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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162화 (162/206)

<기적의 이혼대법 162화>

“속하의 판단으로 보건데 기류까지 달라진 것을 보면 모래 폭풍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

사막에서 가장 위험한 두 가지를 꼽으라면 바로 유사와 모래 폭풍이다.

유사는 사막의 모래 늪으로, 빠지면 살아남을 수 없었고, 모래 폭풍은 거대한 먼지구름을 지상에 끌어내린 듯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데다 폭풍에 의해 어디로 날아갈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이냐?”

“그렇습니다. 부족의 어른들께서 말씀하시길 사구가 뾰족해지고 높아지는 것은 지상의 모래가 하늘로 솟구친 탓이라 했습니다. 아마 상공에는 미세한 모래먼지가 모이고 있을 겁니다. 그것이 일시에 아래로 쏟아지며 세찬 바람을 동반한 것이 모래 폭풍입니다.”

“언제쯤일지 알 수 있겠느냐?”

“자연은 변덕이 심하니 정확히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대충이라도 말이냐?”

“그렇습니다. 당장 내일 올 수도 있고 어쩌면 상공에서 먼지가 흩어져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흐음.”

사막 한가운데서 모래 폭풍을 맞는다면 피할 곳이 없었다.

구월은 지금 임시 거처를 마련해 모래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이동하자는 뜻으로 보고를 한 것이었다.

“교주님. 제 판단으로 삼사 일 가량 기다리면 될 듯하니 잠시 머물렀다 가시지요.”

구월은 적사결의 안위가 염려될 뿐만 아니라 사막을 처음 경험한 이도 둘이나 되니 이동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 여겼다.

‘삼…… 사 일이라…….’

그렇지 않아도 이동 속도가 느린 상황이었다.

당연희 때문에 물을 구하는 것에 꽤 시간을 소요하고 있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그런 상황에서 사나흘을 더 미적거리게 되면 마가집성촌에 도착하는 데만 달포는 소요될 것이다.

“천하정세가 빠르게 변하는 마당에 더 시간을 허비할 순 없다. 이대로 강행할 것이다.”

적사결의 결정에 구월은 짧게 읍하며 따르겠다 답했다.

지존의 결정에 반목이란 있을 수 없었다.

사파두 여정 구 일째.

결국 올 것이 왔다.

적사결 일행은 모래 언덕 위에서 다가오는 모래 폭풍을 마주했다.

사막 지평선 끝에서부터 다가오는 그것은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울룩불룩거리며 들이닥치는 것만 같았다.

“구월!”

적사결의 호령에 구월은 수통과 건량만 챙긴 후 낙타의 재갈을 풀었다.

그러자 다섯 마리의 낙타가 약속이라도 한 듯 한쪽 방향으로 달렸다.

적사결 일행도 신법을 펼쳐 그 뒤를 따랐다.

낙타가 도망친 곳은 사구에 가려져 알 수 없었던 바위 암벽 뒤편이었다.

동물적인 본능으로 이곳이 있음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서둘러라!”

암벽 아래에 도착한 일행들은 준비한 천으로 서로의 몸을 묶었다.

그리고 천근추의 수법으로 몸을 무겁게 한 후 그 위를 피풍의로 덮고 납작 엎드렸다.

쿠르르르르르르르.

바닥을 두드리는 듯한 진동음이 점차 강해졌고 피풍의가 날아갈 듯 세차게 펄럭였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다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모래알이 마치 콩을 볶는 듯한 소리와 함께 피풍의 위를 때렸다.

그 시간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다섯 사람은 꼼짝도 하지 않고 버티고 또 버텼다.

마침내.

후우우우우.

바람 소리가 잦아들고 재해가 끝났다는 신호가 감지되었다.

푸확.

가장 먼저 모래를 뚫고 나온 것은 적사결이었다.

이어서 염마천과 당연희, 그리구 구월과 강산이 머리를 내밀었다.

“휴우. 살긴 산 모양이군.”

엄청난 규모의 모래 폭풍이었다.

주변의 지형은 완전히 달라졌고 낙타들은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다들 괜찮으냐?”

네 사람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다.

“구월, 방향을 찾아라. 나머지는 짐을 분배해 짊어진다.”

챙긴 짐이라고는 수통과 건량뿐.

그들은 각자 개인이 먹고 마실 만큼 양을 배분했다.

“주군. 방향을 찾았습니다.”

구월은 태양의 그림자를 기준으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일행은 다시 여정을 계속했다.

