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57화>
꿈틀 꿈틀.
염마천이 마기를 주입하자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정말 얼마 주입하지 않았는데 바로 일어나는군.”
당백산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신기한 듯 마고를 바라보았다.
“맛집이라니까. 크크크.”
적사결은 수고했다는 듯 염마천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고는 마고를 집어 이리저리 살폈다.
“이게 암컷이오?”
“바로 보았네. 어찌 구별했는가? 알아보기 쉽지 않은데.”
“그냥 찍었소.”
“허허허, 하기야 절대 고수 특유의 감이 있으니.”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육감.
당백산도 그것을 지니고 있기에 더 묻지 않았다.
“암고가 깨어났으니 수고도 깨어날 터. 하니 수놈 아홉 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폐기하시오.”
적사결이 재확인하듯 말하자 당의건이 답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가는 약속을 지키니까. 한데 당가에 더 머무르실 것이라면 귀교에게 도움을 약간 더 구해도 되겠습니까?”
“연구에 도움을 달라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열 마리라는 조건 때문에 시행착오를 줄여야 하니 도와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적사결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염마천, 자네가 약성을 좀 도와주게.”
“저는 교주님의 호위를 해야 합니다. 그러게 제가 대원들도 대동해야 한다 그렇게 간언하지 않았습니까.”
“당가 내에서 누가 본좌를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 걱정 말고 가 보도록 해.”
직계 혈족이자 가주의 조카인 당연희의 몸이다.
더구나 지금의 신체는 만독불침이니 독살도 불가능하지 않은가.
“이보게, 염 대주. 아, 신교의 호교대법사라 불러야 하나?”
당백산이 푸근한 얼굴로 말했다.
“편한 대로 부르십시오.”
“내 이름 석 자 걸고 약속하지. 당가 안에서는 그 누구도 자네의 주군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 걸세. 하니 본가를 좀 도와주게나.”
“…….”
암룡신존이라 불리는 절대 고수가 스스로를 낮추고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염마천은 그가 강호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을 알기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강산이 나섰다.
“염 대주님. 제가 목숨을 걸고 지존을 지키겠습니다. 미욱하지만 맡겨 주십시오.”
“미욱하다니. 자네의 실력은 지존께서도 인정하셨네. 그런 말 말게나.”
“대주님에 비하면 한참 모자랍니다. 하나 부족한 부분은 목숨으로 메울 것이니 믿어 주십시오.”
염마천은 강산의 눈빛을 잃고 그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미안하네. 신입 교도라는 것 때문에 내 자네의 신앙심을 의심한 모양이야. 이렇게나 신실한 그대를 의심하다니…….”
“아닙니다. 지존의 직속호위이신 염 대주님은 응당 그러셔야지요.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다시 한번 미안하네. 그리고 고맙네. 내 잠시 지존의 호위를 부탁하지.”
염마천은 강산의 어깨를 두드리며 믿음의 눈빛을 건넸다.
당백산은 두 사내의 모습을 보며 황당해했다.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걸고 말한 것은 머뭇거리더니 강산의 말에는 전적으로 믿겠다니.
그는 조심스레 적사결에게 물었다.
“이보게, 교주. 신교의 교도들은 다 저런가?”
“아…… 저거 말이오. 그게 본좌와 관련된 일에는 대개 저렇긴 하오.”
“허허…… 광신도라는 말을 듣긴 했으나 이거 참…… 직접 보니 말이 안 나오는 군 정말.”
당백산은 볼을 긁적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한데 염 대주는 그렇다 하더라도 강산 저 녀석에게는 뭐라 했길래 하루 만에 저리 열렬한 추종자가 되었는가?”
“설마 강제로 세뇌라도 했을까 봐 묻는 것이오?”
“그냥 신기해서 묻는 것이네. 그러고 보면 천마신교는 유독 배교도도 적고 교를 떠난 이들도 적으니 말이야.”
“별거 없소. 그저 앉혀 놓고 패도가 무엇인지 마도가 무엇인지 사상 교육을 좀 하고, 몸소 그것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전부일 뿐이오.”
“그대들의 사상에 매력이 있다는 말인가? 허허.”
“물론이오. 무림인이라면, 특히 사내라면 패도에 매혹될 수밖에 없다 생각하오. 신존도 한번 들어 보시겠소?”
“아니, 난 됐네. 강산, 저 녀석을 보니 괜스레 무섭구먼.”
당백산은 침을 꼴깍 삼키며 손사래를 쳤다.
“뭘 그리 약한 모습을 보이시오. 강호에서 자신의 가치관이 가장 확실한 분이 말이오.”
그가 그렇지 않다면 사천회를 세울 수 있었을 리 없다.
자신의 사상이 확실하지 않은 자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일 리가 없으니 말이다.
