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적의 이혼대법-167화 (167/206)

<기적의 이혼대법 167화>

‘하나 당장 찰떡같은 호흡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거 알지?’

-물론이다.

‘단순하게 가자. 너는 방어, 나는 공격. 힘을 끌어 쓰는 것은 삼 할까지만 허락하마.’

-알았다.

사왕은 대답이 끝나자마자 권능을 사용했다.

그러자 발밑의 모래가 사락거리며 온몸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파랑의 물 갑옷처럼 모래로 방어를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 전신을 두른 상대와 다르게 모래 갑옷은 요혈 부위만 드문드문 감싼 형태였다.

‘모래알 몇 개로 다 방어가 되겠어?’

-모래는 물을 흡수하지. 놈을 상대로는 제격이다. 방어는 나에게 맡겨라, 주인.

‘좋아. 역할 분담은 확실히 하자고.’

적사결은 그 즉시 호신강기를 해제하고 도강에 집중했다.

퍼어엉.

수라천랑보의 일보에 폭발적으로 펼쳐진 공세.

물방울에 뚫릴 정도로 허약한 강기에 힘을 더하기 위함이었다.

적사결이 생각하는 당연희의 공력은 딱 그 정도였다.

쩌저저저정.

베고 휘두르고 찌르는 단순함에 쾌의 묘리가 더해져 폭풍같이 몰아쳤다.

마은호의 대응은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끊임없이, 그리고 부드럽게 이어지며 경파를 받아넘겼다.

그러면서 간간이 반격도 일어났다.

그것은 앞서와 마찬가지로 물뱀을 만들어 내 공격하는 형태였다.

하나 이번엔 적사결과 사왕도 협력하는 상황.

물뱀의 공격을 모래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그 앞을 막아섰다.

닿기만 해도 수분을 흡수하는 모래는 과연 물뱀의 천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은호의 얼굴은 힘든 기색이 번져 갔다.

그로서는 자신보다 노련하고 뛰어난 고수를 상대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콰아아앙.

일격을 얻어맞은 마은호의 신형이 처음으로 튕겨 나갔다.

한계에 부딪치자 심신이 흔들리며 힘을 제대로 흘려 내지 못한 것이었다.

“……크윽.”

입가의 선혈이 물 갑옷에 배어 나왔다.

마은호는 내장이 진탕되는 듯한 충격에 전신이 얼얼했다.

‘이것이 암경이란 것이군.’

그간 상대했던 무림인들은 파랑의 권능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로서는 처음 경험하는 격통이었다.

하나 그 충격은 곧 파랑에 의해 체외로 배출되었다.

“파랑. 그걸로 가자.”

마은호의 나직한 말에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파랑의 본체가 현신했다.

그러고는 그의 신체로 흡수되듯 빨려 들었다.

적사결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삼지안으로도 파악되지 않았기에 알 수 없지만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여기 말로 따지면 일종의 빙의 같은 것이다.

사왕이 그 현상을 알아보고 설명해 주었다.

‘빙의? 귀신처럼 사람에게 빙의를 한다고?’

-우리들, 진이 자연계의 영령이라는 것을 들었지 않은가. 영체니 빙의도 가능하지.

‘그럼 너도 본좌에게 빙의할 수 있다는 건가?’

-당장은 불가하다. 그러려면 주인과 나의 호흡이 찰떡같이 맞아떨어져야겠지.

찰떡이라니 아까 한 말을 따라한 건가.

배우는 것도 빠르다.

‘빙의하면 주체는 누구지? 진인가?’

-그렇다. 지금부터는 파랑이라는 놈을 직접적으로 상대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푸스스스.

마은호의 전신은 그의 눈동자처럼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반면에 그의 눈동자는 사라지고 오직 흰자만이 번득였다.

[죽여 주마.]

한기가 뚝뚝 떨어지는 음성.

그 싸늘함이 가시기도 전에 파랑이 쏟아지는 폭포수처럼 쇄도했다.

*   *   *

콰콰콰쾅.

굉음과 함께 번쩍거리는 도광이 난무했다.

당연희와 염마천, 그리고 강산과 구월은 두 사람의 대결을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마은호의 전신이 푸른색으로 변하는 그 순간부터 눈을 떼기도 힘들 정도로 수준 높은 생사투가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저기 제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누가 설명 좀 해 주겠어요?”

당연희의 말은 포괄적이었으나 세 사람은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그들도 마은호의 변화가 마치 사람이 바뀐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소저에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것은 하나요. 지금의 저자는 분명 다른 사람이오.”

그중 가장 무위와 연륜이 높은 염마천의 말이었다.