사파두 여정 십오일째.

“헉. 헉. 헉.”

당연희는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었다.

더위를 먹었는지 저 멀리 녹주가 아른 거리는 환상까지 보였다.

‘응? 녹주?’

그녀의 눈이 번쩍 떠졌다.

“녹주! 녹주다!”

당연희는 그 즉시 천지연원공으로 내공을 끌어올려 달렸다.

그녀는 금빛 섬광이 되어 황금빛 모래 위를 질주했다.

“야이 멍청아! 그거 환상이야!”

적사결이 황급히 수라천랑보를 발휘해 그 뒤를 쫓았다.

“물! 물! 물!”

당연희는 녹주의 물속에 코를 박고 죽는 한이 있어도 뛰어들어 땀과 모래를 씻어 내고 싶었다.

한데 달려도 달려도 녹주와의 거리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그때 무언가가 머리 위를 짓눌렀다.

푸아악.

“야이 멍텅구리야! 정신 안 차려!”

“이거 놔!”

이런 씨, 힘은 또 더럽게 세.

“날 똑바로 봐!”

적사결은 양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붙잡고 눈을 마주쳤다.

“물, 저기 있잖아!”

“없다니까! 저거 환상이다. 그러니까 현혹되면 죽어. 알았어!?”

당연희는 눈동자만 녹주가 있다고 생각되는 쪽으로 데굴데굴 굴리다 적사결을 바라보았다.

“지…… 진짜야?”

“본좌가 언제 거짓을 말한 적 있더냐?”

“있지. 흑살방에서 나 엿 먹였잖아.”

그 일을 들먹이는 걸 보니 정신은 차렸군.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적사결은 옆으로 물러서며 한 숨을 쉬었다.

“근데 저게 진짜 환상이에요? 저렇게 눈앞에 보이는데?”

“사막이 처음이라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일종의 자연 발생적인 환술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야.”

“신기하네요. 한데 천마신교가 있는 신강도 이런 곳이 많은가요?”

“많지. 십만대산만 벗어나면 대부분 이런 아무것도 없는 황야만 펼쳐져 있으니까. 본좌가 젊었을 적에는 비적들을 잡아 족치느라 안 가 본 사막이 없었지. 흐흐.”

“그냥 걷기도 힘든 이런 곳에서 싸우기까지 했다고요?”

“신강에서는 모두가 싸우며 살아간다. 비적과 싸우든, 자연과 싸우든, 자기 자신과 싸우든 말이다. 그렇게 싸우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환경이니까.”

“…….”

당연희는 문득 처음으로 그가 천마신교의 지존이 아닌 신강에 사는 한 사람으로 비춰졌다.

그것은 그녀도 알고는 있었지만 교주라는 화려한 자리 때문에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가 천마신교의 바닥부터 정점까지 오직 혼자만의 힘으로 올라간 사내라는 것.

그것이 그가 자란 사막의 척박한 환경을 겪으며 뇌리에 박히고 있었다.

자신의 예비 신랑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것을.

“뭘 봐?”

적사결은 멍하니 자신을 보는 당연희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내가 내 얼굴도 못 봐요? 예뻐서 봤어요.”

“니기미, 예쁘긴.”

“그 얼굴에 호신강기 제대로 두르고 있죠? 타면 죽을 줄 알아요!”

당연희는 적사결의 볼을 잡으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그때 누군가가 그 손목을 잡았다.

“소저, 지존의 옥체에 손을 대는 것은 허락할 수 없소.”

어느새 따라잡은 염마천이었다.

“제 몸인데요?”

“지금은 지존의 옥체요.”

“곧 혼인할 사이잖아요?”

“아직 한 건 아니지 않소.”

“하면 염 대주께서도 예의를 지켜 주세요. 전 그분의 아내가 될 몸. 제 손을 계속 잡고 있는 것은 지존에 대한 불충 아닌가요?”

그녀의 당찬 말에 염마천은 손아귀에 힘을 풀고 짧게 읍했다.

“실례했소.”

“아니에요. 지존의 직속 호위라면 응당 그래야죠.”

당연희는 최대한 기품 있는 모습으로 손을 거두어 품을 가다듬었다.

그때, 그런 그녀의 눈에 움직이는 물체가 감지되었다.

파바밧.

잔영을 남기며 사라진 당연희는 사구 아래에 나타나 모래 속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가 뺐다.

-쉬이이익. 쉬익.

그것은 뱀이었다.

“얏호!”

