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73화>
“이거면 되겠소?”
적사결의 손에 들린 것은 뇌조의 내단이었다.
남궁건을 쓰러트리고 얻은 뇌조는 비록 이두한백의 한 끼 양식이 되었지만 그 내단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이거 설마 뇌조의 내단이오?”
야장이지만 당소평 역시 당가의 사람.
그는 한눈에 푸른빛의 내단이 어떤 영물의 것인지 알아맞혔다.
“어디서 얻었소? 암시장에도 뇌조는 없을 텐데.”
희귀하기로는 뇌조만 한 영물이 없다.
벼락 맞은 나무를 찾아야 그 서식지를 알 수 있었고 찾더라도 그 속도는 절정 고수의 신법으로도 쫓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뭐 어쩌다 얻은 것이니 대답이나 해 주시오. 이거면 벼락 대신 쓸 수 있겠소?”
“……흐음.”
당소평은 품에서 확대경을 꺼내 들고 내단을 살폈다.
한참을 보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긍정적이었다.
“아슬아슬하게 가능할 것 같소.”
“다행이군. 한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소.”
“말해 보시구려.”
“이 뇌조를 잡을 때 이 녀석으로 뇌기를 접촉했으나 당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소. 그건 왜 그런 거요?”
“말했다시피 벼락에 준하는 막대한 기운을 주입해야 하기 때문이오. 이 내단이 지닌 기운을 한 번에 터트려도 아슬아슬하니 뇌조를 상대할 때 접촉한 기운으로는 임계점에 이르지 못한 게지.”
“그 말은 설마 내단을 부수겠다는 거요?”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소. 이 도를 담금질하는 중에 내단을 파괴해 그 기운을 때려 박는 거지. 하면 운철에서 신진철이 분리되어 나올 것이오. 그래도 괜찮겠소이까?”
뇌조의 내단은 극상품이라 해도 될 정도로 귀한 것이었다.
무인이라면 누구라도 아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시오.”
“역시 아니겠…… 뭐? 뭐요?”
“그렇게 하라했소.”
“…….”
뇌조의 내단을 온전히 취한다면 이갑자 이상의 막대한 공력을 얻을 수 있을 터.
한데 그걸 길바닥 돌멩이 버리듯 대수롭지 않게 허락하다니.
당소평은 적사결의 배포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리고 당연희를 바라보았다.
“제법이구나. 언제까지나 말괄량인 줄 알았는데 신랑감 하나는 제대로 골랐으니 말이다.”
그녀는 그 말에 기분 좋은지 화사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머리가 벗겨진 무허의 얼굴로.
* * *
삼 일 후.
꽈르르르릉.
산이 무너지는 듯한 뇌성벽력이 대기를 진동시키며 울렸다.
임시로 만들어진 야철장에서 나는 소리였다.
여각 별채 하나를 통째로 사들여 만든 그곳에는 사천에서 운반해 온 야공의 전용 화로가 있었다.
그리고 적사결을 비롯한 일행들이 야공의 작업을 보는 중이었다.
“거푸집을 가져오너라.”
당소평의 지시에 늙은 야장 한 명이 나무와 흙으로 만들어진 틀을 들고왔다.
파지지직. 파직.
시뻘겋게 달아오른 샴쉬르의 주변은 푸른 뇌광이 연신 발했다.
내단의 내기를 듬뿍 받아들인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호신강기를 두르고 있음에도 집게를 쥔 손이 부들거릴 정도.
간접적인 뇌기라 하나 그 기운이 어느 정도인지 말해 주는 듯했다.
“어르신 준비되었습니다.”
거푸집이 준비되자 당소평은 망치로 샴쉬르의 도신을 때렸다.
따아앙.
그러자 청아한 쇳소리와 함께 붉은 물질이 도신에서 배어나오며 피처럼 흘러내렸다.
한 눈에도 그것이 분리된 신진철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늙은 야장은 거푸집으로 옮겨진 신진철을 천천히 식히며 사각형의 철괴로 만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불순물이 섞일까 그는 눈도 깜박이지 않으며 살피고 있었다.
야공이 들고 있던 샴쉬르는 이제 순수한 운철만 남은 상황.
그것을 증명하듯 그 도신에서 물결무늬는 사라져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쩌저저적.
샴쉬르는 금이 가더니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당소평은 당연하다는 듯 준비된 목함에 조각을 담아 적사결에게 건넸다.
