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69화>
“본좌만 가능한 방법이라니? 그게 무엇이냐?”
적사결이 되묻자 파랑은 사왕을 가리켰다.
[대지의 일족. 흙이든 모래든 대지에 속한 모든 물질은 저 녀석의 손 안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서역에서도 현자의 돌을 탐색하는 데 저놈들을 이용하지.]
“뭐? 그런 방법이 있었어? 야! 사왕, 너는 왜 진작 그걸 말하지 않았어?”
그 물음에 사왕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나에게 묻지 않았잖은가. 주인이 물어봤다면 나 역시 그렇게 답했을 것이다.]
하아, 이런 벽창호 같은 놈.
어떻게 융통성이 이렇게 없을까.
분명 이 녀석의 전 주인은 답답한 나머지 갖다 팔아 버린 것이 틀림없을 거다.
“그럼 돌이 된 신진철이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나?”
[물론이다.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진 중에서도 고귀한 존재, 이프리트니까.]
“아까 파랑 저 녀석도 이프리트라던데 그게 도대체 뭐냐?”
[우리들 진은 다섯 개의 계급이 있다. 일족의 왕인 마리드를 필두로 그 아래, 이프리트가 있지. 그리고 그 밑으로 중급 영령인 샤이탄, 하급 영령인 진이 있다. 우리의 존재를 진이라 부르는 것은 그 하급 영령인 진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영령들을 받드는 쟌이 있지.]
“영령을 받드는 쟌? 쟌은 영령이 아닌가?”
[영령이되 자신의 의지를 지니지 못한 영령. 그들은 오직 복종하는 존재다. 사실 존재라 부르기에도 미미하지만 자연계를 구성하는 헌신적인 아이들이지.]
“간단히 말하면 마리드가 일문의 문주, 그리고 이프리트가 장로급이라는 말이군.”
[단순히 비교하자면 그렇다.]
생각보다 꽤 고위급이었잖아.
한데 그런 놈들이 다마스커스에 봉인되어 머나먼 이국까지 오다니.
“너희들의 말대로 그 정도 위치의 진이라면 서역에서 꽤 까다롭게 관리했을 텐데. 어째서 머나먼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거지? 이프리트가 흔한 존재는 아닌 거 같은데.”
적사결의 물음에 대한 답은 파랑에게서 나왔다.
[인간의 왕이 연금술을 탄압했기 때문이다. 우리들 진을 악마라 치부하고 연금술을 흑마술로 몰아갔지. 그 과정에서 진이 깃든 다마스커스를 파괴하려 했기에 이래저래 흩어진 것이다.]
“……흐음.”
대략 짐작이 갔다.
중원에서도 방술사 혹은 술법사라 불리는 이들이 혹세무민을 이유로 탄압된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었으니까.
주술이란 개념은 초자연적인 현상과 가까운 공부이기에 대부분의 권력자들은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간혹 지금의 황제나 고대 진시황제처럼 불로장생이란 헛된 꿈을 꾸며 사술에 빠지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사왕 네가 신진철을 찾을 수 있으니 천만다행이구나. 한데 운철은 찾을 수 없는 것이냐?”
[아무리 나라도 이 땅의 권역 전체를 탐색할 순 없다. 이곳의 산법에 따르면 기껏해야 백 리 정도일 뿐이지. 더구나 운철을 포함한 운석이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천하를 뒤져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은 없다.]
“하면 신진철은 얼마나 흔한 거지?”
[주인의 이동 속도를 기준으로 탐색한다면 열흘에 하나 정도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나 흔하다고?”
[저 녀석의 말대로 현자의 돌은 어디에나 있다. 구별하기 힘들고 제 모습을 찾는 것이 어려울 뿐.]
사왕의 말이 끝나자 당연희가 달라붙으며 애원했다.
“교주니이임. 저도 신진철 하나만 찾아주시면 안 될까요?”
“콧소리는 좀 빼지 그래? 신진철은 뭐하려고? 보패라도 만들려는 것이냐?”
