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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166화 (166/206)

<기적의 이혼대법 166화>

파랑은 눈을 크게 치켜뜨며 물었다.

[내기?]

“그래. 너와 네 주인 그리고 본좌와 사왕. 허심탄회하게 붙어서 이기는 쪽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말이다. 어떠냐?”

[크하하하. 이제 갓 계약을 맺은 주제에 지금 우리와 싸워 보겠다고? 이거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군.]

“사왕의 권능을 연습할 기회를 줘서 오히려 내가 고맙지.”

[큭큭. 우릴 연습 상대로 여기다니 후회하지 마라. 우리가 이기면 소원은 하나다. 네놈들의 계약을 파기하고 다마스커스를 은호에게 주는 것. 그래도 괜찮은가?]

“계약을 파기할 방법이 있나? 그는 모른다고 하던데.”

[간단하지. 네놈이 죽거나 저 흙덩이가 소멸하면 되니까. 흐흐흐.]

그 말에 마은호가 파랑을 제지했다.

“이봐, 파랑. 너무 갔어.”

“아니. 딱 좋군. 목숨 정도는 걸어야 싸울 맛이 나는 법이지.”

적사결이 히죽 웃으며 승낙했다.

“이보시오. 아직 권능을 제대로 모르고 있잖소. 그리 간단히 말할 문제가 아니오.”

“내 목숨이니 신경 쓰지 마시오. 생사투(生死鬪)는 바라는 바니까.”

“진심이오?”

“물론,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라 했소.”

“음? 남아?”

이런 젠장.

“뭐, 하여튼 그렇다는 말이오.”

적사결은 머리를 벅벅 긁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나 본좌가 여자라고 봐주면 가만두지 않을 줄 아시오.”

“그럴 리는 없을 거요. 그대가 강하다는 것은 피부로 느끼고 있으니 말이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역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 것이다.

적사결도 마은호에게서 강자만이 가지는 분위기를 느꼈다.

그것은 무림인을 상대로 격기로 상대의 내력을 추정하는 것과 달랐다.

내공의 유무와 상관없이 직감적으로 강자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었다.

‘이런 변방 소수 민족에 머물러 있기에는 아까운 자다.’

*   *   *

휘이이잉.

대결 장소는 사파두에 인접한 황야였다.

인적이 드문 데다 생명체도 거의 없기에 두 사람과 두 영령이 마음껏 싸우기에는 제격이었다.

“그럼 실례하겠소.”

마은호가 파랑을 뽑으며 예를 갖추었다.

“얼마든지. 부디 본좌를 실망시키지 않길 바라오.”

적사결이 사왕의 도파(刀把)를 움켜쥐며 씨익 웃었다.

“미리 말해 두겠는데 나는 그대를 상대로 탐색전을 할 자신이 없소. 조금만 방심해도 이 목이 떨어질 것 같으니 말이오.”

“걱정 말고 초장부터 전력을 다해도 좋소.”

그 대답을 들은 마은호의 눈에서 푸른 기광이 번쩍였다.

동시에 전신에서 부글거리며 물이 샘솟았다.

마치 물거품이 일어나는 물의 갑옷을 전신에 두른 듯한 모습이었다.

파아앗.

적사결의 이마에 삼지안이 떠오르며 상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특이하군. 역시 내공이 아니야.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운이 다마스커스를 거쳐 저러한 현상을 보이는 것이야.’

간단히 말하자면 주인의 힘을 권능으로 치환한다 해야 할까.

삼지안은 마은호의 내부를 속속들이 보여 주고 있었다.

-주인의 추측이 맞다. 우리의 권능이 지닌 힘은 결국 계약자가 지닌 힘의 크기지.

사왕이 속마음을 읽은 듯 머릿속으로 설명을 곁들여 주었다.

‘그럼 본좌의 힘이 무한하면 너의 권능도 무한한가?’

-아니. 우리의 권능도 한계가 있다. 또한, 주인과 나 사이의 일체감도 중요하지. 일체감이 맞지 않는다면 효율이 극도로 떨어진다.

‘일체감이라. 신검합일로 동조하는 것과는 다른 것인가?’

-그건 나와의 동조가 아니라 나를 가두고 있는 이 봉인체와의 동조겠지. 간단히 말하면 서로에 대한 이해다. 나는 주인의 힘이나 무공이라는 것을 자주 접했기에 알지만, 주인은 나의 권능을 모르지 않는가.

‘그렇군. 그래서 저자가 권능을 다루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 말한 것이로군.’

주고받는 대화의 내용은 길었지만, 생각을 전하는 것이라 그런지 찰나라 생각될 정도로 빨랐다.

계약으로 영혼이 이어진 덕분에 그러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건지도 몰랐다.

그렇게 대화가 일단락된 순간.

퓨퓨퓨퓽.

마은호가 파랑을 휘두르자 네 개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엄청난 빠르기로 쇄도했다.

‘이 정도쯤.’

적사결도 귀문혈천의 방어초로 전면에 강기막을 형성했다.