“이 도를 만든 장인은 누군지 모르나 대단한 인물이오. 운철을 이렇듯 세세한 조각으로 제련하고 각각을 신진철로 이어 놓는 것은 나도 불가능한 재주니까. 앞으로 일, 이 년은 술이 없으면 잠을 못잘 것 같소.”
야장으로서 절세 신병을 부쉈다는 죄책감이 든 것이다.
그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이 조각들은 저처럼 괴로 만들 수 없는 거요?”
“일단 화기를 받아들여 형태를 잡아 버린 운철은 녹이는 것이 불가능하오. 내 개인적인 판단으로 보건데 이 작은 조각 하나를 녹이는 데도 족히 일 년은 담금질을 해야 할 것이오. 그나마도 나 정도 되니까 가능한 것이지.”
적사결은 고개를 끄덕였다.
괴든 조각이든 순수한 운철을 얻었으니 다음 일은 노백에게 맡길 뿐이었다.
“어쨌든 수고 많았소. 그리고 한 가지 더 의뢰할 것이 있는데 이 운철 조각 하나와 저기 저 신진철로 아까 그 합금을 재현할 수 있겠소?”
적사결이 집어든 조각은 개중에 가장 큰 것이었다.
용도는 사왕을 다시 다마스커스에 깃들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언제까지나 남운적의 몸에 빙의시켜 놓을 수는 없으니까.
“이 정도면 단검 하나 정도를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오?”
“그렇소. 가능하겠소?”
“내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라도 해내야겠군. 일단 연구를 해 봐야 알겠지만 내 야공이란 별호를 걸고 꼭 재현해 보리다.”
야공은 운철조각을 받아 들고 하얀 천으로 소중히 감쌌다.
그의 눈은 새로운 장난감이 생긴 아이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 * *
노백의 술도가.
적사결은 그곳에 도착해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사무렵의 대호법이 이곳에 있다니 별일이군.”
그는 철혈철가의 가주, 철비환이었다.
“전쟁에서 첩보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면서 묻는 건가?”
“흑야귀령대만으로는 안 되나 보지?”
“정보 부대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래서 당신이 직접 노백을 보호하려 온 것이로군.”
“그만큼 거물이지 않나.”
“잘 지키도록 해. 그는 본좌에게도 중요한 인물이니까.”
“그럴 생각이니 그쪽은 그쪽 일이나 하지 그래.”
특별하지 않은 그들의 대화에서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
철비환의 경우, 백천악이 적사결을 어찌 생각하는지 알기에 그런 것이고.
적사결의 경우, 철비환에게 앙금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대 교주의 비밀 회동 당시 백천악이 이끌었던 묵혼파천대의 부대주가 그였으니까.
즉, 자신이 백천악을 상대할 동안 묵혼파천대를 이끌고 적랑대를 몰살한 장본인이 철비환이었다.
“일이 끝나면 잠깐 볼까?”
적사결의 물음에 철비환은 싸늘한 눈빛으로 대꾸했다.
“임무 중이다. 당신과 과거의 케케묵은 일을 논하고 싶진 않군.”
“케케묵었다라…… 그대에겐 그 일이 고작 그 정도였나? 본좌는 지금도 그때일이 어제 일처럼 선명한데 말이야.”
은근한 살기가 스멀스멀 발현되었다.
“오해하지 마라. 나에겐 오래된 상처라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니까.”
자신 역시 형제와도 같던 대원들의 삼분지 이를 잃었고 살아남은 이들도 불구가 되어 은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의 지존을 지키기 위한 전투는 그만큼 필사적이었고 격렬했었다.
“얼마 전에 해남도에 코앞까지 와 놓고서 본좌를 만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인가?”
“그때도 임무를 수행 중이었지.”
“큭큭, 과거엔 물불 가리지 않던 열혈무인이었는데 그대도 나이가 드니 어쩔 수 없는가 보군.”
“젊음이 그래서 좋은 거지. 이런저런 얽매이지 않아도 되니까. 듣자 하니 교주 자리를 내려놨다고?”
“…….”
적사결은 답을 하지 않고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철비환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후계를 세웠으니 본신만 되찾는다면 이제 거리낄 것 없겠군. 알고 있겠지만 그대와의 해묵은 감정을 푸는 것은 나보다 의형이 먼저다. 일 년 후, 그때 그 장소라고 했다지? 잊지 마라.”
