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94화>
염마천을 놓친 후 남궁건은 곧장 섬서성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의천맹에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이유는 물론 천마신교.
노백을 통해 알아낸 철저지원수가 적사결인 것을 알아내었으니 그 복수도 하고, 무허가 빠진 의천맹에 자신이 합류함으로써 남궁세가의 위상을 더 높이기 위해서였다.
한데 전장에 도착한 그는 역천환시대진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심안으로 살펴본 그 진법은 아무리 자신이라도 함부로 진입할 수 없었다.
멋모르고 진속에 발을 디딘 창궁비연대의 대원이 이지를 상실하고 고개를 떨군 것을 확인하고는 더욱 그러했다.
하나 남궁건의 심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역천환시대진을 꿰뚫어 보았고 그것이 육신을 지닌 생명체에 한해 기능한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신체를 영체화할 수 있는 제왕무적검의 오의가 있었다.
콰아아아앙.
영검의 위력에 진축 하나가 박살이 났다.
복잡한 계산에 의해 용맥의 기운이 응집된 진축은 부서지며 엄청난 기운을 토해 내었다.
동시에 공간이 일그러지며 진이 삐걱거리는 듯했으나 곧 제자리를 찾아갔다.
펼치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가동된 역천환시대진은 진축 한두 개를 어찌한다 하여 깰 수 있는 만만한 진법이 아니었다.
더구나 방해꾼까지 있었다.
쾌애애애애액.
심안으로도 감지되지 않는 먼 거리에서 날아온 거대한 화살.
의천맹의 수뇌부를 저격하던 강산이 침입자를 막기 위해 쏘아낸 것이었다.
하나 그 위력이 허무하게 화살은 남궁건의 영체를 통과해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물리적인 공격을 허용하지 않는 공능은 절대방어나 마찬가지였다.
‘허어, 얼마나 먼 거리에서 공격한 것인지 가늠도 안 되는구나. 마교에 이토록 뛰어난 궁사가 있었던가. 한데 어찌 보이지도 않는 거리에서 본좌를 저격한 것일까…….’
그렇게 의문을 가지는 남궁건의 심안에 마기를 지닌 누군가가 감지되었다.
그는 자신이 있는 자리로부터 약 삼십 장 정도의 거리에 은신한 채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그 마인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수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오호라. 저놈이 궁사의 눈을 대신한 것이로구나.’
남궁건은 실소를 흘리고는 그 마인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그러고는 영검으로 일격에 목숨을 거두었다.
‘한데 이놈은 어찌 멀쩡한 것이지.’
진의 영향으로 모든 사람이 넋을 잃을 것처럼 변했건만 마인은 아무리 보아도 이상이 없었던 것이었다.
남궁건은 그 주변을 살피다 곧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방금 죽인 놈뿐만 아니라 궁사의 눈이 되는 놈들은 약 오십 장씩 거리를 두고 곳곳에 숨어 있었다.
즉, 이 천고의 절진을 펼친 당사자가 그들에게 진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장소를 마련해 준 것이 분명했다.
‘그래. 그래야 마교 놈들이지. 혈교와 본 맹을 이곳에 몰아 진법에 빠트린 후 기상천외한 저격으로 죽이려 한 것이로구나. 이 천하의 악독한 놈들.’
남궁건이 살기를 발하자 영체화한 탓인지 더욱 농밀하고 음산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때 그의 뒤를 점하며 나타난 자가 있었다.
“이거 귀신인지 사람인지 모르겠군.”
그는 당백산이었다.
멀리서는 몰랐는데 가까이 접근하자 마치 귀신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었다.
남궁건은 신형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이 기운…… 설마 암룡신존?”
“그러하네. 본좌가 당백산이네.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 맞긴 한가 보군.”
“사천회가 언제 마교와 손을 잡았지?”
“거참 나이도 어린 친구가 말이 상당히 짧군. 노부가 그래도 자네보다 배분이 높은데 말이야.”
“본좌는 천하제일검가, 남궁세가의 가주다. 누구에게도 존대를 하지 않는다. 그것이 적이라면 더더욱.”
주변을 잠식했던 남궁건의 살기가 당백산에게 집중되었다.
그 기운에 흑아가 반응하며 비늘을 세웠다.
-취리릿. 쉬이익.
“흑아야, 진정하거라.”
당백산은 흑아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벼락같이 출수했다.
능청스러운 태도와 달리, 수법은 절묘한 암습이 아닐 수 없었다.
소매 속에서 뻗어 나가는 십여 줄기의 검은 번개.
