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64화>
그가 어렵사리 입을 뗐다.
“없습니다.”
그 한 마디에 적사결을 비롯한 일행은 장탄식을 내뱉었다.
이곳까지 온 이유가 오직 그뿐이건만 남은 것이 없다니.
허탈감이 찾아오고 공허함이 느껴졌다.
한데.
“운석은 없지만 어쩌면 귀하께서는 이미 다른 단초를 지니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마경생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적사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다마스커스를 지니고 계시다 들었습니다.”
객잔에서의 소문이 그의 귀에 들어간 모양이다.
“그렇소.”
“다마스커스로 만들어진 무구에는 영령이 깃들어 있습니다. 즉, 영령을 이전시키는 연금술로 만들어진 것이란 말이지요.”
“……!”
적사결은 자신도 모르게 사왕의 도파를 움켜잡았다.
“그것이 사실이오?”
“허허, 내 거짓을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더구나 귀하께서는 회족의 배신자를 처단했으니 부족의 은인이나 다름없는데 말입니다.”
“한데 본좌는 사왕에게 영령이 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소.”
사왕과는 신검합일의 일체감까지 가졌었다.
그 정도까지 감응되었으니 영령이 깃들어 있다면 뭐라도 느꼈어야 했는데……
“그건 저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또 다른 다마스커스의 주인을 만나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라면 그 이유를 알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마 대장인가 하는 그자 말이오?”
“그렇습니다.”
“부탁하오. 만나게 해 주시오.”
“하면 내 자리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 이곳으로 오시지요.”
“지금 당장이라도 괜찮소만.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있지 않소?”
“그는 이곳에서 생산한 물품의 이송을 호위하는 부대의 대장입니다. 내일 새벽 즈음 돌아올 예정이니 당장은 어렵습니다.”
상단이나 표국이 사파두를 넘어 이곳까지 오지 않기 때문에 회족에서 별도로 이송 부대를 운영하는 것이다.
호위대는 비적이나 산적으로부터 물품을 보호하는 일종의 표사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내일 다시 오도록 하겠소.”
적사결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했다.
“여러 가지로 도움 감사하오.”
“허허, 무림에는 사해가 동도라는 말이 있다 들었습니다.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사람이지 않습니까.”
“아니오. 외지인인 우리를 허물없이 만나 주고 도와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내 회족의 도움은 잊지 않을 것이오.”
“귀하께서 이곳까지 오신 것은 분명 인연입니다. 모든 것이 알라의 뜻인 게지요.”
마경생은 푸근한 미소와 함께 담담히 답했다.
* * *
스르릉.
적사결은 처소로 돌아오자마자 사왕을 빼 들었다.
마경생의 말대로 영령이 정말 깃들어 있는 것인지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정말 너에게 영령이 깃들어 있는 것이냐?”
사왕에게 묻는 듯한 물음.
하나 대답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원.”
적사결은 광목천으로 사왕의 도신을 닦으며 실소를 흘렸다.
사왕을 그저 물건이라 여긴 적은 없었다.
애병의 존재는 영혼의 반쪽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나 그것이 생명체가 지니는 고유의 혼을 지닌 것이라 인정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자연계의 영령이라…….”
정말 그런 초자연적인 존재가 있단 말인가.
사실이라면 스치는 바람에도, 딛고 선 대지에도 혼이 서려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슥. 슥.
사왕을 정성스레 닦으며 적사결은 무념무상에 빠져들었다.
* * *
다음 날.
청진사로 향한 적사결은 마경생의 소개로 한 사내를 만날 수 있었다.
구릿빛 피부에 은발 청안의 장년인.
머리칼의 색도 특이하지만 보석을 박아 넣은 듯한 푸른 눈동자는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반갑소. 마은호라 하오.”
그는 중원 무림의 인사법인 포권으로 일행을 맞이했다.
일행들 역시 이름을 밝혀 예를 다했다.
서로의 소개가 끝나자 적사결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그대가 다마스커스의 주인이라 하던데 좀 볼 수 있겠소?”
“물론이오. 나 역시 그대의 샴쉬르가 보고 싶어 왔으니까.”
마은호와 적사결은 자신들의 샴쉬르를 뽑아 그 모습을 비교했다.
두 자루의 무구는 형제검이라 해도 될 정도로 유사했다.
