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91화>
천마신교는 화인현 자체를 전장으로 삼았다.
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마을의 건물을 일종의 방벽으로 삼은 것이었다.
마을의 대로와 소로 곳곳에 방진을 배치하자 화인현은 하나의 성채처럼 탈바꿈할 수 있었다.
“교주님. 탈마동의 인사들 중 주의해야 할 자들은 광마겸 초혼과 극신도마 선우강입니다. 속하가 광마겸을 상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적사결에게 관패가 자신의 의견을 건넸다.
“관 장로. 그대는 내상을 입었잖은가.”
“요상단을 복용한 덕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쯧쯧, 본좌의 눈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은가. 흰소리 말고 본좌에게 맡기도록 해.”
“이 늙은이를 생각해 주시는 것은 감읍할 따름이오나 그들은 과거 전성기 이상의 무위를 지닌 상황입니다. 더구나 무허, 그 흉적도 있지 않습니까.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적사결이 초반부터 힘을 소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관패는 무허가 나타나기 전에는 최대한 내공을 아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거참, 구양 장로도 그렇고 자네도 그렇고 어찌 그리 고집불통이지? 교주직을 내려놓았다고 이젠 명령도 듣지 않겠다 이건가?”
“아,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오라…….”
“아니면 얌전히 후방에서 지휘를 맡도록 하게. 그 두 사람은 본좌가 맡을 테니까.”
적사결은 팔짱을 풀고 전각 위에서 뛰어내렸다.
마을 어귀에서는 붉은색의 무언가가 점점이 나타나고 있었다.
“교주님!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죽어도 이 늙은이가 먼저 죽을 것입니다!”
관패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외쳤다.
“거참,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지휘소로 가기나 하게.”
적사결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하고는 전면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독공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 홀로 마을 밖으로 향한 것이었다.
아군이라도 자신의 독기를 접하면 중독될 테니까.
파아아앗.
삼지안이 떠오르며 전신이 뿌득거리며 기음을 냈다. 잠재 근력으로 외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이어서 손톱이 뾰족하게 자라나고 비취색으로 물들어갔다.
‘그 녀석 손톱이 이런 형태였었나? 가물가물하군.’
십이사령의 일인이었던 녹령.
과거 용독술만으로 사물을 녹일 정도의 극독을 사용했던 놈이었다.
적사결은 지금껏 겪어 본 가장 강한 독술사였던 녹령의 무공을 떠올려 손톱에 독기를 집중한 것이었다.
무공은 조법.
그것은 당연히 백혈귀마 진화천의 독문 무공인 귀혼탈명조였다.
물론 그에게서 무공의 기초를 배웠을 뿐 정식으로 귀혼탈명조를 전수받지 못했다.
하나 일 년이란 시간 동안 지근거리에서 그의 무공을 견식했던 자신이었다.
‘귀마 덕분에 조법이 나와 가장 맞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 훗.’
광혈수라공에 조법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였다.
조법의 달인이 혹평에, 욕에 온갖 타박을 해 댔으니 어린 시절 그 기억이 상처로 남은 것이었다.
물론 정말로 재능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후우우우.”
차가운 공기에 더운 입김이 흘러나왔다.
혹한에 접어들었기에 독의 효력이 약해지는 시기이나 독인에게는 상관없는 듯 입김 자체도 비취색을 띠고 있었다.
그야말로 온몸으로 독을 내뿜고 있었다.
뿌드득.
손가락을 살짝 움켜쥐자 발생한 뼛소리.
적사결은 붉은 물결이 다가오는 방향으로 오른손을 힘차게 그어 올렸다.
최대한 죽이지 않으려 하나 첫 격돌은 기선 제압으로 살수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뒤편으로는 허름한 마을을 방패막이 삼은 가련한 교도들이 있었으니까.
쫘아아아아악. 치이이이.
비취색 조강에 토막 난 시체들이 허공에서 흩어지며 독연을 발생시켰다.
그러자 그 연기를 맡은 혈교도들은 비틀거리며 이내 쓰러지기 시작했다.
시체 조각 하나하나가 독기를 내뿜는 독연탄이나 마찬가지였다.
휙. 휘휙.
동료들이 쓰러져도 진격은 멈추지 않았다.
공격에 영향을 받지 않은 혈교도들은 적사결을 지나쳐 화인현으로 돌격했다.
그렇게 화산의 입구라 불렸던 작은 현에서 전초전이 시작되었다.
후우웅. 촤좌좌좍.
한 마리 맹수처럼 기동하는 적사결의 움직임은 눈부셨다.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필요도 없고 요혈을 노릴 이유도 없었다.
단지 손톱으로 훑고 지나가면 그것으로 끝.
