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58화>
데릴사위.
딸을 시집보내지 않고 사위에게 처가살이를 시키는 풍속이다.
보통은 딸만 가진 집에서 데릴사위를 들이지만 당가는 무조건 데릴사위를 내세우고 장가를 오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당가의 전통은 절대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의술이나 독술은 보안이 생명이었기 때문이었다.
“내 듣기에 자네도 내자가 없다 들었는데 한번 생각해 보시게. 본가의 식구가 되면 비전이야 얼마든지 전수해 줄 수 있으니 말이야.”
적사결은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이보시오, 신존. 내 나이가 쉰이오. 스무 살이나 차이 나는데 가당키나 하오?”
“뭐 어떤가? 과거 사천의 지배자였던 소열제 유비는 오나라의 손상향과 사십이나 차이가 났지만 별문제 없이 혼인했네. 사천에서는 그리 손가락질 받을 일이 아니지.”
“끄응. 통이 큰 건지 문화가 다른 건지 모르겠군.”
“좋은 쪽으로 생각하시게. 내 팔불출로 보일까 이 말은 안 하려 했지만 우리 조카가 미모도 경국지색이지 않은가. 자네도 본모습이 아주 미남자라 하니 그야말로 선남선녀가 아닌가.”
당백산은 이미 충분히 팔불출로 보이고 있었다.
“어쨌든 본인은 싫소. 비전도 필요 없으니 못 들은 걸로 하겠소.”
“도대체 싫은 이유가 뭔가?”
“신존이야 말로 그렇게 달라붙는 이유가 뭐요?”
“그건 비밀이네.”
“그럼 나도 비밀이오.”
“사람 참 고집불통이구먼.”
“이하동문이오만.”
당백산은 술잔을 쭉 들이켜고는 입을 열었다.
“내 돌아가신 형님과 약속했네. 연희, 저 아이는 반드시 일세의 영웅과 혼인시키겠다고 말일세.”
“일세의 영웅이 나 하나뿐이오? 세상에 영웅호걸은 많잖소.”
“노부의 기준에 부합하는 자들이 많은지 않은가? 그나마도 녀석의 나이가 차면서 다 장가를 가 버렸네.”
“해서 남은 노총각은 나밖에 없다?”
“그렇지. 더구나 나가서 네 맘에 드는 사내를 찾아오라 했더니 떡 하니 자네를 데리고 왔으니 금상첨화고 말이지.”
그 말에 적사결의 눈이 번쩍 떴다.
“자…… 잠깐. 지금 사내를 찾아오라 했더니 날 데리고 왔다 했소?”
“그리 말했네.”
“이곳에 온 것은 본교와 사천회의 동맹 때문이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소.”
“알고 있네. 그 아이의 서신에도 공식행사는 그리하니 따로 사적인 자리를 잡아 일을 성사시켜 달라 적혀 있었으니.”
“뭘 일을 성사시킨단 말이오! 거 참!”
이 자식이 신존과의 자리를 만들어 달라 했더니 거기에 사심을 듬뿍 집어넣다니.
“자네 우리 조카가 마음에 안 드는가? 이상하군. 노부가 보기엔 자네도 그 아이를 마음에 들어 하는 듯한데.”
“무…… 무슨 근거로 그리 말하는 것이오!?”
“그냥 딱 보면 알지 무슨 근거가 필요한가? 눈치를 보니 염마천 대주도 아는 것 같던데.”
“노안 때문에 잘못 본 거요. 더구나 본좌는 천마신교의 지존인데 어찌 당가의 데릴사위로 간단 말이오.”
“사내가 사랑을 찾아 가는 데 안 될 게 무에 있나? 사랑 앞에는 국경도 없다네.”
“이보시오, 신존. 이백 년 전에 있었던 사천겁란으로 당가와 본교는 한때 철천지원수지간이나 다름없었소.
“그땐 천마신교가 아니라 마교였지. 더구나 자네 말대로 이백 년이나 흐른 옛 일이고 말일세. 그리고 실제 그런들 뭐 어떤가? 더 낭만적이기만 하구먼.”
“……나…… 낭만. 하아…….”
절로 손이 올라가며 마른세수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면 이건 어떤가. 동맹의 세 번째 조건으로 혼약을 걸도록 하겠네.”
“그건 또 무슨 개똥같은 소리요!”
동맹이 장난인가.
혈교를 막고 천하의 안녕을 위한 것을 이렇듯 아무렇게나 대충하다니.
적사결은 내심 기분이 상했다.
“이보게, 동맹의 증표로 혼인이 들어가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보기 드문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럼 처음부터 그걸 조건으로 걸지 왜 이제 와서 말하는 것이오!”
