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70화>
“이게 신진철?”
당연희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인 영롱한 광채의 적철을 보며 눈을 빛냈다.
영하를 떠난 후 여정 중에 얻은 두 개의 신진철.
적사결은 그중 하나를 그녀에게 건넨 것이었다.
황금 오만 냥을 대가로.
[현자의 돌이 맞다. 이런 석양을 닮은 붉은빛은 천하에 오직 이것이 유일하니까.]
사왕의 말대로 적철의 외견은 어떤 광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 있었다.
태양을 빗대었지만 그 빛은 전혀 눈이 부시지 않았으니 말이다.
참으로 신비한 물질이 아닐 수 없었다.
“사왕. 한데 아까 그건 어떻게 했는지 알려 줄 순 없어?”
당연희가 묻는 것은 신진철의 진체를 내보이던 방법이었다.
사왕의 손길에 평범했던 돌이 마치 허물을 벗듯이 돌 부스러기를 떨군 것이다.
그 속에서 드러난 것이 지금 그녀의 손 안에 든 적철이었다.
[그저 할 수 있을 뿐, 방법 따윈 모른다. 다만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있다.]
“그게 뭐야?”
[현자의 돌이 그저 그런 돌덩이의 모습인 것은 일종의 위장이다. 자신의 진체를 숨기기 위함이지.]
“그럼 이 금속이 살아 있다는 거야?”
[생명의 정의가 의지를 뜻하는 것이라면 그렇다. 극히 미미한 수준이지만 이 녀석은 스스로를 지키려는 방어 본능을 가지고 있지.]
“그럼 닥치는 대로 돌을 깨 보면 신진철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위장일 뿐이니까 말이야.”
[착각하나 본데 이 녀석의 위장은 겉모습만이 아니다. 성질조차 변환시킬 수 있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현자의 돌의 권능을 어느 정도 쓰고 있다는 것이다.]
“하긴…… 그러니까 광산이나 채석장 같은 곳에서도 신진철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겠지.”
대충 예상은 했다.
하지만 혹시나 몰라 물은 것이었다.
‘어쨌든 대단해. 의지를 지닌 살아 있는 금속이라니.’
풍문에 따르면 신진철로 만들어진 보패 역시 주인을 선택하는 신병이기라 했다.
그 재료인 신진철부터 범상치 않으니 그런 무구가 세상에 날 수 있는 것이리라 여기는 당연희였다.
“고마워. 덕분에 천고의 보물을 얻었어.”
[나에게 고마울 것 없다. 나는 주인의 명을 따랐을 뿐이다.]
사왕의 무뚝뚝한 말에 당연희는 적사결을 돌아보며 생긋 웃었다.
“고마워요. 헤헤.”
“그리 좋으냐? 황금 오만 냥이라는 엄청난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데도?”
“이거 억만금을 주고도 못 구하는 거잖아요.”
“너도 참 별나구나. 단순 암기만이 아닌, 제련에도 관심이 있다니.”
적사결은 뒷말에 ‘여인이면서’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편견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그녀를 존중하기 위해서였다.
“제가 왜 본가의 암기를 쓰지 않고 동전을 사용하는지 아세요?”
“돈이 썩어 날 정도로 많아서?”
“그렇죠…… 가 아니잖아요!”
적사결의 장난에 당연희는 발끈하며 소리쳤다.
“농담이야, 농담.”
“어휴, 정말!”
“그래, 왜 암기를 쓰지 않는 거지?”
달래듯 말하자 화가 누그러진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까워서요.”
“뭐가 아까워? 암기가?”
“그래요. 암기는 보통 일회성 소모품으로 여기잖아요. 한데 그 작고 단단하고 예리한 무기를 만드는 데 드는 노력과 비용은 상상을 초월하죠.”
“해서 동전을 사용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었다 이 말인가?”
“맞아요. 그리고 제게 그 말을 해 주신 것은 야철장주이신 작은 숙부님이세요. 암기를 회수할 실력도 안 되면서 암기를 쓸 바에 차라리 동전을 대신 뿌리라고 말이죠. 그분은 암기가 소모품 취급받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셨어요.”
“야공 당소평이로군.”
천하제일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야장이다.
그가 발명한 수많은 암기 중 대표작으로 폭우이화침이라는 희대의 병기가 있다.
