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84화>
“무산. 거짓말하지 말거라. 관심법으로 보면 다 보이니.”
“사, 사…… 형.”
무산대사의 숨이 거의 빠진 듯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죽음을 목전에 두었다는 방증이었다.
“내 마교에서 마음의 심연을 마주했느니라. 그때 관심법을 깨달았지. 내 눈에는 보이는구나 너의 거짓됨이.”
“마음의…… 심연…….”
“그래. 천고의 기연을 마주했느니. 부처는 다른 어디에도 아닌 내 마음속에 있더구나. 흐흐흐. 피에 젖은 지장보살께선 나에게 같은 길을 걸으라 말하셨다. 내 응당 그리할 것이라 맹세했고 말이다. 소림에 멸문지화를 가져온다? 아니, 본좌는 천하인 모두에게 지옥불을 선사할 것이니 하늘에서 잘 지켜보거라.”
우지지직. 퍼억.
“꺼윽.”
무산대사는 심장이 터져 나가며 의식이 흐릿해져 갔다.
‘하면 사대금강을 죽인 자는 사형이 아니라 진짜 광혈존이었던 건가. 그럼…… 칠십이종절예와 녹옥불장을 훔친 것도 그자였고. 허허, 불행 중 다행인 건가. 그곳이 어디든 소림의 유산을 남길 수 있게 되었으니…… 후인들이 그것을 되찾길 바랄 수밖에. 사부님, 사형이 결국 탐랑성의 화신이 되었으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그 기운을 억눌렀던 것이 도리어 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부님…….’
그렇게 점차 시야가 어둠에 잠겨 갔다.
두 눈을 뜨고 죽은 그의 눈에서는 한 방울 회한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흥, 본좌를 평생 거짓 속에 살게 한 죄다. 죽어서도 억겁의 고통을 면치 못하리라.”
무허는 승포를 젖히며 신형을 돌렸다.
그 순간 그 자신도 알 수 없는 무형기가 스르륵 움직였다. 한 줌의 기운도 되지 않는 허공섭물은 힘겹게 무산대사의 눈을 감겨 주었다.
“혈천지옥대, 살아남은 중놈들은 모두 죽이고 전각을 불태우라. 주춧돌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정화토록 하라.”
그 말을 끝으로 무허는 장문전으로 향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소림의 정기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아무런 제지 없이 방장실로 들어간 후 분노에 가득 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녹옥불장 어디로 빼돌렸어! 이 자식이 죽어서까지 날 골탕 먹여!”
당연히 있어야 할 소림의 신물이다.
하나 이를 비웃기라도 한 듯 비고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 *
화인현.
그곳에 모인 자들은 무척 부산스러웠다.
“다들 이리 가까이 오라.”
삼지안을 이마에 띄운 적사결은 축복을 내리는 성자처럼 보였다.
그 손길이 닿자 변화는 시작되었다.
우드득. 우드드득.
벽은을 비롯해 화인현에 모인 마인들의 외모를 변화시킨 것이었다.
이어 독문점혈법으로 내공도 금제시키니 마기까지 갈무리된 그들은 평범한 무인으로 보였다.
“다들 준비한대로만 하거라. 그리만 하면 맹추놈들이 알아차릴 리 없으니 말이다.”
“존명.”
각자가 맡은 자리로 움직이자 적사결은 묘 선생을 돌아보았다.
“선생도 티 나지 않게 잘하시오.”
“걱정 마시오. 내 소싯적에 세 치 혀로 과부 여럿 울렸었소.”
그걸 자랑이라고.
하여튼 노망이 제대로 난 영감이다.
“한데 지금 맹주가 누구라고 했소?”
“종리천. 종리세가의 전대 가주이자 현 의천맹주요. 아무리 선생이라도 유성검이라는 별호는 들어 봤을 것 아니오?”
“나야 모르지. 강소성 촌구석에서 평생을 숨어 살았는데. 근데 종리세가면 멸문한 종남파의 일맥인데 이거 참…….”
“응? 그런 옛날 일은 또 아는구려?”
“사부님 말로는 기혼문을 못살게 굴었던 곳들 중 종남파가 제일 끈질겼다 들었소. 해서 그 명맥을 이은 종리세가놈들과는 겸상도 하지 말라고 하셨고.”
“하긴 종리놈들이 좀 집요하긴 하지. 그래도 좀 참고 만나시오.”
“여부가 있겠소. 젠장.”
그 모습에 적사결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젠장만 빼면 좀 좋소. 하여튼 이런 거 보면 선생도 남 욕할 처지는 아닌 거지. 천고의 보물을 줘도 태도가 이 모양이니 원…….”