그것은 암전표라 불리는 암기였다.
현철을 종잇장처럼 얇게 만든 그것은 기습에 특히 유용했다.
하나.
쉬쉬쉬쉭.
암전표는 환영을 지나가듯 남궁건의 영체를 통과해 버렸다.
동시에 남궁건 역시 오른손을 내지르며 영검을 떨쳤다.
쉬잉. 촤아악.
당백산은 급하게 회피했으나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의 공격은 무력하게 그를 지나쳐갔고 그의 공격은 반대로 자신의 옷깃을 스쳤기 때문이었다.
‘무슨 저런 무공이 있단 말인가. 귀신이라 해도 믿겠구나.’
당백산은 현묘한 신법을 발휘하며 영검을 회피했다.
당가의 독룡진천보는 천하일절로 불릴 정도.
독과 함께 당가의 자랑인 암기술.
거리를 중시하는 그 특성상 경신공의 발전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분명 말도 안 되는 무공이다. 하나 저 상태를 계속 유지하진 못할 것이야.’
당백산은 피하는 와중에 죽은 마인이 있는 자리를 힐끔거렸다.
그곳은 적사결이 말해 준 장소.
바로 피진주가 없이도 진력의 영향을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당백산은 남궁건이 저 장소를 확보하기 위해 이곳으로 온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힘이 다한 그는 반드시 저곳으로 움직이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나 그 노림수를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했다.
그 때문에 당백산은 암전표와 유성연환표를 연이어 출수하며 반격의 토대를 다졌다.
“늙은이. 소용없다는 것을 모르겠나.”
남궁건은 아무런 방어초를 펼치지도 않고 암기를 전부 통과시켰다.
그렇게 두 사람의 공방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남궁건 역시도 당백산의 신출귀몰한 신법을 잡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는 짓을 보아하니 시간을 끄는 모양인데…… 미끼를 조금 던져 볼까.’
남궁건의 신형이 조금씩 움직이더니 죽은 마인이 있던 자리에 내려섰다.
그는 장님이지만 심안을 개안한 자.
그 절대적인 감각은 당백산이 힐끔거린, 눈동자의 작은 움직임까지 감지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사실을 모르는 당백산의 양손이 보이지도 않게 움직이며 절초를 발휘했다.
온 천하에 모르는 이가 없는 암기술의 정점, 만천화우였다.
파라라락. 쉬이익. 쇄쇄쇄쇅.
각양각색의 파공음을 남기는 암기의 폭우.
칠독황봉침에 폭우비환, 혈접표, 멸혼파백연, 염왕겁화탄 등.
하나만 해도 치명적인 살수나 다름없는 살상 병기들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쏟아졌다.
* * *
한편.
적사결은 혈귀를 상대로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뻐버버버벅. 뿌아악.
양주먹에서 광룡파천권의 경력이 불을 뿜었다.
혈귀는 제대로 방어도 하지 못한 채 얻어맞기만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삼지안, 그리고 마공에 대한 완벽한 파훼법이었다.
원영신을 강제로 뽑아내 만들어진 혈귀라지만 그 무공의 근본은 본체의 것이다.
하니 마공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적사결로서는 어디로 무슨 초식이 날아올지 선명하게 보이기까지 하니 대응이 손쉬웠다.
그러나 한 가지, 혈귀의 신체에 대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콰아아아앙.
적사결은 혈귀의 머리를 잡아 땅속에 박아 넣고 무릎으로 등을 찍어 눌렀다.
“후아. 그놈 그거 더럽게 단단하네.”
당백산에게 핀잔을 준 것이 무안할 정도.
지금 보니 한 방에 수십 마리를 처리한 것이 경악스러웠다.
눈앞의 혈귀는 권강을 수십 번이나 맞아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키악! 키아아악!
혈귀는 발악을 하다, 연체동물처럼 등 뒤로 팔을 돌렸다.
그러고는 두 손으로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적사결의 오른팔을 붙잡았다.
곧이어 엄청난 악력이 팔을 통해 전해지기 시작했다.
‘크읍. 이 괴물 같은.’
의복에 가려져 있으나 적랑의태로 잠재 근력 이상으로 외공을 높여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적사결은 팔목이 으스러질 것 같은 힘에 인상을 썼다.
“새끼가.”
곧바로 왼손으로 빼어 든 적혈검이 혈귀의 몸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검첨에는 강기 이상의 파괴력을 낼 수 있는 강환이 생성되어 있었다.
푸푸푸푸푸푸푹.
