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96화>
쉬이이익.
황금빛 섬광이 빠르게 산속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상서로운 기운이 온몸을 휘감고 있는 주인공은 바로 당연희였다.
그녀는 소림 속가 문파들과 함께 민초들을 대피시킨 후 전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당연히 모두가 반대했지만 자신이라도 전장에서 활약해야 강호인들이 소림을 잊지 않을 것이라는 한 마디에 십계승은 그녀를 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역천환시대진은 잘 펼쳐졌을까…… 그분과 숙부님은 무사하시겠지.’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복잡한 심사에 그녀는 경공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산을 벗어나 개활지에 나오자 그녀의 눈앞에 저 멀리 화인현의 모습이 들어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함박눈이 내리는 평범한 마을.
만약 치열한 전장이었다면 군기와 투기가 뻗어 나왔을 것이나 그러한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다.
“진법이 제대로 펼쳐졌구나! 다행이야!”
당연희는 화색을 띠며 품속에서 노란빛을 띠는 둥근 물체를 꺼내었다.
복잡한 진언이 새겨진 그것은 진의 영향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기물이었다.
묘 선생이 만든 세 개의 피진주 중 하나였다.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 후 그것을 품에 다시 갈무리한 그녀가 다시 움직이려 할 때였다.
‘응? 누구지?’
언덕 위에 민간의 것으로 보이는 수레가 보였다.
안력을 집중해 보니 한 사람은 말을 몰고 다른 한 사람은 다쳤는지 수레 안에 눕혀져 있었다.
‘아직 대피하지 못한 민간인이 있었나?’
당연희는 다시 산을 가로질러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곧장 그 길을 가면 진법 안으로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제지하기 위함이었다.
한데 그곳에 도착해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기함했다.
“염 대주님!?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노백의 술도가를 습격한 창궁검제. 그리고 이후 종적이 묘연했던 그를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당연희는 한달음에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소저는 어찌 혼자 이곳에 있는 것이오? 교주님은? 지존께서는 어디 계시오?”
응당 그 옆을 지키고 있으리란 생각에 물은 것이다.
당연희는 그 즉시 전쟁 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설명했다.
역천환시대진까지 들은 염마천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묘 선생께서 이런 대규모 절진을 펼친 것이었군. 저곳에 어찌 들어갈지 고민이었는데 소저를 만나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오.”
“한데 어떻게 진이 펼쳐져 있는지 아신 거예요? 묘 선생님 말씀으로는 접근하는 자는 진법이 있는지도 모르고 발을 디뎠다가 사고가 정지되어 버릴 거라고 하셨는데.”
“내가 알아차린 것이 아니오. 저분께서 꿰뚫어 보신 것이오.”
염마천의 고개 짓에 당연희가 서 선생을 보며 포권했다.
“당연희라 합니다. 강호에서는 독비화라 불리고 있습니다.”
“허허, 그대가 적 교주와 몸이 바뀐 당연희 소저였구려. 반갑소. 서환이라 하오. 편하게 서 선생이라 부르시오. 나 역시 묘수 그 녀석처럼 적 교주와 주종의 연을 맺었으니.”
“아, 예…… 반갑습니다. 서 선생님……!?”
당연희는 말을 끝내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그의 이름에 벼락을 맞은 듯 흠칫거렸다.
의술을 익힌 자가 어찌 모르겠는가.
‘서환’이라는 이름을 말이다.
“호, 혹시 생사신의 서환 노사…… 이십니까?”
“이런 아직도 노부의 이름이 강호에서 지워지지 않았나 보군.”
서선생은 난처한 얼굴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에 염마천이 말했다.
“당 소저는 사천당가의 영애입니다. 의술을 익혔으니 노사님의 고명을 듣지 못했을 리 없지요.”
“호오, 사천당가? 당씨 성을 쓰기에 혹시나 했는데 당가의 인물이었군.”
서선생은 눈을 빛내며 당연희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자네 품속의 그것 좀 보여 주겠는가?”
“예, 예? 그것이라니요?”
