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185화 (185/206)

<기적의 이혼대법 185화>

폭풍전야였을까.

유난히 조용했던 그날에 날아든 첩보에 의천맹과 적사결 측 진영은 기함을 토했다.

-혈마의 급습으로 인한 소림 멸문.

태산북두라 불렸던 정파의 대들보가 불탔다는 소식에 의천맹은 사기가 급전직하했고, 생각지도 못한 행보에 적사결 측은 어안이 벙벙했다.

“무허, 이 새끼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이야!”

언제나 예상을 벗어난다.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지만 사문을 불바다로 만들다니!

가족이 따로 있는 속가제자도 아니고 소림의 기대주로 자라 법명까지 받은 놈이!

자신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버린 행동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천륜을 저버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래서 소림의 생존자는?”

“십계승만 가까스로 살아남아 이곳으로 오고 있다 합니다. 무승은 물론 학승까지 모두 살해당했으며 전각 대부분이 소실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쫄딱 망했군.”

그나마 절정 고수급인 십계승이 살아남았지만 고작 열 명이다.

비록 속가문파가 건재하다지만 본산이 힘이 없다면 속가도 더 이상 고분고분한 속가로 남을 리 없다.

정파라지만 결국 무림은 약육강식이니까.

“당연희.”

“네.”

“저번처럼 한 번 해 봐.”

“네? 저번처럼? 설마 무허대사의 제자 행세를 하라고요?”

“그래. 이대로 놔두면 소림의 속가문파들은 갈기갈기 찢어져서 의천맹에 속한 각 문파들로 흡수될 거다. 그리되면 녀석들의 단합만 잘될 뿐이지. 네가 구심점이 되어 주면 흩어지지 못할 것이야.”

“싫은데…….”

“싫어도 해. 맹추들이 네 신분을 그리 알고 있으니 나서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테고 점점 의심하게 될 거다.”

“휴, 알았어요.”

그녀는 체념한 채 의자에 깊숙이 몸을 뉘였다.

적사결은 묘 선생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선생. 진법의 규모는 십 리에서 변동 없겠소?”

“화인현 중앙에 위치한 우물을 기준으로 반경 십 리 딱 맞출 거요. 한 치의 오차도 없을 테니 믿으시구려.”

“맹추놈들에게는 오 리라고 확실히 얘기했소?”

“시키는 대로 했소. 한데 좀 의심하는 눈치던데.”

“어떤 면에서 말이오?”

“정말 오 리나 되는 규모로 진을 구성할 수 있는지 거듭해서 묻더이다. 무슨 의심들이 그리 많은지, 쯧!”

적사결은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흐흐, 실제로는 반경 십 리라는 걸 알면 기절초풍하겠군. 행여 기문진에 식견이 있는 놈들이 눈치 챌 염려는 없겠소?”

“저어어언혀 없소. 일, 이 리 규모도 아니고 십 리짜리 초거대절진이오. 이 정도 규모는 진을 구축하는 당사자들 아니면 대진법가라도 알 수 없을 거요.”

“좋소, 하면 끝까지 잘 부탁하오. 감히 본 교의 뒤통수를 치려는 놈들이니 역으로 대갈통을 박살 내 줘야지. 흐흐흐.”

뭐? 일망타진? 내가 할 말이다.

“강산.”

“예, 교주님.”

절도 있게 읍하며 대답하는 강산.

그는 담영이 이끄는 부대에서 별도로 움직여 먼저 도착한 것이었다.

적사결의 부름을 받아.

“반경 십 리. 가능하겠느냐?”

반경. 즉, 진법의 끝과 끝이 이십 리라는 말이었다.

“저 혼자라면 불가능하지만 지존께서 맡겨 주신 대원들이 있으니 가능할 것입니다.”

“다들 궁술에 익숙해졌나 보구나.”

“배우는 것이 빠르다 보니 지금은 제 눈 역할을 충분히 맡길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다 지존께서 안배해 주신 덕분 아니겠습니까.”

새롭게 편성된 강산 휘하의 궁수대.

그들은 전장에서 실전으로 궁술을 익혔고, 그 모든 것은 강산의 눈을 대신하기 위함이었다.

십 리라는 거리는 천리경을 쓰더라도 시야가 미치지 못하니 이천 개의 눈을 동원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이 진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이천 개의 은신처는 별도로 마련되어질 예정이었다.

