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77화>
* * *
그그긍.
노백이 지나간 자리를 석문이 내려오며 통로를 막았다.
그가 새로운 길을 지날 때면 그러한 문이 계속해서 내려왔고 족히 스무 번이나 그런 과정이 되풀이되었다.
‘설사 비밀 통로를 발견하더라도 이 정도면 추적하기 힘들겠지.’
이곳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통로가 바뀌는 일종의 미로였다.
화살이나 함정 같은 살상 기관은 없지만 일단 발을 딛기만 하면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
격세석으로 만들어진 이곳은 설사 강기성강의 고수라도 쉽사리 뚫을 수 없기에 노백은 자신의 안전을 어느 정도 자신했다.
‘미안하오, 염 대주. 이곳은 문주 전용이라 함께 올 수 없었소. 만약 그대가 죽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완성된 반선주를 천마신교에 보내리다.”
노백은 잠시 한숨을 쉬고는 걸음을 옮겼다.
한데 그의 눈앞에 기괴한 장면이 펼쳐졌다.
스르륵.
마치 유령처럼 천장을 통과하며 내려오는 자.
그는 통로의 반대편에 발을 딛고는 노백을 향해 말했다.
“하오문의 쥐새끼 아니랄까 시궁창을 이용해 도망가는 것이냐.”
“……창궁검제.”
노백은 침음을 삼키며 오른손으로 벽을 더듬었다.
그러자 둘 사이에 벽이 내려오며 통로를 가로막았다.
동시에 오른편의 벽이 올라가며 새로운 길이 생겼다.
노백은 망설이지 않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한데.
스르르륵.
흐릿한 신형으로 벽을 통과하며 나타난 남궁건은 귀기가 흐르는 눈빛을 번득이며 그를 노려보았다.
노백의 입장에서는 귀신을 보는 듯 가슴이 철렁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두려운가? 마음속에 공포가 보이는군.”
“정말 창궁검제가 맞는 것이오?”
“천하에서 가장 방대한 정보를 다루는 하오문이 본좌를 몰라 묻는 것인가?”
“너무도 잘 아오. 하나 알고 있는 것과 지금 보는 그대의 모습이 너무 달라 묻는 것이외다.”
어느새 노백은 등이 축축해짐을 느꼈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목이 날아갈 것만 같은 서늘함이 온몸을 휘감고 있기 때문이었다.
“질문은 본좌가 한다. 하니 너는 가감 없이 답만 하면 되느니라. 첫 번째 질문이다. 너는 하오문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더냐?”
“내가 순순히 대답할 것 같소?”
“허허, 본좌가 네 입 하나 못 열게 할 것 같으냐?”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보시오.”
사무련의 우방인 하오문이 남궁세가에 협조할 순 없다.
심지어 자신은 통각을 끊었기에 고문도 통하지 않고 암시가 걸려 있어 세뇌조차 할 수 없는 몸이었다.
“자신하는 걸 보니 꽤 높은 자리에 있는 모양이군.”
남궁건의 손 위에 반투명한 검형이 생성되었다.
앞서 철비환을 상대할 때와 달리 단검 정도로 아주 작은 크기였다.
피잇. 푸욱.
빛살처럼 날아간 검형.
노백의 무위가 결코 낮지 않은데 그는 피하지도 못하고 가슴에 공격을 허용했다.
“이, 이건.”
“무릇 모든 건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이는 법이지. 말하라. 너는 누구냐?”
그 일격은 중단전을 노린 것이다.
노백의 마음 자체를 지배하에 둔 수법.
간단히 말하자면 남궁건에 대한 적대적인 마음을 백천악을 대하는 수준의 호감으로 돌려놓은 것이었다.
“심의백이라 하오. 하오문의 문주 대행을 맡고 있소.”
“문주는 어디 있느냐?”
“죽었소. 해서 다음 문주를 선출하기 전 본인이 대행을 맡고 있는 것이오.”
“흐흐, 이거 월척을 한 번에 잡았군. 하면 두 번째 질문을 하마. 본좌의 눈을 앗아 가고 창궁검대를 몰살한 사무련의 신진고수, 그놈은 도대체 누구냐?”
“천마신교의 교주, 광혈존 적사결이오.”
“……?”
남궁건은 어이가 없었다.
비록 한 번도 대면한 적은 없지만 사마 오대존의 일 인인 만큼 용모파기를 본 적이 있으니까 말이다.
더구나 그는 나이가 쉰에 이른다 들었기에 말도 안 된다 여긴 것이었다.
‘심령의 지배는 풀리지 않았다. 한데 어째서 저런 말을…… 혹시!’
남궁건은 다시 질문을 이었다.
