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63화>
“회족이라 그런지 바로 알아보는 모양이구나.”
중원에서는 한결같이 이형의 도라 불렀는데 아이는 단번에 사왕을 알아본 것이었다.
“네. 회족이 샴쉬르를 모를 순 없죠. 혹시 회족에게 검술을 배우셨어요?”
“아니. 이건 무기상에서 구했을 뿐이란다.”
“와아, 되게 운이 좋으셨네요. 이건 중원에서 만들어진 샴쉬르가 아니라 파사국에서 건너온 진품인 게 분명해요.”
“허어, 그것까지 바로 알아보느냐?”
“저도 크면 무사가 될 거거든요. 누나의 샴쉬르는 검파와 검집의 양식이 전통적인 색채를 띠기에 굉장히 고풍스러워요. 중원의 양식이 가미된 샴쉬르는 검신의 형태만 그렇지 검파와 검집은 중원식이라 매력이 떨어지는 편이죠.”
적사결은 점소이 꼬마의 해박한 식견에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더구나 아이는 사왕을 도가 아닌 검이라 칭하고 있었다.
또한 눈빛 속에 무구에 대한 관심만이 아니라 무에 대한 열망이 존재했다.
아이의 마음속에는 천마신교의 기치인 강자존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호감으로 다가왔다.
“어디 한번 직접 뽑아 보겠느냐?”
적사결은 사왕을 검대에서 풀어 앞으로 내밀었다.
무인에게 있어 자신의 무기를 타인에게 주는 행위는 목숨을 내주는 의미다.
하나 상대가 어린아이기에 스스럼이 없었다.
애초에 사왕이 아니라 벽력탄을 쥐고 있더라도 자신을 해할 수 없을 테니까.
“그래도 되나요?”
“대신 앞으로 본좌를 부를 때 예쁜 누나 소리는 빼거라.”
“네, 무사님. 히힛.”
아이는 생글거리며 사왕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레 검파를 쥐었다.
스르릉. 웅. 웅. 웅.
예기를 드러낸 사왕이 공명음을 발했다.
공기의 흐름마저 베어 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사왕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녀석의 장래에 많은 영향이 미치겠지. 흐흐.’
좋은 무기란 그런 것이다.
사왕을 쥐어 본 경험은 아이가 무인으로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터.
적사결은 그런 의도로 사왕을 건넨 것이었다.
한데.
“이…… 이건!”
점소이 꼬마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져 있었다.
한데 아이 뿐만이 아니었다.
“다마스커스다!”
“……진짜잖아.”
“마 대장 거 아닌가?”
“아니야. 달라.”
“어떻게 다마스커스가 또 있을 수 있지?”
“저 여자는 도대체 누구지?”
객잔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사왕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때 아이의 아비이자 객잔의 주인이 다가와 사왕을 납도해 적사결에게 다시 건넸다.
“소저, 아이에게 위험한 물건을 건네면 어떡하오.”
“아이의 마음속에 무심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한 사람의 무사요. 당신 아들은 여기서 객잔 일을 도울 게 아니라 무예를 배워야 하오.”
“그건 아비인 내가 알아서 할 일이오.”
“뭐 그러시다면 할 말 없군.”
적사결은 사왕을 거두어 검대에 고쳐 매었다.
“한데 소저는 정말 무기상에서 다마스커스를 얻은 것이오?”
“그렇소만. 대관절 다마스커스라는 게 무엇이오?”
“검신의 무늬가 그것처럼 물결을 띠는 무구를 가리켜 다마스커스라 하오. 정확히는 재료에 붙이는 명칭이나 일반적으로 그렇게 쓰이는 것이오.”
“흐음. 한데 그 다마스커스라는 것이 꽤 희귀한 것이오? 다들 눈이 동그래져서 본좌를 쳐다보는데.”
“희귀하오. 회회촌, 아니 회족 전체를 통틀어도 단 한 자루뿐이니. 소저의 샴쉬르까지 이제 두 자루가 되었지만.”
“회회촌은 어디요?”
“이곳 마가집성촌에서도 가장 오래된 마을이오. 하란산 깊숙이 자리 잡은 곳으로 회족의 가장 큰 어른이 그곳에 계시오.”
“그곳에 마 대장이라 했나? 또 다른 다마스커스의 주인도 있는 것이오?”
“그렇소.”