일단 도신의 물결무늬까지 완전히 같았다.
다른 점은 도파와 도집의 문양 정도가 전부였다.
“이럴 수가, 진짜 다마스커스였군!”
마은호는 사왕을 보며 감탄사를 내고는 말을 이었다.
“그대는 어디서 다마스커스를 얻은 것이오?”
“하남의 무기상에서 얻었소. 상점 주인의 말로는 그의 선조가 과거 파사국에 교역을 갔다가 얻은 것이라 하더군. 벽에 걸려 장식품이 되어 있는 것을 본좌가 한 눈에 알아보고 산 것이오.”
“허어, 무기상이라니 정말 천운이 있었던 모양이오.”
“한데 그대의 것은 어떻소? 그것 역시 파사국에서 온 것이오?”
“그렇소. 지금의 회족에게는 다마스커스를 제작할 비법이 없으니 말이오. 고대의 선조 중 한 분께서 이것을 지니고 중원에 오신 것으로 알고 있소.”
마은호는 자신이 알고 있는 다마스커스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 시작은 다마스커스가 서역의 고위층에게만 허락된 신의 무기이며 그곳에서도 몇 자루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은 연금술에 닿았다.
연금술의 궁극인 생명 창조.
그것을 위한 발판이 바로 다마스커스에 자연계의 영령, 진을 깃들게 하는 것이었다.
그 진들은 고대의 서역에 실존했으며 주로 사람들을 괴롭힌 영령이라 했다.
과거 중원에 악령이나 악귀와 같은 존재가 있어 영환도사나 방술사들이 퇴치했듯이 말이다.
즉, 사람의 영혼으로 실험을 할 수 없으니 그러한 존재들을 이용한 것이었다.
“지금의 시대는 과거와 달리 악령과 같은 존재들을 실제로 접하는 경우가 드물어 쉽게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오. 직접 한 번 보면 이해가 될 것이오.”
마은호는 자신의 샴쉬르로 팔뚝에 상처를 내었다.
그러자 피를 먹은 도신의 물결무늬에서 푸른 기운이 실타래처럼 흘러나왔다.
그렇게 형태를 잡은 그것은 반투명한 푸른 거인이었다.
“파랑(波浪). 내 애병인 샴쉬르의 이름이자 진을 부르는 호칭이오.”
[뭐야? 지금 날 구경거리로 삼으려고 부른 거냐?]
파랑이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적사결을 비롯한 일행들은 넋을 놓고 그 모습을 보았다.
반신반의했던 영령이 정말 깃들어 있던 것이다.
그걸 직접 목도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길 봐. 다마스커스 샴쉬르다. 너에게 보여 주고 싶어 부른 것이지.”
[뭐? 진짜?]
파랑은 적사결의 손에 쥐어진 사왕에게 다가왔다.
[진짜잖아! 나처럼 불쌍한 진이 또 있었네!]
파랑은 두 손으로 커다란 얼굴을 부여잡고 과장되게 입을 떡 벌렸다.
“이 안에 너 같은 영령이 있다는 말인가?”
적사결의 물음에 파랑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아직 계약하지 않은 거야?]
“계약?”
[와아, 계약도 모르는 멍청이가 또 있을 줄이야.]
파랑은 마은호를 돌아보며 한심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너처럼 튼튼하고 잘 드는 막대기로 생각하는 다마스커스의 주인이 또 있었다니. 이 나라는 다른 나라와 교류라는 걸 안 하는 건가?]
“말했잖아. 네가 태어난 곳과 이곳은 세상의 끝과 끝이야. 그리 말할 것만은 아니지.”
[세상의 끝과 끝? 쯧쯧, 하여튼 너희 인간들은 우물 안 개구리라니까.]
마은호는 파랑의 빈정거림을 들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얘기해도 진의 버릇없는 태도는 고칠 수가 없었다.
“어이, 악령.”
적사결이 심기가 상한 표정으로 파랑을 불렀다.
[아…… 악령!? 지금 진 중에서도 이프리트인 날 잡귀 취급한 거냐? 고작 인간 암컷 주제에!]
“암컷? 이 귀신나부랭이가 아까부터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귀신? 거기다 나부랭이!?]
