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195화 (195/206)

<기적의 이혼대법 195화>

“저 괴상한 진법은 네놈이 준비한 것이냐?”

무허가 역천환시대진이 펼쳐진 지역을 보며 물었다.

“본좌가 준비했지. 네 녀석이 본교의 교도들을 저따위로 만들어 놓았으니까.”

적사결의 대답에 그는 몸을 들썩이며 웃었다.

“크하하하하. 과연. 과연 마구니의 수장답구나. 그래, 네놈이 아니면 이런 짓을 벌일 만한 놈이 있을 리 없지. 확실히 적사결, 네놈이 맞구나.”

“본좌도 한 가지 묻겠다. 도대체 왜 마구니의 수장이라 부르는 본좌와 몸을 바꾼 것이냐?”

“흐흐, 별거 없었다. 네놈들 마구니들을 교화시켜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었을 뿐이었지. 한때의 치기어린 실수였달까.”

“실수!? 실수였다고!”

적사결은 한순간 분노에 이성을 잃을 정도로 엄청난 살기를 뿜었다.

그 실수에 천마신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다.

“실수였지! 더러운 것은 오히려 이 세상이었으니까! 한때나마 교화라는 생각을 떠올렸던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지금도 한탄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본좌가 신마지경에서 그분을 만났다는 것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본좌는 아직까지 병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테니까. 흐흐, 지금 생각해도 간이 철렁하군.”

“뭐, 뭐?”

적사결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본좌는 신마지경에서 영접했다. 피에 젖은 지장보살을! 그분께선 사람이야말로 세상의 해악이며 원죄며 모든 업보의 근원이라 하셨다. 그리고 명하셨지. 사무친 원한이 하늘에 닿게 만들라. 이를 위해 모든 인간을 죽여라라고 말이야. 흐흐흐.”

“사무친 원한…… 하늘. 그리고 인간?”

“그래. 그것이 본좌가 혈마로 다시 태어난 계시가 되었다. 이 세상에 피의 윤회를 내리기 위해 말이다.”

왜일까.

머릿속에 ‘천년지한 원천우인’이라는 해남도 오행산에서 보았던 글귀가 떠올랐다.

천 년의 한으로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한다는 그 뜻과는 다르지만 원한을 하늘에 닿게 하기 위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미묘한 유사점이 있었다.

더구나 혈마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은 ‘천마재래 평천귀마’와 비슷하지 않은가.

‘뭐지? 신마결이 설마 천마신공에 닿아 있는 건가?’

수라진결의 창안자인 흑마신은 분명 천마신공의 반쪽인 암흑천마공만 익힌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나 그는 그것만으로도 절대지경에 오른 불세출의 무인이었다.

물론 이백 년이나 지난 일이기에 그의 무위가 정확히 어느 정도의 경지인지는 알 길이 없다.

황궁서고에서 보았던 기록에 따르면 절대 고수의 경지를 뜻하는 절대지경은 시기마다 차이가 있으니까.

한데 만약 그가 화경에 이른 고수였다면?

더군다나 말년에 이르러 수라진결의 신마결을 창안할 당시 그 이상인 천마조사의 경지까지 엿보았다면?

만류귀종이라는 무론에 따르자면 그는 비록 이론일 뿐이지만 신마지경을 통해 천마신공에 닿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생각이 복잡한 모양이구나.”

무허는 승포를 젖히며 걸음을 내디뎠다.

그 가벼워 보이는 한 걸음이 점차 다가올수록 반경 오십 장에 이르는 넓은 공간에 막대한 압력이 발생했다.

아름드리나무가 부러지고 바위가 부서져 내리는 것은 물론 바닥이 한 움큼 패일 정도의 위력이었다.

‘크윽. 이, 이건 암흑천마공?’

적사결은 천 근으로 짓누르는 듯한 힘을 버티며 무허를 노려보았다.

“좋은 눈빛이구나. 그래, 이참에 네놈도 이 성전에 참여시켜 주마.”

“무슨 헛소리냐?”

“보리연화공을 버렸으니 가능할 것이야. 거부하지 말거라. 너도 마음속에 피에 젖은 지장보살이 있을 것이니.”

무허는 한 손을 뻗어 머리를 부여잡으려 했다.

쾌속한 한 수였으나 적사결이 손 놓고 당할 리 없었다.

천근의 압력을 이겨 내며 떨쳐 낸 손으로 수라멸천장을 펼쳐 일장을 맞대었다.

쩌어어어엉.

반탄지기에 눈발이 이리저리 흩날리며 허공에서 춤을 췄다.

그 속에서 두 사람은 접장을 한 상태로 내력 대결의 형세를 보였다.

적사결의 이마에는 핏줄이 툭툭 불거져 나와 있었다.

“오 갑자를 버리고 선택한 몸뚱이 치고는 형편없구나. 본좌를 향해 이를 갈았을 텐데 고작 이 정도인 것이냐?”

