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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175화 (175/206)

<기적의 이혼대법 175화>

적사결은 방향을 해남으로 잡지 않았다.

노백의 술도가를 떠나자마자 적월과 접선.

해남도의 구양패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중간 지점을 택해 합류한 것이었다.

그곳은 사천과 호남의 경계이자 섬서 바로 아래인 중경이었다.

“신교출세, 만마앙복! 신교의 하늘을 뵈옵니다.”

구양패를 위시로 일만 오천에 이르는 병력이 부복한 채 교호를 외쳤다.

흑의무복의 마인들은 마치 지상에 먹구름을 드리운 듯 보였다.

“구양 장로, 왜 이것밖에 오지 못한 것인가?”

해남에 모인 마인들 중 직접적인 전투가 가능한 인원은 약 삼만이었다.

비록 관패가 이끌고 간 병력 오천이 있다지만 일만 오천의 병력만 이끌고 왔으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흑랑대주의 폐관 수련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여 다소 무위가 떨어지는 교도들을 선별하여 후발대로 남겨 두었습니다.”

최정예만 추려 전속력으로 진군한 것이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인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늦다.

암흑천마공과 천령마기를 합치는 것이 어려울까?

구결만 머릿속에 들었지 실제 운공을 하며 익히지 않았기에 알 도리가 없었다.

“흑사광 대주는 믿음을 저버릴 마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희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될 것입니다. 명을 내려 주십시오.”

구양패의 말에 적사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돌렸다.

“일단 그리하세. 흑영단주.”

“신, 벽은. 지존의 명을 받듭니다.”

“혈교의 현 상황에 대해 파악되었느냐?”

“신강을 지나 감숙성에 진입했고 그곳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 가지 문제에 당면했기에 이를 해결하기 전에는 더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보고하라.”

“첫째, 관 장로 이하 마검귀면대가 동분서주하며 유격전을 펼쳐 진군을 늦추는 중입니다. 둘째, 암룡신존이 이끄는 사천회의 무인들이 오백 리의 거리까지 접근했습니다. 그들을 경계하느라 진군을 멈춘 것도 있는 상황입니다. 두 가지 모두 교주님께서 안배하신대로입니다.”

이 장로 흑마검귀 관패.

그는 일신의 무위도 뛰어나지만 용병술에 있어서도 유격전과 기습에 특히 뛰어났다.

적사결이 혈교의 보급 요충지를 공격하라 명했지만 그것이 무용해지자 직접 부대를 공격하여 진군을 늦추고 있는 것이었다.

암룡신존 당백산.

그는 동맹을 맺은 대가로 병력을 움직인 것이고.

“사천회의 병력 규모는 얼마나 되더냐?”

“일만입니다.”

“그쪽도 최정예만 추린 것이로군. 하면 나머지 한 가지 문제는 무엇이냐?”

“공동파의 잔존 세력입니다. 그들이 산악 지대를 이용해 유격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것들이 아직 살아 있었나?”

“무맥을 보존하기 위해 장문인과 장로들의 적전 제자들을 대피시킨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한데 명맥이 끊기는 것을 각오하고 혈교에 대항하고 있다?”

“그들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어째서?”

“이미 혈교에서 감숙의 모든 사람을 모두 죽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숙에서 나고 자란 그들로서는 참을 수 없었을 겁니다.”

벽은의 말에 적사결은 이마를 짚었다.

아니길 바랐건만 결국 미친 짓거리를 시작한 것이다.

“교주님, 괜찮으십니까?”

“안 괜찮다. 어서 보고나 마저 하여라.”

적사결이 손을 휘젓자, 벽은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정보를 다루는 수장인 만큼 그는 감정을 배제하는 훈련이 누구보다 철저하게 되어 있었다.

“그들은 ‘혈세천하 만악멸진’이라는 교호대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림인은 물론 민초들까지 말입니다. 더구나 최근의 보고에 따르면 관부까지 가리지 않고 있다 합니다.”

“뭐, 뭐!?”

관무불가침이란 불문율을 똥통에 처박아 버리다니……

적사결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자칫 무림 전체가 반란군으로 보일 수도 있는 대사건이었다.

“제기랄! 미쳐도 곱게 미칠 것이지!”

그렇지 않아도 점점 유명무실해지는 관무불가침의 맹약이었다.

한데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어 버리다니.

적사결은 욕설을 내뱉으며 사월을 돌아보았다.

“당장 진무백! 아니, 진평! 아니, 주녹정 황녀에게 연통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황제의 귀에 혈교의 일이 들어가는 걸 막으라고!”

“존명!”

