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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178화 (178/206)

<기적의 이혼대법 178화>

역천환시대진.

묘 선생이 고안하고 개발한 환영진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강력한 진법이다.

사실 말이 환영진이지 진의 기능은 하나였다.

바로 진법의 영향 아래 있는 생명체의 사고를 정지시키는 것.

사고가 정지되면 진법에 갇혀 있는 기간 동안 대상자는 기억이 날아가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당하는 자의 입장에서 시간이 정지되는 환영진이라 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천환시대진의 이론은 완성되어 있소.”

묘 선생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구현하기 위한 조건은?”

“교주, 정말 그걸 시도할 생각이오? 내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그건 엄청나게 위험한 진법이오.”

진법을 성공시키기도 힘들지만 자칫 문제라도 생기면 사고가 정지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백치가 될 수도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이 교도들의 목숨을 보전할 유일한 방법이오.”

혈교도가 된 수하들을 죽이지 않기 위한 어쩔 수없는 선택이었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광인으로 남아 오욕을 뒤집어쓰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이었다.

“하면 일단 장소를 선정해야 하오.”

“어디요? 그곳이?”

“용맥이라고 알고 있소?”

“풍수지리에 나오는 땅의 혈자리 말이오?”

“맞소. 지기가 모여 정기를 형성하는 지맥의 으뜸. 용이 잠자는 맥이라 하여 용맥이라 부르지. 내 듣기에 혈교도의 수가 약 오만 명이라던데 맞소?”

“대충 그 정도 되오.”

“오만 명을 진법에 가두려면 천하에 딱 두 군데 그만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용맥이 있소.”

진법은 천지간의 기운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는 공부.

그 조화를 발생시키려면 규모에 따라 그만한 기운이 바탕이 되는 장소여야 했다.

“하나는 사천성 문천, 다른 하나는 섬서성 화산이오. 두 곳 모두 신룡의 맥이라 불러야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정기가 잠들어 있소. 이십 년 전에 있었던 섬서대지진도 그 용맥이 움직였기에 그랬던 것이지.”

“섬서성이면 바로 코앞이군.”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다니.

천하의 단 두 곳 중 하나가 바로 지척이란다.

마치 준비된 것처럼 말이다.

하늘의 그물이 성긴 듯하나 빠져나갈 수 없다더니 그 그물이 눈앞에 와있는 기분이었다.

다른 말로 운명을 느꼈다고나 할까.

“한데 그곳에 혈교도들을 다 모을 수 있겠소? 놈들은 다섯 갈래로 나누어 진격 중이라 하던데? 더구나 화산파가 자신들 앞마당을 전장으로 삼으려 하겠소?”

“어떻게든 해야지.”

적사결은 그 장면을 끝으로 과거 회상을 끝내고 뒤쪽을 다시금 주시했다.

한참을 달렸으나 여전히 혈교도들은 살기와 광기를 뿌리며 쫓아오고 있었다.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놈들을 유인하는 것은 문제없을 듯 보였다.

“담영.”

“부르셨습니까.”

“이대로 저 녀석들을 달고 화산까지 오너라. 본좌는 먼저 가 있으마.”

“완안 장로는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당분간 깨어나지 못할 것이니 감시만 잘하면 될 것이야.”

“존명.”

적사결은 옆에서 달리는 당연희에게 눈짓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샛길로 빠지며 부대와 헤어졌다.

“한데 의천맹에 가서 뭘 어쩔 거예요?”

“말했잖느냐. 전장을 화산으로 삼아야 한다고 설득할 것이라고.”

“그게 가능하겠어요? 화산파가 허락할 리 없잖아요.”

“그놈들 허락 따윈 필요 없다. 무림의 연맹체 중에 가장 단합이 안 되는 곳이 바로 의천맹 아니더냐. 적당히 구슬리면 제놈들이 알아서 화산파를 제물로 삼을 것이야. 감숙대전에서 멸문한 공동파처럼 말이다. 흐흐.”

지금의 상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살아남은 공동파의 제자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감숙에서 유격전을 펼치고 있지만 의천맹은 선발대나 구조대를 파견하지 않는 상황.

의천맹은 그들이 혈교의 발걸음을 하루라도 늦춰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서두르자. 사천회와 관장로 쪽도 혈교의 부대를 유인하기 시작했을 터.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두 사람은 빠르게 섬서성으로 향했다.