“야장들이 꿈에서라도 보길 원하는 것이 신진철이에요. 본가의 야철장주님께 갖다드리면 아마 기절초풍 하실 걸요.”
“그래서 본좌는 뭘 얻을 수 있지?”
태연스런 적사결의 물음에 그녀는 어이가 없었다.
“우리 혼약을 맺은 사이 아니에요? 반려자가 갖고 싶은 게 있다는데 구해 줄 수도 있잖아요. 천금을 주고 사달라는 것도 아니고 길바닥에서 주우면 되는데.”
“길바닥에서 주웠다 하여 모두에게 같은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 그리고 본좌의 생각에 너는 아직 진정한 반려가 되기엔 멀었으니 대가는 있어야 한다.”
“진정한 반려라니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본좌의 반려는 곧 천하 마인들의 어머니, 마후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한데 네가 마후로서 자각이 있었다면 신진철을 당가에 줄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겠느냐?”
“…….”
당연희는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던 부분이라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네가 진정한 마후라면 모든 우선 순위는 천마신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건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여인으로서 시집을 가는 것이 아닌 사위가 장가를 오는 풍습, 데릴사위가 전통인 집안에서 자란 탓이다.
당가의 여인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당가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면 대가를 치를게요. 얼마면 될까요?”
“생각 좀 해 보자꾸나. 전설의 무구를 만들 수 있는 희귀한 재료지 않느냐. 당장은 떠오르는 금액이 없구나. 흐흐.”
“그럼 금자로 일만 냥 어때요?”
“……!”
놀라서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다.
화, 황금으로 만 냥이라니.
그걸 길바닥에 나뒹구는 돌덩이 하나와 바꾸자는 말이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족해요? 그럼 이만 냥?”
“……!”
거기서 두 배라고!?
한데……
“그럼 오만 냥! 더는 안 돼요! 아무리 본가라도 이 이상은 힘들다고요.”
당연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 다섯 개를 폈다.
황금 오만 냥에 고작 미간만 찌푸리다니 뭔 놈의 배포가 저렇단 말인가.
천하를 주름잡는 거부의 단면을 엿본 것만 같았다.
“어…… 어. 그래.”
“얏호! 그럼 신진철 하나 꼭 구해 주기예요.”
“……어.”
황금을 깔고 앉은 느낌이 이럴까.
적사결은 앞으로 황금을 보더라도 돌 같이 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노다지가 지천에 깔렸구나.
* * *
“그럼 이만 가 보겠소. 여러모로 고마웠소.”
적사결은 마경생과 마은호를 돌아보며 포권했다.
영하에 온 덕분에 상상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사왕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고 서역의 뛰어난 무학을 경험했다.
더구나 앞으로 신교의 재정은 자신이 살아 있는 한 차고 넘칠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사람.
적사결은 무림에 속하지 않았음에도 누구보다 뛰어난 무력을 지닌 사내를 만난 것이 기뻤다.
“이보시오, 마 대장.”
마은호와 파랑의 힘이라면 천하 십대고수와도 견줄 수 있을 테니까.
“그대는 이 영하의 촌락에 머물기에는 너무 아까운 능력을 지녔소. 뜻이 있다면 본좌를 찾아오시구려. 내 천하를 보여 줄 터이니.”
“나를 영입하고 싶다는 말이오?”
“가능하다면.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데 호위대장으로 평생을 보내더라도 이곳의 사정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오. 이 땅의 아이들이 풍족한 땅에서 살아가길 바란다면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게요.”
영하는 여러모로 신강을 닮은 곳이다.
적사결은 마은호가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후손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힘들게 살아가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당신은 도대체 누굽니까? 아까의 무위도 그렇고 천하를 논하다니…….”
마은호는 적사결이 평범한 무림인이 아님은 어렴풋이 알았지만 지금의 말로 강호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임을 직감했다.
그 말에 염마천이 나서며 자부심이 담긴 목소리로 답했다.
