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179화 (179/206)

<기적의 이혼대법 179화>

적사결은 낮고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의천맹이 준비 중인 섬서성 서쪽 전선을 물리시오.”

“전선을 물리라? 무슨 뜻이오?”

백리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말 그대로요. 혈교를 섬서성 안쪽으로 더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오.”

“이보시오, 적 대협. 놈들은 무림인과 민초들을 가리지 않고 다 죽이고 있소. 전선을 물리고 백성들을 대피시킬 시간이 없지 않소.”

“천마신교와 사천회가 놈들을 유인하고 있소. 그 정도 시간은 마련해 줄 것이오.”

“하나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소.”

“해서 내 가주께 도움을 청하는 것이오. 쉬운 일이었다면 그대를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휴우, 일단 어디까지 전선을 물리란 말이오?”

“화인현.”

“……!”

백리검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화인현은 화산파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마을이다.

화산파가 자신들의 사업장을 보호하기 위해 난리칠 것이 자명했다.

“가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소. 하나 전장은 반드시 그곳이 되어야 하오.”

“이유를 말해 주시오.”

적사결은 가다렸다는 듯 설명을 이어 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으로 싸여진 기다란 물건을 건넸다.

백리검은 그것을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 내 한 번 해 보리다.”

“부탁하오, 백리가주.”

*   *   *

의천맹 대회의.

맹에 속한 문파들의 소집이 완료되고 시작된 첫 회의였다.

회의장은 대문파와 군소방파의 책임자들이 들어서 빽빽한 상황이었다.

앞서 대문파만 참석했던 임시 회의가 아닌 공식적인 행사이기에 그 분위기는 사뭇 무거웠다.

“모두 자리에 앉으시오.”

의천맹주 종리천이 장내에 등장하며 나직이 말했다.

하나 장내의 조용함에 더해진 무게감 있는 목소리를 듣지 못한 자들은 없었다.

“지금부터 맹회를 시작하겠소.”

종리천이 고개를 끄덕이자 의천맹의 첩보를 담당하는 개방의 장로, 발천개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막힘없이 혈교의 규모와 위치, 그리고 감숙성의 현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서 준비 중인 서쪽 전선의 대비 현황에 대해서 말을 이었다.

모든 설명이 끝나자 화산파의 장로 청진도장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공동파의 맹도들은 어찌 되었소? 맹 차원에서 살피겠다 하지 않았었소?”

“……그것이 무당파 특무대를 파견했으나 이미 늦은 상황이었소.”

무당파는 대외 활동에 있어 항상 스무 명으로 구성된 부대만 파견한다.

그들은 무당의 최정예 검수들로 의천맹의 특무대를 맡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늦었다니?”

“말 그대로요. 특무대가 여운산에 진입했을 때 이미 혈교도들에게 고립되어 자진했다는 보고를 받았소. 휴우…….”

“……허, 허허. 공동파가…….”

청진도장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공동파의 무맥이 완전히 끊어졌다는 말이었다.

무림의 도가 무문 중 화산, 무당과 함께 오랜 세월을 함께해 온 그들이 말이다.

털썩.

청진도장은 주저앉다시피 자리에 앉았다.

왜 늦은 것인지 따지고 싶지도 않은 것이었다.

의천맹이 굼뜬 것은, 특히 도문에 관련된 일이라면 더 그러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분들은 더 질문 없으시오?”

발천개가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 순간 자리에서 한 사람이 일어났다.

그는 백리검이었다.

“백리세가의 가주, 백리검입니다. 듣자 하니 혈교의 전력은 오만에 달하고 의천맹의 전력은 삼만 남짓이라 들었는데 그에 대한 대비책이 있는 것입니까?”

“가주께서도 알겠지만 준비 중인 서쪽 전선은 험난한 산악 지대라 대군이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오직 하나뿐이오. 그곳은 천 명으로 만 명을 막을 수 있는 장소이니 수성에 큰 이점이 있다 할 수 있소.”

“병력의 열세를 지형적인 이점만으로 대비한단 말입니까? 너무 안일한 듯싶습니다.”

