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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176화 (176/206)

<기적의 이혼대법 176화>

다섯 개의 항아리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아래의 항아리에 난 주둥이로 맑은 액체 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노백은 옥병을 그 밑에 갖다 대었다.

“이번엔 성공할 것 같소?”

염마천이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지금이 벌써 세 번째 시도였다.

앞서 두 번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은 개선품이지만 염려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보시오, 염 대주. 나도 죽겠소. 너무 그리 재촉하지 마시오.”

노백은 피로가 가득한 푸석한 얼굴로 답했다.

낮에는 사무련을 위해 정보전을 지휘하고 밤에는 반선주를 연구한 지 벌써 보름.

그는 쪽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었다.

“노사도 알겠지만 급한 상황 아니오.”

염마천은 감숙성에서 벌어지는 혈교의 동태를 들었기에 초조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교의 형제들에게 합류하고 싶었다.

“휴우, 내 계산상 이번에는 칠 할 정도 될 것이오. 다음번에는 구 할까지 성공률을 높일 자신이 있으니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지켜보시오.”

“……칠 할.”

염마천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번 시도로 반선주가 만들어지더라도 이혼대법이 제대로 기능할 가능성이 칠 할이란 말이다.

삼 할의 불안함이 있는 미완성품을 지존에게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꼼짝없이 보름을 더 보내야 한다는 말.

염마천은 절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 염 대주의 마음을 알지만 서둘러서 되는 일이 아니니 동지들을 믿으시구려. 사천회까지 움직였으니 아무리 무허대사라도 암룡신존과 적사결 교주, 두 절대 고수를 당해 내진 못할 것이오.”

노백은 곰방대를 입에 물며 그를 위로했다.

염마천은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신형을 돌렸다.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소.”

“그러시구려. 일다경 정도 걸릴 것이니 그때쯤 오면 될 것이오.”

염마천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정문 쪽으로 다가가자 그곳엔 철비환과 철혈척살대원들이 빈틈없이 경계 중에 있었다.

한시도 한눈을 팔지 않는 것이 과연 사무련 호법가의 정예다웠다.

“아직 완성이 안 된 건가?”

철비환이 어깨가 축 늘어진 염마천을 보며 물었다.

“보름은 더 걸릴 듯하오.”

“우리 코도 석 자인데 시일이 더 걸린다니 골치 아프군.”

그는 짧은 탄식을 내뱉으며 염마천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렇지 않아도 노백의 과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 반선주 연구가 더해져 자칫 쓰러질까 염려될 정도.

한데 보름이 더 걸린다니 걱정은 더 깊어져 갔다.

더구나 노백이 제 일을 다 할 수 있도록 안전상 호위로 파견되었는데 정작 그가 몸져눕는다면 다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어쩌겠소. 결자해지라고 하오문이 저지른 일인데 하오문이 수습해야지.”

염마천은 그렇게 말하고는 산보를 가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때 그의 시야에 한 명의 중년인이 들어왔다.

맹인인 듯 두 눈을 감고 지팡이를 쥔 그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있었다.

“창궁검제!?”

그의 정체는 옆에 선 철비환의 입에서 나왔다.

사무련의 주적이라 할 수 있기에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이 목소리는 철혈권인가? 그대 정도의 인물이 있는 것을 보면 잘 찾아왔군.”

남궁건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창궁비연대를 통해 알아낸 하오문 수뇌부의 위치.

워낙 신출귀몰하기에 큰 기대 없이 움직였으나 한 번에 거물을 잡은 모양이었다.

“폐인이 되었다 들었는데 몸은 회복한 것인가?”

“어느 정도. 하나 보시다시피 시력은 완전히 잃었지.”

남궁건은 손가락으로 눈을 툭툭 두드렸다.

“애석하군. 천하의 창궁검제가 그리되다니.”

“애석하다라? 웃기는군. 가해자가 피해자를 위로하는 척이라니. 큭큭.”

“어쩌겠는가. 이백 년을 이어져 온 관계가 이런 것을. 말이라도 좋게 오고 가야지 않겠나. 흐흐.”

두 사람은 미소 속에 칼을 숨긴 채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그러다 남궁건이 문득 염마천을 향해 물었다.

“그대는 누구이기에 마도인이 흑도놈과 같이 있는 것이지? 갈무리된 마기로 보건데 뜨내기는 아닌 듯한데.”