그녀는 그 즉시 뱀의 목을 따고 그 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얼마나 갈증이 심했는지 뱀의 피가 달달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염마천은 그 모습을 보다 적사결을 향해 충언을 곁들여 말했다.

“교주님, 대단한 분과 혼인을 약속하신 것 같습니다.”

적사결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하란산맥.

하란산을 주봉으로 영하의 남북으로 뻗은 거대한 천혜의 병풍이다.

이 산맥이 있어 서쪽 사막의 모래바람을 막아 주기에 하란산의 넉넉한 품 아래 사람들은 보금자리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이 바로 천하에서 가장 큰 회족 마을인 마가집성촌이었다.

“어찌 어찌 도착은 했군요.”

강산이 바짝 마른 입술을 훔치며 입을 열었다.

사파두를 넘으며 많은 고생을 했지만 그의 눈빛은 아직 정광이 가득했다.

“따라오느라 고생했다.”

적사결이 그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어떤 고행이 있더라도 지존을 따르는 것이 신교의 교인이지 않습니까.”

“그 말이 맞다. 하나 이리도 빨리 신실함을 드러내다니 과연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 싶구나. 하하하하.”

적사결이 기분 좋게 웃자 염마천도 한 마디 거들었다.

“강 형제는 제가 본 신입교도 중 가장 신앙이 깊습니다. 지존께서 허락하신다면 수라혈검대에 입대시켜 제가 직접 그의 성장을 지켜보고 싶습니다.”

“아니야. 강산은 궁사이니 어찌 검사만 가득한 수라혈검대에 입대시키겠나. 내 따로 중히 쓸 것이니 탐내지 말게.”

“이미 생각해 두신 바가 있으시군요?”

“강산을 필두로 궁수대를 꾸려 볼까 하는데 어떤가?”

“궁수라…… 저는 지존의 생각이 옳다고 봅니다. 듣기에 사무련은 이미 관군이 쓰는 대규모 집단전술이나 병과를 받아들이고 있다 합니다. 점차 무인들의 규모가 늘어가니 합격진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 말대로네. 무림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합격진은 아직까지 백팔나한진이니까 말이야. 본교도 변화를 꾀해야 살아남을 수 있겠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세력의 구도만이 아니라 전쟁의 방법까지.

“마을을 코앞에 두고 무슨 수다가 그리 길어요. 빨리 가요!”

당연희가 참다못해 소리쳤다.

*   *   *

객잔 안은 꽤 북적거렸다.

변방 오지에 있다지만 가장 큰 회족 마을이다 보니 유동 인구의 규모가 적지 않은 모양이었다.

적사결 일행은 비어 있는 자리를 잡아 지친 다리를 쉬게 해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하얀 두건을 쓴 꼬마 점소이가 주문을 받기 위해 다가왔다.

그 복색만으로 아이 역시 회민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여기서 가장 잘하는 음식으로 알아서 적당히 내어 오거라.”

“적당히라는 말씀은 가격에 상관없다는 뜻인가요?”

“오냐. 뭣하면 가장 비싼 것들로 골라서 가져와도 된다.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되니 부탁하마.”

“네, 영하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대령할게요.”

꼬마는 쪼르르 달려가 신이 난 표정으로 떠들어댔다.

그러고는 재치 있게 차를 먼저 가져왔다.

“기다리시는 동안 영하의 명물인 구기자차를 들고 계세요. 음식은 금방 나올 거예요.”

그 말에 당연희가 아이에게 물었다.

“술은 없니?”

“저기 저희 회민들은 술을 먹지 않아요. 회교에서는 금주가 계율이거든요.”

“그…… 그래? 내가 미처 몰랐구나.”

당연희가 머쓱한 듯 볼을 긁적거렸다.

“아니에요. 모르실 수도 있죠. 참, 그리고 돼지고기도 금기니까 알아 두세요.”

“돼지고기도 못 먹어? 이럴 수가…….”

자신에게 돼지고기 볶음에 술 한 잔은 여독을 푸는 최고의 만찬이었다.

한데 그걸 입에도 못 대다니.

“괜찮으니 가서 이곳 음식으로 내어 오거라.”

적사결이 당연희 대신 나서서 아이에게 말했다.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니다. 이곳에 왔으니 이곳의 풍토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지.”

그때 아이가 뚫어지게 적사결의 허리춤을 쳐다보며 말했다.

“근데 예쁜 누나는 한족이면서 샴쉬르를 지니고 계시네요?”

사왕을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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