“본좌 역시 기대가 크니까 걱정 마라. 백천악 다음은 그대가 될 테니까.”
“웃기는군. 그때도 의형에게 사지가 박살나고 땅바닥을 기어 놓고서는. 지금이라고 다를 것 같은가?”
“……!”
적사결은 ‘아차’하는 감정과 함께 철비환이 아닌 뒤편의 당연희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보지 않아도 뒤통수에 눈이 달린 것처럼 훤히 보였다.
웃음을 참기 위해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가슴을 들썩들썩 거리는 모습.
아, 쪽팔려 죽을 지경이다.
“흐, 흥! 호위 임무도 제대로 못하고 아비를 죽게 만들었으면서 뭐가 잘났다고! 지킬 사람도 없겠다 이번에야말로 본좌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 줄 것이다!”
그 말에 철비환은 왜 다 아는 사실을 변명하듯 말하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노백은 안에 있나?”
“별채에 있으니 가 보게.”
철비환은 고갯짓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적사결은 죽일 듯한 안광으로 그를 한 번 노려본 후 별채로 향했다.
그런 그의 귀로 작지만 가슴을 후벼 파는 한 마디가 들려왔다.
“졌네, 킥.”
아, 이런 개쪽이 있나.
크흐흐흑.
* * *
“정말 구해 온 것입니까?”
노백은 믿기지 않는 얼굴로 목함 속의 철 조각들을 바라보았다.
회족으로부터 운철을 얻어 올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운철이 확실하니 의심할 것 없다. 그거면 이제 반선주를 만들 수 있는 건가?”
“일단 연구를 해 봐야겠지만 가능성은 높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작게 잡아도 달포는 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나 오래 걸린단 말인가?”
“현재 지니고 있는 이론을 기준으로 첫 시도에 된다하더라도 칠 일이 걸리니까요. 예를 들어…….”
노백은 가장 오래 걸리는 작업을 설명해 주었다.
그가 말하길 그것은 운철의 공능을 담은 운철공령수를 만드는 공정이라 했다.
사신이 남긴 자료에 따르면 영혼을 담을 수 있는 천하유일의 기물이 운철이었다.
그것을 만년설을 녹인 청정수에 삶아 그 정수를 뽑아 내는데 가장 많은 시일을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하오문에서 백 년이 넘도록 연구를 했기에 그런 방법을 찾아내 칠 일로 줄였지 본래는 십 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그 이유는 초기의 제조법은 공청석유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따라 운철공령수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공청석유는 대지의 기운 중 음기가 강한 장소에 공청석이 있어야 만들어지는 천고의 영약이다.
음기를 머금은 공청석이 이슬을 떨구듯 십 년에 걸쳐 한 방울씩 정기를 쥐어짜낸 것이 공청석유였다.
“어쨌든 칠 일 동안 기다리면 첫 번째 결과물을 볼 수 있다는 말이군?”
“그건 그렇습니다.”
“그럼 일단 기다려 보겠네. 칠 일 이후에는 더 구체적인 예정일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그리하시지요. 안가에 따로 지내실 곳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하면 신세 좀 지겠네.”
적사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지만 노백의 얼굴은 어딘가 편치 않았다.
그는 창문 너머 별채 바깥에 대기 중인 수라혈검대를 힐끗거렸다.
“왜? 마인들이 이곳에 지내야 돼서 걱정되는가?”
염마천을 비롯한 수라혈검대.
천마신교의 정예인 그들은, 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힐 듯한 마기를 풍기고 있었다.
“최대한 기운을 죽이고 있으라 말해 놓겠네. 다소 껄끄럽겠지만 좀 참아 주시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무련과도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는 철비환을 비롯해 그가 이끄는 타격대인 철혈척살대를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이었다.
양쪽 다 워낙 호전적인 부대이다 보니 신경이 이만저만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걱정 말게. 내 단단히 일러 둘 터이니.”
“하면 그리 믿겠습니다.”
노백은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적사결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데 아직 소식은 듣지 못하신 겝니까?”
“음? 무슨 소식 말인가?”
“신강에서 그들이 움직였습니다.”
“뭐!? 설마 혈교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틀 전, 대규모의 병력이 십만대산을 나섰다는 첩보를 받았습니다.”
“……!”
올 것이 왔다.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적사결은 미간을 좁히며 신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