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200화>
피를 이용해 상대의 능력을 얻을 수 있다니.
무허의 말대로 ‘권능’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야말로 사기가 아닌가.
“클클, 흡혈전능공이라 하지. 한데 어째선지 네놈의 능력은 하나같이 쉽게 따라 할 수가 없군.”
무허는 자신의 이마를 톡톡 건드렸다.
독공도 그렇지만 가장 탐이 났던 능력.
바로 삼지안의 개안도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혹시 그 눈깔은 술법계통인 것이냐?”
“이미 말해 줬을 텐데. 천축유가신공이라고. 이제 와 탐이 나나보지?”
“호오? 그 또한 그 무공의 공능이었던가? 이거 달마에 대한 평가를 다시 내려야겠군.”
“왜? 냄새나는 짐승굴을 직접 가보시게? 큭큭.”
적사결은 다시금 대화를 이끌어가며 기회를 엿보았다.
독공이 무용해진 지금 생각하는 바는 하나였다.
일단 당연희와 먼저 몸을 바꾸는 것.
현 상황에서는 보리연화공으로 놈을 상대하는 것이 유일한 승산이라 할 수 있었다.
마공의 상극은 역시 불가기공. 그 중에서도 항마기공이라 불리는 것이 보리연화공이었으니.
“확실히 뛰어난 신공인 것 같으니 못 가 볼 것도 없지.”
무허는 혀로 윗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한데 적사결에게 한 대꾸와는 달리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까처럼 체외로 배출된 피가 아니라 체내의 것을 직집적으로 섭취하면 흡혈전능공의 권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것이야.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데……,흐음……,?’
그런 무허의 감각에 적사결이 당연희를 신경 쓰는 듯한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아니, 그것은 움직임이라기보다 초인적인 육감이 주는 직관력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끌끌, 독공이 막히니 보리연화공에 기대어 보겠다? 그렇다면 한번 어울려 줄까.’
무허는 결심을 하자마자 돌연 경공을 전개했다.
아홉 번의 연속적인 이형환위, 연대구품의 보법이었다.
그 변화의 종착지는 당연희였다.
적사결도 그 의도를 눈치채고 화들짝 놀라며 그 공격로를 막아섰다.
“이 새끼가 본좌를 앞에 두고 한눈을 팔아!?”
파바바밧.
검결지에서 뻗어 나온 검강이 귀 문혈천의 초식을 펼치며 그녀에게 다가가는 접근을 차단했다.
한데 무허는 앞서 적사결이 당연희를 신경 쓰고 있었으므로 틀림없이 앞을 막아설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걸렸구나!”
귀 문혈천은 공격에 대응하는 방어초.
그렇기에 뒤에 손을 써서 공격을 제압하는 후발제인의 묘리가 그 진의였다.
한데 그것을 당연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먼저 펼쳤으니 초식의 효용을 제대로 살릴 리 만무했다.
쩌저저저정. 쩌어엉.
더구나 무허는 광혈수라공을 혈미륵신공에 녹여낸 상태.
귀 문혈천의 약점을 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크크읏!”
적사결은 무너지는 초식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썼다.
하나 선수를 빼앗긴 상태에서 약점까지 공격당하니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었다.
슈와아악. 뻐버버벅.
순식간에 격중한 다섯 번의 권격.
이어 무허의 권이 조법으로 바뀌며 금나수로 변화했다.
취리릿.
지금까지의 강맹함이 아닌 유려한 초식.
그 갑작스런 변화는 적사결의 중심을 무너뜨린 후 번개처럼 이어졌다.
뒤편으로 돌아들어가 왼팔로 목을 가로로 휘감고 오른팔로 머리를 세로로 감싸 쥐듯 제압.
그 한 수로 적사결은 목뼈가 부러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안색이 창백해졌다.
“커억. 끄윽!”
가느다란 목에 집중된 엄청난 압력.
천축유가신공이 아니었다면 벌써 부러져 덜렁거렸거나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어떠냐? 이러면 그 잘난 눈깔도 소용이 없지 않느냐?”
무허는 터질 듯한 팔근육을 자랑하며 단단히 목을 조였다.
“……어디서 이런…… 조악한 초식을…….”
적사결은 이를 악물고 허리를 틀었다.
관절의 가용범위를 넘어 완전히 반전한 하체.
그 상태로 무릎이 쑥 올라오며 연환으로 슬격이 이어졌다.
뻐버버벅.
혈풍연환퇴의 폭풍 같은 공세에 무허의 옆구리는 그야말로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하나 그럼에도 목과 머리를 제압한 놈의 손은 풀리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벌어진 광경.
쩌억.
입을 벌린 무허의 송곳니가 뾰족해지고 마치 적사결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듯 가까이 가져갔다.