결전지가 될 그곳으로.

*   *   *

“백리 가주님. 찾으시는 분이 계십니다.”

시비의 말에 백리검은 회의를 잠시 멈추었다.

원탁에는 아들인 백리황과 장로 백리청, 그리고 각 부대의 대주급이 자리해 있었다.

그들은 맹주령에 따라 가문의 전력 대부분을 이끌고 의천맹 본단으로 온 것이었다.

“누구라 하더냐?”

“성함을 여쭈어 보니 적운이라 하셨습니다.”

그 말에 백리황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적운님!?”

“예, 그리만 전하면 아실 것이라고…….”

“어서, 어서 모셔 오시오. 아니, 내가 직접 나가겠소. 어디 계시오?”

“그게…… 접객당에 계십니다.”

백리황은 시비를 앞세워 한 달음에 접객당으로 달려갔다.

그곳엔 남녀 한 쌍이 있었고 그는 활짝 웃으며 사내에게 포권했다.

“적운님! 이렇게 빨리 다시 만나게 되는군요.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

당연희는 자신을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그를 보며 슬쩍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얼굴은 강소성에서 활동할 당시의 외모, 젊은 시절 적사결의 얼굴이었다.

그랬기에 백리황이 한 눈에 알아보고 다가온 것이었다.

그 모습에 적사결이 검지를 까딱거리며 말했다.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다.”

“……?”

백리황이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본좌라고. 이놈아. 키는 좀 큰 것 같은데 어찌 여전히 눈치가 없느냐.”

“에엑!?”

휙휙.

고개가 더욱 빨리 양쪽을 오고갔다.

결국.

“으이구.”

빠악.

적사결의 꿀밤이 백리황의 머리통에 작렬했다.

그제야 그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손맛을 보아하니 적운님이 맞으시네요.”

“꼭 맞아야 아느냐? 네놈은 하여튼 볼 때마다 답답하구나.”

“한데 어찌 된 겁니까? 어쩌다가 이분과 몸이 바뀌신 거예요?”

백리황은 대략 반선주를 사용했음을 짐작했다.

“그럴 일이 있었다.”

“적운님도 실수란 걸 하시는군요. 이제야 좀 사람으로 보이네요.”

“뭐, 인마?”

“농담이에요, 하하. 가시죠. 아버님과 어른들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백리황은 앞장서며 백리세가가 전용으로 사용하는 전각으로 향했다.

그곳은 의천맹주 종리천이 자신에게 힘을 실어 준 보답으로 건물 하나를 통째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준 곳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서 백리황은 앞서 있었던 상황을 백리검과 가솔들에게 설명했다.

그들은 과거 반선주 사건을 겪은 덕분인지 빠르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해결할 방법은 있는 것이오? 그것이 마지막 한 병이었다 들었는데.”

백리검이 적사결에게 물었다.

“물론이오. 지금 새로운 반선주를 제작 중이니 조만간 손에 넣을 수 있을 듯하오.”

“흐음, 다행이구려. 한데 맹에는 무슨 일로 온 것이오? 혹시 혈교와의 전쟁을 돕고자 온 것이오?”

그는 여전히 적사결이 일인전승의 정파 무문, 적검문의 제자로 알고 있었다.

가왜변란 당시에도 큰 공을 세운 인물이기에 이번 혈교의 사건도 도우러 온 것이라 여긴 것이었다.

“그렇소.”

“역시. 그대는 내 지금껏 봐 온 자들 중 가장 훌륭한 협의지사요. 맹을 대신해 감사의 말을 전하오.”

그는 정중하게 포권하며 적사결을 환대했다.

당연희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천마신교의 교주에게 협의지사? 이 사람 취불의 몸으로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닌 거야?’

보면 볼수록 가관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들이 적사결의 정체를 알고 나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하나 그랬다간 또다시 눈탱이가 밤탱이가 될 테니 차마 일을 저지를 순 없었다.

‘어쩌다가 내가 이 사람 눈치를 보게 된 거지.’

사천회주이자 사천당가의 가주인 숙부의 눈치도 보지 않던 자신이었다.

사천제일의 여걸이라 자신하고 있었기에 지금의 변화는 색다른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적사결이 그녀를 소개했고 백리검이 물었다.

