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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182화 (182/206)

<기적의 이혼대법 182화>

*   *   *

“방장 어른!”

장문전에 도착한 일대제자 보종은 다급하게 무산대사를 찾았다.

그 모습에 십팔나한의 일인이 심상치 않은 얼굴로 물었다.

“보종, 무슨 일이 있느냐?”

“지금 당장 방장 어른을 뵈어야 합니다. 적도들이 쳐들어왔습니다!”

“적도라니?”

“마교, 아니 혈교 놈들입니다. 산문을 넘어 천불전까지 밀고 들어온 상황입니다. 어서 방장 어른께 고해 주십시오!”

나한승이 뭐라 답하기도 전이었다.

“혈교가 여기까지 왔단 말이냐!”

벼락 같은 일성이 장문전안에서 뻗어 나왔다.

곧이어 무산대사가 장경각주 공선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었다.

“몇이나 되더냐?”

“백 명입니다. 한데 그것이 조금 이상합니다.”

“이상해? 무엇이 말이냐?”

“모습이…… 사람 같지 않습니다. 아니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아니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더냐?”

보종은 난처한 얼굴로 답했다.

“뭔가 기의 덩어리 같다고 해야 할지…… 설명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혈교인 것은 확실합니다. 광혈존이 그들을 이끌고 왔으니까요.”

“뭐라!? 광혈존이 직접!?”

무산대사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치켜떠졌다.

백 명의 소수 정예로 소림 본산을 치다니.

이는 과거 감숙대전에서 공동파를 멸문시켰을 때와 동일한 전략이었다.

“사형, 아니 무허 그 흉적이 없다고 본사를 우습게 본 모양이군. 보산.”

“예, 방장 어른.”

“나한전의 나한들을 모아 백팔나한진을 준비하거라.”

“속히 준비하겠습니다.”

보산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보종.”

“말씀하십시오.”

“지금 놈들은 누가 상대하고 있느냐?”

“삼십육방의 일대제자들이 막고 있습니다만 곧 천불전도 뚫릴 것이라 생각됩니다.”

“당장 대웅보전까지 제자들을 물리거라.”

“알겠습니다.”

무산대사는 이어 공선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질은 달마전의 아이들에게 장경각을 철통같이 지키라 이르게. 계지원과 장생전의 승들도 그쪽으로 모으도록 하고.”

계지원은 동자승들이 불법을 수양하는 곳이었고, 장생전은 노승들이 기거하는 장소였다.

무산대사는 싸울 수 없는 이들을 장경각으로 모으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사숙, 조심하십시오. 부디 보중하셔야 합니다.”

공선이 염려가 가득 담긴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산대사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안심시켰다.

“걱정 말게나. 천 년을 버텨 온 소림이네. 부처님이 계신 곳에 감히 사마의 무리들이 범접했으니 본때를 보여 주어야지. 허허허.”

하나 공선의 얼굴은 여전히 수심이 깊었다.

그 광혈존이 소림의 전력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고작 백 명만 이끌고 왔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이었다.

*   *   *

“이, 이게 무슨!”

보종이 천불전에 도착한 후 본 광경은 처참했다.

일다경도 안 된 짧은 시간에 바닥에 쓰러진 승려들의 수가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서 있는 자들을 세는 것이 더 빠를 정도.

기존 사백에 달했던 제자들은 오십 명 남짓으로 줄어 있었다.

“보종! 어찌 되었나?”

보명이 그를 보자마자 파리한 안색으로 물었다.

일대제자들을 이끄는 그의 왼팔은 어깨부터 사라져 있었다.

“자네, 팔이…….”

“난 괜찮으니 어서 방장 어른의 지시 사항을 말해 주게.”

“대웅보전까지 제자들을 물리라 말씀하셨네.”

“다들 들었겠지! 대연무장으로 퇴각할 테니 진세를 유지한 채 물러나!”

보명의 지시에 무승들은 천근같이 무거운 발걸음을 조금씩 옮겼다.

하나같이 사색이 된 얼굴은 그들이 얼마나 두려움을 느끼는지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다행인 것은 그런 그들을 보며 혈교 측은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보명과 보종은 최후방까지 남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큭큭큭, 걱정 마라.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개들을 추살하진 않을 테니.”

무허는 비릿한 입꼬리를 올린 채 두 사람을 조롱했다.

“광혈존! 지금 물러나지 않는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보명이 피를 토하며 기개를 보였다.

