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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180화 (180/206)

<기적의 이혼대법 180화>

화아아악.

당연희는 회의장에 들어서자마자 공력을 끌어올렸다.

금빛의 불가기공은 후광이 되어 그녀의 존재감을 군웅들에게 각인시켰다.

“보리연화공이다!”

“진짜 무허대사의 전인이란 말인가!?”

“젊은 나이에 저렇게나 심후한 공력이라니. 과연 정도제일인의 제자로다. 무량수불.”

군웅들의 사이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울려 퍼졌다.

자세히 듣지 않아도 그들은 장내에 등장한 사내가 무허대사의 제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들 정숙하시오.”

발천개가 소란을 잠재우고는 당연희에게 물었다.

“자네의 이름과 사문을 말해 보게.”

“적운이라 합니다. 사문은 적검문으로 알고 있었으나 최근에야 소림이 제 사문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소림이 사문인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니?”

“사부님께선 제게 자신이 소림의 고승인 것을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달포에 한 번씩 들러 무공을 전수해 주셨고 저는 아무 의심 없이 제 무공이 적검문의 것으로 알고 익혔습니다.”

발천개는 어이가 없었다.

누가 천하사괴 아니랄까 취불과 관련된 일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했다.

“허어, 소림의 무공을 전수하며 사문이 소림이 아니라 알려 주었다? 확실한가? 이는 소림의 명예가 달린 일일세.”

“저도 강호에 나와 그 사실을 깨닫고는 조금 황당했습니다. 좀 별난 사부님인 줄은 알았지만 사문을 거짓으로 알려 주실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으니까요.”

“하면 녹옥불장도 무허대사께서 자네에게 준 것인가?”

“네. 모든 전수가 끝났으니 하산하라고 하시면서 주셨습니다. 적검문의 신물이니 잘 보관하라고 하셨지요.”

“하면 그것이 소림의 장문령부인지는 어찌 알았는가?”

“백리세가의 빈객으로 지낼 당시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 무공을 알아본 백리가주님께서 강호초출이었던 저에게 이것저것을 알려 주셨고 그때 녹옥불장을 보여 드렸습니다. 그렇게 백리가주님을 통해 사부님께서 저를 속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발천개는 시선을 거두어 백리검에 물었다.

“백리가주께서는 어찌 지금까지 이 일을 함구하고 있었던 것이오? 소림에서 무허대사를 무림 공적으로 선포한 것을 모르지 않을 것 아니오?”

“밝힌다면 소림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스승이 무허대사인지도 몰랐던 제자에게 그 허물을 뒤집어씌울 순 없지 않겠습니까.”

“소림이 봉문한 일이고 장문령부가 걸린 일이잖소! 숨긴다고 될 일이 아니지 않소이까!”

“숨기려 했다면 이 자리에서 밝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서두르지 않으려다 지금까지 시간이 흘렀을 뿐입니다. 본가, 아니 강소성의 무인으로서 가왜변란을 종식시킨 영웅이 불합리한 처사를 당하지 않도록 한 것이지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적 대협은 소림이 아닌 적검문의 제자로 알고 있었고 녹옥불장도 적검문의 신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

“…….”

발천개는 입을 씰룩거렸지만 차마 더 따질 수 없었다.

자신의 일은 어디까지나 무허대사의 제자가 맞는지에 대한 확인이었다.

여기서부터는 맹주의 판단에 맡겨야 했다.

“맹주님. 노개의 판단으로는 그가 무허대사의 제자가 확실하다고 판단됩니다. 첫째, 보리연화공은 천하에 무허대사만이 알고 있는 소림의 비전신공입니다. 둘째, 무허대사는 평상시 본방의 금개에게 소림의 동자승 중에는 눈에 차는 자질이 없다고 말했다 했습니다. 그 이유를 핑계로 거의 소림사 산문 밖에서 살다시피 했고 그런 와중에 저자를 제자로 거두었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셋째, 본방은 소림방장께서 보관 중이던 녹옥불장을 무허대사가 훔쳤다는 정보를 입수한 적이 있습니다. 세 가지 사유로 보건데 그가 무허대사의 제자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생각됩니다.”

발천개는 검증을 끝내고는 짧게 읍하고 옆으로 물러났다.

종리천은 그의 노고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적운, 그대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본디 제자란 스승의 무공만 물려받는 것이 아니다. 스승의 모든 것을 물려받기에 전인이라 부르는 것이지. 스승의 은원, 관계, 허물 등 모든 부분을 말이야.”

