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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192화 (192/206)

<기적의 이혼대법 192화>

“담영. 잘해 주었구나.”

적사결은 선두에서 달려온 그를 치하하며 어깨를 두드렸다.

“아닙니다. 벌써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이제야 도착해 송구할 따름입니다.”

“하하하, 이 사람아, 관 장로가 이끄는 부대 다음으로 도착한 것이야. 그래도 사천회보다 늦은 건 아니지 않느냐.”

천마신교 최고의 기습 부대를 꼽으라면 관패가 이끄는 마검귀면대라 할 수 있다.

기동력만큼은 수라혈검대를 뛰어넘는 그들이었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이기도록 하겠습니다.”

담영은 타오르는 눈길로 다짐하듯 말했다.

어찌 보면 지기 싫어하는 것은 마인이라면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내 너를 어찌 말리겠느냐.”

적사결은 피식 웃어넘기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덩치 큰 장한의 사내가 있었다.

“선우환, 저쪽으로 가면 증조부의 시신이 있을 것이다. 주검을 수습하도록 하거라.”

“이미 돌아가신 것이군요. 지존의 손에 운명하였으니 무허에게 농락당한 그분의 영혼이 저승에서나마 편안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선우환은 포권과 함께 고개를 숙인 후 적사결이 가리킨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 뒷모습은 커다란 덩치와 다르게 다소 위축되어 보였다.

가문 역사상 최고의 무인이던 증조부가 말년에 이르러서는 심마에 빠지고 나아가 혈교도가 되기까지 했으니 마음이 착잡한 것이었다.

“담영. 우문적. 부대를 이끌고 화인현 안쪽으로 들어가라. 마검귀면대와 탈마동의 마인들이 난전을 벌이고 있으니 합류하도록 하거라.”

적사결의 명에 담영이 물었다.

“교주님. 일군은 남겨 이곳에서 완안가의 마인들을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놈들도 곧 당도할 것입니다.”

담영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완안가의 마인들로 보이는 혈승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었다.

“아니. 전면전이 벌어지기 전에 본교와 사천회의 전장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 화인현 안쪽은 본 교가, 그리고 이곳 마을 외곽은 사천회가 맡을 것이니라.”

무림의 집단전은 대부분 백병전이다.

관군처럼 기병, 창병, 방패병, 궁병 등으로 구성된 병과가 없기 때문이었다.

간단한 전략 정도는 사용하나 군략을 써야 할 정도로 집단전에 능숙하지 않기에 전장은 대부분 합격진을 중심으로 한 난전으로 흘러갔다.

이번 역시 크게 다르지 않기에 적사결은 동맹군의 전장을 분리한 것이었다.

연맹체와는 달리 단합된 천마신교의 난전은 천하 사대세력 중 최강이었으니까.

“교주님은 어찌하실 것입니까?”

“본좌는 여기서 사천회를 맞이해야지.”

“여기서 말입니까?”

“걱정 마라. 완안 장로가 빠졌으니 저들 중 누구도 본좌에게 가까이 올 수 없을 것이니.”

비취색 호신강기를 두른 적사결.

그가 딛고 선 주변은 시커멓게 변색되어 있었다.

담영은 그것을 일견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명을 받들었다.

수하들이 떠나가자 적사결은 기운을 더욱 끌어올렸다.

심장의 독기는 전신을 휘돌고, 뜨거워진 몸의 열기에 증발되며 독연이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곧이어 반경 십 장이 새카만 재를 뿌린 것처럼 변해 갔다.

독연이 안개가 되어 자욱이 퍼진 것이었다.

완안가의 혈승들은 적사결의 코앞까지 와서도 그를 어쩌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았다.

그들로서는 전신을 호신강기로 두른 채 독기를 뚫고 들어갈 실력이 안 되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가자! 저놈들을 때려죽이면 이년도 여기서 나오겠지!”

한 마인의 외침에 동조했는지 그들은 화인현을 향해 움직였다.

적사결은 느긋하게 독기의 안락함을 만끽하며 전방을 주시했다.

그렇게 한 식경이나 흘렀을까.

드디어 기다리던 사천회의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사천회의 세 부대 중 첫 번째, 바로 암룡신존 당백산이 이끄는 부대였다.

“자네…… 그거 어떻게 한 건가?”

당백산은 독안개 속에 위치한 적사결을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 눈에 그가 심장의 독기를 사용했음을 알아챈 것이었다.

“신존께서 알려 주셨잖소. 심장의 독기를 뜻대로 활용하는 것이 독공이라고.”

“그걸 알았다고 독공을 홀로 깨우쳐?”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본좌가 익히지 못할 리 없지. 방법이 없으면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소?”