“쯧쯧, 보명. 너는 자질은 있으나 성정이 너무 급하다 그리 일렀건만 전혀 고쳐지지가 않는구나. 할 말 못할 말 구분하지 못하고 감정적이니 성취가 더딘 것이다. 쓸모없는 녀석.”

“뭐, 뭐라?”

보명은 알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상대가 자신의 법명을 알고 있는 것도 이상할진대 그 내용도 과거 수차례 지적받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태사백인 무허로부터 말이다.

“보명. 새겨들을 필요 없네. 어서 가세.”

보종이 보명을 부축하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무허는 더없는 상쾌함을 느끼며 그들이 향한 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찰박. 찰박.

삼백이 넘는 무승들이 흘린 피웅덩이에 파문이 번졌다.

이어 피에 젖은 걸음소리가 무겁게 산사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무허의 뒤를 소리 없는 백 명의 귀신들이 조용히 뒤따랐다.

그만한 수의 무승들을 상대하며 조금도 타격을 받지 않은 듯 그 모습은 처음과 다름이 없었다.

*   *   *

대웅보전 앞, 대연무장에 도착한 무산대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너희들이 전부인 것이냐?”

“죄송합니다. 저희들이 부족하여 적도들을 막아 내지 못했습니다.”

보명이 무릎을 꿇으며 눈물을 흘렸다.

일대제자들을 대표해 이끌었기에 그 죄책감이 큰 것이었다.

“일어나거라. 네 잘못이 아니니.”

“크흐흑, 너무 많은 제자들이 죽었습니다.”

“알고 있느니라. 그 짧은 시간에 당했다니 나 역시 믿기지 않구나. 자책 말고 가서 몸을 추스르거라. 보종.”

“예, 방장 어른.”

“보명을 약왕전으로 데려가거라. 상처가 위중하구나.”

보종은 보명을 억지로 부축해 일으켰다.

“잠시만요. 방장 어른.”

“무슨 할 말이 있는 것이냐?”

“송구하지만 원로님들과 동자승들을 산문 밖으로 대피시켜 주십시오.”

“허어, 너는 지금 우리가 저들을 막지 못할 것이라 보는 것이냐?”

“광혈존이 이끌고 온 무리들. 하나같이 괴물입니다. 저희 일대제자들이 단 하나도 없앨 수 없었습니다. 부디, 부디 만약을 대비해 주십시오.”

보종은 말을 하는 순간에도 초조하고 안타까웠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후일을 기약하며 도망치고 싶을 정도였다.

“보종도 그렇고 너까지. 도대체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방장 어른,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제발 최악에 대비해 주시길 간청드립니다.”

“…….”

무산대사는 보명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보명의 성정상 죽었으면 죽었지 약한 소리를 할 아이가 아니다. 한데 대피라는 말을 입에 올리다니. 광혈존이 소수정예로 공격한 이유가 있나 보구나…….’

장경각에 노약자를 모았으니 그들을 다시 대피시키는 것은 번거로울 뿐 그리 힘든 일은 아니었다.

무산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보종. 보명을 약왕전에 데려다 놓고 장경각에 모인 아이들을 탑림으로 이동시키거라. 그곳에 1층탑이 있을 것이다. 그 아래 비밀 장소가 있으니 안전하게 대피시키도록 하거라.”

“예.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가자, 보명.”

“제 청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장 어른.”

“어서 가거라. 뒤는 우리가 맡을 것이니.”

무산대사는 두 사람을 보지 않고 전면을 주시했다.

계단을 올라오며 모습을 드러내는 침입자들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특히 가장 선두, 혈포가사를 두르고 해골염주를 목에 건 미중년인은 한 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존재감은 등장만으로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광혈존. 기도가 더 출중해졌구나. 하늘은 어찌 저런 자를 마도에 내렸단 말인가.’

방장직을 맡은 후 전장에 나서지 않았지만 젊은 시절 무산대사는 천마신교와의 분쟁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직접 맞상대하지 않았지만 사형인 무허대사와의 생사결을 일견했었고, 이후에도 쭉 보고를 받았기에 대략적인 무위를 짐작하고 있었다.

한데 지금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기세로 보건데 자신의 생각은 한참이나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구나 그의 뒤에 자리한 괴인형들은 보자마자 섬짓함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극악무도한 놈! 이곳이 어디라고 사특한 무리를 이끌고 악행을 벌이는 것이냐!”

무산대사의 불문음공인 사자후에 대기가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유형의 중압감이 발생해 상대를 억눌렀다.

“뭘 이런 걸 환영 인사라고.”

무허는 피식 웃으며 손바람을 부치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진동하던 대기가 그대로 산들바람이 된 듯 기세를 흩어 버렸다.