그 하나에 목숨을 잃은 무인만 수천이 넘어 그가 야공이라는 별호를 얻게 해 준 것이었다.
“어렸을 때 숙부님께서는 저에게 보패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셨어요. 고대 병기인 보패는 주인의 손을 떠나더라도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회수할 수 있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고 말이에요. 그때부터 저는 제련술에 심취했었고 보패와 그 재료인 신진철에 대한 꿈을 꾸었었죠.”
“강해져서 허공섭물로 회수하면 되지 뭐 그런 것을 꿈꾸고 그랬느냐.”
“누군 뭐 안 쓰고 싶어서 안 쓰는 줄 알아요? 허공섭물이 무슨 애들 장난이에요?”
“열심히 수련하면 다 돼.”
당연희는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열심히 안 해서 허공섭물을 못 쓰는 거라니.
그럼 천하 십대고수를 제외한 무인들은 모두 나태하고 게으르단 말인가.
“예. 예. 그러시겠죠. 천하를 호령하시는 창룡께서 우물 안 개구리의 마음을 어찌 알겠어요.”
예전에 적사결이 했던 말로 툴툴거리는 당연희였다.
“걱정 마라. 창룡과 약혼한 개구리가 어찌 보통 개구리겠느냐.”
그 말에 그녀는 슬그머니 눈을 흘기며 입을 열었다.
“그럼 나도 용이 될 자질이 있다고요?”
“용? 아니, 삼목섬와. 개구리 영물 중 이거잖아.”
적사결은 엄지손가락을 빳빳이 들고 낄낄거렸다.
당연희는 전낭에서 돈을 꺼내 들며 이를 바드득 갈았다.
“결국 개구리란 거잖아!”
양손에서 발출된 동전이 만천전뢰의 초식을 따라 허공을 날았다.
“야! 그렇다고 신랑에게 절초를 펼쳐!”
* * *
타닥. 타닥. 탁.
모닥불에서 콩 볶는 소리가 아늑하게 이어졌다.
적사결은 멍하니 그 불꽃을 바라보며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일행들은 모두 그 온기를 쬐며 한잠을 자는 중이었다.
-주인, 잠이 오지 않는가?
사왕이 마음속으로 말을 걸어왔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서 말이다.’
-혈교 때문인가?
‘……고민의 구 할은 그것이지.’
-주인은 할 수 있는 걸 충실히 하고 있다. 원하는 모든 걸 이룰 수는 없는 법이지.
사왕은 적사결의 마음을 짐작하는 듯이 말을 건넸다.
‘교도들의 목숨이 달렸는데 교주라는 자가 그리 쉽게 생각할 순 없지 않겠느냐.’
혈마열반결로 광인이 된 교도들.
흑사광만 믿고 있기에 그 무게가 너무도 무거웠다.
그 때문에 적사결은 매일 그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으나 그 실마리는 감조차 잡히지 않고 있었다.
-나는 무공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욕망은 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역에서 다마스커스가 가지는 가치.
사왕은 늘 탐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만약 그 혈마열반결이라는 무공이 그들의 욕망을 제어가 안 될 정도로 키운 것이라면 한순간에 제정신으로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다. 내가 본 인간들은 욕망에 빠지는 것은 쉽지만 헤어나오기 힘들고 그것을 다스리는 것은 더 힘겨워 하더군.
적사결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중독은 쉽고 빠르지만 해독은 어렵고 오래 걸리는 것과 같은 이치니까.
‘네 말은 전쟁이 코앞인데 방법이 있더라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이지?’
-그렇다. 더구나 그들은 한두 명도 아니지 않은가.
‘맞는 말이다. 본좌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니까.’
한두 명이 아니기에 문제가 커지고 심각해진 것이었다.
한두 명, 아니 기백 명 정도더라도 당장 달려가서 다 때려눕히고 치료할 방법을 찾았을 터.
하나 지금은 그 수가 만 단위가 넘어가고 있으니 방법을 찾는 것도 문제고 찾아도 적용할 시간이 필요한 등 문제가 산재한 상황이었다.
-인간들은 왜 힘들게 짐을 지려는지 모르겠군.
사왕이 혀를 차며 나직이 읊조렸다.
자연계의 영령인 그에게 인간이란 존재는 아직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네 말대로 욕망 때문인 게지. 흐흐.’