“……말도 안 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선천적이라면 모를까 후천적 독인이 저렇듯 자연스럽게 독을 짜내 쓰다니.

자신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자, 신존. 그런 것보다 앞으로의 전황에 대해 알려 줄 것이 있소.”

적사결은 독기를 거두고 역천환시대진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당백산은 사천회가 화인현까지 혈교의 세 부대를 유인해야 한다는 전언 하나만 듣고 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진법에 대한 얘기를 들은 당백산이 되물었다.

“정말 진법의 영향 아래 모든 생명체의 사고가 정지한단 말인가? 노부마저?”

“물론이오. 천하 십대고수가 아니라 천하제일인이라도 예외는 아니오.”

“……허!”

단순히 오감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는 기능 자체를 막아 버린다니.

그것도 신체의 통제력이 극에 다다른 절대 고수를 포함할 정도로.

참으로 상식을 벗어나는 진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드리는 것이니 이것 잘 지니고 있으시오.”

적사결이 품에서 꺼내 건넨 것은 주먹만 한 금덩어리였다.

구형으로 생겼고 표면에는 각종 진언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걸 지니고 있으면 진법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오. 일종의 피진주(避陳珠)라고 생각하면 될 거요.”

“정말 이런 걸로 그 대단한 진법이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단 말인가?”

“그게 일종의 움직이는 진축의 역할을 한다하오. 나도 구체적인 원리는 모르지만 믿어 보시오. 진법을 고안한 당사자가 준 것이니.”

“하면 몇 개 더 주지 그러는가?”

“남은 건 내 몫이오.”

만들어진 피진주는 총 세 개.

그중 두 개를 적사결이 챙긴 것이었다.

“하면 나와 자네가 할 일이 뭔가?”

“하나밖에 더 있겠소. 무허 그 노괴를 잡는 것이지.”

놈의 소재가 아직 파악되지 않았기에 진법이 펼쳐진 후 놈이 도착할 것을 대비한 것이다.

아무리 신마결을 익혀 절대지경 이상의 경지에 올랐다지만 자신과 당백산.

천하 십대고수 두 사람의 연수합격이라면 잡을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었다.

“아직 어디 있는지 모르는가?”

“숭산을 벗어난 후 종적이 묘연해졌다하오.”

“참 여러모로 대단한 양반이군. 어쩌다가 소림의 고승이 그리되었는지, 원. 쯧쯧.”

적사결은 대꾸하지 않은 채 사천회에 이어 나타난 상관가의 혈승들을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침을 질질 흘리는 것이 앞서 두 부대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건 그렇고 저 녀석들은 상태가 좀 이상하군. 중독시킨 겁니까?”

“광혼산이라고 중독되면 금단증상이 강하게 일어나는 독이네. 특히 이 천향초의 냄새를 맡으면 환장하지. 흐흐흐.”

당백산은 천향초의 잎을 하나 들고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는 그것 하나로 혈승들을 유인해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해약은?”

“필요 없네. 시간이 지나면 자연 해독되거든.”

그때였다.

좌측과 우측에서 사천회의 깃발을 단 부대들이 나타났다.

“오, 청해운가와 운남양가로군. 한데 왜 이렇게 빨리 왔지. 우리보다 일다경은 더 걸릴 것이라 들었는데.”

당백산이 눈을 가늘게 좁히고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청해운가와 운남양가는 사천육대가 중 사천당가 다음으로 세력이 큰 가문들이다.

그들이 혈교의 나머지 두 부대를 유인해 오는 중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들은 핼쑥한 얼굴을 한 채 도망치듯 달려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적사결은 삼지안으로 강화된 시력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불현듯 욕지거리를 했다.

“왜 그러는가?”

“놈이 나타났소.”

“음?”

“무허 말이오!”

그 말과 동시에 청해운가와 운남양가의 뒤편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한 눈에 보기에도 막대한 경력이 터져 나간 충격파.

좌우측 양 부대는 혈천지옥대에 의해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타난 해골염주의 괴인.

무허는 산등성에 자리하며 앙천광소했다.

“크하하하하. 사천의 버러지들이 알아서 나와주니 이 얼마나 좋은가! 내 오늘 북무림의 떨거지들과 네놈들까지 깡그리 잡아 죽여주마!”

그 모습에 당백산은 어이가 없는지 몇 번이나 눈을 깜박이고는 적사결에게 물었다.

“이보게. 저거 미쳐도 단단히 미친 거 같은데?”

“그러게나 말이오. 다른 녀석들 정도인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닌 모양이오.”

