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98화>
꽈르르르르릉.
천지를 뒤흔드는 벽력성과 더불어 지옥의 겁화가 타올랐다.
당가에서 비밀리에 개발한 신형 벽력탄은 군부의 것보다 월등한 성능을 자랑했다.
일개 가문이 지닌 화기의 수준이 국가를 뛰어넘는 것은 몇 백 년에 걸쳐 축적된 당가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말해 주고 있었다.
화르르륵.
염왕겁화탄이 터진 그곳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거부하듯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잠시 바라보던 당백산이 짧은 한숨을 내뱉고 돌아서던 그때였다.
“어딜 가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홍염이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들려온 음성은 남궁건의 것이었다.
당백산은 등줄기를 훑어 내리는 서늘함에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다시금 영체화시킨 남궁건이 유령처럼 불길을 지나 다가오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그걸 다시 펼쳤다고?”
“제왕무적검. 심상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펼칠 수 있는 고금 제일의 무공이지.”
그 순간 빛살처럼 영검이 생성되며 쏘아졌다.
내공이 소진된 당백산은 피하지도 못하고 어깨어림을 공격당했다.
“크으으윽!”
영혼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당백산은 자신도 모르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육신에 가해지는 것보다 수배는 되는 듯한 고통에 온몸에 경련이 일 정도였다.
“당장 죽이진 않겠다. 당신이 살아 있어야 진법을 해제한 후 사천회 놈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 테니까.”
“……허, 헛소리 마라. 본회가…… 네놈 뜻대로 놀아날 것…… 같으냐…… 헉헉.”
남궁건은 영검을 쥔 채 다시금 당백산의 가슴에 꽂았다.
“끄으윽…… 끄윽.”
“늙은이는 잠시 잠이나 자라고. 깨어났을 땐 모든 게 끝나 있을 테니. 큭큭.”
당백산은 흐릿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마치 고통에 의한 경련으로 보였기에 남궁건이 알 수 없었지만 어떤 목적을 가진 움직임이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혼절해 버렸다.
“일정 시간이 지나야 터지는 벽력탄이라니. 정말 당가의 기술은 한계를 모르는군.”
남궁건은 혀를 내두르며 영체화를 해제한 후 당백산의 품속을 뒤졌다.
심안으로 보았던 독특한 기물 때문이었다.
마치 진력을 비트는 듯한 기운을 발하는 둥근 물체.
그의 손에 들어온 물건은 피진주였다.
“진의 영향을 받지 않게 해 주는 기물이라…… 엄청나군.”
그는 피진주 역시 당가의 작품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신기한 눈으로 그것을 살피는 그때였다.
피피피피핑.
지척에서 터져 나간 그것은 당백산이 무복 속에 입고 있던 보갑에서 발사되었다.
폭우이화침을 보갑에 장착한 그것은 그가 의식을 잃기 전 작동시킨 것이었다.
염왕겁화탄과 마찬가지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발사되는 방식.
그는 충분한 시간이 지나도록 조작해 남궁건이 영체화를 풀고 방심한 때를 노린 것이었다.
파라라락.
그만한 암습이었음에도 오랫동안 단련한 반사 신경은 눈부셨다.
발작적으로 소맷자락을 휘둘러 폭우이화침의 대부분을 튕겨 낸 것이다.
하나.
“크으윽!”
남궁건의 왼손바닥이 자색빛을 띠고 있었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수백발의 침.
그중 한 발이 손바닥 살갗을 뚫고 침투한 것이었다.
“망할 늙은이!”
전력으로 내공을 끌어올려 왼팔을 타고 오르는 독기에 저항했다.
하나 혈맥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전진하는 독기를 막기란 어려웠다.
타타탁. 타탁.
남궁건은 점혈로 혈도를 완전히 틀어막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독 기운이 퍼지는 것을 저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남궁건은 오른손을 번쩍 들어 당백산을 죽일 듯이 바라보았다.
하나 그는 곧 한숨을 쉬며 손을 거두었다.
죽이는 것은 사천회와 천마신교의 동맹을 깨트리고 서로 상잔하게 만든 후에 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곱게 죽진 못할 것이다, 당백산!”
남궁건은 어금니를 바드득 갈고는 당백산을 허공섭물로 띄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역천환시대진의 진축은 어김없이 박살이 나고 그때마다 진법이 출렁거렸다.
하나 이번에도 얼마가지 않아 방해가 있었다.
쾌애애액.