적사결은 잦아 든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던져 넣으며 말했다.
욕망을 닮았는지 불길은 나뭇가지를 불태우며 그 몸집을 키워 갔다.
‘한데 사왕.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말하라, 주인.
‘다마스커스에서 운철과 신진철을 분리하면 넌 어떻게 되는 거지?’
-이거 섭섭하군. 이제야 내 걱정이 든 건가?
‘네가 깃든 그릇이 깨지면 자유의 몸이 되는 거 아닌가?’
아니면 소멸 될지도 모르겠지.
하나 적사결은 차마 그 말을 입에 올릴 순 없었다.
-어찌 될지는 나도 알 수 없다. 그걸 예측할 수 있는 자는 나를 가둔 연금술사밖에 없을 거다.
‘한데 넌 어찌 그렇게 태연하느냐?’
-나도 궁금하니까.
‘뭐? 궁금해?’
-내가 알기로는 다마스커스가 파괴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데 주인은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이것을 부수려 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현자의 돌을 얻었더라도 그것이 가능할지 나는 의문이다.
‘고작 그것 때문에 목숨을 건다고?’
-유흥이다. 진은 그런 존재지. 우리는 이렇게 봉인된 것을 답답해하지도 않고 그 연금술사에 대한 원한도 없다. 그저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유흥이면 만족하는 존재지.
‘너도 참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군.’
-그냥 그런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인간이 그러하니까. 그리고 사실 생각해 둔 바는 있다.
사왕의 말에 적사결은 궁금증을 가지고 되물었다.
‘그게 뭐지? 혹시 다른 물체에 네가 옮겨 갈 수 있다거나 그런 건가?’
-물체가 아니다. 또 다른 다마스커스라는 그릇이 없다면 불가능하지.
‘물체가 아니면 뭐지? 설마?’
-그렇다. 빙의. 나는 이미 한 차례 주인의 몸에 빙의한 적이 있지 않은가.
‘본좌에게 너의 그릇이 되라? 하나 너도 알다시피 이 몸도 내 것이 아니다. 영체인 네 존재가 이혼대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야.’
영혼을 옮기는 대상에 정작 영혼이 두 개라면 대법이 뒤죽박죽되어 버릴 것이다.
더 이상 일이 꼬이길 원치 않는 적사결로서는 절대 수락할 수 없었다.
-주인에게 빙의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뭐? 그럼 다른 사람에게 빙의가 가능하다는 말이냐?’
-아무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조건이 필요하지.
‘무슨 조건?’
-대상의 체질과 속성이 맞아야 한다. 계약자가 아닌 만큼 이프리트인 내 영체를 담을 정도로 영혼의 그릇도 커야 하고.
사왕의 말 중 적사결의 뇌리에 꽂힌 단어는 하나였다.
바로 속성.
‘설마 너…….’
-그래. 그 꼬마. 살아 있는 흙이나 마찬가지인 그 아이가 제격이다.
‘……남운적.’
정토마맥으로 신체가 토의 성질을 띠는 남운적이라면 사왕의 말대로 조건에 딱 들어맞았다.
-주인이 그 아이를 설득해 다오.
‘그 전에. 빙의가 되면 지난번 그때처럼 네가 신체의 지배력을 갖게 되는 건가?’
-속성이 맞으니 가능하겠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아이가 나에게 마음을 열어야 하니까.
‘강제로는 어렵다는 말이냐?’
-자유로운 진은 가능하지만 나처럼 얽매인 존재는 그렇다.
‘연금술에 의한 제약인가?’
-그렇다. 그 외에도 권능에도 제약이 있고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지.
사왕은 말은 그렇게 하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적사결은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갔다.
천마신교 역시 그러하니까.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 심지어는 스스로의 불편함마저도 패도라는 고귀한 길을 위해서라면 감수하는 자들이 마인들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슴 속의 가치관이니까 말이다.
그것이 사왕에게는 유흥이리라.
타닥. 탁.
더 이상의 대화는 없이 적사결은 모닥불을 바라보며 밤을 지새웠다.
하늘에서는 쏟아질 것처럼 많은 별들이 제각각 자신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밝은 광채를 뿌리는 남쪽 하늘의 별.
천랑성이라 부르는 그 별의 색은 지금 흉성이라 생각될 정도로 붉디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마치 수많은 피를 부르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