“교주, 얘기 끝났으면 이 친구 데려가겠소. 자리 배치하려면 이 친구 조언이 필요하니까.”

묘 선생이 강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리하시오. 강산, 저격에 필요한 자리면 나무꼭대기든 절벽이든 가리지 말고 선생에게 요구하거라. 십 리 안에서 본좌가 원하는 놈은 누구든 죽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 두 사람의 얘기를 들은 묘 선생이 이를 바드득 갈았다.

‘시부럴, 뭐? 나무꼭대기? 절벽? 하여튼 일거리 늘리는 건 천하제일이라니까.’

*   *   *

이틀 후.

십계승은 눈앞에 자리한 사내를 향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녹옥불장을 지닌 보리연화공의 계승자라니.

무허 사백이 몰래 후인을 두었다는 것은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아니, 다들 어찌 그런 얼굴이시오?”

양쪽을 소개해 준 종리천이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음에도 그가 이러는 것은 당연희의 신분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타인이 알 수 없는 부분을 소림 제자라면 잡아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의심이 많다더니 정말이네. 능구렁이 같으니.’

당연희는 종리천을 슬쩍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포권을 하며 십계승에게 고개를 숙였다.

“적운이라 합니다. 무허대사께 사사받았고 얼마 전에야 제가 소림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나마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신을 소개함에도 십계승은 불편한 기색이었다.

결국 공문이 나서 종리천에게 말했다.

“맹주. 잠시 자리를 피해 주시겠습니까? 저희들끼리 얘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알겠소. 하면 편히 얘기 나누시도록 하시오.”

종리천이 밖으로 나서자 내실에는 십계승과 당연희만 남게 되었다.

그러자 분위기가 이전보다 더 거칠어졌다.

“소협도 알겠지만 ‘파계승 무허’에 대한 본파의 입장이 있는지라 그대에게 호의적일 수 없네.”

“이해합니다. 파문 결정이 내려졌다지요.”

“그렇다네. 그리고 자네에 대해 한 가지 확인할 것이 있는데 좌측쇄골을 좀 보여 주겠는가?”

“예? 쇄골이라니요?”

그녀는 무의식중에 앞섶을 여미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오, 오해하지 마시게. 단지 쇄골 아래 점이 있는지 확인만 하면 되니.”

“휴, 이유는 모르겠으나 왼쪽 쇄골이라 하셨지요?”

“맞네. 잠깐만 보여 주면 되네.”

당연희는 짧은 한숨을 쉬며 앞섶을 젖혔다.

드러난 쇄골은 위아래로 점 하나 없이 깨끗했다.

지난 밤, 적사결이 이미 점의 위치를 옮겨 놓았기 때문이었다.

“없군.”

“없네.”

“휴우…….”

“다행이군.”

십계승은 저마다 안도의 한 숨을 쉬며 한 마디씩 내뱉었다.

눈앞의 사내가 무허 본인이 아님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미안하네. 무례를 용서하시게. 우리로서는 꼭 확인을 했어야 했으니…….”

“괜찮습니다. 이유가 있으셨겠지요.”

당연희는 알고도 모른 체하며 웃어넘겼다.

덕분에 의심의 눈초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자네의 사부, 그러니까 사백께선 어디 계신지 혹시 아는가?”

공문의 질문에 당연희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뵌 지 일 년이 넘어갑니다. 어느 날 인선을 통해 녹옥불장을 보내 온 것이 마지막 연락이었습니다.”

“휴우,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도 없고 말이야.”

“워낙 종잡을 수 없는 분이라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일단 이것부터 받으십시오.”

그녀는 두 손으로 녹옥불장을 받쳐 공문에게 건넸다.

“고맙네. 자네 덕분에 뜻하지 않게 본파의 신물을 되찾았군.”

“아닙니다. 저도 소림 무공을 익혔으니 남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본파에서 사백을 파문했음을 알면서…….”

“비록 사부님께서 소림 무공인 걸 숨긴 채 알려 주셨으나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소림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그래도 사백께서 자네라는 큰 선물을 남겨 주셨군. 아미타불…….”

공문은 반장을 하며 불호를 읊조렸다.

“힘내십시오. 비록 이번 일로 소림의 힘이 쇠해졌다지만 천 년의 역사가 아직 끊어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이네. 소림은 이 정도로 좌절할 정도로 나약한 문파가 아니니. 해서 그런데 자네가 우리 소림 제자들을 이끌어 주지 않겠나?”

