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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159화 (159/206)

<기적의 이혼대법 159화>

*   *   *

“그리 서둘러 가야 하는가?”

당백산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

“급한 일이 생겨 어쩔 수 없소.”

“하면 나중에 꼭 다시 들르게.”

“약조도 있으니 몸을 되찾고 나면 와야 하지 않겠소.”

“허허, 내 그때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겠네.”

당백산은 당연희에게 시선을 돌리며 당부했다.

“너는 지금부터라도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조신하게 그를 내조해야 할 것이다.”

“알겠어요, 숙부님. 걱정 마세요.”

“네가 걱정 말라고 할 때가 제일 걱정스럽다. 부디 개과천선이 뭔지 좀 보여다오.”

“알았다니까요. 제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애 취급이세요?”

“당가 제일의 철부지가 어린애가 아니면 누가 어린애란 말이냐. 나는 식솔들 중 네가 가장 신경 쓰이는구나.”

“알았어요, 알았어. 그만 하시고 들어가세요.”

그녀는 당백산의 등을 떠밀었다.

“이놈아, 작별 인사는 좀 하자꾸나.”

“빨리 해요. 급한 일이 있다잖아요.”

“그놈 참, 벌써부터 서방 챙긴다고 숙부는 뒷전이냐?”

“아깐 내조 잘하라면서요.”

“조신한 건 어디다 팔아먹었냐?”

“아, 쫌!”

당연희가 빽 소리를 지르자 당백산은 한 숨을 푹 쉬고는 포권했다.

“교주의 앞길에 무운이 있길 바라네.”

“사천회도 무운을 빌겠소. 부디 조심하시오.”

사천회는 혈교를 견제하기 위해 북진할 예정이었다.

그것이 동맹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한 결과물이었다.

“우리 천방지축도 잘 부탁하네. 그래도 본가의 직계이니 데리고 다니면 쓸모가 많을 게야.”

“걱정 마시오. 무사히 데려올 터이니.”

적사결은 절도 있게 포권하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럼 가 보겠소.”

*   *   *

적사결은 염마천과 강산, 그리고 당연희를 대동한 채 동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들이 향하는 목적지는 호남성 장사였다.

“해남도로 가는 게 아니라 호남으로 간다고요?”

목적지에 대한 얘기를 들은 당연희의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호남성은 현재 정사대전이 벌어져 전시 상황인 지역이었다.

그곳에 간다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어제 밤, 백가 애송이 놈이 전갈을 보내왔다.”

“설마 그 전대 하오문주?”

“그래. 놈의 거처를 알려 주며 직접 찾아가라고 하더구나. 전쟁 때문에 그놈이 바쁘다고 말이다.”

적사결은 짜증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에이, 표정 풀어요. 궁한 쪽이 우린데 어쩔 수 없잖아요. 좋게, 좋게 생각해요.”

“안다. 해서 본좌도 직접 움직이는 것이고. 하나 감히 마도지존을 오라 가라 하는 것은 자존심 문제인 것이야. 다음에 만나면 팔다리를 부러뜨려 버릴 테다, 이 애송이 놈.”

당연희는 자신이 다독였음에도 더 짜증을 부리자 화제를 돌렸다.

“한데 그 노백이라는 자가 저희들에게 잘 협조할까요?”

“그건 문제없을 것이야. 백천악 그놈도 언질을 주었을 테니까.”

“파황무존이요? 왜요?”

“그건 놈과 나 사이에 해묵은 빚이 있기 때문이지. 백가 애송이 놈이 말하길 그놈은 본좌를 생사대적으로 여기고 있다고 하더군.”

“해묵은 빚?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아, 젊었을 때 그놈과 한 판…….”

싸웠다고 말하려다가 문득 생각했다.

그 결과가 자신이 처 맞았다고 했다간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이제는 미래를 약속한 사이가 아닌가.

“한 판 뭐요?”

“아무것도 아니다.”

“뭐지? 왜 숨기지? 설마! 그거예요?”

당연희는 세상 더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딴 식으로 장난 치지마라!”

“아, 남색이 아니면 뭔데 그래요? 한 판 붙었던 거예요?”

“그래 ! 한 판 붙었다!”

“누가 이겼어요? 설마 졌어요? 그래서 숨긴 거예요?”

징글징글한 것 같으니.

숨기는 걸 알면 모른 척 넘어가지 끝까지 캐려고 든다.

“비겼어!”

“근데 왜 숨겨요? 에이, 졌죠? 졌구나?”

“이런 썅, 지긴 누가 져! 본좌는 태어나서 한 번도 져 본 적 없어!”