갑작스레 전설상의 인물을 만났기 때문일까.
당연희가 버벅거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서선생은 피식 웃으며 손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허공섭물에 의해 품속의 피진주가 그의 손으로 날아왔다.
“잠시 실례하겠네.”
서 선생은 눈을 가늘게 좁히며 표면의 진언들을 읽어 갔다.
휘리릭 돌리며 빠르게 해석한 퉁명스러운 얼굴로 툴툴거렸다.
“하여튼. 묘가 그 뚱땡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잘도 척척 해 낸다니까. 쯧.”
그는 당연희에게 피진주를 돌려주었다.
눈빛으로 보아 진언을 통해 역천환시대진의 원리까지 꿰뚫어 본 모양이었다.
“어쨌든 잘 왔네. 소저가 저 중환자 대신 반선주를 교주에게 가져다주게. 어차피 소저도 본래 몸으로 돌아가야 하니 말이야.”
서 선생은 손가락을 움직여 염마천의 손에 쥐어진 옥병을 허공섭물로 빼앗았다.
“노사님!”
염마천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이 사람아. 자네와 나는 어차피 진속으로 들어가지 못해. 당 소저도 당사자인데 뭐 어때서 그런가?”
“……끙.”
“참, 검도 챙겨야지.”
서선생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수레 한쪽에 놓여 있던 적령검이 훌쩍 날아 당연희의 손에 안착했다.
“노부가 생사신의인 것을 알았으니 하고 싶은 말이 많겠지. 하나 당장 급한 일이 무엇인지 소저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네.”
그녀는 적령검과 반선주의 옥병을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이 몸은 어차피 적교주에게 메인 몸. 하고 싶은 말은 이후에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야. 그러니 지금은 몸을 되찾는 것만 생각하시게.”
“네, 노사님.”
“서두르게. 어그러진 별자리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면 바뀌지 않을 수도 있으니.”
당연희는 포권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
염마천은 그 뒷모습을 보며 읍읍거리며 파닥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사라지자 서 선생의 무형기가 사라졌는지 염마천이 입을 열었다.
“노사님! 중단전에 대한 것을 말해 주지 않았잖습니까! 왜 제 입을 막으셨습니까?”
“걱정말게. 다 순리대로 흘러갈 것이니.”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음이란 본디 의도한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라네. 오히려 알아서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 이제는 그냥 지켜보시게. 지금 누구보다 본래 몸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당사자들일 것이니.”
서 선생은 뒷짐을 진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함박눈이 내리는 먹구름 낀 하늘은 별 하나 보이지 않지만 그의 눈은 그 너머를 보고 있는 듯 현기가 가득했다.
‘염정성의 기운을 가진 처자라…… 적 교주, 좋은 배필을 맞으셨구려.’
서 선생은 당연희에게서 자미두수 중 북두의 다섯 번째 별인 염정성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영혼이 들어가 있는 신체, 무허의 몸은 분명 탐랑성의 흔적이 엿보였다.
‘취불은 탐랑성의 화신이었구나. 누군지 몰라도 참으로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어, 쯧쯧. 욕망의 별인 탐랑성을 불가에 귀의시켜 그 기운을 억눌렀다니. 천리를 벗어났으니 탈이 날 수밖에.’
서선생은 그제야 적사결의 천랑성을 범한 객성이 탐랑성이었음을 알았다.
‘적교주, 반드시 탐랑성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하오.’
북두의 첫 번째 별인 탐랑성.
탐욕과 욕망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하늘의 법도를 정해 선악을 주관하는 별이기도 하다.
하여 하늘의 축이라는 의미로 달리 천추성으로도 불린다.
탐랑성이 틀어지면 죽음을 관장하는 북두의 일곱별 모두가 어그러진다는 말이었다.
그리되면 인세에 상상하기 힘든 재액이 닥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 * *
당연희는 화인현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 역천환시대진 그 자체를 가로질렀다.
왜인지 모르나 그녀는 본능적으로 수많은 무인들이 자리한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향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에 이끌리는 것처럼.