“무산, 조잡하게 수 쓰지 말거라. 사자후에 무상대능력을 실어도 본좌에게는 통하지 않느니라.”

“무산? 아무리 적이라지만 그대는 존장에 대한 예의도 모르는 것인가!?”

“예의라…… 글쎄, 평소대로 하고 있는데 말이야. 뭐 입 아프게 설명하긴 귀찮고 죽으면 흙으로 돌아갈 것을 뭐 그리 따지는가?”

“흥, 우리 모두를 죽이겠다? 할 수 있으면 해 보라! 소림이 어째서 무림의 태산북두로 불리우는지 똑똑히 보여 주마! 백팔나한진을 펼쳐라!”

무산대사의 명에 대연무장에 백팔 명의 나한들이 진을 형성했다.

십팔나한진 여섯 개가 물고 물리는, 무림에 존재하는 진 중 최대 인원으로 구성된 연수합격진이었다.

“흐흐흐흐. 좋구나, 좋아.”

무허는 혈천지옥대를 대기시키고 홀로 앞으로 나섰다.

“무림사 단 한 번도 패한 적 없는 백팔나한진. 내 오늘 그 전설의 종지부를 찍어 주지!”

저벅. 저벅.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전신이 핏빛 혈광으로 뒤덮이며 호신강기가 형성되었다.

무허는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고 까딱거렸다.

“오너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삼십육방위에서 나한들이 제미곤을 내질렀다.

그들이 펼치는 초식은 놀랍게도 모두 강기가 서려 있었다.

하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들은 고작 일선.

이어지는 이중삼중의 공세가 물샐틈없이 펼쳐졌다.

쩌저저저정. 쩌엉. 쩌어엉.

일백하고도 여덟 개에 이르는 강기가 연환으로 불을 뿜었다.

더군다나 그 불길은 꺼질 줄을 몰랐다.

쩌저저저저정.

수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일선이 물러나면 이선이, 이어서 삼선이. 그리고 다시 일선부터 시작되는 연환공세.

무한의 궤도를 그리는 나한진이 강기폭풍을 끊이지 않게 발생시켰다.

이것이 오직 스스로의 무위만으로 가능한 것일까?

답은 아니다.

천하를 통틀어 절정 고수를 백여 명이나 보유하고 있는 단일 문파는 없다.

그것이 소림이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백팔나한이 절정 고수만이 가지는 강기성강의 경지를 보이는 것은 합격진 덕분이었다.

단순히 유기적인 단합을 위해 손발을 맞추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닌 내적 공명.

합격진의 움직임이 초식이라면 내적 공명은 내력의 공유였다.

그 때문에 진짜 절정 고수는 열여덟 명의 나한이 전부이지만 나머지 나한들이 내적 공명의 영향으로 그들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 공격을 위한 강기든 방어를 위한 화경이든 말이다.

음? 공격은 그렇다 치고 방어라니?

쩌저저정. 쩌엉.

충돌음이 증거였다.

일방적인 공격으로 터져 나가는 기공의 폭발음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무허는 강기 폭풍 속에서 공세를 맞부딪치고 있었다.

그리고 백팔나한은 그 충격을 내적 공명으로 흘려내는 중이었다.

즉, 서로가 수준 높은 공방일체를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방장 어른. 십계승을 준비시키겠습니다.”

계율원주 공량이 미간을 좁힌 채 무산대사에게 말했다.

“공량, 잠시 기다리게.”

“어찌 그러십니까? 백중세로 보이나 언제 균형이 깨질지 모르지 않습니까.”

“해서 기다리라는 것이네. 사대금강이 없는 이상 십계승은 마지막 보루지 않은가. 그들로 이 위기를 넘기면 좋겠지만 아직 판단하기 이르네.”

“설마 방장께서는 만일의 경우, 십계승으로 하여금 제자들을 대피시키려 하시는 겁니까?”

무산대사는 사색이 된 얼굴로 말했다.

“보명의 말이 맞았네. 최악의 경우까지 가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어. 광혈존 홀로 저런 신위를 보이는데 저기 정체불명의 괴인형들을 보게. 이 늙은이도 저들의 무력을 가늠하지 못하겠네. 아니, 살피려 할수록 소름이 돋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으이. 어쩌면 정말 오늘이 소림의 마지막인지도 모르겠네…… 아미타불.”

“……방장 어른.”

공량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불안한 기색을 보이는 그때였다.

“혈라마선수.”

천둥 같은 굉음을 뚫고 나직이 초식명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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