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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189화 (189/206)

<기적의 이혼대법 189화>

*   *   *

“자, 다들 앉게.”

적사결은 맞은편의 자리를 가리키며 상석에 앉았다.

그의 앞에 선 두 사람, 구양패와 관패는 옷에 묻은 먼지를 툴툴 털고는 나란히 자리했다.

“오늘로써 삼십 전 십오 승 십사 패라…… 이제는 그 날 그 날의 몸 상태에 따라 승부가 결정지어질 정도가 되었군그래.”

적사결이 두 사람의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과연 교주님이십니다. 저와 관 장로의 연수합격이 이토록 빨리 막힐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작 일 년 만에 저희들과 동수를 이루시다니. 지존께선 하늘이 내린 무골이신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구양패와 관패는 두 손으로 잔을 받들며 한 마디씩 말했다.

적사결은 그 잔을 부딪치며 피식 웃었다.

“이제 비등하지 않은가. 아직 한참 멀었지.”

“허허허, 역시. 그리 말하실 줄 알았습니다.”

“저희들도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일, 이 년 만에 패했다간 마도쌍패란 이름을 내세우고 다니지 못할 것 같으니까요. 하하하하.”

세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술을 마셨다.

한 차례 비무 후 마시는 술맛은 달콤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데 말이야. 아까 비무 중에 있었던 초식 있지 않은가.”

적사결이 술잔을 내려놓으며 운을 띄웠다.

“어느 초식 말씀이십니까?”

구양패가 남은 술잔을 비우고는 되물었다.

“왜 관 장로의 암천여운이 본좌의 극혈파천을 막자마자 구양 장로의 마령수라 일 초가 펼쳐졌지 않았는가.”

“아, 그때 지존께서 광극경천의 수법으로 되받아치신 것 말이군요.”

“그렇지. 그때부터 본좌가 승기를 잡았지 않은가.”

“……음. 되짚어 보니 그렇군요. 그때 반 초 차이로 밀린 것이 승부의 향방을 결정지었다 봐도 되겠습니다.”

“본좌는 그때가 분기점이라 생각했네. 그래서 그런데, 그때 구양 장로가 구유무계를 펼치고 관 장로의 흑운일섬이 펼쳐졌다면 결과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야.”

적사결의 복기에 관패가 무릎을 탁 쳤다.

“흑운일섬이 마령수라보다 초식이 단순하고 빠르니 승기를 놓치지 않았겠군요!”

“그러네. 딱, 한 호흡. 그 틈 덕분에 본좌는 광극경천을 펼칠 수 있었지.”

“허허허, 이거 교주님의 혜안에는 언제나 놀라는군요. 전황을 바라보는 시야는 확실히 탁월하십니다.”

“그뿐만이 아니네. 만일 말이야…….”

술을 채운 후 단숨에 마신 적사결은 입을 뗐다.

“관 장로가 좌수로 암천여운을 펼치고 우검으로 흑운일섬을, 그리고 구양 장로가 쌍수로 마령수라의 공세를 가했다면 본좌는 완벽하게 패배를 인정함은 물론 당분간 비무를 신청하지 않았을 걸세. 지금 당장 그 수를 당해 낼 방법은 없거든.”

“이거 과제를 내주시는 기분이군요, 껄껄껄.”

“본좌는 취불 그 망할 괴승을 넘어야 하니까. 그대들은 나에게 더 높은 벽이 되어 주어야만 해.”

“그리하겠습니다. 지존께서 더 높은 경지에 오르실 수 있도록 디딤돌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하하하.”

*   *   *

관패는 과거 천마신궁에서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진화천의 절초를 눈앞에 두고 어째서 회상이나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나 그 기억이 서랍 속에서 꺼내지듯 지금 머릿속에 맴돌았고 적사결 내주었던 과제를 되뇌었다.

호기롭게 대답했지만 그때 이후로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수법.

암천여운과 흑운일섬을 동시에 펼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느리게 펼치되 투로에 완벽을 기하는 암천여운과 쾌속함을 바탕으로 즉살을 목표로 하는 일격필살의 흑운일섬.

상반된 두 기예를 동시에 펼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관패 역시 수백 수천 번을 시도했지만 손발이 꼬이고 내상만 입었기에 지금까지 포기했던 수법이었다.

‘지금이라면.’

느려진 시간 속에서 관패는 자신의 신형이 조각조각 잘라 낸 그림처럼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솜털 하나의 움직임까지 생생한 초감각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관패가 선택한 것은 보법이었다.

일곱 번의 잔영을 남기는 독문 보법, 묵성칠보.