그때 그런 그녀의 귓가에 충돌음이 들려왔다.
진의 영향으로 주변에 정적이 감돌았기에 꽤 먼 거리지만 들을 수 있었던 듯했다.
‘싸우는 소리다. 저쪽이야.’
소리가 난 곳으로 향하자 천지를 울리는 폭음이 더욱 뚜렷하게 들렸다.
천둥굉음은 그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꽈과과광. 꽈아앙.
적사결과 무허는 폭풍 같은 공방을 주고받고 있었다.
특히 양손을 매섭게 놀리는 무허의 권강은 적혈검과 마주해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았다.
그 탓일까 적사결은 점차 밀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교주님!’
당연희는 걸음을 멈추고 섣불리 접근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생사투는 그녀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지금의 신체이기에 여기까지 접근했지 본신의 몸이었다면 백 장 이내로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지. 검을 전해 드려야 하는데.’
반선주를 무허에게 먹이려면 먼저 그를 쓰러트려야 한다.
하니 적령검이 우선이다.
지금도 적사결은 수세에 몰려 있었다.
단검인 적혈검으로는 검초를 십분 발휘하지 못하고 짧은 길이를 만회하기 위해 검강을 늘이면 공력의 소모가 크니 내공의 수발과 초식이 매끄럽지 못할 터.
그녀의 무위로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그 정도였다.
‘일단 두 사람을 떼어 놔야 해.’
스르릉.
적령검을 빼어 든 당연희가 천천히 호흡을 조절했다.
그러자 천지연원공에 이끌려 보리연화공의 기운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왔다.
한데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바로 마검이라 불리는 적령검의 공능이었다.
보리연화공의 기운에 이어 선천지기까지 적령검으로 주입된 것이었다.
“허억!”
선천지기와 후천지기가 뒤섞이며 그녀가 제어할 수 없는 지경까지 기운이 중첩되고 있었다.
적령검이 부르르 떠는 것은 물론 입고 있는 무복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쏟아 내지 않으면 폭발할 것 같은 압력까지 가중되고 있었다.
“히익! 어떡해!”
두 사람은 서로에게 완전히 집중했는지 자신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으윽! 못 버티겠어……,“
적령검의 검파를 쥔 손부터 시작해 핏줄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오 갑자의 공력과 선천지기가 더해지니 상상도 못했던 기운이 폭증하는 것이었다.
“에이씨! 누가 누굴 걱정해! 알아서 피해욧!”
절대 고수들이 설마 자신의 공격에 당하기나 하겠나.
그녀는 휘황찬란한 광휘와 함께 적령검을 내리쳤다.
그러자 그녀의 주변이 방원형으로 터져 나가고 금빛 섬광으로 보이는 검강이 사방으로 쏟아졌다.
꾸아아아아앙.
반경 백 장이 초토화되고 쏟아진 검강에 산중턱에 구멍이 숭숭 나고 대지에는 거대한 괴수가 할퀸 듯한 상흔이 새겨졌다.
당연희는 자신이 벌인 사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헐…….’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던 그녀는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제야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인지한 것이었다.
“교주님! 살아 있어요!?”
흙더미를 파헤치고 쓰러진 나뭇더미를 들어 올리며 이곳저곳을 들쑤셨다.
그런 그녀의 시야에 땅이 들썩이며 힘겹게 모습을 보이는 인영이 있었다.
“교주님!”
당연희는 그가 적사결임을 한 눈에 알아보고 황급히 달려가 그를 땅속에서 빼내었다.
드러난 그는 몰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봉두난발에 상처투성이였고 특히 왼쪽 어깨는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야이씨, 너였냐!? 뒈지는 줄 알았잖아! 콜록.”
“미안해요. 위력이 그렇게 셀 줄 몰랐어요.”
“……끄응.”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 적사결은 축축한 느낌에 왼쪽 어깻죽지를 바라보았다.
거기엔 있어야 할 왼팔이 사라지고 없었다.
“하아, 이건 또 떨어졌네.”
단련을 한다고 했는데 여전히 너무 약한 몸뚱아리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