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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174화 (174/206)

<기적의 이혼대법 174화>

“놈들의 현 위치는? 어디까지 진군했지?”

적사결의 물음에 노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다음 첩보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수하들의 말에 따르면 병력을 다섯 갈래로 나누어 진군 중이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합니다.”

적사결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자신을 따르는 이들 덕분에, 현 혈교는 본래 천마신교 전력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 탈마동의 마인들을 합류시켰다지만 부대를 나눌 정도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무허가 다섯 개로 부대로 나누었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첫째, 부대를 나누더라도 의천맹 정도는 밀어붙일 수 있다는 자신감.

둘째, 흑영단주 벽은이 말한 것처럼 무림인과 민초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인간을 말살하겠다는 목적으로 병력을 넓게 퍼트린 것.

두 가지 모두 놈이 미치광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떠올릴 수 있었다.

“무허가 다섯 부대 중 어느 곳에 속하는지도 모르는가?”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모두가 붉은 승복과 가사를 둘러 복장을 통일했기에 구분하기 힘들다 합니다.”

“……하아.”

모두가 승복과 가사를 입다니.

역시 혈마열반결이 모두를 광인으로 만든 것이다.

마인이…… 마인이 중놈의 복색을 하다니……

“염마천.”

“네, 교주님.”

“본좌는 구양장로에게 합류해야겠으니 너는 수라혈검대와 이곳에서 대기하다 반선주가 완성되면 가져오너라.”

“교주님!”

“항명은 듣지 않겠다. 들었다시피 상황이 급박하다. 하니 부탁한다. 내 믿고 맡길 사람이 너밖에 없구나.”

“하면 대원들이라도 대동하십시오. 이곳엔 저 혼자면 족합니다.”

“휴, 네 얼굴을 보니 거절도 못하겠구나. 그리하마.”

적사결의 말에 염마천은 부복하며 포권했다.

“속하 염마천. 목숨을 걸고 지존의 명을 수행하겠습니다.”

그러고는 문을 열고 바깥의 수라혈검대에게 외쳤다.

“네놈들! 다 들었겠지만 본 대주는 이곳에 남게 되었다. 하니 너희들이 신명을 다해 교주님을 지켜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존명!”

쩌렁쩌렁한 외침에 술도가 안을 오가던 사람들이 움찔하며 겁을 집어먹었다.

안 그래도 그들의 모습이 위압감을 주기 충분했는데, 큰 소리를 지르니 오금이 찔끔한 것이었다.

“부탁한다, 이놈들아! 흐흐.”

염마천은 든든한 수하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   *   *

“벌써 가려나 보군.”

철비환이 노백의 거처를 나서는 적사결을 보며 말했다.

“급한 일이 있어서 말이야. 그대와의 빚은 나중에 백천악과의 일이 마무리되면 갚도록 하지. 잊지 말라고.”

“나 역시 바라던 바. 하나 미리 말했다시피 그런 일은 없을 것이야. 당신은 의형을 이길 수 없을 테니까.”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흐흐.”

적사결은 이죽거리며 철비환을 지나쳐갔다.

‘빌어먹을. 형님은 어쩌자고 저런 놈이 몸을 되찾는 데 도움을 주는지 모르겠군.’

철비환은 의형이 그를 생사대적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은 들었으나 너무 위험하다 여겼다.

이미 비밀회동 당시 그 저력을 뼛속 깊이 느꼈던 자신이었다.

의형은 그때의 경험에서 그를 생사대적으로 여겼는지 모르나 자신은 차원이 다른 괴물이라 느꼈었다.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그래도 지금이면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만나고 나니 공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여인의 몸을 하고 있음에도, 겉으로 느껴지는 무위가 듣던 것과 다름에도 그런 것이다.

그저 눈빛만 보고도 철비환은 그런 감정을 느꼈다.

지금으로써는 그저 의형을 믿고 예전처럼 그를 패퇴시키길 바랄 뿐이었다.

“이봐, 철혈권.”

철혈권은 철비환의 별호였다.

그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뭐냐?”

“예전부터 한 가지 묻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때 우리 애들 어땠냐?”

필시 적랑대에 대해 묻는 것이리라.

철비환은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

“말해 무엇 하나. 내 평생 만났던 놈들 중 가장 지독했는데.”

사실 꿈에 볼까 무섭다.

명예로운 순교라 읊조리며 죽음을 불사하고 덤빈, 그야말로 존재 자체로 악몽이었던 놈들이었으니……

“그래? 그 말을 들으면 녀석들도 좋아하겠군. 천하의 철혈권이 인정했으니…….”