관패는 일 보부터 칠 보까지 나누어 암천여운과 흑운일섬을 동시에 펼쳤다.

평소라면 불가능하나 초식의 움직임을 그림처럼 조각내어 일곱 개로 나눈 후 다시 이은 것이었다.

그 작업은 그야말로 찰나였다.

꽈르르르릉.

진화천의 살신기와 관패의 융합된 초식이 맞부딪치며 뇌성이 울려 퍼졌다.

가까이 있던 자들은 고막에서 피가 흐르고 가슴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었다.

그만큼 두 초고수의 격돌은 경천동지할 수준이었다.

“네 무공과 마지막 초식. 이름이 무엇이냐?”

진화천이 양손을 아래로 떨구고 파리한 안색으로 물었다.

전신이 부들거리는 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마천검운공. 암운일여라 합니다.”

관패는 격돌의 여운이 남았는지 더운 김을 내뿜는 검을 늘어뜨린 채 말했다.

“허허, 마의 하늘에 뜬 검운이라. 어울리는 작명이로구나. 초식 역시 훌륭했다. 상반된 두 개의 초식을 식으로 나누어 일 초로 합치다니. 틀을 부순 모양이구나.”

“그걸 알아보시다니 선배께서는 역시 대단하시군요. 저 혼자만의 힘이 아닙니다. 지존께서 예전 저에게 내려 주신 과제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니까요.”

“허어, 안타깝구나. 같은 주군을 모시고 있음에도 이리 다른 길을 가야 하다니…….”

“휴우,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승부가 났으니 결정에 따르시지요.”

관패는 납검을 하며 긴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그제야 진화천은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보게. 저 친구들은 돌려보내 주게. 교도들을 이끌고 자네들 꽁무니를 따라가게 만들 사람은 필요하지 않겠나?”

“한 분이면 족하지 않겠습니까?”

“자네야말로 나 한 사람이면 미끼로 족하지 않겠나?”

진화천은 아까의 악귀 같은 모습은 어디갔는지 시골촌로 같은 얼굴로 대꾸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혈마열반결로 마성에 빠진 것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그리하십시오.”

“클클, 거 호탕해서 좋군.”

진화천은 선우강과 초혼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두말없이 본대가 있는 방향을 향해 사라졌다.

갑작스런 기습을 가했을 때처럼 귀신같은 신법이 아닐 수 없었다.

“일 조는 귀마님에게 금제를 가하고 불편하지 않도록 모시거라. 나머지 대원들은 막 대주를 살피도록 하고.”

관패의 명에 마검귀면대가 고개를 읍하며 존명이라는 한 마디로 절도 있는 모습을 보였다.

*   *   *

화인현.

적사결은 그곳에 찾아온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야공 당소평.

다시 만날 것은 알았으니 전쟁 후가 될 것이라 예상했기에 더 뜻밖이었다.

그가 적사결을 찾아온 것은 다마스커스 때문이었다.

운철 조각과 신진철을 건네며 합금강을 재현해 보라 주문했던 것.

그것을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완성시켰던 것이었다.

“이것이 노부가 만들어 낸 합금이오. 교주가 청한 대로 단검으로 만들긴 했는데 마음에 들지 모르겠소.”

당소평이 내민 단검은 보기에 섬뜩할 정도로 기분 나쁜 외형을 하고 있었다.

회흑색의 검신에 물결무늬 대신 핏줄처럼 돋아난 붉은 선이, 그렇게 기괴할 수가 없었다.

“마음에 쏙 드는군!”

적사결은 단검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감탄했다.

그 모습에 당연희가 입을 쩍 벌리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마음에 들어요? 딱 보기에도 귀신 들린 단검 같은데.”

“뭐 어때서 그러냐. 본좌는 멋있기만 한데.”

그런 적사결의 모습에 그녀는 고개를 휘젓고는 당소평에게 물었다.

“숙부님, 일부러 저렇게 만든 거예요? 저분 취향대로?”

“그럴 리가 있겠느냐. 나로서는 저 형태가 최선이었다. 어찌 어찌 배합에 성공하긴 했는데 ‘강철의 진명’이 이끄는 대로 따르니 저렇게 되더구나.”

당소평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앞에 놓은 차를 입으로 가져갔다.

“수고했소, 야공. 본좌는 아주 마음에 드오. 이름은 뭐라 지었소?”

“아직 짓지는 않았는데 적 교주의 이름을 따서 적혈검이라 부르면 어떻겠소?”

“흐음, 괜찮군.”

적사결은 고개를 끄덕인 후 제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남운적은 고개를 저었다.

