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68화>
쾅. 쾅. 콰앙.
사왕은 집채만 한 주먹을 연달아 퍼부으며 몰아쳤다.
주먹에 달린 돌 가시는 파랑이 몸을 추스를 수 없을 정도로 으깨 버렸다.
‘파랑. 괜찮겠어?’
마은호가 처음으로 걱정스런 물음을 꺼냈다.
파랑이 이 정도까지 수세에 몰린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걱정 마! 원래 육탄전은 돌대가리들의 주특기라 밀리는 것뿐이야.
‘알았다. 한데 기운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알아 둬.’
권능은 파랑의 능력이나 그 바탕이 되는 기운은 마은호가 지닌 본연의 힘.
때문에 그 한계는 분명했다.
-나도 알고 있어. 지금 당하는 건 다 이기기 위한 포석이라고.
마은호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었지만 속내는 달랐다.
상대는 이제 막 빙의를 성공했다는 게 믿기 힘들 정도로 과격했기 때문이다.
퍼어어어엉. 후두두둑.
회전하며 날아든 가시 주먹에 형태를 근근이 이루고 있던 수룡의 몸체가 완전히 터져 버렸다.
사왕은 주먹을 활짝 펴고 손바닥을 바닥에 갖다 대었다.
그러자 바닥을 적시고 있던 물이 사왕에게 빨려 들기 시작했다.
수분 자체를 제거해 파랑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행위였다.
‘파랑! 서둘러!’
-다 됐어!
파랑의 대답과 함께 사왕의 주위로 막대한 양의 물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육탄전에서 밀리자 전력으로 수맥을 끌어온 것이었다.
촤아아아아.
물길이 모이며 사왕을 중심으로 둥글게 둘러싸기 시작했다.
반경 백 장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구를 형성하자 사왕은 물속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사왕. 빠져나갈 수 있겠어?’
적사결의 물음에 사왕은 거체를 움직이려 안간힘을 썼다.
하나 엄청난 양의 물이 주는 압력은 움직임을 극도로 제한했다.
-당장은 무리다. 이 저항력을 뚫고 나가려면 일다경은 걸릴 것 같군.
‘뭐? 그럼 흡수는?’
-물의 양이 너무 많다. 흡수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이 새끼…… 설마.’
그저 물로 된 구체에 가두고 빠져나가지 못하게 만든 것.
하나 그것만으로도 생명체에겐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주인이 생각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녀석은 공기를 빼앗으려는 것이 분명하다.
사왕의 권능 안에 있다 하여 호흡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신체가 제 기능을 유지하려면 숨을 쉬는 행위는 필수였다.
이대로 일각만 지나도 신체의 기능이 정지해버릴 터.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땅의 권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다급한 물음에 사왕은 고개를 저었다.
-호흡을 위해 관을 만들어 바깥으로 내보내려 해 봤자 압력을 집중해 부숴 버리겠지. 나로서는 방법이 없다.
‘너도 주변의 모래나 흙을 대량으로 끌어와서 주변을 덮어 버려. 그럼 될 거 아니야.’
-빙의를 한 것만으로 당장 모든 권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수백 년 만에 힘을 쓰는 것인데 적응이라는 게 필요할 것 아닌가.
‘……끙.’
사왕의 말은 틀리지 않기에 할 말이 없었다.
-내 계산으로는 한 식경 정도면 놈의 힘이 다할 것이다. 상대도 지금 마지막 승부를 건 것이다. 그때까지 참을 순 없는가?
‘본좌가 물고기냐? 한 식경이나 호흡을 참게?’
그때 번쩍하고 무언가가 머리를 스쳤다.
늑대로도 변할 수 있는데 물고기라고 불가능할까?
폐를 대신해 아가미를 가진 물고기는 물속에서 호흡을 할 수 있다.
하니 단순하게 생각하면 폐를 아가미로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사왕. 몸을 넘겨.’
-방법이 있나 보군?
사왕은 돌 거인의 형태를 유지한 채 신체의 지배력을 주인에게 돌렸다.
적사결은 그 즉시 삼지안을 개안하고 천축유가신공의 공능을 집중했다.
폐라는 한 부분에만 의지를 집중하면 되기에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기 중의 산소를 받아들이는 작용을 변화시켜 수중에 녹아 있는 산소를 걸러 낼 수 있도록 만들면 되기 때문이었다.