“까불다가 봉인당했으면 얌전히 주인 말을 들을 것이지 아주 세상 제 것인 양 주제를 모르는구나.”
적사결의 폭언에 파랑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노오오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쿠르르릉.
진의 분노에 청진사가 삐걱거리며 휘청거렸다.
봉인된 존재라지만 그 힘은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휴우. 들어가.”
마은호가 보다 못해 나직이 읊조렸다.
그러자 파랑을 구성하고 있던 실타래가 풀리며 샴쉬르에게로 흡수되었다.
[야! 지금 그러면 내가 뭐가 되…….]
파랑은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봉인되어 버렸다.
“미안하오. 인간이 아니라 예의범절을 모르니 이해하시오.”
“거 다루기 힘들겠구려. 그냥 튼튼하고 잘 드는 무구라 생각하고 앞으로 꺼내지 않는 게 났겠소.”
그 말에 파랑이 웅웅거리며 도명을 발했다.
어지간히 분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 녀석이 있어 목숨을 건진 적도 많고, 지금은 전우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소. 여러 가지 능력이 많아 유용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라니?”
“파랑에게 듣기로 진은 크게 네 가지의 속성으로 나뉜다 하오. 서역에서 사대 원소라 부르는 물, 불, 바람, 땅이 바로 그것이오. 파랑은 그중 물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이곳 영하에서는 더없이 유용한 존재요. 과거 파랑을 가져오신 선조께서는 그 힘으로 사호라는 호수를 만들어 냈다는 전설도 있소.”
사호는 영하에서 가장 큰 호수다.
그리고 그 사호 옆에는 영하의 성도나 다름없는 은천이라는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성도가 형성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정도로 큰 호수라는 말이다.
“정말 사호를 만들어 냈다는 말입니까?”
구월이 믿기지 않는 얼굴로 물었다.
그는 사호의 규모를 알기에 물은 것이었다.
“그렇소. 나도 그분만큼은 아니지만 작은 녹주 정도는 만들어 낼 수 있으니 전설이 아니라 사실이라 믿어도 될 것이오.”
“그럴 수가…….”
구월은 그래도 표정을 풀지 못했다.
녹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사막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은호는 그의 속내를 알기에 난감한 얼굴로 설명을 덧붙였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오. 공기 중의 수분이나 땅속 깊이 존재하는 물줄기를 끌어오는 것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오.”
“그것만 하더라도 어딥니까. 사막에서 그 힘은 신의 권능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구월은 존경스러운 마음을 담아 그에게 존대를 하고 있었다.
“그것이 진의 권능이자 이 다마스커스의 힘이오.”
마은호는 자신의 능력이 아닌 무구의 힘이라 강조하며 말했다.
하나 구월은 여전히 선망의 눈빛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이거…… 이 분위기 뭐지…….’
적사결은 구월과 마은호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마뜩잖았다.
마치 자신을 짝사랑하던 대상이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린 기분이랄까.
충성스런 구월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되니 영 껄끄러웠다.
“커험. 흠. 흠.”
적사결을 검대에서 사왕을 풀어 탁자 위로 슬그머니 올렸다.
그 모습은 두 사람을 의식했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될 정도로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이보시오. 거 계약이란 그거 어떻게 하는 거요?”
그 말에 구월이 아차 하는 표정을 스치듯 짓고는 앞서의 눈빛을 적사결에게 향했다.
그랬다. 그의 주군에게도 진의 권능이 깃든 다마스커스가 있었던 것이다.
“정말 그대도 계약을 할 생각이 있으시오? 아까의 반응을 보면…….”
“모든 진이 다 싸가지가 없는 건 아닐 거 아니오. 그놈들도 개성이란 것이 있겠지.”
“물론 그렇긴 하지만 파랑의 말에 따르면 진은 인간을 얕잡아보는 습성이 있으니 크게 다르진 않을지도 모르오.”
“걱정 마시오. 우리 사왕은 그렇지 않을 테니.”
“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내 알려는 드리겠소. 하나 한 번 계약을 하고 나면 번복할 수 없다는 걸 알아 두시오.”
“해약이 안 된단 말이오?”
“그 방법은 서역에 가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소. 회족에게 남은 연금술의 지식이 그리 많지 않으니 말이오.”
“알겠소.”
자, 무슨 속성의 진이려나.
물이었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