“맹주께서는 사부님의 죄를 저에게 물을 생각이십니까?”

내색은 않지만 당연희는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종리천의 눈빛은 그만큼 차가웠다.

“그대의 대답에 따라 다를 것이네. 군웅들의 앞에서 말해 보게. 그대는 소림의 제자인가, 아니면 적검문의 제자인가?”

그 물음에 당연희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소림의 제자라 한다면 무림 공적의 제자가 됨에 따라 소림으로 압송될 것 같았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알게 된 마당에 적검문의 제자라 주장하기도 애매했다.

‘에라, 모르겠다.’

“소림의 제자입니다.”

“후회하지 않겠는가?”

“제가 누군지 밝히기 위해 나온 자리입니다. 녹옥불장으로 섬서성 민초들을 살리기 위해 말입니다. 떳떳하게 의와 협을 행하는 데 후회할 일이 무에 있겠습니까?”

당연희의 당찬 대답에 주위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중에는 견부 밑에서 호자가 나왔다는 말을 꺼내는 이도 있었다.

“하하하하, 괴승의 전인이 이토록 의기가 강한 협객이라니. 취불께서 제자만큼은 잘 두었군!”

종리천은 태사의를 탕탕 치며 기뻐했다.

“만약 자네가 소림의 제자가 아니라 말했다면 기사멸조의 죄를 물었을 걸세. 하나 자네는 본 맹주의 압박 속에서도 당당히 소림 제자임을 밝혔지. 본 맹은 자네가 스승의 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지지해 주겠네.”

“그 말씀은 저를 소림으로 압송하지 않을 것이란 말입니까?”

“당연하지. 기사멸조란 말은 제자가 사부를 기만하지 않아야 하듯 사부도 제자를 기만하지 말아야 함을 전제로 하네. 한데 그대의 스승은 거짓으로 자네를 기만했지 않은가. 어찌 죄를 묻겠나? 의천맹이 그런 부조리한 처사를 두고 볼 것이라 보는가? 우리는 정파네!”

종리천의 외침에 군웅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그는 흐뭇한 표정으로 한쪽 손을 들고는 그들의 지지를 만끽했다.

“발천개 장로.”

“하명하십시오.”

“적운 대협의 녹옥불장으로 섬서성의 소림 속가 문파에 전서를 띄우게. 일이 끝나면 소림에 장문령부를 회수해 갈 것을 전하도록 하고.”

“그리 조치하겠습니다.”

그때 한쪽에서 그 명을 들은 청진도장이 외쳤다.

“맹주! 그 말은 지금 화산을 전장으로 삼겠다는 말입니까!?”

“도장께서는 더 좋은 방안이 있으시오?”

종리천의 되물음에 청진도장은 얼굴이 시뻘게졌다.

너무도 뻔뻔한 질문에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더구나 좌중의 눈빛 역시 그와 동일했기에 더 그러했다.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 화산을 지옥으로 밀어 넣는구나…… 원시천존이시어…….’

청진도장은 거부할 수 없음을 느꼈다.

공동파가 그러했듯 이번에는 화산파 차례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부, 부디 맹주께서 화산과 섬서성의 민초들을 굽어 살펴 주십시오.”

꼿꼿하던 그의 허리가 포권과 함께 깊게 숙여졌다.

그 어느 때보다.

“이를 말이오.”

종리천의 한쪽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올라갔다.

*   *   *

“수고했다.”

회의를 끝내고 돌아온 당연희에게 건넨 말이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잘됐겠지. 그 정도로 준비하고 갔는데.”

“뭐 잘되긴 했죠. 내 연기력이 좀 좋아야지.”

“하긴 너도 사기꾼 기질이 좀 있었지.”

“뭐라고요!?”

“농담이야.”

적사결은 손을 흔들며 피식 웃었다.

백리황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전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농담은 전혀 어울리지 않던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한데 지금의 모습은 뭔가 아주 자연스러웠다.

“저기…… 두 분은 무슨 사이세요?”

백리황의 물음에 적사결이 답하려 하자 당연희가 가로막았다.

“아직 대외비잖아요. 말해도 되는 거예요?”

“여기까지 온 마당에 하나 더 추가한다 해도 티도 나지 않는다. 왜? 부끄러우냐?”

“그럴 리가요. 나 몰라요?”

“하긴.”

적사결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본좌와 혼인을 약조한 사이다.”

“……어쩐지.”

백리황은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쪽에서 자리를 잡고 있는 백리검과 백리세가의 중진들도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그가 혼인 때문에 사천회를 돕고 있음이라 짐작한 것이었다.