혈교도들은 긁힌 상처만으로도 거품을 물로 정신을 잃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적들을 눕히고 또 눕히는 것이었다.
“독이 무한정일 리 없다! 죽여라!”
혈교도들은 불속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달려들었다.
사방에서 공격하는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전사들이었다.
“본좌의 손속이 매섭다 탓하지 말거라!”
적사결은 그에 호응해 투지가 불타올랐다.
자신의 옛 수하들을 죽이는 자리이나 치열한 전장이야말로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 주는 것만 같았다.
“후우우웁.”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적사결의 가슴이 팽팽해졌다.
그러고는 한 바퀴 회전하며 숨결을 뱉었다.
후와아아아악.
비취색 입김이 뿜어져 나가며 혈교도들을 쓸어버렸다.
치사량은 아니나 그들 모두를 일시에 마비시킬 수 있는 정도였다.
스르륵.
품속에서 적혈검을 꺼낸 적사결의 손이 격혈경혼의 투로를 따라 움직였다.
그러자 검첨에서 검기 다발이 쏟아져 나가며 주변에 모인 혈교도들의 어깨를 뚫어 버렸다.
물론 상처로부터 녹액을 쏟는 그들은 중독되어 혼절할 수밖에 없었다.
“독인이라. 계집, 당가인인가?”
모습을 드러낸 거한의 물음이었다.
두 자루의 거대한 도를 패용한 그는 산악과 같은 기도를 발하고 있었다.
“극신도마 선우강.”
“허어, 노부를 아는 모양이군. 내 강호에 모습을 드러낸 지 오랜데 어린 여아가 식견이 제법 뛰어나구나.”
“……하아.”
이런 애송이 취급이라니.
특히나 이 몸에 들어오고 나서는 계속해서 저런 대우를 받고 있다.
불현듯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광마겸은 어디 있지?”
물음이 있자마자 갑자기 우측에서 혈의인이 짓쳐 들었다.
적사결의 이목도 속인 은밀한 암습이었다.
쩌저저저정. 쩌저정.
이어지는 폭풍 같은 공세.
근접전에서 두 자루 낫이 펼치는 공세는 쾌속하되 변칙적이고 또한 패도적이었다.
적사결은 당황하지 않고 적혈검을 좌우로 번갈아 쥐며 곡예와 같은 방어를 펼쳤다.
마치 한 자루 단검을 두 자루처럼 사용하는 광경에 선우강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저런 년이 다 있단 말인가. 초혼을 상대로 저런 말도 안 되는 짓이라니.’
광마겸의 투로를 완전히 꿰뚫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기예.
선우강은 자신은 물론 진화천이라도 저렇듯 초혼을 가지고 노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한 수…… 아니 최소 두, 세 수 이상의 고수다. 저렇게 어린년이 어찌…….’
선우강은 곧 살기 어린 안광을 발하며 두 자루 거도를 빼 들었다.
그러고는 도의 손잡이 끝, 도두를 맞대며 비틀었다.
그러자 ‘끼릭’하는 소리와 함께 두 개의 도가 결합되었다.
터엉. 쇄애액.
진각을 밟으며 궁신탄영의 수법으로 쏘아져 나가는 선우강.
그는 도를 풍차처럼 돌리며 내리쳤다.
광풍극렬참의 공격 범위에는 적사결뿐만 아니라 초혼도 있었다.
선우강은 둘 모두를 베어 버릴 요량으로 초식을 펼친 것이었다.
‘아주 물불 가리지 않는구나.’
적사결은 선우강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기에 그의 의도 역시 알아챘다.
하나 초혼은 핏발 선 눈으로 공격에 전념하느라 아직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의 공세는 목을 베어 오는 왼손의 낫, 그리고 다리를 찍어 내리는 오른손 낫의 하단 공격이었다.
적사결은 초혼의 왼팔을 팔꿈치부터 베어 버리고 뒤로 신형을 날렸다.
하나 오른손의 낫이 왼쪽 허벅지를 찍은 채였다.
주우욱.
찍힌 자리를 그 자리에 둔 채 늘어나는 허벅지.
초혼은 황당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고 그제야 그 앞에 자리한 선우강의 공세가 눈에 들어왔다.
“으아아악!”
광풍극렬참에 상반신이 갈려 버린 초혼은 비명을 남긴 채 절명해 버렸다.
적사결은 허벅지를 줄인 후 낫을 빼 내었고 그 즉시 상처는 감쪽같이 회복되었다.
“괴물 같은 년!”
선우강은 이를 바드득 갈며 소리쳤다.
초혼을 희생양으로 삼아 살수를 펼친 것인데 상대는 괴의한 사술로 손쉽게 빠져나간 것이었다.
“괴물이 된 건 당신이지, 극신도마. 선우환이 지금의 당신 모습을 보면 피눈물을 흘리겠군.”