“그래서 이분이 사천회주의 조카인 독비화 당연희 소저란 말이오?”

적사결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소.”

“어쩐지 미모가 범상치 않다 했소. 과연 사천제일미라는 별호가 아깝지 않군.”

그 말에 당연희가 웃으며 포권했다.

“과찬이십니다. 천풍 대협이야 말로 듣던 것보다 더 훌륭한 분이신 걸요. 듣자 하니 의천맹이 이렇게 빨리 전열을 가다듬은 것은 대협 덕분이라 들었어요. 정파인들은 모두 대협께 감사해야 할 거예요. 준비한 시간이 긴 만큼 피를 덜 흘릴 테니까요.”

“하하하, 맹도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 칭찬받고자 한 일이 아니오. 너무 금칠하지 마시구려.”

두 사람은 칭찬으로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적사결이 슬슬 이번 방문 건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가주께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소.”

“적 대협의 말이라면 귀담아 들어야겠지. 말씀하시오.”

“여기 당 소저가 이곳에 온 이유이기도 하오. 그대도 사천회가 혈교를 저지하고 있는 것을 들었을 것이오. 그렇지 않소?”

백리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항상 중립을 지키던 그들이 그렇게 나선 것에 무척이나 놀랐으니 말이오. 맹 내부에서도 사천회의 움직임을 해석하는데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오. 혹시 당 소저는 사천회의 사자로 이곳에 온 것이오?”

“그렇소. 그녀가 암룡신존을 대신하여 온 것이오.”

“한데 어찌하여 맹주가 아닌 나를 먼저 찾아온 것이오? 설마 나에게 청탁을 하러 온 것이오?”

적사결과 백리세가와의 친분.

백리검은 그 관계를 이용해 사천회에 유리한 쪽으로 힘을 써달라는 청으로 받아들였다.

“맞소. 맹 내에서 백리 가주의 입지가 높아졌다 들었소. 그 때문에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오.”

“허허, 청탁하는 사람이 너무 솔직한 거 아니오, 적 대협?”

가감 없이 인정하자 허탈해지는 백리검이었다.

일가의 수장으로서 많은 청탁을 받아봤지만 이렇게 대놓고 도와달라는 청은 처음이었다.

“아버님. 일단 적운님 말씀을 들어 보시지요. 이유 없이 청을 할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백리황이 옆에서 거들었다.

천마신교의 교주라는 진짜 정체를 알기에 그가 ‘도움’을 청한다는 말에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이었다.

“알고 있다, 이 녀석아. 질투 나니 너무 그리 편들지 말거라.”

“……네, 하하.”

그 모습에 적사결은 살짝 미소 짓고는 말을 이었다.

“먼저 사천회가 움직인 배경에 대해 설명하자면 천마신교와의 동맹 때문이었소.”

“동맹에 대해서는 맹에서도 알고 있소. 한데 그 움직임이 오로지 혈교에만 해당되는 것이오?”

혈교를 넘어 의천맹까지 영향을 미칠 것인지 묻는 것이었다.

동맹을 맺지 않았던 사천회가 천마신교의 손을 잡으면서까지 움직인 것은 보다 큰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의천맹이 하기 나름일 것이오.”

“무슨 뜻이오?”

“한 가지 더 말해 주자면 천마신교는 사무련과도 동맹을 맺은 상태요.”

“……!”

백리검은 눈썹을 잘게 떨었다.

세 집단이 손을 잡았다면 혈교가 문제가 아니다.

“내 가주께만 드리는 말이니 섣불리 맹주나 다른 자에게 발설하면 안 되오. 그리되면 내 의천맹의 앞을 장담할 수 없으니.”

“적운 그대는 도대체 누구요? 어찌 그 중심에 당신이 있단 말이오?”

“말했다시피 당연희 소저와 몸이 바뀌며 우연히 그 중심에 섰을 뿐이오. 일단 부연 설명을 하자면 천마신교는 혈교를 저지하기 위해 사천회와 사무련의 동맹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오. 의천맹이 협조를 잘해 주어 혈교를 무사히 막아 낸다면 그들도 거기서 동맹을 끝낼 것이오.”

“하면 천마신교가 동맹의 중심이다?”

“바로 그렇소.”

백리검은 침음을 삼키며 어렵게 물었다.

“내가 해 주었으면 하는 일이 무엇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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