공격을 튕겨 냄과 동시에 반격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퍼퍼퍼퍽.

단천도제의 절초도 되받아쳤던 귀문혈천의 방어가 종잇장처럼 뚫려 버렸다.

적사결은 몸에 네 개의 바람구멍이 난 채로 어이가 없어 눈도 깜박이지 못했다.

상처는 삼지안이 빛나며 곧바로 수복되었지만, 자존심에 생긴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강기를 손쉽게 뚫어 버리다니! 이게 무슨…….’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거리를 좁힌 마은호의 일격이 쇄도했기 때문이었다.

사선으로 내려치는 공세를 허리를 젖혀 피하고 이어지는 연격을 수라천랑보로 회피했다.

강기가 뚫린 이유를 파악하고자 한 것이었다.

촤악. 촤아악.

강기를 뚫어 낸 파괴력에 속도도 절정고수를 상회할 정도로 빠르지만, 삼지안의 예측이 있기에 여유롭게 대응할 수 있었다.

적사결은 흩날리는 물방울 하나까지 유심히 관찰했다.

‘물의 압력을 이용한 것이로군.’

베어 내며 쏟아진 물이 참격이 되어 땅바닥을 가르고 내지른 물줄기가 바위를 꿰뚫었다.

마은호는 물을 마치 기공처럼 활용하고 있었다.

‘번거롭군.’

적사결은 미간을 찌푸리며 사왕을 휘둘렀다.

그 도첨(刀尖) 끝에는 강기가 극도로 압축되어 구슬 모양이 된 강환이 있었다.

쩌어어어엉.

두 다마스커스가 충돌하며 서로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그래도 강환은 뚫지 못하는 모양이군.’

하나 강환은 내공 소모가 극심했다.

지금의 내공으로는 서너 번 정도가 한계.

자주 쓸 수 있는 기예가 아니었다.

‘강환 없이 맞부딪히면 아무리 사왕이라도 위험해.’

동급의 무기가 압도적인 파괴력을 두르고 공격하는 상황.

지금까지, 아니 본신이었을 때도 이 정도의 격차는 겪어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역시 답은 공격뿐이지.’

부우우욱.

내공을 급격히 끌어 올리자, 입고 있는 궁장이 부풀어 오르고 비취색 기운이 허공에 넘실거렸다.

심장의 독을 직접적으로 끌어내진 않았음에도 독기에 의해 주변이 변색될 정도였다.

상대도 그걸 눈치챘는지 물의 갑옷을 더 두껍게 하고 있었다.

파파파팟.

수라천살검, 격혈경혼의 연계 공격이 참격의 소나기를 뿌렸다.

이전과 다른 점은 사왕의 증폭력 덕분인지 비취색의 독연을 둘렀다는 것이었다.

한데 마은호는 피하지도 않고 공격을 모두 몸으로 받았다.

콰콰콰콰콰콰쾅.

이어지는 기공의 충격파가 터져 나가고.

녹색의 연기가 걷히자 드러난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마은호의 모습은 멀쩡했고 격혈경혼의 초식은 마치 그가 딛고 선 발밑을 때린 것처럼 난도질되어 있었다.

“대단하군. 절대고수의 화경이라도 방금 초식을 이렇듯 완벽하게 흘려 낼 수는 없는데. 그것도 파랑의 권능이오?”

“그렇소. 땅의 권능이 흡수와 증폭이듯 물의 권능은 모든 기운을 정화하고 흘려 내지.”

과연, 그래서 독기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인가.

마은호의 말대로라면 상대는 독공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좋군, 좋아. 그럼 좀 더 즐겨 봅시다.”

파아앗. 화르르르륵.

삼지안이 빛나며 적사결의 호신강기와 사왕의 비취색 도강이 붉게 변해 갔다.

그리고는 화마를 두른 듯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삼지안의 공능으로 내공을 오행 중 화속성으로 변화시킨 것이었다.

파팟.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신형.

이형환위로 적사결이 간격을 줄여 버린 것이었다.

쩌엉. 치이이이이익.

달군 쇠를 담금질하는 듯한 소리.

사왕과 파랑이 맞닿은 부분에서 새하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대단하군. 무공이 이런 것도 가능한 것이었소? 사람의 몸으로 불길을 뿜어내다니.”

마은호는 진심으로 경탄한 듯한 얼굴이었다.

“어디 한번 견주어 봅시다! 하앗!”

화르르르르.

물의 상극인 불의 기운.

거기다 직접 칼을 맞대었으니 아무리 물의 권능이라도 힘을 흘려 내긴 힘들 터.

적사결은 그것을 노리고 삼지안의 능력도 측정해 보고자 지금의 대결 구도를 만든 것이었다.

상황을 주도하는 것은 적사결이 몇 수는 위라는 증거였다.

지금까지 헤쳐 온 수라장과 목숨을 건 실전 경험은 영하라는 좁은 땅에서만 지낸 마은호가 감히 따라갈 수 없는 부분이었다.

치지지지지직.

불길이 거세질수록 부글거리는 물의 압력 역시 높아져 갔다.