“천마신교의 염마천이오.”

“염마천이라면 호교대법사? 설마 이곳에 광혈존도 와 있는가?”

천마신교의 교주를 지키는 검이라 불리는 호교대법사.

그가 이곳에 있다면 교주도 자리한 것이라 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아니, 지존께선 이곳에 계시지 않소. 그대는 무슨 일로 이곳에 온 것이오?”

염마천은 대략 짐작은 가지만 능청스럽게 물었다.

“그건 그대와는 상관없는 일. 이보시게, 철혈권!”

남궁건은 철비환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본좌는 그 흉수 놈을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 말해 보라. 그놈은 어디에 있는가?”

“글쎄 내가 그걸 대답할 이유가 있나?”

“그대가 답하지 않는다면 저 장원 안에 있는 놈들에게 물을 것이다.”

“그건 또 내가 허락하지 못하겠는데 말이지.”

철비환은 은연중에 기세를 풍기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가 한 걸음씩 계단을 내려가자 진각을 밟은 듯 바닥이 쩍쩍 갈라져 갔다.

“안에 있는 놈이 뭘 알긴 아는가 보군.”

남궁건은 피식 웃으며 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

기세를 빈틈없이 갈무리한 모습이 철비환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앞도 보이지 않는 주제에 홀로 이곳까지 오다니. 한 번의 패배가 그대를 이렇게 망가뜨려 놓은 것인가? 예전의 철두철미함은 찾아볼 수가 없군.”

철비환은 주먹을 말아 쥐며 ‘뚜둑’하는 뼈가 마찰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남궁건을 죽일 생각이었다.

이전이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나 시력을 읽은 지금이라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허허, 망가졌었지. 철저하게 말이야. 하나 그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서니 더 높은 경치가 보이더군. 두 눈이 보이지 않아도 더욱 선명히 말이야!”

남궁건이 감고 있던 눈을 크게 떴다.

눈동자가 사라져 흰자만이 가득한 그 눈은 무척이나 괴기스러웠다.

*   *   *

“크웨에엑!”

철비환의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심맥이 가닥가닥 끊어진 상황.

그 피가 역류해 토혈이 된 것이었다.

‘이, 이럴수가…… 단 삼 초에…….’

철비환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의 일 초에 선공을 가했던 자신의 절초가 와해되었고, 이 초에 심맥이 끊어졌다.

이어진 삼초 에 철혈척살대가 모조리 피를 뿜으며 허물어졌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결과였다.

하나 그는 눈앞에 벌어진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쿨럭, 이보시오, 염 대주.”

“말하시오.”

“내 시간을 벌 테니 그대가 노사를 안전한 곳까지 모셔다 주시오. 부탁하오.”

“그대가 부탁하지 않아도 응당 그리할 것이오.”

“고맙소. 가시오.”

염마천이 그길로 장원 안으로 향하자 철비환은 이를 악물고 두 눈을 번뜩였다.

필사의 각오로 남은 내공을 폭주시키자 붉은 용의 형상을 띤 강기가 양주먹을 타고 올라 허공에서 넘실거렸다.

그의 성명절기인 적룡신권이었다.

“심맥이 끊기고도 그런 힘이라니. 이거 조사님을 뵐 면목이 없군.”

남궁건은 손을 툭툭 털며 실없이 웃었다.

일초에 절명시키지 못한 것이 마치 실수인 양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하긴 지렁이도 밟으면 한 번은 꿈틀한다는데. 그대 정도의 무인이 발하는 회광반조니까 그럴 수도 있겠군.”

“의형께서 내 복수를 반드시 해 주실 것이다.”

“본좌의 무공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다니 백천악에 대한 믿음이 큰 건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지 모르겠군.”

남궁건의 손바닥 위에 반투명한 검형이 생겨났다.

앞서 삼 초식을 펼쳤던 것과 동일한 무공이었다.

‘빛무리가 없는 것이 분명 강기는 아니다. 더구나 방어불능이라니 전설상의 무형검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철비환은 남궁건의 손아귀에 떠 있는 검형을 보며 막연히 추정할 뿐이었다.

“궁금하겠지, 철혈권.”

“저승길 노잣돈으로 알려 줄 수 있나? 흐흐.”

“그대에게 알려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네. 이 무공의 이름.”

“야박하군. 하나 아무것도 모르고 죽는 것보다는 낫겠지. 무공명이 뭔가?”