공기를 찢는 파공음과 함께 예의 거대한 화살이 날아온 것이다.
그것도 연이어 몇 번이나.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남궁건이 그것을 피하지 못할 리 없었다.
“화살에 초조함이 엿보이는구나.”
그랬다.
남궁건의 말대로 강산은 현천진기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공격하는 중이었다.
그 탓에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음은 물론 요란해진 파공음은 피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있었다.
“진법만 파훼하고 나면 네놈도 죽여 줄 것이니 얌전히 기다리거라.”
남궁건은 저격을 피하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심안에 앞서의 진축과는 확연히 다른 기운이 감지되었다.
“큭큭, 초조함의 이유가 이것이었느냐.”
규모로 보아 진법의 핵이 되는 장소.
남궁건은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심안이 이끄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한 명의 노인과 한 명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늙은이와 어린 핏덩이가 이만한 절진을 펼치고 있었다니. 놀랍구나.”
남궁건은 묘 선생과 남운적을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설마 창궁검제!?”
묘 선생은 단번에 남궁건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무복 소매에 새겨진 남궁가의 표식과 장님이라는 신체적 특징, 그리고 연배를 통해 추정한 것이었다.
“폐인이 되었다 들었는데 여긴 어떻게?”
묘 선생은 불안한 얼굴로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도 그럴 것이 역천환시대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이곳에는 어떠한 방어 수단도 없었다.
그런 그의 눈에 남궁건의 뒤편에 죽은 듯이 둥둥 떠 있는 무인이 들어왔다.
‘저자는 암룡신존이 분명한데. 검제에게 사로잡힌 건가. 좆 됐구나, 진짜.’
아군의 최고수라 할 수 있는 두 사람 중 한 명이 당한 것이다.
이는 적사결이 아닌 다른 누가 와도 상대를 막을 수 없다는 말이었다.
“묘 선생님. 뒤로 물러나 계십시오.”
담담한 음색과 함께 앞으로 나선 자는 남운적이었다.
그는 조부의 독문 병기였던 절륜창을 겨누며 상대를 노려보았다.
“안 된다! 그는 천하 십대고수다! 그중에서도 의천오무제의 수좌를 다투는 인물이란 말이다!”
묘 선생은 기겁하며 남운적을 말렸다.
하나 그것을 들을 그가 아니었다.
“이곳에는 저와 선생님뿐입니다. 막지 않으면 진법이 파훼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겁니다.”
“이놈아, 막긴 누굴 막아! 개죽음 당할 뿐이다!”
묘 선생은 남궁건을 향해 애원했다.
“우, 우린 무공을 모르는 범부들이오. 여기 이것들만 부수면 진법이 해제될 것이니 부디 우리는 보내 주시오.”
“웃기는구나. 본좌에게 무기를 겨누고도 범부라니. 클클.”
남궁건은 묘 선생을 무시한 채 남운적에게 말했다.
“어린놈이 제법 기개가 있구나. 죽이기 전에 이름을 들어 두마.”
“남운적.”
“창을 쥔 자세를 보니 무공을 아주 접하지 않은 것도 아니구나. 사부는 있느냐?”
“마도지존께서 내 사부님 되시오.”
“뭐라? 광혈존의 제자라!? 크하하하하!”
세상이 떠나갈 듯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앙천광소.
이런 곳에서 뜻하지 않게 흉수의 제자를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궁건은 곧바로 진득한 살심을 떠올렸다.
사무련의 후계자를 암살하는 ‘새끼 봉황 죽이기’를 진행했던 그였기에 어린 남운적을 죽이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참으로 잘되었구나. 안 그래도 놈과 관련된 모든 것을 멸할 작정이었느니. 그 첫 제물이 놈의 전인이라면 금상첨화지!”
남궁건은 당백산을 내려놓고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남운적은 그 모습을 보며 끝없는 높이의 산악을 떠올릴 정도였다.
부들. 부들.
창을 쥔 손아귀가 축축하고 전신에 오한이 든 것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생존본능은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라 쉴 새 없이 경고하고 있었다.
‘못 가! 도망치지 않는다! 앞으로 내가 걸을 길은 패도.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아!’
이빨을 딱딱거리면서도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남궁건은 지척까지 다가왔다.
남운적은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목구멍을 쥐어짰다.
“이야아!”
겁에 질린 것이라 믿기지 않는 기합성과 함께 절륜창이 내질러졌다.
천축유가신공으로 근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일격.
제대로 된 초식을 배우지 않아 어설프기 그지없지만 그 기백만큼은 여타 무인들을 압도할 정도였다.