“다른 사람이라고요?”

“어쩌면 저자는 인격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인지도 모르지. 지금의 모습은 분명 움직임이나 검초만이 아니라 분위기나 기세, 기예의 운용까지 모든 것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니 말이오.”

당연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다중인격에 대해서는 의서에서 읽어 본 경험이 있었다.

“한데 저 검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처음 보는 유형인데 교주께서도 힘겨워 하는 모양인데.”

“확실히 중원의 것은 아니오. 저토록 손목을 혹사시키는 검술은 우리와는 괘를 달리하오. 회족에게 전해 내려오는 서역의 검술이 아닐까 싶소.”

변초를 주는 데 있어 중원의 것은 어느 한 부분만 사용하지 않는다.

조화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검의 진행 방향에 따라 어떤 때는 보법으로, 손목으로, 어깨로, 또는 신체가 아닌 검 자체의 탄성을 이용하기도 한다.

한데 마은호가 보이는 검술은 변화를 오로지 손목만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그것도 흉내 내기 힘들 정도로 극한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어찌 되었든 지존께서 이기십니다. 그것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구월이 두 사람을 보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   *   *

‘대단하구나.’

적사결은 파랑의 검술을 상대하며 속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기수식은 단순하게 옆으로 선 자세.

하나 그것만으로 전신이 도신 뒤에 가려졌다.

요혈이 모두 가려지고 공격할 빈틈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었다.

그 상태로 움직이는 것은 두 발과 무기를 쥔 손이 전부였다.

다른 부분은 정적인 채 오직 그곳만 극쾌의 움직임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느껴졌다.

쉬이익.

이번에도 찔러 오는 공격.

파랑의 도첨이 아래에서 위를 공격하듯 적사결의 턱 끝을 노렸다.

한데 파랑이 뱀처럼 휘어지며 도첨이 돌연 하단을 공격했다.

다른 움직임을 배제한 채 오직 손목을 급격하게 돌린 것만으로 만들어 낸 공세였다.

만곡도를 넘어설 정도로 기형으로 휘어진 샴쉬르의 도신을 십분 발휘한 검술.

이곳이 중원이 아니라 생각될 정도로 이국적이었다.

쩌엉.

하나 적사결의 손목도 유연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

사왕을 돌리며 막아 낸 것을 넘어 계속해서 꼬인 후 폭풍처럼 전면을 몰아쳤다.

부와아아악.

광풍폭살의 폭발적인 파괴력이 파랑을 덮쳐갔다.

한데 파랑은 파도를 타는 듯한 움직임으로 적사결의 기세를 타고 바깥으로 물러났다.

보법인 듯 보이면서도 아주 독특한 발놀림이었다.

그러면서 물러나는 파랑의 도에서 물줄기가 솟구쳤다.

마은호가 보였던 것과 비슷한 기예.

하나 그의 것이 가느다란 물뱀이었다면 파랑의 기예는 통나무 두께만 한 수룡이었다.

그것도 다섯 마리나.

콰르르르.

수룡은 마치 살아 있는 듯 적사결을 좇아왔다.

수라천라보로 회피해도 전 방위를 압박하며 몰아치는 공세는 매서웠다.

‘사왕. 저거 맞아도 괜찮겠나?’

-무리다.

‘야, 아까는 분담하자며!’

-주인과 내가 저들 정도의 경지에 오른다면 가능하다. 저건 어중간한 권능으로는 막을 수 없다.

‘자식아 그럼 보조해. 더 피할 곳도 없다.’

적사결은 사왕을 휘두르며 귀문혈천의 검초를 펼쳤다.

동시에 삼지안의 공능으로 내공을 토의 기운으로 변환.

사왕의 권능을 생각해 기운을 동조시킨 것이었다.

쿠르르르.

사왕의 보조는 귀문혈천의 초식을 따랐다.

귀문의 형상을 띤 강기 위에 흙과 모래의 방패를 덧씌운 듯한 형태였다.

그리고.

콰콰콰콰콰콰쾅.

그 충격으로 인해 땅이 뒤집히고 홍수가 난 듯 물폭탄이 사방으로 튀었다.

“……쿨럭.”

홀딱 젖은 적사결은 각혈을 하며 선홍빛 액체를 입가에서 흘렸다.

그의 양팔은 갈기갈기 찢어져 너덜거렸고, 사왕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빌어먹을 내공. 위력이 너무 약해.’

혈마기였다면 생채기 하나 없이 막아 냈을 것이다.

적사결은 자신의 몸이 너무나도 그리워졌다.