“놈이 인피면구를 쓴 것이냐?”
“아니오.”
“끄응, 하면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 보거라.”
노백은 천천히 모든 상황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 눈앞에 백천악이 있다고 생각하고 보고를 하듯 세세하게 알려 주고 있었다.
남궁건은 그 얘기를 들으며 점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허어, 그런 어처구니가 없는 술법이라니.”
믿어지지 않는 말이었다.
이혼대법으로 취불과 광혈존의 몸이 바뀌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모든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다니.
더구나 그 취불은 지금 천마신교를 혈교로 바꾸고 자신도 혈마라 지칭하고 있다는 말은 듣고 나서도 헛소리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자, 잠깐. 호교대법사! 그놈은 여기 왜 있었던 것이냐?”
“반선주를 만들기 위해 나를 찾아온 것이오.”
“만들어 주었는가?”
“아직 미완성이지만 그렇소.”
“미완성이 정확히 무슨 의미냐. 그걸 마시면 어떻게 되지?”
“칠 할의 확률로 이혼대법이 기능하여 혼백의 전이가 가능할 것이고 삼 할의 확률로 실패할 것이오. 만약 실패한다면 혼백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소멸하여 백치가 될 것이외다.”
남궁건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호교대법사가 그 정도로 연루되어 있다면 앞서 노백의 말이 사실이라는 뜻이었다.
그러고 보면 과거 그놈에게서 보리연화공의 기운도 느꼈었다.
남궁건은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물었다.
“어쨌든 놈이…… 흉수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군?”
“그렇소.”
“크아아악! 빌어먹을!”
남궁건이 진득한 살기를 폭사시키자 비밀 통로 전체가 진동하며 흙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렸다.
생각지도 못했던 흉수의 정체.
그런 줄도 모르고 사무련의 짓이라 생각하고 정사대전까지 벌어진 상황.
오대세가 전체가 놈에게 농락당했다는 것에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그 반선주라는 것. 만들 수 있는 자들이 누가 또 있나?”
“나 말고는 없소. 아는 자들은 모두 죽었고 그 때문에 그들이 나를 찾아온 것이오.”
“하면 제조법은?”
“문서로 남긴 것도 없소. 오직 구전으로 문주에게만 내려져 온 비전이오.”
“너만 없다면 더 이상 그 개 같은 술법이 세상에 나올 일은 없겠군.”
쫘아아악.
찰나지경에 일어난 일이었다.
남궁건의 지팡이에서 일어난 검강이 노백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양단해 버린 것이었다.
주르륵. 쿵.
반쪽으로 갈라진 시체가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남궁건은 차가운 눈빛을 뿌리며 신형을 돌렸다.
“광혈존. 감히 본좌를 가지고 논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그의 신형이 다시금 흐릿하게 변하며 유령처럼 천장을 뚫고 지상까지 솟아올랐다.
동시에 최대치로 심안의 탐지능력을 확대했다.
‘북쪽인가. 서둘러야겠군.’
수하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북쪽으로 향하는 것은 유일하게 살아남은 염마천의 뒤를 쫓고 있는 것일 터.
창궁비연대는 추적은 능할지언정 염마천을 잡을 수는 없다.
남궁건의 신형이 스르륵하고 유령처럼 사라졌다.
* * *
적사결은 병력을 이끌고 북진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동 중에 혈교의 움직임을 수시로 확인했고 다섯 개로 나뉘었다는 혈교의 부대 중 하나와 맞닥뜨릴 수 있었다.
“교주님, 완안 장로가 이끄는 부대입니다.”
벽은이 옆에서 첩보결과를 말해 주었다.
“그래, 첩보대로구나. 작전대로만 하면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다들 무리하지 말거라.”
“존명!”
부대장들이 포권과 함께 짧게 읍했다.
“전투에 앞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하겠다. 손속에 자비를 두지 말거라. 저들이 비록 노괴의 흉계에 빠졌다지만! 그대들의 형제였고 벗이었지만! 지금 그대들의 형제와 벗은 옆에서 서 있는 이들이다. 모든 죄업은 본좌가 짊어질 것이다. 저들을 죽이게 되더라도 그대들은 죽지마라! 지금은 적으로서 저들을 대하라! 이것은 명령이기 이전에 본좌의 부탁이다!”
“…….”
마인들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형제들의 가슴에 칼을 박을 생각에 마음이 착잡한 상황이었다.
한데 교주가 자신이 그 죄를 짊어질 테니 죽지 말라는 한 마디를 하자 홀가분한 것보다는 오히려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자 그 마음이 마기로 화해 불같은 투지를 일으켰다.
심상의 어두운 마음을 먹이로 힘을 키우는 마공의 공능.