진화천은 얼마나 곱게 미쳤던가.

대충 그 정도 수준일 거라 생각했던 것이 무안해질 정도였다.

개또라이 같으니.

“이보시오, 무허대사. 스스로가 누군지, 인지는 하고 있는 것이오?”

당백산의 물음에 무허는 절그럭거리는 염주 소리를 흘리며 더 앞으로 다가왔다.

“늙은이가 눈이 침침한가보군. 자, 자세히 보거라. 본좌가 바로 혈교의 지존이시다. 위대하신 혈마를 영접하니 쉬이 믿기지 않는 것이냐? 흐흐흐.”

“허어, 모른 척하는 것이오? 아니면 정말 모르는 것이오?”

“이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느냐! 내 관심법으로 보아하니 네놈 머릿속에 마구니가 그득하구나.”

“……허허. 허허. 허.”

다른 걸 떠나 그 무위만큼은 존경했던 인물이 이런 꼴이라니.

당백산은 자신이 천하제일인이라 여겼던 인물의 몰락에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무허. 그 잘난 관심법으로 본좌도 한 번 봐 주지그래? 본좌가 누군지 알겠나?”

적사결이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어린 계집이 가엽게도 광증을 앓는 모양이구나. 쯧쯧. 이리오거라. 내 너의 골통을 부숴 그 가여운 삶을 끝내주마. 피의 윤회를 거치면 너도 온전한 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니라.”

“…… 도대체 너를 어떻게 패죽이면 이 가슴속 한이 달래질지 모르겠다. 이 개 같은 새끼야!”

쿠르르릉.

부러질 듯 어금니를 악문 적사결의 온몸에서 비취색 기운이 한 번에 터져 나왔다.

녹광이 흐르는 안광은 진득한 살기까지 머금고 있었다.

“흐흐, 얼굴도 반반한 계집이 실력도 제법이구나. 어떠냐? 본교의 혈후 자리를 내어 줄 테니 함께 새 시대를 열어 보지 않겠느냐?”

아,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개자식이다.

하다하다 자신을 반려자로 삼으려 하다니.

“좆까!”

단호한 거절과 함께 경력이 발출.

하나 그 대상은 무허가 아닌 하늘을 향해 강기가 쏘아져 올랐다.

녹광을 띠는 빛줄기는 구름을 뚫고 나아갔고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   *   *

“묘 선생님. 사부님께서 신호를 주셨습니다!”

남운적이 하늘로 쏘아 올려진 녹색의 빛줄기를 보며 외쳤다.

“드디어 때가 되었구나. 준비하거라.”

묘 선생의 말에 남운적은 역천환시대진의 가장 핵심이 되는 진축.

사방으로 알아볼 수 없는 진언과 도형으로 빽빽하게 새겨진 원형의 진 가운데 섰다.

“잊지 말거라.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십 방에서 혼원에 이르는 역순으로 진행해야 문제없이 진이 구현될 것이야.”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확실히 숙지했습니다.”

남운적은 긴 숨을 뱉어 내고는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바닥에서 열 개의 흙기둥이 기음을 내며 허리 높이까지 올라왔다.

그것들은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사방과 동북, 동남, 서북, 서남의 사유, 그리 상과 하. 총 십방을 상징하고 있었다.

‘사왕. 다음은 구궁이다.’

-알았다. 구성에 팔괘와 중앙의 조합이라 했었지?

‘구성의 배치도 역순이다. 구자, 팔백, 칠적, 육백, 오황, 사록, 삼벽, 이흑, 일백 순으로. 팔괘도 마찬가지고.’

-끄응. 정말 엄청나게 복잡하군.

‘실수하면 안 돼. 잘못하면 사람들이 백치가 된다고 하셨어.’

-알았다.

공간, 즉 진법의 규모와 틀을 상징하는 십방과 달리 구궁부터는 복잡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말이 역순이지 사왕은 지기의 배치에 갖은 노력을 다하는 중이었다.

그 증거로 구성과 팔괘, 중앙을 상징하는 열여덟 개의 기둥이 오르락내리락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이어서 칠성, 육합, 오행, 사상, 삼재, 태극까지 일사천리.

시간이 지날수록 사왕의 계산은 빨라지고 기운을 조절하고 배치하는 데 능숙해져 갔다.

그리고 마지막.

혼원을 상징하는 흙기둥이 기음을 내며 올라왔다.

“묘 선생님.”

시선을 돌리며 묻는 듯한 말에 묘 선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운적은 망설이지 않고 흙기둥 위 진언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러자 백색의 광휘가 온 세상을 밝힐 듯 뻗어 나왔다.

파아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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