“웃기지 마라!”

적사결은 나머지 한 손까지 일장을 내질렀고 무허 역시 손바닥을 맞대며 응수했다.

동시에 깍지를 낀 두 사람은 무시무시한 얼굴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젠장 독기는 아직인가.’

흑아에게 빨린 독기가 아직 회복이 되지 않고 있었다.

독공이었다면 접장의 순간 곧바로 중독시키고 끝났을 터.

하나 아직 심장에는 독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꾸구국. 트트특. 우드득.

내공의 위력이 떨어진다지만 천축유가신공으로 발휘하는 외공이 부족한 힘을 받쳐주었다.

덕분에 여인의 몸임에도 백중세로 무허를 상대하고 있었다.

“계집의 몸뚱이 치고는 손아귀 힘이 제법이구나. 큭큭“

무허는 적사결을 비릿한 눈으로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그 아가리 닥쳐라. 죽여 버리기 전에.”

적사결은 의념을 집중하며 나직이 읊조렸다.

삼지안이 밝게 빛나며 천축유가신공은 극한으로 운용되고 있었다.

“흐흐, 꼼짝도 못하면서 말은 잘하는구나.”

무허의 말대로 힘의 균형이 조금만 어긋나도 밀려나버릴 상황.

섣불리 각법을 펼치려다가는 도리어 밀려나 바닥에 처박힐지도 몰랐다.

“그래서 주둥아리를 놀리는 거냐? 그래, 네놈은 계속 그렇게 조잘거려라.”

“클클, 언제나 자신감만큼은 봐줄……?”

말을 하다 말고 무허가 입을 반쯤 벌리며 적사결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얼굴의 외형이 변하더니 점차 주둥이가 나오고 붉은 털이 돋아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르르르르“

“이, 이게…….”

“크아아아앙!”

콰지직.

“크아아악!”

머리가 늑대로 변한 적사결이 무허의 어깻죽지를 물어뜯어 버렸다.

인간의 뼈 중 가장 약한 쇄골이 단번에 부러지고 승모근이 찢어지자 무허의 양팔에 힘이 쑥 빠졌다.

그때를 노려 밀어붙이자 적사결은 무허를 넘어트리고 그 위에 올라탈 수 있었다.

“크아아아아!”

이어 양주먹으로 펼쳐지는 광룡파천권.

무허의 상체를 피떡으로 만들어 버리는 파괴적인 권강이 무수히 쏟아졌다.

콰과과광. 꽈광. 꽈앙.

자신의 몸인 것도 개의치 않는 무자비한 폭력.

인정사정없는 모습은 광기마저 엿보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절그럭. 퍼퍼퍼퍼퍽.

무허의 목에 걸려 있던 해골염주가 하나하나 풀려나더니 살아 있는 것처럼 공세를 펼쳤다.

적사결은 예상치 못한 공격을 허용하고는 뒤로 훌쩍 물러났다.

“크르륵. 크륵.”

한 방 한 방이 강기에 얻어맞은 것 같은 위력.

갈비뼈 몇 대가 부러지고 가슴뼈가 주저앉아 버린 것이었다.

덕분에 잠시 비틀거렸지만 이내 삼지안이 빛나며 회복력이 빠르게 발휘되었다.

그리고 늑대로 변했던 머리도 본래의 얼굴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휘익. 휘익.

마흔아홉 개의 해골은 무허의 주변을 보호하듯 빙글빙글 돌았다.

왼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일어서는 그는 비틀거리며 해골 하나를 오른손으로 붙잡았다.

빠지직. 촤아악.

오른손의 해골이 바스러지더니 그 속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그리고 무허는 고개를 들어 그 피를 받아먹었다.

그러더니 피떡이 되었던 얼굴과 상체가 점차 회복되어 갔다.

“크흐, 무지막지하구나. 설마 진짜 괴물로 변할 줄이야. 둔갑술이라도 쓴 것이냐?”

소매로 입가의 피를 훔치는 무허는 완전히 회복된 모습으로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그 해골들…… 뭐냐?”

적사결은 살기 어린 눈빛으로 되물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삼지안으로 보았기에 대략 알 수 있었다.

하나 놈의 입에서 듣기 위해 물은 것이었다.

“이거 말이냐? 흠, 뭐라 해야 할까. 본교를 위해 제 목숨도 아끼지 않는 신실한 아이들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천하 정화 작업을 위해 공양된 제물이라 해야 하나? 크크.”

출정 전 희생된 사십구 인의 회현촌 백성들.

무허는 그들을 죽인 것은 물론 그 영혼까지 빼앗아 해골에 봉인한 것이었다.

“네…… 네놈은 정말…….”

적사결의 분노가 끝도 없이 치솟았다.

타오르는 안광에도 불구하고 시뻘겋게 핏발이 보일 정도였다.

“어디까지 본교를 농락할 셈이냐!”