사월은 짧게 읍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녀의 뒤를 흑의 무복의 거대한 덩치 넷이 따라갔다.

그들은 이두한백이었다.

“의천맹은 어찌하고 있느냐?”

“대대적으로 병력을 모집 중입니다. 첩보에 따르면 오대세가를 제외한 정파의 모든 전력을 끌어모으는 모양입니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 아직 병력이나 모으고 있다고? 공동파의 잔존 세력이 생목숨을 갈아 넣고 있는데?”

“본교가 나뉜 것으로 보고 사생결단을 준비하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도 백리세가의 도움으로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합니다.”

“백리세가? 가왜변란을 수습하는 것만으로도 바쁠 텐데 의천맹의 회합에 참석했다고?”

“강소성의 전 무림 문파가 발 벗고 도왔다 합니다. 혼약을 맺은 단목세가의 적극적인 지지로 백리세가는 강소제일가로 인정받았고 그들을 필두로 강소성의 무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사기가 높은 상황입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했다.

변란을 겪으며 제 잇속만 챙기던 무림 문파들이 백리세가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것이었다.

그 배경에는 안휘의 남궁세가, 산동의 황보세가에 눌려 살았던 그간의 분노도 있었을 것이고 말이다.

“휴, 그래도 백리세가가 있어 좀 나은 건가.”

적사결은 교도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모두 듣거라. 지금부터 명을 내리겠다.”

가장 먼저 구양패에게 명했다.

“대장로 구양패. 오천의 교도들을 이끌고 천마신궁을 수복하라. 혈교는 모든 병력을 이끌고 나왔다니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나 신궁 주변과 신강의 민초들을 다독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야. 내 그대에게 중임을 맡기니 부디 백성들을 부탁한다.”

“신, 구양패. 명을 받들겠습니다.”

“강산. 너에게 이천의 교도들을 맡기겠다. 그들로 너만의 궁수대를 꾸려 보거라.”

갑작스런 부름에 강산은 고개를 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 볼 것 없다. 신입 교도라지만 너의 실력은 본좌가 인정하니 말이다. 그리고…… 본교는 실력이 전부니 네 능력을 마음껏 펼쳐 보거라.”

“지존의 명을 신심으로 받들겠습니다.”

적사결은 강산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병력이 너무도 열세인 상황, 한데 혈교의 진격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하니 다른 무인들의 눈에 어찌 보일지라도, 아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혈교도가 된 그들을 멈춰 세워야 했다.

“우문상, 선우환.”

적사결의 부름에 칠대마가 중 우문가와 선우가의 두 가주가 앞으로 나왔다.

그들은 무허에 의해 죽은 전대 가주들의 아들들이었다.

“각자 가문의 가솔들에 더해 도합 이천 명씩 부대를 구성하라. 좌우 양익을 그대들에게 맡기겠다.”

“존명!”

두 사람은 포권하며 고개를 숙였다.

“수라혈검대 이하 나머지 교도들은 본좌와 중군을 맡는다. 각자 편제를 시작하고 한 시진 후에 출발할 것이니 그리 알라.”

“신교출세, 만마앙복!”

교도들은 일제히 부복하며 교호를 외쳤다.

적사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열의 끝, 정확히는 나무에 기대 짝다리를 짚고 있는 배불뚝이 노인을 향해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러자 그는 똥 씹은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적사결도 그를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그들은 한적한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이보시오, 교주. 난 도대체 왜 여기까지 부른 거요? 우리 계약은 저번 달로 끝났잖소.”

묘 선생은 퉁명스럽게 물었다.

십이월을 시켜 맺은 적색 등급의 계약 기간 일 년.

그것이 벌써 지나간 것이었다.

“기존 계약이 끝났으니 재계약하려고 그러는 것이잖소.”

“난 한 번 계약이 끝나면 일 년간 안식년 가지는 거 모르오?”

“알지.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묘 선생이 이해 좀 해 주시오.”

“싫소. 혈교든 천마신교든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얼굴 봤으니 난 그만 집에 갈 거요.”

묘 선생이 신형을 휙 돌렸다.

“후회할 텐데.”

“후회? 뭐 설마 날 죽이기라도 하겠단 것이오?”

“그럴 리 있겠소. 그래도 주종 관계를 맺은 수하인데 나 그리 매정한 사람 아니오. 아, 마침 저기 오는군.”

적사결이 시선을 둔 곳에는 남운적이 걸어오고 있었다.

“찾았느냐?”

“예,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남운적이 내미는 것은 붉은 광채를 띠는 광석이었다.

그 빛깔을 본 묘 선생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눈을 희번덕거렸다.

“이, 이건…….”

