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93화>
섬광처럼 터져 나간 빛무리는 동심원처럼 뻗어 나갔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듯이.
그러자 빛에 노출된 모든 이들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직임을 멈춰 버렸다.
이는 화인현뿐만 아니라 마을 외곽, 그리고 멀리서 그들 모두를 천라지망으로 포위한 채 대기 중이던 의천맹도 마찬가지였다.
무인들은 시야가 새하얗게 변하며 자신들의 의식이 날아가 버렸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 그 현상에서 벗어난 부대가 있었다.
바로 이천 명에 달하는 강산의 궁수대.
그들은 묘 선생이 만들어 준 대피처에서 눈을 빛내며 진법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러고는 준비된 수신호가 대원들을 통해 십 리 바깥까지 이어졌다.
“대주님. 거리는 팔 리, 방향은 서북. 좌측 위를 보시면 높게 솟은 나무가 있을 겁니다. 그 꼭대기에서 약 일 장 위를 노리고 쏘시면 됩니다.”
옆에서 보조하는 대원의 말에 강산이 물었다.
“목표 대상은 누구지?”
“독고세가의 장로 독고명입니다.”
“가주도 아니고 장로급이라. 첫 저격의 연습으로 삼기엔 적당하군. 준비들 해.”
강산의 명에 대원 중 한 명이 허벅지만 한 굵기의 나무화살을 집어 들었다.
어지간한 장창에 못지않은 길이는 그것이 화살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는 그것을 거무튀튀한 물체의 뒤편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장전하듯 발사대에 걸었다.
‘팔 리. 서북쪽. 저기서 일장 위란 말이지…….’
강산이 왼손바닥을 거대한 구조물에 닿자 조준대가 끼기긱 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무의 술로 만든 그것은 흑철목 십여 그루를 변형시켜 만든 석궁.
그것도 공성용 투석기를 뛰어넘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였다.
“바람의 방향은?”
그 물음에 대원들이 일제히 수신호로 동남쪽을 가리키자 그에 맞춰 거대 석궁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바람의 세기조차 신호로 알리는 것은 서로가 소통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는 단초였다.
그리고 마지막 조작.
‘현천사일시. 천리필살.’
현천진기의 공력이 화살에 실리며 속도를 높이고 강맹한 파괴력을 낼 준비를 마쳤다.
강산은 망설이지 않고 시위를 놓았다.
투웅. 쾌애애애애액.
대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현천사일시가 점이 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잠시 후.
“명중이랍니다!”
대원들이 믿기 힘든 얼굴로 소리쳤다.
초장거리 저격, 그것도 타인의 눈과 신호만으로 맞추는 것은 귀신같은 궁술이 아닐 수 없었다.
“즉사인가?”
“오른팔 직격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물론이다.
역천환시대진이 펼쳐져 있는 이상 지혈하지 못한 채 일각만 지나도 과다출혈로 죽을 것이다.
하나 강산은 부족하다 생각했다.
“척후로 나가 있는 대원들에게 방향과 거리를 더 세밀하게 전달하라고 지시하거라.”
“얼마나 말입니까?”
“절반 정도. 그 정도는 되어야 오차를 줄일 수 있을 것 같구나.”
“존명.”
대원들은 그 즉시 사방으로 수신호를 전달했다.
그리고 곧장 답변과 함께 다음 목표물에 대한 정보가 왔다.
“대주님. 다음 표적이 정해졌습니다.”
“이번에는 누구지?”
대원은 십리경을 눈에서 떼며 말했다.
“종리천. 의천맹주입니다.”
* * *
강산이 의천맹의 주요 인사들을 저격하고 있을 때.
화인현에서는 모든 무인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하나 외곽에서는 단 두 명만이 깨어 있는 정신으로 주변을 살폈다.
바로 적사결과 당백산이었다.
“대단하군. 정말 진의 영향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의 사고를 정지시키다니.”
당백산은 옆에 있는 수하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나직이 읊조렸다.
그럼에도 수하들은 넋이 나간 것처럼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이 피진주? 이게 쓸모가 없어졌구먼그래.”
눈앞에 얼어붙은 듯 서 있는 무허를 보며 당백산이 말했다.
입신의 경지에 올랐다지만 그도 생명체인 이상 진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제 어쩔 건가?”
“기다릴 것이오.”
“무엇을 말인가?”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지닌 자들이 올 때까지 말이오.”