“조삼모사라 했네. 빨리 먹든 나중에 먹든 똑같은 걸, 뭐 그리 따지는가. 패도를 걷는 자가 생각보다 쪼잔한 감이 있군그래.”
아우 씨, 말이나 못하면!
“그리고 광혈존. 데릴사위가 뭣하면 내 특별히 허락할 테니 연희 그 아이 데려가게.”
“데릴사위는 당가의 전통적인 풍습 아니었소? 그걸 깨면서까지 혼인을 시키겠다는 거요?”
“사실 당가의 데릴사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네. 그중 한 가지는 모두가 알다시피 당가가 쌓아 올린 지식에 대한 보안이지.”
“두 번째는 뭐요?”
“재능이네.”
“재능? 그게 무슨 상관이오?”
당백산은 비어 있는 자신의 술잔과 적사결의 술잔을 앞에 놓고 채우며 말했다.
“호부 밑에 견자 없다고 하지. 그 말대로 자식은 부모를 닮는 법이지 않은가.”
“자식이니 당연한 것이지 않소. 가끔 아닌 경우도 있지만 말이오.”
“그래, 자식이니 당연하지. 한데 그 당연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부모가 물려주기 때문이라네. 이 몸 어딘가에 자신의 정보를 담아서. 그리고 그것은 외모에만 국한될 뿐만 아니라 재능과 자질 역시 마찬가지라네. 본가에서는 그것을 유전이라고 명명했네. 이 두 개의 술잔이 아비와 어미라면.”
당백산은 두 개의 술잔에 담긴 술을 넓은 대접에 옮겨 담았다.
“이 대접은 자식이지.”
“부모의 재능이 자식에게 이어지는 것. 그것이 유전이다?”
“그렇다네.”
그는 대접의 술을 한 번에 들이 키고 말을 이었다.
“크으, 좋군. 여담이지만 본가의 초대 가주셨던 만독제 초운혁. 그분께서 당가의 데릴사위가 되었기에 본가는 대를 이어 독인을 배출할 수 있었지. 그 피가 지금에 와서는 많이 옅어졌지만.”
“해서 본좌의 자질을 당가가 가질 수 있다면 데릴사위가 아니라 시집이라도 보내겠다는 말이오?”
“이해가 빠르군.”
“그 말은 앞으로 생길 자식을 당가의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는 뜻 아니오!”
“어차피 천마신교는 자식에게 교주직을 물려주는 세습이 없지 않은가.”
“그것과는 별개요. 아무리 아비라도 자식의 미래를 멋대로 결정할 자격은 없소.”
“하면 아이가 열 살이 되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세. 그 아이가 천마신교를 택할지 아니면 당가를 택할지.”
“그 말은 자신 있다는 거요?”
“자신은 없네. 멀쩡하던 사람을 하루아침에 광신도로 만든 것을 직접 보았으니 말이야.”
묘하게 어조에 가시가 있다.
하나 적사결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되물었다.
“한데도 불리한 조건을 감내하겠다?”
“무릇 승부란 역전승이 짜릿한 법이지. 흐흐.”
당백산은 예상할 수 있었다.
적사결의 자식은 십 할의 확률로 아비와 다른 길을 걸을 것이란 것을.
저처럼 강인하고 굽힐 줄 모르는 성정은 자식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일 테니까.
‘흐흐, 그 사무련주도 자식 때문에 골머리가 아프다는데 자네도 비슷할 걸세.’
당백산의 정보망은 소련주 백류혼의 존재를 정확히 감지하고 있었다.
그가 엇나간 나머지 정파의 거지를 흠모한다는 것까지.
“하면 승낙한 걸로 알겠네.”
“잠깐 기다려 주시오.”
“뭘 말인가?”
“혼약에 대한 공표는 몸을 되찾은 후에 하도록 합시다.”
“……흠. 하긴 지금의 몸으로 혼약을 맺어 봤자 천하인의 웃음거리가 되겠지. 알겠네.”
당백산은 흐뭇하게 웃으며 술병을 들었다.
“사위. 한 잔 받게나.”
* * *
만향원에서의 술자리 후.
“진짜 심장에 독성분이 녹아 있구나!”
당백산의 말대로였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천지차이라 했던가.
있다는 것을 알고 관조한 심장은 독주머니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
왜 이전엔 알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츠츠츠츠.
의지를 불러일으키니 천축유가신공이 심장의 독을 끌어모았다.
그것을 그대로 손가락으로 집중.
그러자.
뚝. 뚝. 치이이이.
당백산이 선보였던 것과 같은 현상이 재현되었다.