마치 도검을 맞대고 내력 대결을 펼치는 구도.

백중세로 보이나 여유가 있는 쪽은 마은호였다.

쉬리리릭.

몸을 둘러싼 물 갑옷에서 네 개의 가느다란 물줄기가 솟아오르며 물뱀의 형체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호신강기도 뚫어 버릴 듯 이빨을 번득이며 짓쳐 들었다.

-주인!

사왕이 위험을 감지하고 다급하게 적사결의 기운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발밑의 모래와 흙이 몸을 타고 오르며 갑옷을 형성하려 했다.

‘야, 인마. 말도 없이 갑자기 힘을 끌어 쓰면……!’

삼지안의 기운 변환과 내력 집중에 혼신을 기울이던 상황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자 운기의 균형이 무너지고 화기가 흩어지는 것은 물론 사왕의 권능도 불완전하게 발휘되었다.

떠어어어엉.

파랑에게 사왕이 튕겨 나가며 균형을 이루던 기운이 덮쳐들고.

네 마리 중 흙의 갑옷에 막히지 않은 한 마리가 적사결의 쇄골을 물어뜯었다.

퍼퍼퍼펑.

충격파에 뒤편에 자리한 사구에 처박히고 물뱀이 쇄골의 상처를 통해 신체 내부로 파고들었다.

몸속으로 침투한 물뱀은 심장이 목적인 듯 거침없이 움직였다.

“크으으윽!”

그 타격은 암경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직접적으로 몸속을 헤집는 물뱀은 기공으로 막아 보아도 별 소용이 없었다.

“그대들 무림인들이 자랑하는 강기도 뚫는 힘이오. 승부는 난 것 같소만…….”

마은호는 파랑을 늘어뜨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상당한 심력과 기력을 소진한 듯 그의 안색은 파리했다.

-주인!

‘시끄러워. 조용히 해!’

천축유가신공으로 근육을 조이고 혈류의 흐름을 반대로 돌려 물뱀의 진로를 막는 데 온 정신이 집중되었다.

그만큼 파고드는 힘은 장난이 아니었다.

“더 나아가면 심장을 터트릴 수도 있소. 아무리 그대라도 그걸 이겨 내는 것은 불가능하니 이쯤에서 포기하시오.”

마은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권고했다.

내기가 걸린 승부지만, 상대의 목숨을 취할 필요까지는 없었으니까.

하나.

“본좌는 패배가 곧 죽음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이깟 물방울 조금 몸에 들어왔다고 포기할 것 같으냐? 크윽…….”

격통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가슴 부근이 꿈틀거리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나아가지 못하는 물뱀이 발악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이런 기괴한 힘이라니……. 서역이란 곳도 무시할 수 없는 곳인 것 같구나.’

무공이 없다지만 지금까지 겪은 정도로도 대단한 공부가 아닐 수 없었다.

찌리리릿. 털썩.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관통하는 듯한 격통.

적사결은 한쪽 무릎을 꿇고 사왕을 바닥에 박아 기댄 채 왼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물뱀이 결국 심장 속으로 침투한 것이었다.

그때였다.

‘그래! 심장!’

심장에 가득 찬 독성분.

당백산은 심장을 일컬어 독인의 독주머니라 했었다.

독인이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의 근원 말이다.

‘심장의 독을 발출하면서 물뱀까지 함께 배출하는 거다!’

마음이 일어나자 의지가 되고 곧바로 심장 속의 혈류가 소용돌이치며 뭉쳐 들었다.

심장에 모은 독은 일정 수준이 넘자 마치 수족처럼 다루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그 힘에 물뱀이 마치 소용돌이에 빠진 나뭇잎처럼 휩쓸렸다.

결국.

“크웨에엑.”

실로 오랜만의 구토.

한 번에 쏟아 낸 독은 발밑의 모래에 스며들지 않고 모래 그 자체를 녹이며 바닥을 파고들었다.

“허억. 허억. 지독하군.”

이걸 맞았다면 절대고수의 호신강기라도 녹아 버렸을 것이다.

그때 한숨 돌린 적사결의 머릿속에 사왕이 나직이 말했다.

-주인. 그냥 날 가슴에 갖다 댔으면 그 힘을 빨아내 흡수했을 텐데 굳이 그렇게 힘들게 처리할 필요가 있었는가?

그 말에 적사결이 황당한 표정을 한 채 속으로 외쳤다.

‘야, 이 자식아! 그런 건 빨리빨리 말해야 할 거 아냐!’

-아까 조용히 하라고 하지 않았나!

‘어이구, 이건 뭐 호흡이 맞아야 같이 싸우든지 하지, 원.’

-알고도 녀석에게 싸움을 건 것은 주인이었다. 더구나 내 권능을 연습할 기회라고 말하고서 정작 혼자 싸우고 있지 않은가. 내 말이 틀린가?

‘알았어. 자식아. 지금부터라도 상부상조하자고.’

몇 백 년을 묵묵히 갇혀 있었던 놈이 말대꾸는 수준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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