부글. 부글.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돌 거인에게서 공기 방울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파랑은 경악했다.
-저놈…… 정말 인간인가?
물속에서 보란 듯이 숨을 쉬다니.
오랜 세월을 살아온 파랑조차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우리가 진 것 같은데?’
마은호의 말에 파랑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 막 빙의를 성공시킨 놈들에게 지다니.
-……그래. 젠장.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지. 그래도 놈을 불구로 만들었으니까 그걸로 만족하자고.
파랑은 한숨을 쉬고는 권능을 해제했다.
그러자 구체를 이루던 물이 아래로 쏟아지며 한 차례 파도가 몰아쳤다.
파랑 역시 빙의를 풀고 마은호의 곁에 자리했다.
[우리가 졌다. 젠장.]
“패배를 인정하오.”
항복 선언이 나오자 적사결도 돌 거인 밖으로 튀어나오며 그 앞에 자리했다.
전투 중에 사라진 그의 양팔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좋은 승부였소. 덕분에 많은 걸 배웠소.”
적사결의 말에 마은호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니오. 하늘 밖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우리가 배웠다 해야 할 것이오. 고맙소. 이 녀석의 콧대를 눌러 줘서.”
파랑은 그 말에 낮게 코웃음을 쳤다.
[헹. 하늘 밖에 있는 하늘은 불군가 보지?]
“승부의 지엄함도 모르는 머저리였군. 졌다고 제 입으로 시인하고도 질척거리는 걸 보니 말이야. 물의 영령들은 다 너 같은가?”
[……이이.]
파랑은 붉그락푸르락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지만 곧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화를 내면 자신의 일족은 머저리라는 걸 시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파랑. 저분께 사과하고 내기의 조건대로 현자의 돌에 대해 말씀드려.”
마은호의 말에 적사결이 만류했다.
“마음에도 없는 사과는 받고 싶지 않으니 됐소. 그리고 잠시만 기다려 주겠소?”
그는 눈짓으로 자신의 어깨를 가리켰다.
“아참. 치료부터 하는 것이 먼저인데 미안하오.”
“괜찮소.”
적사결은 그 즉시 삼지안을 사용했다.
그러자 어깨 부위부터 하얀 실이 실타래 풀리듯 흘러나와 양팔을 닮은 고치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일다경 후.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 고치가 갈라지고 바닥에 흘러내리자 매끈한 피부를 가진 새로운 팔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 정말 인간인가? 혹시 도마뱀의 피가 섞였다거나 그런 거 아니야?]
파랑은 괴물을 보듯 적사결을 바라보았다.
“흐흐, 네 주인이 하늘 밖의 하늘이라 하지 않았더냐.”
적사결은 한 차례 이죽거리고는 마은호에게 말을 이었다.
“일단 자리를 옮기도록 합시다.”
* * *
청진사 접객당.
일행들이 자리를 옮긴 장소였다.
그곳에서 내기의 조건으로 내건 현자의 돌에 대한 파랑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현자의 돌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물질변환을 가능케 해 주는 신비의 재료라 할 수 있다.]
“물질 변환?”
[한마디로 물체의 본질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조작이지?”
[……흠. 예를 들자면 여기 이 나무탁자에 현자의 돌을 사용하면 탁자의 길이를 늘리거나 크기를 키우거나 형태를 둥근 탁자로 바꾼다거나 하는 변환이 가능하다. 또한 성질을 조작해 돌이나 철로 된 탁자로 바꿀 수도 있지.]
“허어, 전혀 다른 물질로 바꿀 수도 있다? 그래서 연금술이 금을 만든다는 학문이라 불린 것이군.”
[그렇다. 시작은 그런 물욕이었으나 연금술의 영역은 우리들 영령에게 미칠 정도로 발전했지. 물질을 비물질로 바꿀 정도로. 그 때문에 저놈이나 나나 이런 것에 봉인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얘기로는 중원의 주술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듯했다.
하나 현자의 돌에 대한 정체는 아직 요원한 수준이었다.
“현자의 돌은 연금술사들이 연금술로 만들어 낸 것이냐?”