적사결은 호기심이 들었다.
사왕과 같은 다마스커스가 또 있고 그 주인이 있다니.
더구나 회족의 가장 큰 어른이라면 현자의 돌에 대해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꼬르르륵.
“저기 근데 밥은 언제 나오나요?”
당연희가 객주인을 보며 주린 배를 움켜잡고 물었다.
그녀에겐 지금 배 속을 채우는 게 급선무였다.
“어휴…… 오기 전에 남은 건량 네가 다 먹었잖아.”
“벌써 소화 다 됐어요. 왜 이렇게 고기가 당기고 술이 고픈지 모르겠어요. 나 원래 소식하는데 이상하죠.”
아니, 이상할 거 없다.
자신 역시 그 몸이었을 때 고기랑 술이 당겼으니 말이다.
며칠을 제대로 못 먹었으니 오죽 할까.
“땡중이 그렇지 뭐.”
* * *
회회촌.
적사결 일행이 객잔에서 하루를 묵은 후 정오에 도착한 마을이었다.
구월이 이른 아침부터 정보를 수집해 왔기에 일행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목적지로 향할 수 있었다.
그들이 향한 곳은 회회촌 중앙광장에 위치한 청진사(淸眞寺 : 모스크)였다.
서역의 건축 양식이 가미된 독특한 형태의 전각.
그것은 중원 어디를 가더라도 보기 힘든 이색적인 정취가 있었다.
“지붕을 둥글게 만들다니 신기하군.”
적사결은 마치 이국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서역인의 후예라지만 오랜 기간 중화에 동화되어 왔기에 생김새도 비슷하고 언어도 잘 통했기에 그간 기시감을 느끼지 못했었다.
한데 청진사를 보자마자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었다.
“구월, 여기가 회족의 가장 큰 어른이 있다는 곳인가?”
“그렇습니다. 아혼이라는 회교의 종교 지도자로 본교로 따지면 교주님을 상징한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자라면 함부로 만날 수 없을 텐데 접견 허락은 받았느냐?”
“받았습니다.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수고 많았구나.”
과연 구월의 일 처리는 훌륭했다.
적사결은 아무런 문제없이 회족의 아혼이라는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어서들 오십시오. 마경생이라 합니다.”
“반갑소. 당연희라 하오.”
적사결은 당연희의 몸을 하고 있기에 그녀의 이름을 잠시 빌려 말했다.
외모가 그러할진대 적사결의 하대에 노인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마치 고명한 노승을 보는 듯했다.
“자, 이리들 앉으시지요.”
마경생은 일행을 다과가 준비된 다탁으로 안내했다.
그는 적사결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듣자 하니 중원 무림에 적을 둔 분들이시라던데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는지요?”
“그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 이렇게 찾게 되었소.”
“말씀하시지요.”
“현자의 돌이 있는 곳을 알고 있으시오? 아니면 혹시 이곳에 있다면 볼 수 있겠소?”
“……흐음. 현자의 돌을 어떻게 알고 계신지 모르겠으나 이곳엔 없습니다. 그 위치 역시 모르고 말입니다.”
“듣자니 그 돌이 연금술에서 아주 중요한 물건이라 들었는데 정말 없는 것이오?”
“중요한 물건이라 숨기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없기에 그리 답하는 것입니다.”
적사결은 노인의 눈에서 진실을 읽을 수 있었다.
만약 그가 한 점의 거짓이라도 있었다면 절대 고수가 지닌 육감으로 잡아낼 수 있었을 터.
하나 그는 티 없이 맑은 눈으로 사실 그대로를 말하고 있었다.
“행방을 알 만한 자도 없는 것이오? 연금술은 서역인의 주술이라 들었는데 그대들은 서역인의 후예이지 않소.”
“정확히는 서역 상인의 후예지요. 연금술은 아무에게나 전해지는 공부가 아니기에 그 일맥을 이은 자는 회족 중에는 없는 상황입니다.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 송구하군요.”
이렇게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하다니.
적사결은 답답한 마음에 차를 쭉 들이켰다.
그 모습에 마경생은 문득 든 호기심에 질문했다.
“한데 현자의 돌은 무슨 연유로 찾는 것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실은 운철을 찾고 있소. 현자의 돌이 그것이 아닐까 생각하여 이곳까지 온 것이오.”