그렇게 힘을 북돋는 것이 곧 그들의 사기를 독려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힘은 그들의 지존인 적사결을 위한 신심으로 다시금 불타올랐다.
“가자! 혈교와의 첫 개전이다!”
“신교출세! 만마앙복!”
적사결을 필두로 검은 물결이 대지를 뒤덮으며 달려 나갔다.
그렇게 거리가 오십 장가량 되었을까.
“강산!”
“예, 교주님!”
강산은 이천의 궁수대를 멈춰 세웠고 일제히 시위를 걸었다.
그들 모두는 강산이 나무의 술로 만들어 준 목궁과 목시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손을 떠나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술법의 경지는 상승된 상태였다.
피피피피피핑. 쏴아아아.
쏘아진 이천 개의 화살은 폭우를 내리는 듯한 소리로 완안가의 마인들을 덮쳤다.
하나 그것으로는 그들의 주위를 끌 뿐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다.
혈마열반결이 그들 모두를 이전보다 더욱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 것이었다.
“개진!”
적사결의 호령에 각 부대는 합격진을 펼쳤다.
화살에 주춤한 틈을 타 밀어붙이는 형세였다.
보통 처음의 격돌에서 많은 사상자가 나는 것을 생각하면 궁수대는 그것만으로도 큰 역할을 한 것이었다.
퍼퍼퍼퍽.
선두에서 보이는 적사결의 돌파력은 단연 발군이었다.
그럼에도 그 손에 죽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이유는 독공에 있었다.
스치기만 해도, 아니 주변에 있기만 해도 거품을 물고 쓰러졌기 때문.
적사결의 손길은 미혼산이고 신선폐였으며 마비산이었다.
“비켜라!”
대열이 갈라지며 튀어나온 이는 완안가의 가주이자 팔대 장로의 일 인, 완안지였다.
혈교도가 되었다지만 수장이 선봉에 서는 천마신교의 원칙을 잊지 않은 건지 생각보다 빨리 조우할 수 있었다.
그의 뒤에는 철검을 든 완안가의 정예가 철벽처럼 앞을 막아섰다.
“담영, 완안철검대를 막아라.”
명이 떨어지자 담영이 수라혈검대를 이끌고 완안지의 직속수하들을 상대해 갔다.
“완안 장로. 꼴이 말이 아니군.”
적사결은 붉은 승복과 가사를 두른 완안지에게 말을 걸었다.
“본좌에게 꼴? 계집년이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큭큭.”
핏발이 선 완안지의 눈에서는 혈광이 비쳐 보였다.
삼지안을 개안한 적사결은 그 눈을 통해 마기가 골수까지 미쳤음을 볼 수 있었다.
‘젠장, 대화가 안 되겠군.’
예상보다 상태가 더 안 좋다.
적사결은 이를 바드득 갈며 초수를 펼쳤다.
“본좌에게 선공 따위 통할 것 같으냐!?”
칠대마가 중 철벽의 완안이란 수식어가 붙은 가문이다.
완안지는 그 가문의 수장인 만큼 수비에 특화된 마인이었다.
하나,
뻐어어어어억.
광룡파천권의 일 권이 완안지의 방어를 부수고 명치 깊숙이 틀어박혔다.
그 즉시 파고든 적사결의 독기.
완안지는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며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칠대마가의 무공은 본좌가 누구보다 잘 알지. 철벽? 그건 다른 이들에게나 통하는 말 아닌가.”
그 말을 끝까지 듣지도 못하고 완안지는 적사결에게 기대듯 쓰러졌다.
기운을 보는 삼지안과 더불어 무공의 파훼법, 거기다 독공까지 더해지니 팔대장로라는 극강의 고수가 일초지적도 되지 못한 것이었다.
“모두 퇴각한다!”
완안지를 어깨에 둘러맨 적사결이 명을 내리자 썰물처럼 마인들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때를 절묘하게 틈타 하늘에서 화살비가 내리며 혈교도들의 발을 묶었다.
천마신교의 마인들이 달아나면 혈교도들이 그 뒤를 쫓는 형세.
그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동쪽으로 이어졌다.
‘역천환시대진을 펼치려면 섬서성까지 유인해야 한다. 다른 이들도 잘해 줘야 할 텐데.’
적사결은 혈교도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들은 수장인 완안지가 납치당했기 때문인지 더욱 광기를 흘리며 쫓아오고 있었다.
자신을 따랐던 이들이 자신을 죽일 듯이 쫓아오는 광경은 마음이 찢기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무허, 갈기갈기 찢어 죽여 주마.’
그 감정은 모두 무허에게로 향했다.
적사결은 그렇게 쌓이는 모든 감정을 놈을 향해 분출할 그때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