에게 다가갔다.
* * *
뿌아아악!
벼락 같은 일권에 적사결의 턱이 박살 나고 형편없이 밀려났다.
그 사이 무허는 화인현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인상을 찡그렸다.
“저런 병신 같은 놈들!”
진이 해제되며 분주하게 움직이던 수하들이 돌연 움직임을 멈춘 것을 느끼고 내뱉은 욕이었다.
하나 곧 그 현상의 원인인 흑사광의 기운을 감지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얻은 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재밌는 놈이 또 나타났구나. 크흐흐흐.”
무허는 적사결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네놈보다 저쪽이 더 재밌을 것 같구나. 흥이 다했으니 그만 끝내도록 하자꾸나.”
“그래, 끝내야지!”
부서진 턱을 회복한 적사결이 쾌속하게 짓쳐 들었다.
하나 검을 잃은 상태에서 그 무위는 반감된 상황이나 마찬가지.
권, 장, 퇴. 그리고 이어지는 검결지로 검초를 펼쳤으나 무허는 무척이나 여유롭게 방어했다.
“독공도 소용없고!”
광룡파천권을 피하며 팔꿈치가 안면을 직격.
“검사라는 놈이 검도 빼앗기고!”
이어서 묵혈탈마장이 적사결의 내부를 진탕시켰다.
“그런 상태로 본좌와 끝을 봐!? 예전의 날카로움은 찾아볼 수가 없구나, 적사결!”
콰아앙.
무허는 적사결의 얼굴을 붙잡아 번쩍 들고는 땅바닥에 박아버렸다.
호신강기로 보호했더라도 골통이 박살날 정도의 강격이었다.
“크윽!”
하나 적사결은 비틀거리며 일어서고 있었다.
삼지안으로 호신강기를 금의 기운으로 변환하고 피부를 경화시켜 방어력을 올린 덕분이었다.
‘조금만 더…….’
다시 한번 놈을 유인해야 했다.
그 이후의 노림수를 위해 적사결은 당연희와 몸을 바꾸지 않은 것이었다.
티 나지 않게 실감하게 수세에 몰려야 하니까.
‘그래도 내 여자 앞에서 처 맞으니 기분 더럽네, 시벌‘
당연희가 불안한 얼굴로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후우.”
마음을 다잡자 삼지안이 다시 빛을 발했다.
그러자 묵혈탈마장의 경력이 체외로 배출되었다.
내공을 토의 기운으로 변환해 들끓는 내기를 다스리고 안정화시킨 것이었다.
그 모습에 무허는 다시금 혀를 할짝거렸다.
‘눈깔 그거 참 볼수록 마음에 든단 말이야.’
처음엔 안력을 높이는 공능인줄 알았다.
한데 내공을 오행의 기운으로 변환해 속성을 부여하는 능력은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했다.
공격력은 물론 방어력이나 회복력 등 직간접적으로 전투에 필요한 모든 부분에서 말이다.
‘미끼를 문 건가.’
적사결은 입술을 핥는 무허를 보며 때가 되었음을 느꼈다.
“네놈이야말로 끝을 보겠다더니 뭐하는 거지? 아까부터 조잡한 공격이나 일삼고 말이야. 혈미륵신공이란 것이 고작 이 정도가 전부인가? 본좌가 보기에 광혈수라공과 보리연화공을 억지로 섞어 놓은 것처럼 보이는데, 킥.”
노골적인 도발이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무허는 웃음기를 지운 채 무시무시한 얼굴로 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계집이 되었다고 그 주둥이도 꽤 앙칼져졌구나. 오냐, 내 이번엔 회복이 불가능하도록 한 줌 혈수로 만들어 주마!”
후와악.
삼지안으로 살피고 있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운기와 동시에 이미 무허의 신형은 코앞에 당도했기 때문이었다.
부와아악. 콰아아아앙.
대력금강지를 닮은 일수에 적사결이 있던 자리가 통째로 짓이겨졌다.
“크윽!”
수라천랑보로 가까스로 회피했지만 피부가 통째로 벗겨지는 줄 알았다.
그만큼 무허의 신위는 경악스러웠다.
“쥐새끼가!”
퍼퍼퍼퍼펑. 뻐어엉.
가죽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적사결의 신형이 허공을 날았다.
일권에 호신강기가 박살 나고 금기를 둘렀음에도 뼈가 욱신거릴 정도의 파괴력.
진신무공을 드러낸 무허의 실력은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다.
콰과과과광.
쌍권에서 튀어나온 권강의 연환타.
그 무자비한 폭력에 온몸이 들썩이며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비, 빌어먹을.’
암벽을 파고든 적사결은 일순간 의식이 날아갈 뻔했다.
다른 건 몰라도 정신을 잃어서는 될 일도 안 된다.
혀끝을 깨물자 찌릿한 통증과 함께 비릿한 피냄새가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크아아압!”
무허의 쌍권연환타에 맞서 적사결 역시 양주먹을 내질렀다.
관절의 가동한계 이상까지 비틀린 후 뻗어 나가는 광풍폭살의 연환권.
작은 소용돌이가 적사결을 기준으로 발생할 정도였다.
투콰콰콰쾅. 투콰아앙.
일권을 마주할 때마다 주먹이 부러져 나갔다.
부러진 뼈가 살갗을 뚫고 나올 정도였다.
하나 적사결은 광기를 뿌리며 권초를 멈추지 않았다.
“패기는 좋으나, 거기까지다!”
적사결의 눈앞에 혈광이 번쩍했다.
불영각이라 불리는 항마연환신퇴.
하나 금광을 뿌리는 원형과 달리 귀기어린 혈광이 흘렀다.
꽈과과과광.
위력 역시 항마연환신퇴를 웃도는 경이적인 파괴력.
적사결은 피를 토하며 암벽 깊숙이 처박혀 버렸다.
쿠르르릉.
그 위를 돌더미가 무너지며 덮어 버리자 마치 고분처럼 거대한 돌무덤이 생겨났다.
하나 무허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들썩. 들썩.
손을 뻗자 무형기가 그 속을 파고들었다.
곧이어 돌무더기 속에서 허공섭물에 이끌린 적사결이 피투성이가 된 채 끌려나왔다.
정신을 잃었는지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큭큭, 이제야 좀 조용하군.”
무허는 적사결의 머리칼을 쥐고 목을 젖혔다.
그러자 새하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콰악.
아무런 제지 없이 파고든 날카로운 송곳니.
곧이어 혈액과 함께 미증유의 기운이 무허의 체내로 전이되었다.
“쿨럭. 무, 물었구나. 미끼. 흐흐.”
아직 정신을 잃지 않은 적사결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저 멀리 당연희가 손에 든 옥병을 입속으로 털어 넣고 있었다.
“무슨 짓거리를 하는 것이냐?”
“이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야 하지 않겠느냐, 무허.”
“흐흐, 저 옥병이 설마 반선주라도 된다 이 말이냐? 그렇다한들 이 몸에 한 방울도 들어오지 않는 이상 소용없음을 알 텐데.”
“과연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았을까? 방금 전에 쪽쪽 빨아 먹었잖느냐, 큭큭큭.”
피 한 방울조차 의지아래 두는 천축유가신공.
적사결은 무허가 자신의 목덜미를 물려 했던 그 순간부터 지금의 상황을 그렸던 것이었다.
자신의 피로 반선주를 둘러싸 신체 내부에 저장해놓았던 것.
그 공능 덕분에 방금 무허가 마셨던 적사결의 피에는 반선주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