“한데 적 대협.”

“말씀하시오.”

“그 묘수란 분이 정말 그만한 절진을 펼칠 수 있는 것이오? 이번 혈교와의 전쟁은 그에게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소.”

“말했다시피 그는 기혼문의 당대 문주요. 내 보증할 것이니 믿어 보시오. 백리황.”

“네, 적운님.”

“네가 말해 보거라.”

백리황은 천천히 예전 경험을 곱씹으며 그의 거처에서 겪었던 진법을 설명했다.

구덩이에 새끼줄 두 개를 걸친 그곳에서 죽을 뻔했던 경험은 그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다.

“한 마디로 묘 선생님은 기관진식의 대가이십니다. 그분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면 무조건 가능할 것입니다.”

“허허, 그만한 인물이 강소성에 있었다니. 그것도 과거 본가와 인연이 있었던 문파인데…… 애석하구나, 애석해.”

백리청 장로가 안타까움을 내비치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는 강소성에서 평생을 보냈지만 기혼문주 묘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음을 한탄한 것이었다.

“알았더라도 별수 없었을 것이오.”

“……?”

“그는 무림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소. 아니, 같잖게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무서워하지. 멸문의 화를 피한 후, 역대 기혼문주들은 강호에 나오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하며 살아왔다 들었소.”

“하면 적 대협은 그와 어떻게 인연이 된 것이오?”

“본좌도 그리 건설적인 관계는 아니오. 묘 문주가 좀 삐딱해서 인연을 이어 나가기가 여긴 까다로운 것이 아니지. 그 실력만 아니었다면 진작 등을 돌렸을 것이오.”

적사결은 질린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만큼 실력만큼은 확실한 인물이오. 이미 진법을 설치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 부분은 염려 마시오.”

“어쨌든 중간에서 조율을 잘해 주시오. 내 적 대협만 믿겠소.”

백리검은 한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의천맹, 사천회, 천마신교, 혈교라는 네 개의 세력이 뒤얽힌 상황.

그에 더해 자신은 비밀리에 천마신교와 사천회의 동맹군과 협력하고 있으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걱정 마시오. 다 잘될 것이니.”

“알겠소. 내 적 대협과 당 소저를 믿고 일을 진행하리다.”

전각을 나온 후, 적사결을 배웅하러 나온 이는 백리황이 유일했다.

나머지는 앞으로 있을 계획을 준비하기 위해 연이은 회의를 진행 중이기 때문이었다.

“예전처럼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 아쉽네요.”

“녀석, 함께가 뭐냐. 훗날 적으로 만나게 될 텐데 그런 소리가 나오느냐? 흐흐.”

“생각해 보면 적운님과 여행했던 그때가 정말 자유롭고 좋았더라고요.”

“끌끌, 제법 실력이 붙었나 보구나. 벌써 세가의 울타리가 좁다고 느껴지는 것이냐?”

삼지안으로 살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백리황은 본신을 되찾고 깨달음을 얻었는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기도를 풍기고 있었다.

“본가의 천수풍림검공을 익히고 있습니다. 대성하지 않았음에도 새로운 세상이 보이더군요.”

“천수신검의 진신절학이라. 기대되는구나. 하나 너무 자만하지 말거라 봐서 알겠지만 사무련의 백류혼. 그놈은 나이에 걸맞지 않는 괴물이다.”

“알고 있습니다. 동세대 중에 그가 가장 큰 벽이 될 것이란 걸요.”

“가장 큰 벽이라. 글쎄,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지. 흐흐.”

“무슨 말씀이세요?”

적사결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본좌가 이번에 새로 제자를 들였다. 나이는 너보다 어리지만 꽤 괜찮은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 나중에 녀석이 완성되고 붙어 보면 꽤 흥미진진할 거다.”

“……이거 위에서 눌리고 아래에서 치이겠네요.”

백리황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난색을 표했다.

“그만한 실력을 쌓았으면서 엄살은. 하나 수련을 게을리 하지 말거라. 따라잡히기 싫다면 말이다. 큭큭.”

“둔재가 걸음까지 멈춰 서야 되겠습니까. 하루도 쉬이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포권을 하는 백리황의 눈빛이 전에 없이 단단해졌다.

“후후, 그새 사내의 눈이 되었구나. 이만 가마.”

“살펴 가십시오…… 적사결님.”

백리황은 적사결의 등을 보며 잠기는 목구멍을 억지로 쥐어짜며 말했다.

하나 실상 하고 싶은 말은 속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살펴 가십시오,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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