‘헉! 이 미친 새끼가! 설마 물려는 거야!?’
적사결은 화들짝 놀라며 의지를 집중했다.
그러자 목부터 시작해 피부가 경화되며 목내이처럼 변해 갔다.
콰콱. 콰콱.
무허는 한 번에 이빨이 박히지 않자 연거푸 입을 놀렸지만 역시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적사결은 그가 당황한 사이 하체를 다시 반전시키며 그 회전력으로 몸을 띄웠다.
이어서 회전하며 체중을 실어 무허를 도리어 압살하듯 내리눌렀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신체 구조상 목의 제압이 풀리지 않아 목뼈가 부러졌을 터.
하나 적사결의 유연함은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 있었다.
콰앙. 꾸웅.
체중에 이은 천근추의 기예.
이중으로 압력이 가해지자 그제야 목의 제압이 풀렸다.
“케헥. 콜록. 콜록.”
적사결은 목을 쓰다듬으며 연신 마른기침을 했다.
거리를 벌린 그의 등 뒤에는 당연희가 자리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너 지키려다 죽는 줄 알았다. 개새끼가 기분 나쁘게 물고 지랄이야!”
“…….”
“그보다 준비해.”
“뭘요?”
“마음의 준비. 본래 몸으로 돌아갈 거니까.”
“지금 바로요?”
“아니, 잠시 후에. 본좌가 신호하면.”
적사결은 비장한 눈빛을 한 채 몸을 일으키는 무허를 바라보았다.
원래는 당연희와 몸을 바꾼 후 상대하려 했지만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이었다.
한 번에 세 사람 모두의 영혼을 제자리로 돌릴 수 있는.
그러려면 무허의 몸보다 지금의 몸이 더 나았다.
‘잘 되야 할 텐데.’
적사결이 마음을 다잡을 때였다.
[와아아아아아!]
쩌렁쩌렁한 고함 소리와 함께 군기가 사방에서 치솟는 것이 느껴졌다.
이어 그의 귓가에 병장기의 금속성 충돌음이 연이어 들렸다.
“씨발, 이건 또 뭐야!”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진이 해제된 것이다.
설마 당백산이 남궁건을 막지 못한 것인가.
시간만 끌면 된다 그리 말했건만 기어코 정면으로 맞붙었다 깨진 모양이었다.
고집불통 영감쟁이 같으니.
* * *
“장로님!”
“장문인!”
“가주님!”
천라지망을 구성 중인 의천맹은 난리법석이었다.
눈을 한 번 깜빡였을 뿐인데 일군을 이끌고 있던 수장들이 사망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귀신에 홀린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심각한 표정을 지은 곳은 바로 의천맹의 수뇌부였다.
“이보시오, 발천 개 장로. 도대체 맹주가 왜 죽은 것이오?”
“나, 나도 모르겠소. 눈 깜짝할 사이에 어떻게…….”
발천 개는 당황한 표정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강호의 각종 기사에 대한 식견이 풍부한 그였지만 이런 일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본 맹은 맹주를 잃었고 주변 상황으로 보아 각 문파의 수장들도 변을 당했다는 겁니다. 누구든 서둘러 상황을 수습해야 합니다.”
의천맹 직속 타격대 중 하나인 천룡대주의 주장이었다.
이어 비룡대주가 말을 이었다.
“각 부대로 제 수하들을 보내 놓았으니 곧 현 상황이 파악될 것입니다. 그전까지 발천 개 장로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 말에 곧바로 반발이 터져 나왔다.
“어찌 개방에 중차대한 일을 맡긴단 말입니까? 첩보를 관장하는 곳은 절대 수장직을 맡을 수 없소. 이것은 본 맹의 관례요!”
“천룡대주께서 맡아주시오. 그대는 산서 협검문의 장제자 아니오.”
“난 반대요! 천룡대주보다는 검룡대주가 더 무위가 뛰어나니 그가 더 적합하지 않겠소.”
“무슨 소리! 우리가 힘만 중시하는 마교요? 무위로만 선별하는 것은 본 맹의 취지에 어긋나오. 협의로 이름 높은 협검문의 차기 문주인 천룡대주가 적합하다고 보오.”
“전쟁 중에 무슨 협의지사 타령이오!? 협검문은 산서의 중소문파인데 맹도들이 그의 말을 순순히 따를 것 같소? 검룡대주는 산동악가의 소가주요. 임시 맹주라도 그 정도는 되어야지!”
가관이었다.
임시 맹주라는 기회를 틈타 가문의 이름을 드높여 보려는 애송이들의 각축장.
더구나 속속 도착하는 전령들을 통해 각 가문의 수장들이 모조리 죽었다는 소식에 분쟁은 더 심해져 갔다.