“……흠. 하늘이 내리는 귀물을 찾고 계셨군요.”
“……!”
적사결은 보았다.
언뜻 마경생의 눈 속을 지나간 기광.
그는 운철에 대해 알고 있는 듯 보였다.
하나 너무도 미세한 움직임이었기에 그것만으로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나만 더 묻겠소.”
“말씀하십시오.”
“혹시 도중문이라는 자를 아시오?”
“……!”
분명한 동요.
그는 도중문에 대해 알고 있었다.
녀석은 이곳 회회촌과 관련 있는 회족임이 분명했다.
“알고 있군.”
“도중문과는 무슨 사입니까? 혹시 황실의 명을 받고 오신 것입니까?”
“그가 황궁에 있는 것은 아는 모양인데 죽은 것은 모르나 보군.”
“정말 그 녀석이 죽었습니까?”
“확실하오. 본좌의 손으로 직접 죽였으니까.”
“……허!”
마경생은 경악했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고 마음을 다스렸다.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한참을 고심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는 이곳의 회민이었습니다. 마을의 성물을 훔쳐 달아난 죄로 부족의 무사들이 그를 추적했지만 결국 잡아들이지 못했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황제의 방술사가 되어 있어 포기한 상황이었습니다.”
“녀석에게 부상을 입혔다는 자들이 그대들이었군.”
“그렇습니다. 휴우…….”
마경생은 땅이 꺼질 듯 긴 한숨을 쉬었다.
“한데 그 마을의 성물이란 것이 무엇이오? 혹시 운철이오?”
“정확히는 운석입니다. 그 안에 운철이 함유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는 먼저 회족의 성물에 대해 설명을 이어 갔다.
본디 ‘검은 돌’로 불리는 그것은 회족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서역 ‘메카’에 존재하는 회교의 성물이었다.
그것은 천하에 단 하나만 존재하기에 ‘검은 돌’을 보기 위해서는 서역까지 가야 했다.
한데 명국의 해금 정책으로 서역으로의 길이 막히자 회족은 절망했다.
죽기 전에 ‘메카’를 순례하는 것이 회교도의 사명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런 그들에게 내려진 하늘의 선물.
별똥별과 함께 회회촌의 광장에 떨어진 검은 운석은 그렇게 그들에게 진짜 ‘검은 돌’을 대신할 그들만의 ‘검은 돌’이 되었다.
그것을 도중문이 훔쳐 달아난 것이었다.
“놈도 회족인데 그런 의미 있는 성물을 왜 훔친 것이오?”
“도중문은 어린 시절부터 회족의 뿌리인 서역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연금술을 알게 되었지요. 제대로 된 배움의 길이 없을 뿐 연금술에 대한 약간의 서적은 존재했고 그는 그 약간의 지식과 중원의 술법을 접목해 자신만의 연금술을 만들어 내는 경지까지 이르렀습니다.”
마경생은 수심이 깊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러다 연금술의 궁극에까지 생각이 미쳤지요.”
“금을 연성한다는 것 말이오?”
“아닙니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 진정한 목표는 생명 창조이지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생명을 창조한다니.
허무맹랑한 것을 넘어 미친 소리나 다름없었다.
“중원의 도가는 불로불사가 궁극의 목표이지 않습니까? 이처럼 서역의 연금술 역시 영생을 목표로 했지요. 그것이 생명 창조입니다.”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시겠소?”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인형이 있고 사람의 영혼을 그 속으로 집어넣는 겁니다. 그 인형은 사람의 육체처럼 수명도 없고 썩지도 않는 영원불멸한 물질이라면 어떻겠습니까? 그 자체로 그것은 영생을 지닌 채 새롭게 창조된 생명체이지 않습니까.”
적사결은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영령을 물건에 옮겨 담는 연금술이 곧 그것이었고 이는 이혼대법에 닿아 있었다.
정리하자면 도중문은 그 연금술을 완성하기 위해 성물을 탈취해 회족을 떠났고 하오문의 은소령을 만나 반선주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서로 뜻이 맞는 자들이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된 것이었다니 기막힌 우연이 아닐 수 없었다.
“그대 덕분에 사건의 전말을 보다 확실히 알게 된 것 같소. 한데 그때 떨어진 운석은 그것이 전부였던 것이오?”
적사결은 긴장한 채 마경생의 입을 뚫어져라 주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