“선우환? 아, 그 갓난쟁이 후손 말이로군. 미숙아로 태어난 그 아이가 아직 살아 있었나?”
“살아 있다 뿐인가 지금은 선우가의 당대 가주를 맡고 있지.”
“큭큭, 그 약하디 약한 아이가 가주라? 역시 본교를 배반할 만하군. 혈교도로 살아가기엔 너무도 나약하니 도망친 것이었겠지. 내 네년을 죽인 후 나약해진 선우가의 피를 내손으로 직접 거둘 것이다!”
선우강의 눈에서 혈광이 이글거렸다.
그는 진심으로 가문을 몰살시킬 생각으로 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선우가를 칠대마가에 올려놓은 당사자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쯧.”
과거의 기억. 즉, 선우환을 거론하면 진화천처럼 흔들릴 것이라 생각했으나 예상이 틀린 것이다.
아마 그가 탈마동에 들어갈 당시 선우환이 갓 태어난 아기였기에 추억이 깊지 않은 탓인지도 몰랐다.
“당가의 계집년이 어찌 그걸 아는지 모르나 남의 집안일에는 참견하는 것이 아니지. 그것이 계집이라면 더더욱 말이야. 크큭.”
선우강은 도를 한 바퀴 회전시킨 후 기수식을 취했다.
그 가벼운 휘두름에 강한 바람이 일며 흙먼지가 사방으로 쓸려 나갔다.
“누가 꼬장꼬장한 늙은이 아니랄까, 꼰대 같은 말이라니. 그리고 계속 계집, 계집거리는데 말이야. 본좌는 당신에게 계집년 소리를 들을 인물이 아니란 말이다!”
쓰아아앙.
적혈검에서 일장은 됨직한 검강이 쑥 뽑혀 나왔다.
길이만으로는 거도 두 개를 합쳐 놓은 선우강의 것과 비등할 정도였다.
꽈아아아앙.
검과 도를 맞댄 적사결과 선우강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위력 참 징글징글하게 약하네, 진짜.’
그나마 선수를 쳐서 선우강의 호흡을 빼앗았기에 이 정도.
그렇지 않았다면 진즉에 튕겨나갔을 터였다.
휘리릭. 콰가가가가가각.
부족한 위력을 속도로 보완하기 위한 연계 공격이 퍼부어졌다.
광극경천의 섬광 같은 지르기는 번쩍이는 빛살과도 같았다.
선우강은 거대한 도로 전면을 막으며 방어를 펼치고 있었다.
하나 적사결은 그의 내부에 움직이는 운기의 방향을 토씨하나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결국.
퍼퍼퍼퍼퍽.
뱀처럼 휘어지며 방어의 틈을 파고든 공세.
다섯 방의 칼침을 허용한 선우강은 중독에 의한 검은 피를 토하며 앞으로 쓰러졌다.
삼지안과 독공은 극신도마라는 초고수조차 허무하게 침몰시켜 버린 것이었다.
“끄르륵. 끄륵.”
장대한 체구 덕분인지 쓰러진 선우강은 곧장 의식을 잃지 않고 물가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꿈틀거렸다.
하나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흐려지는 의식은 그를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선우강. 전전대의 거마에 대한 예우이니 그만 마로 돌아가라. 그만하면 오래 살았지 않은가.”
적사결은 무심한 눈길을 날리고는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두 번째 부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 담영을 비롯한 수라혈검대가 이끄는 천마신교의 본대. 그리고 그들을 뒤쫓는 완안가의 혈교도였다.
* * *
“다섯 중 두 번째 무리입니다, 맹주.”
개방의 장로, 발천개가 새롭게 나타난 부대를 보며 말했다.
“하면 이제 세 무리만 도착하면 사천회와 천마신교, 그리고 혈교놈들이 모두 화인현에 모이는 것인가?”
종리천은 근엄하게 수염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슬슬 준비하시면 될 것입니다.”
“놈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조금씩 그리고 단단하게 포위망을 짜서 좁혀 들어가야 하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두 명령이 하달되기만 기다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면 시작하게. 이번 전쟁으로 저놈들을 모두 쓸어버릴 것이니.”
종리천의 명에 발천개가 손을 어깨 위로 들었다.
그러자 뒤편에 위치한 각 문파의 깃발이 거대한 뱀처럼 행렬을 이으며 숲 속으로 이동했다.
종리세가, 백리세가, 단목세가, 독고세가, 서문세가를 비롯한 무가부터 화산파, 무당파 외 도가문파와 각계의 속가 문파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연맹이라는 이름처럼 각양각색의 복장을 입은 그들은 화인현으로부터 오 리의 거리를 두고 천라지망을 펼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