‘소림이 빠진 본 맹은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었구나.’
발천 개는 아비규환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목도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더구나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힘없는 맹주라지만 종리천이라도 있었기에 그나마 의천맹이 유지 되었다는 사실도 추가로 깨닫는 그였다.
그때 그의 좌절감을 날려줄 희소식이 도착했다.
“백리가주께서는 무사하시답니다!”
상황을 살피러 갔던 비룡대원의 전언이었다.
그 말에 발천 개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사실이더냐!? 천풍 대협께서 무사하시단 말이냐!?”
“예!”
“어찌! 어찌 그분만 무사할 수 있었던 게지!?”
정보꾼으로서의 습관.
백리검만 살아남은데 대한 자연스러운 의심이었다.
“백리세가는 화산으로 이어지는 암석지대에 은신해 있었답니다. 그 분 역시 저격을 받았지만 거암으로 가려져 있었기에 무사하셨다 전해 들었습니다.”
“저격!?”
“그렇습니다. 여기 이것을 보십시오.”
비룡대원은 거대한 화살을 두 손으로 받쳐 앞으로 내밀었다.
흑철목으로 만들어진 장창 길이의 목시는 한눈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하면 저격으로 맹주를 비롯한 수뇌부가 죽었단 말인가……, 도대체 어떤 궁사이기에 이런 귀신 같은 솜씨를…….”
발천 개는 머릿속의 정보를 아무리 되새겨보아도 궁사의 정체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장로님! 지금은 흉수의 정체를 밝힐 때가 아닙니다. 어서 상황을 수습해야지 않습니까!?”
천룡대주의 말에 발천 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각 부대에 전언을 보내게! 지금 이 시간부로 의천맹의 임시 맹주는 천풍 대협이니 모두 그분의 지시를 따르라고 말이네! 천룡대, 비룡대, 검룡대, 도룡대, 창룡대는 나와 함께 백리세가로 이동할 테니 당장 움직이세!”
그의 결정에 갈팡질팡하던 의천맹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백리검이라는 구심점을 찾은 덕분이었다.
* * *
“노사님.”
“그래, 진이 해제된 모양이네.”
“끄응.”
염마천은 진땀을 흘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아직 원기가 회복되지 않고 남궁건의 영검에 당한 영향이 심신에 남아 있었다.
그로서는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거참. 누가 호교대법사 아니랄까 정신력 하나만큼은 발군이로군.”
서선생은 감탄하며 염마천의 어깨를 붙잡아 다시 앉혔다.
“노사님, 가야합니다. 교의 형제들이 피를 흘리고 있지 않습니까.”
염마천의 말대로 화인현 안 밖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혈교도의 혈음진공으로 인해 귀신의 울음소리 같은 음공이 울려 퍼지고 천마신교의 마기가 불꽃 같은 투기를 발하는 중이었다.
“이 몸으로 뭘 어쩌겠단 말인가?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일세.”
“노사께서 도와주십시오.”
자신도 서선생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한 고수인 데다 교주와 주종의 맹약을 맺은 것을 알기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다.
하나 서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노부는 의원이네. 무공은 스스로를 지키고 환자를 지키기 위해 익힌 것이지 누군가를 해하기 위해 익힌 것이 아니라네.”
“…….”
확고한 신념에 기반한 답변.
그 말에 대한 어떠한 반박도 떠오르지 않았다.
“송구합니다. 제가 노사님께 무리한 부탁을 드렸군요. 앞서의 부탁은 없었던 걸로 해 주십시오.”
떨리는 몸으로 염마천이 몸을 일으킬 때였다.
서선생이 다시금 어깨를 부여잡으며 그를 말렸다.
“노사님. 막지 마십시오. 죽어도 교의 형제들과 함께 죽을 것입니다.”
“아니, 막는 것이 아니네.”
“그게 무슨…….”
서선생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네. 보다 뛰어난 자들이 왔으니 말이야.”
그가 돌아보는 뒤편으로 강대한 마기가 들불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그제야 염마천도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흑랑대주!”
그의 외침에 대한 답변도 없이 무수한 검은 인영들이 염마천을 뛰어넘어 화인현으로 향했다.
그 선두의 흑의인은 마령존 흑사광이었다.
“대단하군. 흑랑대주라는 저자가 전대 교주의 아들이라는 그 사람인가?”
“그렇습니다!”
염마천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서선생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허허, 또 한 명의 인물이로구나. 칠살성이라니. 신교에는 정말 구름처럼 많은 인재가 있군 그래.’
남두의 여섯 번째 별인 칠살성.
풍헌과 숙살을 주관하며 달리 사망성(死亡星)이라 부른다.
이 별의 기운을 띤 자는 한 마디로 전쟁의 화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