“제왕무적검. 앞으로 무수한 절대자들을 염라대왕 앞으로 보낼 무공이지. 기뻐하게. 그대가 그 첫 번째 제물이 되는 것을.”

“크하하하. 개소리를 잘도 지껄이는군. 제물이 됨을 기뻐하라니. 네놈도 누구처럼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쿠오오오오.

단말마와 같은 용음과 함께 두 마리 적룡이 솟아올랐다.

“광인은 세상에 해약이 될 뿐! 함께 가자, 검제! 크하압!”

적룡신권의 최후절초, 쌍룡연환포가 불을 뿜었다.

“쯧쯧, 미련하긴.”

희멀건 눈빛을 발하는 남궁건이 부드럽게 손을 휘저었다.

*   *   *

염마천은 노백이 건넨 옥병을 쥐고 인상을 썼다.

창궁검제의 출현을 알리고 함께 가자 말했으나 그가 고개를 저었기 때문이었다.

“염 대주, 무공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던 창궁검제가 혼자 온 것이 무슨 뜻일 것 같소?”

“갑자기 그 무슨 말이오.”

“내 추측하건대 철 가주와 수하들을 앞에 두고 손을 썼다는 것은 혼자 그 모두를 죽일 자신이 있어서 그런 것이외다. 창궁검제는 의천오무제 중에 가장 판단력과 결단력이 뛰어난 자. 그의 행보는 하나하나가 의미가 있소. 아마 그가 이곳에 온 것은 자신을 그렇게 만든 교주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일 터. 하니 함께 움직여서는 둘 다 당할지도 모르오.”

“따로 움직이자? 안 되오. 아직 반선주가 완성되지 않았는데 그럴 순 없소.”

“염 대주. 현재로썬 그것이 최선이오. 그리고 너무 염려할 것 없소이다. 노부가 누군지 잊었소? 허허.”

“…….”

염마천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숨을 삼켰다.

어찌 모르겠는가.

그는 천하에서 가장 신출귀몰하다는 하오문의 문주였다.

“각자 이 자리를 벗어나 다시 만납시다. 나 역시 반선주의 완성을 꼭 보고 싶으니 말이오.”

염마천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남궁건이 자신을 쫓아온다면 노백이 살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꼭 살아남으시오. 죽으면 가만 안 둘 거요.”

“허허, 저승사자보다 무섭다는 천마신교 호교대법사의 말이니 꼭 들어야겠군.”

염마천이 피식 웃으며 신형을 돌리자 노백은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건넸다.

“만약을 대비해 이것 하나만 기억하시오. 반선주의 핵심은 중단전이오.”

“중단전? 그게 무슨 말이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기심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소. 그것이 작든 크든. 저 사람처럼 잘 생기고 싶다, 능력이 뛰어났으면 좋겠다 등등 타인을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마음이 중단전에 작용해 이혼대법이라는 기적이 일어나게끔 해 주는 것이오. 여러 가지 조건이 있으나 핵심은 바로 그것이지.”

“…….”

염마천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대명사가 바로 지존이었다.

한데 그런 그에게 시기심이 있었다는 것은 쉬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일단 알겠소. 하나 그런 말을 하기보다 무사히 다시 만날 생각이나 하시오.”

“허허, 이를 말이오.”

“그럼 무운을 빌겠소.”

염마천은 그 길로 장원을 빠져나갔다.

노백은 잠시 바깥쪽을 살피다 별채의 뒤쪽, 정확히는 장원 안쪽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새 도망쳤나. 흐음.”

장내에 나타난 이는 남궁건이었다.

사무련의 대호법을 상대하고도 그는 상처는커녕 의복조차 깨끗한 상태였다.

“어디 보자…….”

그는 여유롭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심안으로 살피는 것이었다.

그가 보는 세상은 눈으로 보는 것과 달랐다.

온통 검은색 일색에 하얀 실선이 물체의 형상을 보이는 형태.

한데 그 영역은 기감으로 탐지하는 범위를 초월할 정도로 넓었다.

“하나는 밖으로 하나는 안으로. 마기를 지닌 놈은 마교도일 테고. 그럼 저놈이 하오문도겠군.”

남궁건은 지팡이를 짚고 느긋하게 움직였다.

그가 움직이는 방향에는 노백이 향한 비밀 통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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