“제가 말입니까? 저는 파계승의 제자입니다.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아니. 자네가 사백의 제자가 되었을 때 그분은 파계승이 아니었으니 문제 될 것 없네. 사백의 제자인 만큼 우리를 제외하고 남은 소림승 중에 자네보다 배분이 높은 이는 없으니 제격이지 않은가.”

“하면 저보다도 여러분께서 맡으시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당연희의 물음에 공문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계율원 소속이네. 특히 십계승은 동문들을 단죄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앉을 수 없네.”

“그것도 계율입니까?”

“계율이 아니라 계율원에 내려오는 관습이라 해야겠지.”

“하면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소림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합니다. 그럴 그릇도 안 되고 말입니다.”

당연희는 정중하게 거절의 의사를 내비쳤다.

하나 그 모습에 십계승의 생각은 더 확고해졌다.

“우리가 도와주겠네.”

“아는 것이 없는 것이 더 낫겠지. 새롭게 시작하는 마당에 자네라면 우리처럼 과거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으니까.”

“가왜변란의 영웅이라 불리는 자네가 그릇이 작다니. 천만에. 오히려 차고 넘치지.”

공문은 물론 공도와 공수까지 연이어 의견에 힘을 실어 주었다.

열 명의 소림승들은 한 마음 한 뜻이 된 것처럼 똑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 그러시다면 임시로 맡겠습니다. 차후에 정식으로 방장을 선출할 때까지 말입니다.”

“그리하게. 그 정도로도 좋으니.”

공문이 흐뭇한 미소로 세상 좋은 표정을 했다.

서슬 퍼런 계율원의 집행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얼굴이었다.

‘아, 이거 진짜 못할 짓이네…….’

시키니까 하고 있지만 그녀는 십계승의 얼굴을 보며 죄책감이 들었다.

나중에 적운이라는 존재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런 뒤통수가 없지 않겠는가.

소림이 멸문지화를 당한 마당에 이 일로 그들의 마음까지 꺾을 수도 있으니 영 찜찜한 그녀였다.

*   *   *

“저 못하겠어요!”

당연희는 돌아오자마자 불만을 토로했다.

시작은 잠시 동안 구심점이 되어 주려는 것이었으나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 보니 처지가 딱한 이들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자체가 죄스러웠던 것이었다.

특히나 그 대상이 승려였기에 더 그러했다.

“왜? 미안해서?”

“네.”

“뭐가 미안해? 녹옥불장도 돌려주고 그들에게 보리연화공의 전수자가 남아 있다는 희망도 주는 건데.”

“녹옥불장은 몰라도 제 존재 자체가 거짓이잖아요.”

“놈들은 모르잖아. 그리고 가만 놔두면 의천맹에 속한 놈들이 쪽쪽 찢어 먹어 버릴 거라니까. 그걸 막아 주는데 뭐가 미안해?”

당연희는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직접 안 보셔서 그런 거예요. 비에 쫄딱 젖은 강아지한테 밥그릇을 내밀었다 거두는 느낌이라니까요.”

“허, 십계승을 강아지 취급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다.”

“하여튼 찝찝해서 못하겠어요.”

“이미 저질러 놓고선 본좌 보고 어쩌라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마. 그럼 지금부터 그놈들은 물 먹는 거지. 뭐 어쩌겠어.”

적사결은 턱을 괴고는 삐딱한 자세로 말했다.

무허의 독단적인 행위였지만 크게 보면 소림은 자신의 몸을 빼앗아 간 곳.

일말의 동정심도 자신에겐 없었다.

“그러지 말고 교주님이 좀 도와줘요.”

“뭐? 지금 천마신교의 지존에게 소림을 도와주라는 말이냐? 너는 지금 그게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신교를 위해 그들의 구심점이 되라고 하셨잖아요. 하는 김에 조금만 더 도와주자는 말이에요.”

“본좌가 납득할 만한 이유를 말해 보거라. 미안하다느니 불쌍하다느니 하는 말 빼고. 네 말을 들어 주어 본 교의 이득이 되는 부분이 무언지 말이다.”

당연희는 미간을 좁히고는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있어요, 이득. 교주께서 말씀하신 거 말고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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