“원래 뒷간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잖소. 흐흐흐.”
적사결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그가 모르는 것을 알려 주었다.
“내 말 안 했나 보군. 신진철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소. 길바닥에 널리고 널린 게 신진철이거든.”
“응?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본좌가 언제 허언을 말 한 적 있소? 원하면 마차 하나를 가득 채워 줄 수도 있지. 이런, 이런. 그걸 몰랐으니 태도가 이렇게 불량할 수밖에. 쯧쯧.”
묘 선생은 그 즉시 부복하며 포권했다.
“천마신교의 신입 교도, 묘수. 마도의 하늘이신 천마지존께 인사 올립니다. 신교출세! 만마앙복!”
지랄한다.
* * *
종리천은 의천맹의 수뇌부만 대동한 채 화인현에 들어섰다.
맹의 병력은 인근에 주둔시킨 상황이었다.
“기혼문주 묘수라 합니다. 어서들 오십시오.”
“반갑소, 의천맹의 맹주를 맡고 있는 종리천이라 하오.”
종리천을 이어 정파의 저명한 인사들이 묘 선생에게 포권했다.
그들은 간단한 통성명을 한 후 곧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내 백리가주에게 듣기로 문주께서 이곳에 기문진을 준비 중이라 하던데 그것이 사실이오이까?”
“그렇습니다. 이미 저희 제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현재 구 할 정도 완성이 된 상황이지요.”
묘 선생은 무척 불편했지만 깍듯이 그를 대했다.
특히 예의범절을 조심하라는 적사결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파는 그런 부분을 아주 중시하니 말이다.
“대단하외다. 그렇지 않아도 살펴보니 대단한 규모의 절진인 것을 알 수 있었소.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었을 터인데 이리 나서주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오.”
묘 선생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이내 제자리를 찾았다.
‘이런 치사한 놈. 나서 주어 고마워? 한 푼도 보태 주지 않겠다는 거야? 이런 시부럴.’
세 치 혀로 입을 쓱싹 닦아 버린 종리천.
묘 선생은 속으로 욕을 퍼부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어차피 진을 구성하는 데 든 비용은 자신의 주머니가 아닌 천마신교에서 지불했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남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정 그러시면 한 가지 청을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흠, 청이라. 말해 보시구려.”
“본문을 의천맹에 가입시켜 주십시오. 본문이 건재함을 만천하에 알리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싶습니다.”
“이를 말이오. 내 당장 기혼문의 이름을 맹부에 올리도록 지시를 내리리다.”
종리천이 수행원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그리하겠다는 듯 짧게 읍했다.
“흔쾌히 들어주시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맹주님.”
“앞으로도 본 맹을 위해 힘써 주시오. 기혼문 같은 훌륭한 문파들이 있어야 본 맹도 있는 것 아니겠소.”
“이를 말입니까. 허허.”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종리천은 그제야 진정 묻고 싶었던 부분에 대해 운을 뗐다.
“한데 내 문주께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소만.”
“말씀하십시오.”
“혹시 사천회와 천마신교의 동맹군이 감숙성에서 혈교와 싸우고 있다는 것을 들었소?”
“백리가주께 듣기는 했습니다.”
“음, 한데 그 박쥐 놈들과 마구니 놈들이 연합하고도 혈교놈들에게 밀리며 섬서성으로 도망쳐 온다지 뭐요. 평소 사천의 패자니 마도의 하늘이니 운운하던 놈들이 아주 꼬리를 만 개가 되었다더이다. 하하하.”
“여쭙고자 하시는 것이 혹시…… 일망타진입니까?”
묘 선생의 물음에 종리천은 무릎을 탁 쳤다.
“역시 기관진식을 다루는 분이라 그런지 이해가 빠르시구려. 바로 그렇소. 이번 기회에 놈들을 한꺼번에 소탕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지 않겠소? 지금의 진법을 그 정도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겠소?”
그는 기문진 속에 혈교뿐만이 아니라 천마신교와 사천회까지 몰아넣고자 하는 것이었다.
“가능하지요. 다만 규모를 더 키울 필요가 있으니 지원이 좀 필요합니다.”
“역시! 좋소, 얼마든지 지원하리다. 어느 정도면 되겠소?”
“적어도 이 정도는 필요합니다.”
묘 선생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은자 일만 냥 정도면 되는 것이오?”
“…….”
“하면 금자 일만 냥이면 되겠소?”
“…….”
“시, 십만 냥? 그 정도나 필요하오?”
“…….”