적사결이 기다리는 자들이란 염마천과 흑사광이었다.
“그들이 누군가? 언제 오기에 기다린단 말인가?”
“본좌의 수하들이오. 언제 올진 모르지만 무조건 올 것이오.”
“뭔가 준비를 한 모양인데 변고가 생긴 모양이구먼. 하나 이 진법도 무한정 펼칠 수 있는 것은 아닐 텐데 기다리는 것만으로 해결이 되겠는가?”
“변수가 없는 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소. 이곳에 펼쳐진 역천환시대진은 그런 것이오.”
당백산은 한쪽 눈을 치켜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만한 규모의 절진이 기능하는 것만도 대단한데 유지되는 시간까지 무한하다니.
그가 지닌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그들이 상황을 주시하던 그때였다.
갑자기 백여 개에 달하는 움직임이 동시에 잡혔다.
끼긱. 끼기긱.
그 움직임은 운남양가와 청해운가의 병력 뒤쪽.
그들을 학살하던 혈천지옥대에서 일어났다.
-캬아아아아악.
귀까지 찢어진 입을 크게 벌리며 포효하는 혈천지옥대.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그들이 진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이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뭐지, 저것들은?”
당백산은 혈천지옥대에게서 자신 못지않은 기운을 느끼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 외양도 기괴하고 섬뜩하기만 했다.
“소림을 멸문시킨 ‘그것‘인가 보오.”
“그것이라니?”
“나도 정확히 모르겠소. 사람의 형상을 한 괴물들이라 보고받았을 뿐이오.”
적사결도 긴장한 표정으로 적혈검을 고쳐 잡았다.
분명한 적의는 그들 두 사람에게 곧바로 쏘아져오고 있었다.
그때 당백산이 다급하게 물었다.
“이보게. 독공, 완전히 익힌 거 맞겠지?”
“음?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것이오?”
“하면 자네도 좀 도와주게. 저것들 해치우려면 우리 힘만으로는 어려울 것 같구먼.”
“우리라니?”
그때였다.
당백산의 소매에서 나온 시커먼 물체가 그의 팔을 타고 올라 목을 감더니 어깨에 자리를 잡았다.
그것은 검은 빛깔의 비늘과 붉은 눈을 지닌 뱀이었다.
묵린혈망이라 불리는 영물로 당백산이 암룡신존이라 불리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별호 앞의 ‘암룡’은 그의 반려영물을 상징했으니까.
“흑아야, 서두르거라.”
그 이름처럼 두 개의 독니까지 검은색을 띠는 흑아.
흑아는 곧바로 당백산의 목덜미를 물었다.
그러자 자색의 핏줄이 돋아나더니 독기가 흑아에게 빨려 들어갔다.
“후우우. 이제 자네 차례네. 목 좀 내밀어 보게.”
“뭐요? 뭐 하는 거요, 지금?”
“설명할 시간 없으니 시키는 대로 하게.”
당백산의 재촉에 적사결은 어쩔 수 없이 흑아에게 다가갔다.
하나 시뻘건 눈을 한 뱀에게 목을 물리려니 여간 불안한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묵린혈망이 어떤 영물인가.
성체가 되면 묵린대망이라 불리며 천하 삼대극독을 지닌 독물의 한 가지로 불리는 영물이었다.
비록 녹주독혈사의 내단을 얻어 만독불침이 되었지만 안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나마 사랑하는 조카의 몸에 해코지를 하겠는가라는 생각에 목을 내밀 수 있었다.
콰악.
“흐읍.”
물리자마자 심장의 독기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빨려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목덜미에는 녹색의 핏줄이 돋아나며 그 현상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흑아는 모든 독기를 빨아먹고 나서야 입을 떼고 혀를 날름거렸다.
적사결은 마치 단전이 한순간에 텅 빈 것 같은 현기증을 느끼며 무릎을 꿇었다.
“크윽. 이제 어쩌려는 거요?”
“잘 보게. 진정한 독공의 위력을 보여 줄 테니.”
완전하다 할 수는 없으나 천하 삼대극독이 흑아에게 모인 상황이다.
묵린대망은 아니지만 당백산에 의해 사육된 흑아는 보통의 묵린혈망 이상의 독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당백산의 몸에는 대를 거치며 희석되었다지만 인면지주의 독이, 그리고 적사결은 녹주독혈사의 독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섞이자 인세에 다시없을 극독이 흑아의 체내에 생성되었다.