“그럼 숨긴 이유가 뭔데요?”

“비…… 비긴 것도 쪽팔려서 그렇지!”

“아닌 것 같은데. 솔직히 무허대사와는 수십 차례 비겼었잖아요. 근데 이제 와서 비긴 게 쪽팔린다는 말을 믿으라고요?”

당연희는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면서 말했다.

적사결은 무허 얘기가 나온 데다 무허의 얼굴이 가까이 오자 짜증이 치밀었다.

“무허, 그 새끼 면상을 가져다 대고 그리 말하면 본좌가 화가 날까 안 날까?”

“아…… 맞다.”

당연희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그래, 좀 맞자.”

“꺄악! 나 예비 신부라고요!”

“그래, 예비. 아직이라는 말이잖아.”

“…….”

당연희는 침을 꼴깍 삼키고는 그대로 줄행랑쳤다.

금빛 섬광은 순식간에 들판을 가로질러 달렸다.

“거기 안 서!”

내공을 물 쓰듯 써서 그런가 더럽게 빠르다.

“잡히면 죽을 줄 알앗!”

“미안해요!”

염마천과 강산은 한숨을 쉬며 경공을 펼쳤다.

*   *   *

타닥. 타닥.

모닥불 위에서 잘 손질된 꿩 세 마리가 익어가고 있었다.

당연희와 적사결의 술래잡기 때문에 꽤 시간을 지체해 노숙을 결정한 것이었다.

“강 형제가 있으니 노숙이 이렇게 편하군. 고생이 많았네.”

염마천이 강산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강산은 사냥꾼이기에 직접 꿩을 사냥해 오고 잠자리를 마련하는 등 가장 고생을 한 터였다.

“아닙니다. 저야 늘 일상처럼 하던 일인데 고생이라니요.”

강산은 손사래를 치며 별거 아니라 치부했다.

그러고는 당연희를 돌아보며 말을 건넸다.

“눈은 좀 괜찮아?”

그의 말대로 그녀의 눈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괜찮을 리가 있겠어? 시집가기도 전에 폭행당하는 신부는 천하에 나뿐일 거야.”

“그러게 그 입 좀 조심해. 어떻게 어렸을 때랑 변한 게 하나도 없냐?”

“야, 너도 남의 몸에 들어가 봐. 이게 내 몸인지 다른 사람 몸인지 얼마나 헷갈리는지 알아?”

강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헷갈릴 일이 뭐 있을까.

조금만 생각하고 말하면 문제없을 것을.

주군 앞에서 무허라는 두 글자를 꺼낸 것부터가 생각이 없었다는 증거였다.

“그건 그렇고 네 눈은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야?”

당연희의 물음에 강산은 왼쪽 눈을 매만졌다.

세로로 난 상처가 그의 눈을 앗아 간 원인인 듯했다.

“금지를 지키려고 싸우다가 난 상처지 뭐. 별거 아냐. 조준할 땐 오히려 더 편하기도 하고.”

“진료는 받아 봤어?”

“당가에 있을 때 약성 어르신께서도 봐주셨어. 신경을 다쳐서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하시더군.”

강산은 담담하게 답하고는 모닥불에 마른 나무가지를 던져 넣었다.

그 모습에 적사결은 자신이 그간 너무 무심했다고 생각했다.

동맹이니 혼약이니 하는 일로 신입 교도에게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었다.

“강산, 이리 와서 본좌 앞에 앉아 보거라.”

적사결은 자신의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 교주님.”

“전에 본좌가 근맥이 잘린 손목을 치료했던 것을 기억하느냐?”

“물론입니다. 교주님께서 내려 주신 기적을 어찌 잊겠습니까.”

“내 그것으로 너의 눈도 살펴보고자 한다. 그간 무심했던 본좌를 용서하거라.”

“그게 가능한 것입니까?”

“본좌를 믿거라. 믿음이 부족하면 될 일도 안 되느니라.”

적사결은 오른손으로 강산의 왼쪽 눈을 짚었다.

“머리를 비우고. 오직 본좌에 대한 믿음만 떠올려라.”

스르륵.

삼지안이 이마에 떠오르며 천축유가신공이 발휘되었다.

공능이 강화된 덕분인지 시신경과 각막의 오래된 상처를 회복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이제 눈을 떠보거라.”

손을 거둔 적사결이 이르자 강산은 눈을 천천히 떴다.

흐릿하고 희뿌옇기만 하던 시야에는 색채가 돌아오고 초점이 잡혀 있었다.