“설마 금자 백만 냥이란 말이오이까!?”
그제야 묘 선생의 고개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말도 안 돼! 그래도 그렇지, 금자 백만 냥이라니! 지금 본 맹주를 앞에 두고 농을 하는 것이오!?”
“어찌 농이라 생각하십니까. 저는 합리적으로 계산하여 내린 결론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준비 중인 진은 이미 구 할이 완성되었으니 그것을 다시 해체하여 재구축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들 것이고, 그만큼 소요된 작업 기간을 보완하려면 지금보다 더 서둘러야지 않겠습니까?”
“……듣고 보니 그렇군.”
“그리고 말씀드린 금자는 다시 회수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그 말에 종리천의 얼굴이 다소 화색을 띠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진법의 힘을 전달하는 물질은 금이 최고입니다. 진축을 따로 구성하지 않고 금자를 박아 넣어 전도체로 사용할 것입니다. 일이 끝나면 회수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허어, 그런 것이 가능하단 말이오?”
“진언을 새겨야 하기에 저와 제자들이 번거롭긴 할 것이나 맹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수고를 마다해선 안 되겠지요. 허허허.”
묘 선생의 얼굴은 현인의 그것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과연 기혼문이오. 대단하구려. 그런 것이라면 맹의 창고를 열면 당장이라도 가능할 것이오. 지금 당장 처리하도록 하겠소. 발천개 장로, 그대가 즉시 내원의 원주에게 명을 하달하도록 하게.”
“예, 맹주. 즉시 조치하겠습니다.”
종리천은 흐뭇한 얼굴로 묘 선생에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개량될 진의 규모와 발휘될 효과부터 여러 가지를 말이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중에 각 문파의 문주와 장로들도 끼어들어 많은 질문을 던졌다.
진법 속에 자신들의 제자들이 갇힐 수도 있으니 확실히 숙지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것이었다.
두 시진 동안 이어지는 회의가 끝난 후, 의천맹의 사람들이 나가자 묘 선생은 그제야 기지개를 활짝 폈다.
“아, 그 새끼들 다 새가슴만 모아 놓았나. 무슨 걱정들이 그렇게 많아. 흐아아암.”
그때 바로 뒤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수고했소.”
“어이구, 간이야. 인기척 좀 하시오. 하여간 귀신이라니까, 귀신.”
묘 선생이 어느새 자리한 적사결을 보며 툴툴거렸다.
“귀신은 선생이겠지. 뭐? 금자를 진력의 전도체로 써? 의천맹을 상대로 금자 백만 냥을 사기 친 인물은 고금을 통틀어 선생밖에 없을 거요.”
“전도체 맞지. 그게 내 주머니로 들어오면 힘이 날거고, 그 힘으로 진을 열심히 만들 테니까. 이렇게 쓰든 저렇게 쓰든 그들이 원하는 진만 만들어 주면 되는 거 아니오!”
“회수된다고 구라친 건 나중에 어찌 수습하시려고?”
“아니, 내가 뭐 신인가? 그 정도 규모의 진을 구축하면 필연적으로 오류도 나고 예상치 못한 돌발적인 상황도 생겨서 계산도 틀리고 하는 거지.”
묘 선생의 대꾸는 그렇게 능청스러울 수가 없었다.
“허이구? 종리천이 잘도 넘어가겠소.”
“안 넘어가면 제깟 놈이 어쩌려고? 맹주씩이나 되어서 치사하게 토해 내라 할까 봐? 원래 그런 자리에 앉은 놈 치고 제 명예 챙기지 않는 놈 없소. 내 장담하건대 한 마디도 못할 거요. 걱정 마시오. 흐흐.”
적사결은 흡족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뭐요, 그 표정은? 설마…….”
“판 깔아 줬는데 자릿세는 내야지.”
“와, 이 날강도. 이런 코 묻은 돈까지 뺏어가는 거요?”
“뺏어가다니? 무슨 그런 섭한 말을. 아까 뭐라 했더라? 본 교의 신입교도가 인사 올린다 했었나? 교도가 되면 개인수입의 십할을 교에 바쳐야 하는 거 몰랐소?”
그 말에 묘 선생이 코를 찡그리며 뾰루퉁하게 말했다.
“씨팔!”
“뭐? 씨팔? 지금 본좌에게 육두문자 쓴 거요?”
“십 할! 십 할이라고! 외우고 있는 거 안 보이오!? 젠장!”
“이왕이면 황금 십만 냥이라 합시다. 그게 더 어감이 좋잖소. 흐흐.”
“…….”
날강도가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