바닥을 박차는 동시에 적혈검을 내려치는 일격에는 하늘과 땅을 갈라 버릴 위력이 서려 있었다.

일검무적이라 일컬어지는 극혈파천의 일초였다.

그 강맹한 검초가 눈앞에서 펼쳐졌지만, 무허는 여유로운 태도로 일관하며 비릿한 얼굴로 대꾸했다.

“성전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다. 어리석은 녀석!”

하나 그 말과 달리 해골들은 피로 이루어진 눈물을 주르륵 흐르고 있었다.

*   *   *

덜그럭. 덜그럭.

말 한 필이 이끄는 수레가 한적한 오솔길을 가고 있었다.

마부석에는 고풍스런 자태의 노인이 있었고, 수레에는 환자로 보이는 중년인이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 위로 싸락눈이 내리더니 스르르 녹았다.

갑자기 피부에 와 닿은 한기 탓일까.

“……끄응. 노, 노사님.”

“자네 깨어났는가? 일어나지 말고 그대로 누워 있게나. 아직 몸이 성치 않으니.”

초립을 쓴 노인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는 이어 주변에 기막을 둘러 환자의 몸에 눈이 내리지 않도록 막아주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자네가 가야 된다고 하도 생떼를 부리기에 급한 대로 수레에 태워 가고 있네. 조금 있으면 화인현에 당도할 걸세.”

두 사람은 서 선생과 염마천이었다.

처음 만났던 당시 목숨이 경각에 달했던 염마천이었기에 서 선생은 서둘러 활법으로 그를 살렸고, 이후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었다.

하나 염마천은 곧 정신을 잃었고 빈사 상태에서도 가야 한다 쉼 없이 중얼거렸기에 서 선생은 직접 그를 데리고 섬서성으로 향한 것이었다.

덕분에 염마천은 수레 위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겨야 했었다.

비록 그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 은혜를 어찌해야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은혜랄 것 무에 있겠나. 그대나 나나 피차 적 교주를 모시는 처지에.”

“예? 교주님을 모시다니요?”

“흐음. 호교대법사인 자네에게까지 숨겼었나 보군.”

“설마…… 노사께서도 묘 선생이라는 그분처럼…….”

“음? 묘가 그 뚱땡이는 아는 모양이군? 한데 내 얘기는 들은 적이 없는 겐가?”

서 선생은 초립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리며 한쪽 눈살을 찌푸렸다.

염마천은 화급히 고개를 저으며 변명했다.

“그, 그것이 아닙니다. 묘 선생이라는 분은 얼마 전에 주군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전에는 저도 들은 바가 없었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십시오.”

“허허허, 농담이네. 적 교주가 어떤 사람인데 우리 둘을 차별할 리 없지.”

서 선생은 웃으며 고개를 돌리고는 다시 말을 몰며 말했다.

“한데 자네는 어쩌다가 남궁세가에 쫓기게 된 것인가?”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염마천은 반선주, 그리고 그것을 노린 창궁검제 남궁건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리고 혹시 그가 모를 것 같아 이혼대법에 대해 말해 주려 할 때 서 선생이 손을 들었다.

“이혼대법과 반선주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네. 한데 새로 만든 그 반선주가 정말 온전히 기능을 할 수 있는가?”

“그것이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문제라니? 그 중요한 것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 창궁검제가 나타날 줄은 몰랐으니까요.”

“큰일이군. 미완성의 반선주에 희망을 걸어야 하다니…….”

서 선생의 탄식에 염마천이 말했다.

“반선주의 제조법을 아는 노백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검제가 저를 쫓아왔었으니 그는 무사히 빠져나갔을 것입니다.”

“글쎄…… 자네 말에 따르면 그는 심안을 개안한 것이네. 한데 심안이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만약 노백이라는 자가 하오문에서만 아는 비밀 통로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심안의 감지 범위를 벗어나진 못했을 것이야. 오히려 그가 노백이라는 자를 죽이고 자네를 쫓아갔다는 것이 더 앞뒤가 맞을 걸세.”

“그런…… 하면 유일한 반선주는…….”

“지금 자네가 가진 것밖에 없는 것이지. 한데 그 노백이라는 자가 아무런 단초도 남기지 않았는가? 그만한 인물이라면 자신이 죽고 자네가 살아남을 가능성에 뭐라도 남겼을 텐데.”

염마천은 입을 벌리며 탄성을 내질렀다.

“아! 있었습니다. 그가 헤어지기 전 저에게 중단전에 대해 말해 주었습니다. 이혼대법의 근간은 타인에 대한 시기심에서 비롯된다고요. 분명 그렇게 말했습니다.”

“흐음, 시기심이라…….”

서 선생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염마천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방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실은 수레는 어느새 오솔길을 벗어나 화인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까지 당도했다.

하늘에서는 어느새 싸락눈이 함박눈이 되어 더욱 거센 추위를 동반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