[아니. 인간이 그런 고차원의 재료를 만들어 낼 순 없지. 단언컨대 현자의 돌은 신이 세상에 내린 것이다.]
“신이 내렸다?”
[태초부터 존재하는 신의 선물이라 할 수 있지. 현자의 돌은 어디에나 있으나 또한 어디에도 없다.]
“그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 지금 본좌랑 선문답이나 하자 이거야?”
[현자의 돌은 본래 금속의 일종이다. 물론 다른 금속과 같이 시간이 지날수록 녹스는 금속은 아니지. 정확히는 시간이 지나며 점차 평범한 돌이 되는 철. 그것이 현자의 돌이다. 평범한 돌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중 현자의 돌은 아무 곳에나 존재하지 않지.]
그 말을 들은 당연희가 입을 떡 벌리며 일어났다.
“앉아.”
“저건 그거잖아요!”
“나도 알아.”
여기서 그걸 모르는 자가 있을까.
아, 있다.
“그게 뭡니까?”
“그거라니요?”
그것도 두 사람이나.
마은호와 강산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진철, 고대의 무구로 불린 보패의 재료지.”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구할 수도 있겠군요?”
강산의 순진한 물음에 적사결은 고개를 저었다.
“신진철은 고대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 시대에는 찾을 수가 없다. 저 녀석의 말대로 시간이 흐른 신진철은 평범한 돌이나 마찬가지니까. 눈앞에 두고도 그걸 구별할 방법이 없는 거지.”
신진철이 현자의 돌이란 사실은 꽤 놀라운 사실이다.
하나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단순한 호기심이었기에 알아본 것일 뿐이었다.
“보패를 만들 것도 아니니 없어도 문제 되는 것은 없지 않습니까. 그만 복귀하시지요.”
염마천이 적사결에게 간언했다.
그들로서는 얻을 것을 얻었으니 서둘러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혈교의 준동이 코앞이니 말이다.
한데.
“반드시 있어야 돼요.”
당연희가 단호한 어조로 주장했다.
“전설의 금속인 신진철을 얻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염마천의 말대로 꼭 있을 필요는 없다. 하니 억지 부리지 말거라.”
“억지가 아니에요. 운철을 얻으려면 신진철이 있어야 해요.”
“그게 무슨 말이냐?”
“아까 들으셨잖아요. 다마스커스는 운철과 신진철로 만들어졌다고요. 그 말은 두 금속을 섞은 합금강이라는 뜻이에요. 순수한 운철을 얻으려면 하나로 섞인 합금강에서 신진철을 분리해야 한다는 의미고요.”
“……이런.”
사왕에 운철이 섞였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라 여긴 것이었다.
그것을 당연희가 정확히 짚어 낸 것.
당가는 무기의 제련술에 있어서도 뛰어났고 그곳에서 자란 그녀였기에 가능한 지적이었다.
“그럼 두 금속을 분리하려면 신진철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냐?”
“그래요. 두 가지 모두 극히 희귀한 금속이지만 신진철은 특히나 그 성질이며 특징이 은막에 가려져 있어요. 중원에 존재하는 보패들이 모두 돌이 되어 버렸으니 금속으로 존재하는 신진철이 반드시 필요해요.”
“그 보패들을 사용할 순 없는 것이냐?”
“일단 보패를 원래대로 바꿀 수 있는 방법도 모르는 데다 다마스커스처럼 어떤 금속이 첨가되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순수한 신진철이 있어야 분리가 가능해요.”
골치 아픈 일이다.
천하에 널리고 널린 돌 중에 그것을 가려내고 돌이 된 상태를 어찌 또 금속으로 되돌린단 말인가.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절로 욕지거리가 나온다.
하나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면 또다시 난제가 다가오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현자의 돌을 구하면 되는 것 아닌가? 뭘 그리 고민하지?]
파랑이 보다 못해 끼어들었다.
엥? 이건 또 무슨 경우지?
“아니, 아까는 구하기 힘들 것처럼 말하더니 그건 또 무슨 말이냐?”
[구하기 힘들지만 방법이 있으니 하는 말이다. 물론 되살리는 것도 가능하고.]
“뭐? 방법이 있다고!? 진작 말했어야지! 뭐야? 뭔데?”
[이 땅에서는 오직 너만이 가능한 일이지.]
“뭐? 나만?”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