전신을 헤집어 놓는 연속 공격에 혈귀는 비명을 토하며 손을 풀었다.
적사결은 그래도 그치지 않고 광극경천의 초식으로 수박만 한 구멍을 놈의 가슴에 내주었다.
“후욱. 후욱.”
거리를 벌리고 호흡을 가다듬는 적사결의 이마에 땀이 흥건하게 맺혔다.
강환은 위력은 크지만 공력의 소모가 큰 단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키익. 키익.
혈귀는 온몸에 구멍이 숭숭 난 상태로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더니 돌연 쓰러져 있던 무허를 덮쳤다.
거대한 전포처럼 생긴 천으로 변해 몸 전체를 덮어 버린 것이었다.
“헉, 이 자식이! 내 몸에서 안 떨어져!”
적사결은 무허에게 달라붙은 혈귀를 떼어 내려고 안간힘을 다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마치 접착력이 강한 무언가로 붙여 놓은 것처럼 끄떡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별안간 일장이 쑥 하고 날아왔다.
쩌어어어엉.
황급히 양손을 교차해 막았으나 두 팔이 저릴 정도로 막강한 위력이었다.
“서, 서광개천장?”
형태는 다르지만 팔에 남은 감각은 분명 보리연화공의 장법이 분명했다.
과거 몇 번이나 두 손으로 받아본 적이 있으니까.
-키아아악!
혈귀는 무허를 조종하는 것인지 무허에게 조종당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그의 몸에 달라붙어 쌍장을 연이어 떨쳤다.
콰콰콰콰쾅. 꽈과과광.
‘크윽, 이 자식이.’
서광개천장에 당황한 사이에 광범위한 위력의 장세가 연속으로 덮쳐왔다.
적사결은 그 위력보다 초식 자체에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광혈수라공, 수라멸천장의 심득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야, 무허의 의식이 깨어난 건가? 한데 이 개새끼. 역시 광혈수라공도 훔쳐 배웠구나.’
자신이 칠십이종절예를 빼돌리고 천축유가신공을 익힌 것처럼 무허도 신마결은 물론 광혈수라공까지 익힌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독문 무공으로 공격당하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기분이 더러웠다.
쫘아아아아악.
적혈검의 검강이 극혈파천의 투로를 따라 혈귀의 장세를 갈라 버렸다.
한데 놈은 이미 그 자리를 뜬 이후였다.
“놓칠 것 같으냐!”
수라천랑보의 경신공이 적사결의 신형을 쭉쭉 밀어 올렸다.
허공답보까지 발휘하며 하늘을 몇 번이나 박찬 적사결의 시선에 혈귀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죽었어!”
적사결의 검을 떨치자 광극경천의 지르기가 일직선으로 혈귀에게 날아갔다.
비취색 강환은 바람구멍을 넘어 상체를 통째로 날려 버릴 정도로 강맹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한데.
쩌저저정.
혈귀는 붉은 기운을 모아 맞받아치고는 그 반발력을 이용해 더 빠르게 앞으로 쏘아져나갔다.
“망할!”
적사결 역시 황급히 발끝에 힘을 주어 쾌속하게 그 뒤를 쫓았다.
하나 놈은 이미 역천환시대진의 영역 바깥에 발을 디디는 중이었다.
촤아아악.
지상에 내려서며 놈을 쏘아보는 적사결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삼지안을 통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혈귀 속에서 일어나는 섬뜩한 기운의 주인.
무허가 눈을 뜨는 것을 말이다.
사아아아.
혈귀는 그제야 힘이 다했는지 잿가루가 되며 바람에 흩날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붉은 안광의 미중년인이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크크크. 내 혈귀를 통해 잘 보았느니라.”
무허는 적발로 변한 머리칼을 하늘 위로 치솟은 채 적사결을 노려보았다.
“재미있구나. 언젠가 네놈이 본좌의 앞에 나타날 것이라 여겼으나 그것이 이런 모습일 줄이야.”
호적수라 불렸으니 어찌 모를까.
무허는 상대의 무공에서 자신의 생사대적인 광혈존 적사결의 모습을 본 것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적사결.”
자신을 부르는 말에 적사결이 적혈검을 겨누며 답했다.
“오랜만은, 니기미. 그래도 본좌를 알아보았다니 다행이다. 누가 때리는지도 모르고 처 맞으면 재미없잖아. 안 그래? 무허!”
저 멀리 화산을 배경으로 한 벌판에서 기나긴 악연의 두 적수가 마주 보았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서는 생사결의 서막을 알리듯 새하얀 눈발이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