“하면 어찌한단 말이오? 오대세가는 사무련과의 정사대전으로 도움을 청할 상황이 아니잖소.”

“소림은 왜 참전하지 않는 것입니까?”

“가주도 들었을 것 아니오. 무허대사를 파문하고 그를 단죄하기 위해 봉문에 들어간다고. 맹에서도 사람을 보내었으나 방장대사의 의지가 확고해 설득하지 못했소.”

“그것이 전부입니까?”

따지는 듯한 백리검의 물음에 분위기가 아주 이상하게 흘렀다.

그러자 맹주인 종리천이 나섰다.

“맹주로서 미안함을 감출 길이 없소. 맹주령을 내렸음에도 모인 병력이 고작 삼만이라니. 내 그간 얼마나 힘없는 맹주였는지 통탄할 지경이외다.”

“맹주님. 지금은 한탄할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알고 있소. 하나 이것이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소.”

“사천회와는 접촉해 보지 않은 것입니까? 그들도 혈교를 막아서고 있지 않습니까.”

“이미 천마신교와 동맹을 맺었으니 어쩔 수 없지 않소. 본 맹이 마구니와 손을 잡은 그들과 함께할 수도 없으니.”

백리검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이들은 힘을 합칠 융통성이 없었다.

맹의 수뇌부는 천마신교와 사천회가 그들 나름대로 혈교를 견제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저에게 한 가지 복안이 있습니다.”

백리검의 말에 좌중이 무거운 고개를 들며 시선을 모았다.

“여러분께서는 기혼문을 알고계십니까?”

그 물음에 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종리천이 손을 들며 소란을 잠재우고는 되물었다.

“백리가주는 어찌 기혼문을 입에 담는 것이오? 그들은 이미 백 년 전,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 않소.”

군웅들은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들도 멸문한 문파를 왜 언급하는지 궁금한 것이었다.

“사라졌지만 그 일맥을 이은 자가 있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종리천이 눈썹을 크게 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혼문은 기관진식만으로 일가를 이루었던 무림사 유일한 문파였다.

풍문에 따르면 과거 제갈세가가 술법과 진법을 천대한 이후 등장해 그들의 방계가 아닌가하는 말이 나돌았었다.

그 정도로 기혼문의 기관진식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하나 그것이 그들에게는 독으로 작용했다.

기혼문의 비전을 노린 문파들에게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기관과 진법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대응했지만 그 끝은 결국 멸문이었다.

“본가와 기혼문은 과거 인연이 있었습니다.”

백리검이 답을 하자 좌중이 웅성거렸다.

그때 개방의 장로 발천개가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정숙하시오. 백리세가와 기혼문이 인연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오. 백리세가의 초대 가주인 천수신검 백리단 대협께서 기혼문주와 교류가 있었음을 개방은 알고 있었소.”

지금의 개방이 아닌 과거의 개방.

당시 그들의 정보망은 천하제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귀가의 장원에 있는 절진도 기혼문의 작품이 아니오이까?”

발천개의 물음에 백리검은 고개를 끄덕이며 등줄기가 서늘함을 느꼈다.

풍림의 풍사환혼진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아는 집단이 있는 줄 미처 몰랐던 것이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과연 개방이었다.

“그럼 백리가주의 복안은 진법으로 혈교를 상대하자는 것이로군. 그렇지 않소?”

“선배의 혜안은 과연 대단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진법만이 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안이라 생각합니다.”

“가주, 무려 오만이오. 아니, 하다못해 일만이라도 진법에 가둘 수 있었으면 우리도 진법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오. 몇 천 명 정도 가두어 봤자 대세에 큰 영향이 없지 않소?”

“가둘 수 있습니다. 오만 명.”

“뭐, 뭐요!? 그게 정말이오!?”

백리검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좌중을 돌아보았다.

“진법은 하늘과 땅의 조화를 이끌어 내는 공부지요. 그 말은 하늘과 땅이 허락한다면 얼마든지 큰 조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하늘은 때를 이름이오, 땅은 장소를 의미하지요.”

“백리가주, 알기 쉽게 말해 주시오.”