‘이걸 조절함에 따라 화골산이 될 수도 있고 미혼산이나 단장독도 될 수 있다 했었지…….’
거나하게 취한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도 해 주었다.
혼약이 성사된 부분도 있고 자신들의 비전이 없으면 어찌하지 못할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을 터였다.
덕분에 적사결은 그 힘 조절도 어느 정도 들을 수 있었다.
‘이건 뭐 걸어 다니는 독 덩어리구먼.’
절독을 온몸에 두른 채 싸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독기를 암경으로 내부에 침투시킬 필요도 없다.
그저 스치거나 닿는 것만으로 절명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무기를 다루는 자가 아닌 적수공권이 특기인 무인들은 손 놓고 당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호신강기로 전신을 철통같이 감싼 채 싸우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조차 무허 정도의 미친 내공이 있어야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 정도면 내공의 부족한 파괴력은 보충하고도 남음이 있겠어.”
적사결은 담담히 주먹을 쥐었다 펴고는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목함을 꺼내 들었다.
그 속에는 뇌조의 내단이 있었다.
“독공도 어느 정도 파악했겠다. 이걸 먹어 말아…….”
잠시 고민이 되었다.
화경을 위한 것이 목적인데 내단을 취하고도 별다른 깨달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당장 독공을 얻었음에도 화경의 경지는 요원하기에 더욱 그러했다.
탁.
목함을 닫은 그는 다시 품속으로 넣었다.
‘지금의 마음으로는 될 일도 안 되겠지.’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 아니겠는가.
* * *
천마신교와 사천회의 동맹.
그 일은 각 세력의 비선을 통해 각지에 알려졌다.
달리 공표할 필요 없이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인 것이었다.
사천회는 각 세력이 주시하던 힘의 중심축이었으니까.
그중 가장 빠른 곳은 역시 사무련이었다.
“와 그 인간 진짜 대단하구먼. 본련에 이어 사천회와도 떡 하니 동맹을 성사시키다니.”
사령들의 보고를 받는 백류혼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곳곳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의 옆에서는 요의 신휘강이 진땀을 흐리며 침을 놓는 중이었다.
“도련님, 움직이지 마십시오.”
“요의께선 달리면서도 침을 놓으시는 분이,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러십니까?”
“허구한 날 반죽음이 되어 오시면서 그런 소립니까? 하도 침을 놨더니 혈 자린지 땀구멍인지 분간이 안갑니다.”
“통천제 그 인간이 이렇게 셀 줄 알았습니까? 의천오무제면서 천하십대고수에도 못 들어갔으니 별거 아닌 줄 알았지.”
“전전대 고수나 마찬가지인 무허가 활동을 계속했으니 그런 것이지요. 그가 아니었다면 능히 십대고수 소리를 듣고도 남았을 인물입니다.”
“그런 것 같긴 해요. 벌써 열 번을 넘게 싸웠는데 기공 분석이 안 되는 걸 보니. 어찌 된 것인지 공파결이 안 먹힙니다.”
“잔꾀를 쓰는 겁니다. 미묘하게 기의 성질을 바꾸는 거죠. 도련님이 미숙해서 그런 것이니 정진하십시오. 참고로 련주님께서는 삼십 초 만에 그의 기공을 분석하시고 단번에 패퇴시키셨습니다.”
“갈 길이 머네요. 휴우…….”
신휘강은 그런 백류혼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기량이 모자란 것을 알고도 제갈세가의 가주를 상대로 물러서지 않고 싸우다니.
두 어깨에 수하들의 목숨이 달렸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더구나 생사결을 치르며 그 실력 또한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
백류혼은 사무련의 주인에 걸맞은 인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한데 청령, 노백은 아직도 고집을 부리는 건가?”
백류혼의 물음에 청령이 답했다.
그는 백천악의 허락으로 노백의 거처를 오가며 하오문과의 연락을 담당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면 만나 주겠답니다. 당장은 자신을 대체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이번에 통천제도 내상을 입었으니 당분간 소강상태일 거야. 북천대제는 아버지를 견제하느라 움직이지 않을 테고. 하니 잠시만 시간을 내라고 해. 광혈존에게 그곳을 찾아가라고 전하겠다 말하고.”
“그 콧대 높은 교주가 거기까지 찾아가겠습니까?”
따로 자리를 마련해 만나는 것과 상대방의 거처까지 찾아가는 것은 격이 다르다.
전자가 동등하다면 후자는 찾아가는 쪽이 낮음을 인정하는 것이니까.
“상황이 이런 걸 어쩌겠어. 계속 재촉하는데 나도 미치겠다니까. 똥줄 타는 모양이니까 움직이겠지.”
원래 급한 쪽이 먼저 움직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