[큭큭큭. 승부는 난 것 같군.]

파랑이 비릿한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다가왔다.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물어 죽이면 되는데 승부가 났다니 웃기는군. 그건 어느 나라 법이지? 서역에서는 고작 이 정도 상처에 꼬리를 마는가보군.”

[과다 출혈로 죽을지도 모르는데 네놈은 목숨이 여러 개라도 되나 보지?]

“과다출혈? 어디가?”

적사결이 의지를 발하자 상처 부위의 근육이 조이며 지혈이 되었다.

파랑은 혀를 내두르며 샴쉬르를 고쳐 잡았다.

[좋다. 아주 끝장을 보자.]

파랑은 서역검술의 기수식을 취한 채 권능을 집중했다.

그러자 아까보다 많은 아홉 마리의 수룡이 칼끝에서 일어났다.

[죽어라.]

그 말과 함께 구룡의 포효가 대기를 갈랐다.

마치 아홉 줄기의 대폭포가 한곳으로 집중되어 쏟아지는 듯한 모양새.

그 엄청난 압력은 만근거암이라도 가루로 만들어 버릴 듯 막강했다.

꽈과과과광.

일 점에서 터져 오른 폭포수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자 이는 곧 폭우가 되어 대지를 적셨다.

아무것도 없던 황야에 반경 삼십여 장에 이르는 거대한 물웅덩이가 생길 정도로 막대한 양이었다.

찰박. 찰박.

파랑은 마치 등평도수와 같은 모습으로 발밑의 물을 밟으며 나아갔다.

그러는 순간에도 웅덩이의 수위는 점차 낮아졌다.

모래사막과 접한 황야이기에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수위가 낮아지며 드러난 웅덩이 바닥.

한데 그 가운데 있어야 할 적사결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그곳에는 독특하게 생긴 바윗덩어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

파랑이 나직이 읊조리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핏. 핏. 핏. 핏.

바위표면에 기묘한 문양으로 실금이 가더니 점차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그그긍. 쿵.

실금을 기준으로 분리되며 하나의 형상이 그 거체를 일으켰다.

이 장은 될 법한 높이의 그것은 거대한 인간의 모습을 띤 돌인형이었다.

-대단하다, 주인. 그 순간에 나와 동조를 이루다니.

‘말했잖나. 전투란 모름지기 목숨을 걸어야 하는 법이라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왕의 빙의를 성공시킨 것이었다.

덕분에 지금의 적사결은 전신이 갈색을 띤 채 돌인형 속에 들어가 있었다.

신체를 장악한 주체 역시 파랑과 마찬가지로 사왕이 된 상황.

신기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적사결은 주위가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눈앞의 작은 창을 통해 바깥 상황을 인식할 수 있었다.

‘네가 말한 이 경지까지 도달했으니 이길 수 있겠냐?’

그 물음에 사왕은 바윗돌로 이루어진 두 주먹을 맞대며 답했다.

[걱정 마라, 주인. 이 돌주먹 한 방이면 질질 싸게 만들 수 있으니까.]

그 소리를 들은 파랑도 지지 않고 외치며 권능을 발휘했다.

[아까부터 싸긴 뭘 싼다는 거야! 이 돌대가리가.]

콰르르르.

바닥에서 솟아오른 물줄기가 파랑의 몸을 감싸며 회오리쳤다.

그러자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로 이루어진 수룡이 꿈틀대는 듯 위용을 뽐냈다.

사왕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몸체였다.

[갯지렁이로 변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으냐?]

투콰아아앙. 퍼어어엉.

사왕의 일격에 파랑의 머리통이 터지고 폭포처럼 물이 쏟아져 내렸다.

[봐라. 한 방이면 질질 싸잖아. 흐흐.]

하나 곧바로 머리를 수복한 파랑이 사왕의 몸체를 휘감고 이빨로 목을 물어뜯었다.

콰지지직. 우직. 우지직.

흠집 하나 없었던 사왕의 몸체가 바스러지고 돌무더기가 후두둑 떨어졌다.

아홉 마리의 수룡에도 끄떡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괴력이었다.

[이대로 짓이겨 주마.]

파랑은 승기를 잡은 듯 권능에 더욱 집중했다.

[짓이겨지는 것은 너겠지!]

단호한 외침과 함께 사왕의 전신에서 고슴도치처럼 돌 가시가 솟아났다.

파랑은 전신에 구멍이 숭숭 난 채 비틀거렸다.

적사결은 속에서 그 모습을 보며 신이나 외쳤다.

‘잘한다! 박살 내버려!’

작은 창으로 관전하는 괴수들의 싸움은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