“인정은 시부럴. 흰소리하지 말고 가라. 그대와 더 얼굴 마주하고 싶지 않으니.”

“이 얼굴이 그래도 천하제일미의 것인데 마주하고 싶지 않다? 고자도 아니면서 희한하군. 큭큭.”

적사결은 농지거리를 하듯 피식 웃고는 등을 돌렸다.

당연희는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남의 얼굴 가지고 왜 쓸데없는 말을 해욧!?”

“예뻐서 그런 거야. 자랑하려고.”

“…….”

당연희는 자기도 모르게 귀가 벌게졌다.

적사결의 입에서 예쁘다는 말을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 알면 됐어요.”

*   *   *

의천맹주 종리천의 집무실.

이곳에 정파를 지탱하는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대문파의 장로들이 모여 있었다.

하나같이 어두운 표정을 한 그들은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왜 다들 말이 없는 것이오? 평소엔 잘도 입을 놀리더니.”

종리천이 미간을 좁히며 좌중을 돌아보았다.

“강남에서 오대세가와 사무련의 전면전이 벌어지는 지금. 또다시 신강의 마교…… 아니 혈교가 이곳 중원을 노리고 진격 중이오. 한데 이리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잠자코 있을 것이오?”

그들이 입을 닫고 있는 것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문파가 일선에 나서는 것을 원치 않는 것.

이는 의천맹의 구조적인 문제에 그 원인이 있었다.

수많은 정파무문이 모인 연맹체.

맹 자체적으로 무력 부대를 구성하고 있지만 그들은 경험이 부족한 후기지수나 쭉정이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각 문파의 정예를 내놓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의천맹은 각 문파에 정예로 구성된 타격대의 지원을 받아야했다.

한데 늘 그렇듯 나서서 좋은 꼴을 본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일례로 일전에 감숙대전으로 멸문한 공동파가 있다.

그들은 감숙성이 전쟁 지역이 되었기에 어쩔 수 없이 문파의 전력을 다해 마교를 상대했었다.

하나 그 결과 그들의 본산인 공동산은 잿더미가 되었고 심지어 의천맹은 그곳을 수복해 주지도 않았다.

감숙대전이 끝난 후에도 살아남은 공동파의 무인들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일 뿐이었고 말이다.

“본맹이 이러니 마교로부터 맹추 소리를 듣는 것이오. 어찌 다들 자기 보신만 그리 챙긴단 말이오.”

종리천은 답답한 마음에 탁자를 탕탕 내리쳤다.

하나 그는 맹주임에도 불구하고 발언에 무게가 없었다.

그가 개인적으로 본다면 뛰어난 무인이었나 그 배경이 종리세가였기 때문이었다.

즉, 만만해서 오대세가를 비롯한 과거 구파에 속했던 대문파들이 그를 추대한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종리천도 맹주라는 위명을 빌어 종리세가의 세를 키우고 있었으나 아직 부족한 것이 현실이었다.

“감숙을 넘으면 곧 섬서지 않소. 하니 화산파와 종리세가가 나서야 하지 않겠소이까?”

산서의 명문, 독고세가의 장로 독고명의 말이었다.

그는 대놓고 두 문파가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좌중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힘을 실어 주었다.

그 말에 화산의 장로인 청진도장이 벌떡 일어섰다.

“그 무슨 말이오? 본파는 아직 여력이 없는 상황이란 말이오.”

“도장께서는 매번 그 소립니까? 섬서 대지진이 있은 지 벌써 이십 년이 넘었습니다. 한데도 아직 앓는 소리라니, 쯧쯧.”

독고명은 혀를 차며 청진도장을 고깝게 바라보았다.

섬서 대지진을 모르는 이는 이곳에 없었다.

무려 섬서성 인구의 절반 이상이 죽은 대재난이었으니까.

특히 그 피해 지역이 화산파의 관리 지역에 집중되어 화산파는 대부분의 영업장과 속가 문파를 잃었었다.

하나 독고명의 말대로 이십 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어느 정도 세가 회복된 상황이었다.

“지금 말 다했는가!? 섬서의 백성들이 어려울 때 바로 옆 산서인들은 나 몰라라 해 놓고는 뭐라!? 앓는 소리!?”

“맹 차원에서 지원했잖소! 나 몰라라? 그게 지금 할 소리요!?”

독고명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소리쳤다.

섬서와 산서는 경계를 접하고 있는 데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고래로부터 섬서는 장안이라 불리는 대도시를 품은 교통의 중심지.

더구나 그 경제력에 걸맞게 화산파 같은 대문파가 늘 자리했다.

반면에 산서는 산악 지형이 대부분이라 섬서보다 살림이 궁핍할뿐더러 대문파가 없어 늘 섬서인들에게 무시를 당해 왔었다.