투웅.
하나 남궁건은 지팡이를 가볍게 놀려 절륜창을 튕겨 냈다.
그리고 지팡이 끝을 남운적의 어깨에 슬쩍 올렸다.
그러자 천근의 압력이 가해졌다.
쿠웅.
“으으으윽!”
허무하게 두 무릎을 꿇은 남운적은 한 손으로 지팡이를 잡은 채 안간힘을 썼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힘깨나 쓰는 것을 보니 근골이 좋은 모양이구나. 클클. 광혈존이 너를 잃으면 꽤 가슴 아프겠군.”
“……끄으으.”
남운적은 어찌나 힘을 주는지 눈에 핏발이 설 정도였다.
하나 지팡이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머릿속에 사왕의 음성이 울렸다.
-꼬마. 혈맥을 열어라.
‘혈맥!’
남운적은 그 조언에 머릿속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봉인해 두었던 자신의 저주 같은 신체를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콰우우우우.
천축유가신공으로 막아두었던 둑을 열자 주변 기운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전 발작을 했을 때보다 몇 배에 가까운 흡입력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눈앞에 있는, 그것도 지팡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촉하고 있던 남궁건에게 집중되었다.
“이, 이놈이 무슨 사술을…… 큭!”
남궁건은 엄청난 인력에 지팡이를 되려 떼지 못하고 기운을 빨리기 시작했다.
천하 십대고수인 그가 진땀을 뻘뻘 흘릴 정도였다.
“크으…… 아아악!”
사력을 다해 떼어 낸 지팡이.
접촉이 끊어지자마자 영체화를 통해 남운적의 흡기공을 벗어나 멀찍이 물러났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영체화가 곧바로 풀릴 정도였다.
“헉, 허억. 헉. 헉.”
그 짧은 사이에 남아 있던 내공의 절반을 빼앗기다니.
남궁건은 괴물을 보는 듯한 눈으로 남운적을 바라보았다.
“이제 보니 나이만 어릴 뿐, 마귀 중의 마귀였구나!”
심안으로 살핀 남운적은 온몸이 무저갱처럼 그 깊이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남궁건은 자신의 영혼이 그 속으로 빨려 드는 느낌마저 받았다.
‘우와아아…….’
남운적은 반대로 엄청난 충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남궁건에게서 빼앗은 내공 때문이 아니었다.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부글거리듯이 솟아오른 기운이 자신의 온몸을 가득 채워 주고 있었다.
항상 속이 비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남운적은 이런 기분이 처음이었기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것은 천하에서도 단 두 곳, 용맥 중에서도 신룡의 맥이라 불리는 장소이기에 그런 것이었다.
“이야아압!”
본능적으로 그 힘을 절륜창으로 이끌자 거대한 소용돌이가 창대를 중심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천하 십대기병의 공능이 제멋대로 날뛰는 힘을 응집시키는 것이었다.
-공격해. 지금의 힘이라면 태산이라도 능히 무너뜨릴 것이다.
사왕의 신호 덕분일까.
남운적이 어설픈 동작으로 절륜창을 내질렀다.
서투르지만 방향만 지정한 것으로 충분했다.
콰아아아아아.
태풍이 한꺼번에 덮치듯 남궁건에게 향했다.
정제되지 않았음에도 그 양이 무지막지한 탓인지 실로 압도적인 위력이 있었다.
“소마귀 놈!”
남궁건은 흔들렸던 심력을 다잡으며 영체화를 펼치려 했다.
한데 그때였다.
핑그르르.
심안으로 보는 눈앞이 어그러지고.
끼이이익. 끼이익.
귓가에서는 기괴한 소음이 들려왔다.
뿐만이랴. 코가 썩을 정도로 지독한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고 살갗이 가렵고 타는 듯이 뜨거웠다.
‘환영? 진법?’
역천환시대진이라는 거대한 진법 속에 또 다른 이중진법이라니?
남궁건이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한 그때였다.
한쪽에서 묘 선생이 역천환시대진의 핵이 있는 곳에서 몸을 일으키며 팔을 번쩍 들었다.
“지금이다, 꼬맹이! 날려 버려!”
그 짧은 시간에 핵을 조작해 오감을 비트는 환영진을 즉석에서 만들어 낸 것이었다.
“크아아아악!”
남궁건의 비명과 함께 엄청난 폭발음과 지진이라도 난 듯 대지를 들썩이는 진동이 퍼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