“보…… 보입니다! 보입니다!”

강산은 눈 주변을 더듬으며 환희에 찬 어조로 말했다.

적사결은 흐뭇하게 웃으며 강산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지존의 하해와 같은 은혜. 목숨을 다해 갚을 것입니다. 신교출세! 만마앙복!”

바닥에 엎드리며 머리를 조아리는 강산.

그의 손에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나뭇가지가 닿았다.

그러자 나뭇가지들이 꿈틀거리며 모이더니 하나의 의자로 형태를 잡아갔다.

“이건 무엇이냐?”

“지존에 대한 제 마음이 나무의 술을 한 단계 상승시켜 준 것 같습니다. 지존께서 흙바닥에 앉아 계신 것이 영 마뜩찮았는데 그것이 의자로 표출된 듯합니다.”

그간 왼손이 나무에 닿으면 활로 변하고 오른손이 닿으면 화살로 변했었다.

한데 이제는 뜻대로 나무의 형태를 바꿀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

“그때도 그랬지만 꽤 쓸 만한 술법이구나.”

적사결은 만족스런 얼굴로 의자에 기대앉으며 말을 이었다.

“강족 고유의 술법이라 했었지? 그 손바닥의 문양이 술식이더냐?”

“그렇습니다. 저희 부족의 주술사가 새겨 준 것입니다. 한데 그분도 활과 화살을 만드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응용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무릇 모든 학문은 발전 가능성이 있는 법이지. 본좌가 보건데 그 나무의 술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 더욱 정진하거라.”

“예. 최선을 다해 갈고닦아 지존의 힘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오냐. 한데, 내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게 있느니라.”

“말씀하십시오.”

적사결은 강산과의 전투를 복기하며 물었다.

“본좌에게 화살을 날렸을 때 말이다. 분명 소리도 없었고 목궁으로 날린 것치고는 속도도 무척이나 빨랐었다. 너의 신법도 그렇고 너는 꽤 유서 깊은 무공을 익힌 듯한데 누구에게 배운 것이냐?”

“서책을 보고 독학으로 익힌 것입니다.”

“서책? 혹시 무공 비급이더냐?”

“표지의 글귀에 따르면 그런 것 같습니다.”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있느냐?”

“교주님께 말씀드리지 못할 것이 무에 있겠습니까. 현천진기라는 네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말에 적사결을 비롯한 세 사람은 눈을 화등잔만 하게 떴다.

특히 당연희는 강산의 멱살을 붙잡고 따지듯 물었다.

“현천진기라고!? 어디서 났어? 아니, 누구에게 그걸 받았어?”

“갑자기 왜 이래! 이거 안 놔!?”

강산은 그녀를 뿌리치려 했지만 막대한 내공이 가득한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켁, 켁. 무슨 놈의 힘이…… 좀. 놔!”

얼굴이 시뻘게지고 난 후에야 당연희는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이번에도 자신의 몸이 누구 것인지 까먹은 모양이었다.

“미…… 미안. 깜박했어.”

“생각 좀 하라고! 죽을 뻔했잖아! 콜록, 콜록.”

강산은 목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강족의 금지에서 주운 거야. 나도 독각사의 둥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거라고.”

“진짜야?”

“지존께서 계신데 내가 거짓말을 하겠냐? 현천진기가 도대체 뭔데 그래?”

“점창파의 비전신공.”

“점창? 당가가 멸문시킨 그 점창파?”

“그래. 백 년 전에 점창파를 멸문시키고도 찾지 못한 게 바로 현천진기야. 점창의 대표검공인 사일검법과 분광십팔수검의 근간이 되는 내공심법이지. 그걸 네가 발견하다니…….”

구파일방의 일좌를 차지했던 운남의 명문대파 점창.

그들은 쾌검에 있어서는 천하제일이라 자부했던 검수들의 집단이었다.

“큭큭, 궁사를 흠모해 만들어진 무공이 궁사에게 돌아가다니. 거참 우연인지 인연인지 모르겠구나.”

적사결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강산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물었다.

“교주님. 궁사에게 돌아가다니요?”

“후예사일. 후예라는 궁사가 태양을 쏘아 떨어뜨렸다는 말이다. 점창의 무공은 거기서 출발한 것이지. 현천진기는 그 정수라 할 수 있고. 초식이 없다지만 너는 점창의 무맥을 이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흐흐흐.”

기회를 봐서 마공을 익히게 하려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현천진기라면 그 어떤 내공심법에도 뒤떨어지지 않는 절세 무학이니까.

월척인 줄 알았는데 강산은 그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고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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