“기혼문의 후예가 말하길 하늘의 때는 날씨입니다. 진법이 기능하려면 풍운의 조화가 없는 맑은 날, 정확히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시간을 맞춰야 하며, 땅은 진법을 구현할 만한 지기를 내포한 장소여야 한답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길 오만 명을 대상으로 대절진을 펼칠 수 있는 장소가 섬서성에 있다 하더군요.”

“섬서성 어디요?”

이번에도 백리검은 말을 아꼈다. 그러고는 청진도장을 바라보며 포권했다.

“섬서성에서 가장 지기가 강한 곳이 어디겠습니까? 천하명산, 오악 중 하나이자 도가의 성지밖에 더 있겠습니까?”

“지, 지금…… 화산을 전장으로 삼자는 말이오!?”

청진도장은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의 눈에는 그들이 먹잇감을 노려보는 늑대로 보일 정도였다.

“기존의 계획대로 서쪽 전선으로도 충분할 것이오. 사천회와 마교도 혈교를 견제하고 있지 않소.”

청진도장은 그 제안을 거부하기 위해 사천회와 천마신교까지 언급했다.

하나 백리검은 만만하지 않았다.

“십만대산에서 나고 자란 놈들입니다. 서쪽 전선이 아무리 험준한 산악이더라도 놈들을 막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그, 그런…….”

청진도장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주먹을 바르르 떨었다.

백리검의 말에 군웅들이 점점 더 동요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한데 궁지에 몰린 덕분일까 번쩍하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하면 대피는 어찌할 것이오!? 맹의 전력만이 아니라 민초들까지 피신시켜야 하는 상황인데 그럴 인력이 있다 보시오?”

그 한 수에 좌중의 고개가 위아래로 흔들거렸다.

싸울 전력도 부족한데 수많은 백성들을 인솔할 인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거라면 문제없습니다.”

백리검은 바닥에 내려놓았던 것을 집어 들었다.

흰 천에 쌓여 있는 그것은 기다란 물건이었다.

천을 벗겨 내자 그 속에 든 것은 비취색을 띠는 지팡이었다.

“저, 저것은!”

“소림의 신물이다!”

군웅들이 그것을 알아보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백리검은 지팡이를 바닥에 찍으며 외쳤다.

“그렇습니다. 소림의 녹옥불장입니다. 이 녹옥불장의 인장을 찍어 섬서성에 위치한 소림 속가 문파에게 전서구를 띄우는 겁니다. 소림방장의 명이나 다름없는 효과를 발휘할 테니 발을 벗고 나서겠지요. 그들로 하여금 민초들을 대피시키면 될 것입니다. 소림 본산이 봉문한 것이지 속가 문파들은 강호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니까요.”

속가마저 봉문을 하면 먹고 살 길이 없어지는 것이다.

해서 일반적인 봉문은 본산에 한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들이 무림의 분쟁에 참여하려면 본산의 허락이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역사가 깊은 만큼 천하에서 가장 속가 문파가 많은 곳이 소림이지 않습니까. 본산의 봉문으로 적극적인 참전은 어려우나 녹옥불장의 힘이면 그 정도는 가능할 것입니다.”

기세가 다시금 백리검에게 기울고 있었다.

“백리가주가 어찌 녹옥불장을 지니고 있는 것이오? 그게 진품이긴 한 것이오?”

청진도장이 따져 묻자 백리검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다들 강소성에서 일어났던 가왜변란에 대해서 알고 계실 것입니다. 당시 활약했던 일세영웅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소문이 무성하던 그 신진고수 말이오? 그가 어쨌기에 언급하는 것이오?”

“그가 밝히길 스스로 무허대사님의 제자라 했습니다. 이 녹옥불장은 그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그가 무허대사의 제자인 것은 어찌 증명하오!? 무허대사가 후인을 두지 않은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 아니오!”

청진도장이 악을 쓰며 말도 안 되는 거짓이라 치부했다.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그건 직접 보고 판단하시지요.”

백리검이 오른쪽 회의장 문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곳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한 명의 사내가 당당히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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