곧이어 당백산의 진기가 흑아의 내단에 전해지자 녀석의 배에서 불룩해진 기운이 점차 머리를 향해 이동했다.
그러고는.
콰아아아아.
엄청난 기운이 흑아의 입을 통해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 방향은 당백산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손가락을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천천히 이동시켰다.
퍼퍼퍼퍼퍼퍼퍼펑.
소림 무승들의 강기에도 끄떡없던 혈천지옥대가 축제날 폭죽처럼 터져 나갔다.
한데 그런 상황에서 빠져나간 혈귀 한 마리가 있었다.
가장 오른쪽 끝에 위치했던 놈으로 흑아의 기운이 다하며 운 좋게 살아남은 것이었다.
“크윽, 한 놈 남았소!”
“이, 이런.”
“잘난 척은 있는 대로 다하더니!”
적사결은 일어서려 했으나 아직 독기가 빠져나간 여파가 남았는지 무릎이 부들거렸다.
그것은 당백산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러는 사이 그 한 놈이 무허를 둘러메고 달리기 시작했다.
필시 진의 영향을 벗어나려는 행위임이 분명했다.
“망할!”
“미안하네. 자네를 볼 면목이 없구먼.”
“그런 소리 말고 회복에나 집중하시오.”
“알겠네.”
다행히 신체가 제 기능을 하는 데 반의반각도 걸리지 않았다.
하나 무허를 둘러멘 놈은 벌써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기감에도 잡히지 않네. 어쩌지?”
적사결은 대답 없이 삼지안을 개안하고 후각을 강화했다.
그러자 삼백 장 정도 되는 거리에서 놈의 냄새가 감지되었다.
“따라오시오.”
빠르게 움직이는 두 사람.
하나 얼마 가지도 못하고 걸음을 멈춘 채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엄청난 기운과 함께 충격파가 번져나갔다.
콰아아아앙.
그 한 방에 동쪽 지역의 공간 전체가 잠시간 일그러졌다 원상태로 돌아갔다.
역천환시대진의 진축이 바깥에서부터 공격을 당한 것이었다.
하늘에는 마치 환영처럼 흐릿흐릿한 모습의 인영이 있었다.
“저자는 설마…… 창궁검제?”
당백산이 적사결을 돌아보며 말했다.
창궁검제를 폐인으로 만든 당사자이니 어찌 된 것인지 묻는 듯한 얼굴이었다.
“저 새끼는 가는 길마다 사람 거슬리게 하네.”
적사결은 어금니를 바드득 갈며 남궁건을 노려보았다.
“저자가 몸을 회복한 것을 알고 있었는가?”
“며칠 전에 보고 받았소.”
“어찌하겠나? 검제도 저대로 놔두어선 안 될 것 같은데. 내 자네가 하자는 대로 따르겠네.”
적사결은 무허와 남궁건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다.
하나 그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어느 쪽이 중요한지는 불을 보듯 뻔했으니까.
“신존께서 잠시만 저놈을 맡아주시오. 내 금방 무허 그놈을 잡아 온 후에 저놈도 쳐 죽일 테니까.”
“그리하겠네. 조심하게. 아까 그 괴물, 범상치 않아보였네.”
“그런 놈 수십을 한방에 때려잡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신존이야말로 조심하시오. 저놈도 제법 칼을 갈고 온 모양이니까.”
“클클, 지금 누굴 걱정하는 겐가. 내 자네가 오기 전 창궁검제를 바닥에 눕혀 놓을 테니 걱정 말고 다녀오게.”
당백산은 호기로운 말과 함께 신형을 날렸다.
적사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는 다시 추적을 재개했다.
타탓. 쉬이익. 타다닷. 쉬익.
나무꼭대기를 타고 이동하며 공중제비를 도는 신법은 눈부실 정도였다.
그 방향은 추적 대상의 이동 경로를 예측하고 최단거리로 움직이고 있었다.
뛰어난 시각과 후각, 그리고 청각까지 동원하니 코앞에서 보듯 그 움직임을 잡은 것이다.
결국.
터엉.
땅바닥으로 내려선 적사결이 혈귀의 앞을 막으며 외쳤다.
“어디 지옥 끝까지 도망가 봐라. 본좌가 못 잡는지!”
살기 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절대 고수.
혈귀는 강렬한 적의를 발하며 괴성을 질렀다.
-키아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