“사부님, 역천환시대진과 관련해 아직 할 일이 있습니다. 사왕을 옮기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시지요.”

그 말에 묘 선생이 히죽 웃으며 거들었다.

“고놈, 말 한 번 잘했구나. 그렇소, 교주. 그 강산이라는 놈이 원체 까다로워서 나 혼자만으로는 버겁소. 조금만 더 빌립시다.”

“하면 아직 다 못 끝냈단 말이오?”

“아, 일거리 늘린 사람이 교주 아니오. 진법 곳곳에 이천 개나 되는 구멍을 뚫고 또 그게 진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만드는 게 쉬운 줄 아오?”

“핑계는, 쯧!”

적사결은 묘 선생을 향해 눈을 흘기고는 남운적에게 말을 이었다.

“하면 네가 조금 더 고생하거라. 그리고 사왕이 여기로 옮겨 갈 수 있는지 확인 좀 해 보고.”

“예.”

남운적은 찰나간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가능하다고 합니다. 본래 봉인되어 있던 다마스커스와는 조금 다르지만 영체가 거하는 데는 문제없다고 하네요.”

“다행이구나. 일단 전쟁이 곧 시작될 테니 적혈검은 본좌가 보관하고 있으마. 전쟁이 끝나는 대로 전이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거라.”

“예, 사부님.”

적사결은 적혈검을 품속에 넣었다.

그때 당소평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한데 교주. 그 소식 들었소?”

“무슨 소식 말이오?”

“그때 그대들이 향한 술도가 말이오. 거기서 난리가 났었소.”

다마스커스를 운철과 신진철로 분리했던 당시.

야공은 객잔에 남아 합금강의 재현에 몰두했고 적사결을 비롯한 일행들은 노백의 술도가로 향했었다.

그 이후 있었던 일에 대해 야공이 운을 띄운 것이었다.

“난리라니!? 무슨 난리란 말이오!”

적사결은 다급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반선주를 만드는 중이었던 노백과 그걸 기다리는 염마천에게 변고라도 생겼단 말인가.

그의 심장이 다시없을 만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내 화영문을 통해 알아보니 그곳이 하오문의 거점 중 한 곳이라 하더군. 놀랍게도 그곳에 사무련의 호법가인 철혈철가의 정예들도 있었고 말이오.”

“난리가 무엇인지나 먼저 말하시오.”

적사결의 재촉에 당소평은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아, 알았소. 그곳에서 혈사가 있었다하오. 철혈척살대와 사무련의 대호법인 철혈권이 죽었고 술도가의 사람들도 모두 몰살당했다 들었소.”

쿵.

적사결은 핼쑥해진 얼굴로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여, 염마천은. 아니 그곳에 있던 마인에 대한 정보는 없소?”

“그곳에서 발견한 시체 중에 마인이 있었다는 내용은 없었소.”

휴우,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나 염마천이 무사히 자리를 피한 것인지 납치라도 당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다른 장소에서 피살된 것인지 모르는 이상 긴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흉수가 누구인 것이오?”

“목격자가 없어 아직 밝혀진 바 없소. 다만 화영문의 말에 따르면 장사에 창궁비연대가 입성했었다 하오. 정사대전 중이니 이상할 것은 없으나 그 수가 많아 정황이 의심스럽다는 화영문의 분석이 있었소.”

“얼마나 많기에 그렇게 추정하는 것이오?”

“화영문의 정보망에 걸린 자들만 알려진 창궁비연대의 절반 정도라 들었소.”

“통상적인 계산으로 따지면 전원이라는 말이로군. 남궁세가…… 이 개새끼들이…….”

적사결의 살기 어린 눈빛에 당소평은 간담이 서늘할 정도였다.

조카의 외모를 하고 있음에도 그는 천마신교의 교주가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잠깐이나마 엿본 것만 같았다.

‘한데 철비환 그놈을 상대할 인물이 남궁세가에 있었나?’

창궁비연대만으로는 그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의문이 들었다.

그는 어중이떠중이에게 당할 정도로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백천악에게 가려져 있지만 철비환은 천하 십대고수에 못지않은 극강의 무인이라 할 수 있었다.

‘설마 남궁건? 그 자식이 벌써 몸을 회복한 건가?’

반폐인으로 만들어 놓았기에 영약을 들이붓더라도 족히 십 년은 요양해야 할 중상이었다.

하나 남궁가에서 그 일을 가능케 할 인물은 창궁검제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 씨부럴 놈이 목숨만은 살려 줬더니 다 된 밥에 초를 쳐!’

죽었다고 복창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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