어찌 모를까.

까마득한 고대 주술의 시대.

그 중심에 있었던 물건.

기관진식도 고대의 학문에서 갈라져 나온 공부인만큼 묘 선생은 한 눈에 그 실체를 알아보았다.

“신진철이오. 재계약 하겠소?”

“해야지! 당연히 해야지! 암! 일 년이면 되겠소?”

“십 년.”

“이런 씨…… 삼 년 합시다.”

“팔 년.”

“사 년까지 양보하리다. 좀 봐주시오. 내 신궁 비밀 통로를 되살리는 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시오?”

“오 년.”

묘 선생은 입술을 깨물며 노려보고는 신진철을 낚아채 품속에 넣었다.

“원하는 게 뭐요? 또 뭐 시키려고?”

“전에 본좌에게 말했던 진법 있잖소. 그거 어디까지 완성됐소?”

“뭐 말이오? 연구 중인 진법이 한두 가지여야지.”

적사결은 진지한 얼굴로 진법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역천환시대진.”

*   *   *

파삭. 파삭.

가을을 알리듯 발밑의 낙엽은 바스러지는 소리를 울렸다.

그 낙엽을 밟는 주인공은 약관의 사내.

지금은 새로운 남궁세가의 가주가 된 남궁룡이었다.

남궁건이 태상가주로 물러나며 지목한 그는 어린 나이임에도 담담히 가주직을 받아들였다.

이후 벌어진 정사대전.

그는 당연히 세가의 무인들을 이끌고 그 전쟁에 참여하려 했으나 장로들의 반대로 그러지 못했다.

재능이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덧없이 목숨을 잃어선 안 된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

조사전에 발걸음을 한 것이 그것이었다.

끼이익.

조사전의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에는 남궁건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 중이었다.

남궁세가 내에서 가주인 남궁룡과 대장로를 제외한 누구도 그가 무공을 회복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때문에 대장로는 남궁룡에게 남궁건의 수발을 맡긴 것이었다.

“용이 왔느냐.”

등을 보인 채 돌아보지도 않고 누구인지 알아본 남궁건.

비단 발걸음이나 기운만이 아니었다.

시력을 상실한 그는 심안으로 남궁룡을 인지한 것이었다.

“전쟁은 어찌 되고 있느냐?”

“아직 이렇다 할 승전보는 없습니다. 제갈가주와 사무련 소련주의 생사결이 결과를 보지 못하고 있어 전쟁 자체는 소강상태에 있습니다.”

“통천제를 상대로 새끼 봉황이 선전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렇습니다. 옥기린을 패퇴시켰을 때만 해도 후기지수 중에 발군이라 여겼으나 지금은 공공연히 그가 다음 세대의 천하제일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쯧쯧, 통천제 그 친구의 안 좋은 버릇이 악수가 되었나 보구나.”

“안 좋은 버릇이라니요?”

남궁룡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문무에 뛰어남은 물론 하늘의 이치를 달통했다 하여 통천제라는 별호를 얻은 자가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표였다.

비록 십대고수에는 꼽히지 못하나 그는 다재다능한 천재의 대명사였다.

그런 완벽한 무인에게 안 좋은 버릇이 있다니……

“그는 자신보다 약한 자를 유린하다 죽이는 악취미가 있지. 보기에 따라서 완벽한 승리를 위한 철저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으나 애비 정도 되는 무인들의 눈에는 단순히 괴롭히는 것으로 보일 뿐이란다.”

“하면 그 말씀은…….”

“그래. 그놈의 악취미가 새끼 봉황에게는 벽을 뛰어넘는 사다리가 된 게다. 그렇지 않아도 싸울수록 강해지는 부류인 놈에게 적당한 장애물이 되는 친절을 베푼 것이지. 멍청한 놈, 쯧.”

남궁건은 혀를 차고는 말을 이었다.

“한데 그 흉수 놈은 아직 전쟁에 나서지 않았더냐?”

“그놈과 사무련주 둘 다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해서 모용가주도 그들을 견제하느라 움직이지 않고 있고요.”

“이상하구나…… 나와 도제, 권왕을 쓰러트린 놈이 정작 정사대전에서는 뒤로 물러나 있다니…….”

“수뇌부에서도 그 부분을 의아하게 여기고는 있습니다. 전쟁이 소강 상태에 빠진 원인이기도 하고요.”

남궁건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창궁비연대를 전장에서 빼내고 하오문의 수뇌부를 조사하는데 모두 투입하거라. 그 박쥐들이라면 그 씹어 먹을 놈의 정체를 알고 있겠지.”

그는 직접 하오문을 뒤집어엎을 속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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