“사정이 있어 이런 모습이시지만 이분께서는 마도의 하늘. 천하 마인들의 정점에 군림하시는 지존이시오.”
“천마…… 신교? 하면 그대는?”
“나는 신교의 호교대법사. 지존을 지키는 검이오.”
“……하, 하. 천마신교의 교주에 호교대법사라니…….”
마은호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천마신교라면 무림을 사분하는 천하 사대세력의 하나가 아닌가.
중원에서는 마교로 부르지만 그는 신강의 민초들이 그들을 얼마나 따르는지 잘 알고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도 그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은 천마신교가 존재하기 때문이었으니까.
“염마천. 쓸데없는 미사여구가 많구나.”
“송구합니다. 속하가 주제넘었습니다.”
염마천이 짧게 읍하며 공손하게 대했다.
적사결은 피식 웃으며 마은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본교는 강자를 환영하오. 본좌는 마도의 하늘, 광혈존 적사결. 입교하지 않아도 좋으니 시간이 되면 차라도 한잔하러 오시구려.”
* * *
적사결 일행이 떠난 후.
마은호는 마경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혼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허허. 회교의 지도자에게 뭘 묻는 것이냐. 내 입장에선 썩 달갑진 않지.”
천마신교가 종교이기 때문이다.
회교는 알라라는 유일신을 믿기에 타종교는 이단이나 마찬가지였다.
“역시 그렇지요.”
마은호도 알고 있었다.
종교가 얽혀 있기에 쉬운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너는 천마신교로 가고 싶은 모양이구나.”
“아혼 님께서도 천마신교에 대해 들어 보시지 않았습니까. 영하보다 황폐한 땅이 신강입니다. 한데 그들은 그곳을 바꿔 놓았습니다. 사천, 강남, 강북을 상대로 천하를 논할 정도로 말입니다.”
“어찌 모르겠는가. 분명 뛰어난 자들이 모인 집단이지. 그들과 교류한다면 이곳 영하도 바뀌게 될 것이란 기대감을 절로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소수민족 중에서 회족이 많은 수를 차지한다지만 중원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대부분 회족임을 드러내 놓진 않는다.
외모로 구분이 안 되니 굳이 차별을 받을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심지어 회교를 믿지 않는 자들도 존재했다.
한데 영하의 회족은 달랐다.
지금까지 전통을 고수하는 폐쇄적인 문화를 지켜오고 있었다.
문화가 다른 것부터 이런저런 제반환경이 좋지 않으니 타 지역과의 거래가 원활할 리 없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영하의 회족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낙인과도 같았다.
“네 마음이 정 그렇다면 일단 한 번 찾아가 보거라.”
고심하던 마경생의 입에서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말이 나왔다.
“제가 부족하여 아혼 님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하겠습니다. 혹시 저의 신앙을 의심하시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라면 거두어 주십시오.”
“그런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지 않았더냐. 입교하지 않아도 좋으니 한 번 들르라고 말이다. 천마신교가 종교집단이라지만 그들 역시 무림에 적을 둔 문파라 들었다. 내 듣기에 무림 문파에는 속가라는 제도가 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으니 알아보거라. 네 마음속에 알라가 계시고 회교의 교리를 지키며 살아간다면 천마신교의 속가가 되는 것을 내 허락하마.”
“정말이십니까?”
“영하의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더냐. 그 정도는 알라께서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
마경생은 밝지만은 않은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도 내심 이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탐탁지 않은 것이었다.
“하나 지금 당장은 아니 된다. 그 이유는 너도 알겠지?”
“왜 모르겠습니까. 곧 재월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 재월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있을 마지막 상행만 호위하고 떠나도록 하거라.”
재월(齋月), 서역에서 라마단이라 불리는 기간이다.
달포간 단식과 재계를 하는 달로 모든 사욕을 금하고 알라를 향해 기도하는 신성한 의식을 치러야 했다.
회족은 이 한 달을 축복의 달로 부르고 속죄와 용서의 기간이라 칭했다.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행사가 바로 재월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