하니 지역을 대표하는 두 사람은 앙숙이라 할 수 있었다.

“두 분 모두 자리에 앉지 못하겠소!”

콰아앙.

종리천이 거세게 탁자를 내리치며 대갈일성을 내질렀다.

십대고수에 못 미친다 하나 그는 천하가 알아주는 검수였다.

그의 말에 좌중은 숨을 죽였고 서로를 노려보던 독고명과 청진도장은 헛기침을 토하며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맹주령을 내리겠소. 이 자리에 자리한 문파는 당장 일선에 나설 일대제자 오백 명을 파견하시오. 또한 이대제자 오백을 추려 보급 및 예비대로 지원 부대를 보내시오. 군소방파도 그 규모에 따라 그에 준하는 병력을 소집할 것이오.”

종리천은 확고한 어조로 명을 내렸다.

“맹주! 어찌 천 명의 제자들을 보내란 말이오!”

“기둥 뿌리 하나 남기지 말란 말입니까?! 아무리 맹주라 하나 너무 과한 처사입니다!”

“본문은 삼대제자까지 긁어모아도 천 명은 고사하고 오백 명도 안 됩니다!”

가관이었다.

항의를 하는 자부터 우는 소리를 하는 자, 그만한 인원이 안 된다 거짓을 고하는 자까지.

종리천은 뒷골이 뻐근하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맹주가 된 지 수 년이 흘렀건만 아직 자신은 진정한 정파의 수장이 아니었다.

“하면 언제까지 찔끔찔끔 놈들에게 당하고 있을 것이오!? 당장의 현실이 눈에 안 들어온단 말이오!? 그간 취불 무허대사가 있어 그나마 그 광혈존을 막을 수 있었소. 한데 소림에서 그분을 무림공적으로 선포하고 그를 추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맹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소. 나 보고 어쩌란 말이오!?”

쌓여 있던 울분이 터졌다.

정파는 의천맹이란 이름으로 뭉쳐 있다지만 실상 오대세가와 나머지라는 두 세력으로 갈라져 있었다.

더구나 그 나머지들도 단합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되지 않았다.

하니 자신은 맹주라는 직함 앞에 ‘무능한‘이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 살아야 했다.

“지금이 기회요. 모든 것을 바로잡을 절호의 기회란 말이오. 놈들이 혈교와 마교로 갈라진 것을 그대들도 귀가 있다면 들었을 것 아니오.”

광혈존 적사결을 따르는 혈교, 그리고 그 혈교는 배교라 주장하며 정통성은 자신에게 있다 주장한 마령존 흑사광의 마교.

종리천에게 있어 지금이야말로 모든 과오를 씻고 진정한 정파 무림의 수장이 될 기회였다.

“맹주의 말대로 어쩌면 다시없을 기회입니다.”

그 말을 꺼낸 이는 오른편 무가들이 자리를 잡은 곳에 있었다.

“하나 그러려면 맹주의 가문인 종리세가에서 솔선수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가에서 발 벗고 나선다면 따를 것이란 말이오?”

종리천은 자신에게 질문한 백리세가의 장로 백리청에게 시선을 두며 말했다.

“이곳에 오기 전, 가주께서 그리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또한 단목세가 역시 마찬가지지요. 두 가문은 종리세가가 전면에 나선다는 조건하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입니다.”

“허어, 천풍대협이 그리 말했다? 더구나 단목세가까지?”

“그렇습니다. 강소성의 문파는 맹주령을 따를 것입니다. 어찌하실 것입니까?”

“당연히 그러려고 했소. 종리세가는 문파의 전력을 이번 전쟁에 투입할 것이외다.”

종리천은 기쁜 마음으로 껄껄 웃으며 답했다.

뜻하지 않게 강소 무림의 도움을 받을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다들 들었소이까. 왜구의 공격을 받아 강소성의 상황이 좋지 않음에도 저들은 정파를 위해 본 맹주를 적극 지지하고 있소. 내 이 자리에서 말하건대 강소성보다 사정이 나쁘면 맹주령을 따르지 않아도 좋소. 하나 그렇지 않다면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인원을 채우도록 하시오. 본 맹주의 경고를 무시하는 이들은 혈교보다 먼저 맹의 단죄를 받아야 할 것이외다.”

그의 말에 반발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도 강소성의 가왜변란에 대해 모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천풍대협 백리검이라…….’

도움은 고맙지만 미리 장로를 통해 그 말을 전하라 했다는 말이 거슬렸다.

결과적으로 백리세가는 지금의 한 수로 의천맹의 중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종리천으로서는 견제의 감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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