“하하하, 그거야 다 젊었을 때 말이지. 나도 나이가 드니 줏대 없이 갈팡질팡할 때가 생기더군.”
“삶에 유연해진 것이지 줏대 없는 건 아니라 보오.”
“허허, 어쨌든 주책이 심해진 건 사실이지. 한편으로 자네가 부럽군그래. 신교의 교인들이 자네를 하늘같이 믿고 따르니 말이야.”
당가는 그를 전적으로 따르지만 사천회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는 모든 연맹체가 가지는 약점이기에 그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적사결은 그것을 알기에 자랑하듯 말했다.
“우리 애들이 단결이 좀 잘되긴 하오. 어흠.”
* * *
당가의 후원, 만향원은 사천에서 이름 높은 장원이다.
사천성에 위치한 장원 중 도화장, 흑죽원과 함께 사천 삼대장원으로 불릴 정도였다.
화려함으로는 도화장을 따를 수 없고 정취는 흑죽원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 향기가 일품이었다.
사시사철 그 계절에 어울리는 약초와 꽃을 심어 팔방미인 같은 향취를 느낄 수 있었다.
당백산은 적사결을 그곳의 전각으로 초대했다.
“굉장하군. 마치 들판을 하나 뚝 떼어다 가져다 놓은 것 같군.”
적사결은 전각 주변을 둘러싼 풍광을 보며 말했다.
담벼락을 둘렀기에 후원이라 붙였지 이건 뭐 낮은 동산 하나를 통째로 옮겨놓은 듯 보였다.
“허허, 이곳에 와서 향이 아닌 크기를 먼저 언급한 이는 교주가 처음일세.”
“본좌는 피와 땀이 흐르는 전장이 체질에 맞으니까 그런 것이오. 이런 천하태평한 곳에서 유유자적 풀 냄새나 맡는 것은 취미 없소.”
평생을 사투로 보내왔고, 전시가 아니라면 수련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더구나 최근 해남도에서 자리 잡은 이후로 워낙 돈돈 거리는 말을 자주 들었기에 장원의 크기가 먼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한데 따로 보고자 한 이유가 무엇이오?”
“이런 때가 아니라면 그대와 사적으로 술 한잔할 기회가 있겠는가? 해서 자리를 마련했네.”
“하긴 그것도 그렇군.”
적사결은 의자를 빼며 앉고는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아마 공식적인 행사였다면, 정확히는 이 몸이 아니었다면 신존과 마음 편히 술자리를 갖지 못했을 거요.”
“허허, 만독불침이 되었기에 편히 먹을 수 있다는 겐가?”
“당연한 거 아니오. 당가에서 뭐 하나 잘못 집어먹었다가는 황천길로 직행일 테니까. 절대 고수라고 독이 무섭지 않은 건 아니잖소.”
“당가는 독물일세. 그리고 대부분의 독물들은 자기방어를 위해 독을 쓰지 누군가를 해하기 위해 독을 풀지는 않네. 본가는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된다 이 말이지.”
“흥, 어느 무리든 미친놈은 꼭 한 명씩 있는 법 아니겠소.”
당백산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취불을 말하는 것이로군. 그래, 소림 같이 자기수양을 목표로 삼는 곳에서도 그런 자가 나오는데 당가에서도 나오지 말란 법 없지. 한데 말이 나와서 그런데 취불이 어째서 자네와 몸을 바꾼 것인가? 두 사람은 생사대적이라고 말할 정도였지 않은가?”
“신강을 탈출한 교도들이 말하길 처음엔 ‘교화’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하오. 그리고 본교의 마공을 익히고 주화입마에 빠진 지금은 중원인들이 악의 근원이니 천하를 정화하기 위해 그들을 다 죽일 것이라더군요.”
“스스로도 괴승으로 불린 판에 누가 누굴 교화한단 말인가. 거참, 더구나 지금은 아주 완전히 미쳐 버렸다니…….”
“말도 마시오. 본교로서는 그놈 하나 때문에 교가 반으로 쪼개지고 난리도 아니니까.”
적사결이 땅이 꺼질 듯한 숨을 내뱉자 당백산은 화제를 돌렸다.
“그래, 그런 기분 나쁜 얘기는 그만하고 자네가 흥미 있을 얘길 해 보세.”
“흥미라니? 무얼 말이오?”
“자네, 도반삼양귀원공으로 녹주독혈사의 독정을 취했지 않은가. 독기의 생성을 직접 겪어 보니 어떻던가?”
“뭐가 어떻다는 것이오?”
별다른 느낌은 받지 못했다.
그저 내공이 독의 성질을 띠는 것일 뿐.
특별한 점은 없었다.
“노부를 비롯한 당천십위는 모두 타고난 자들일세.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레 체내의 독을 다루었지. 마치 걸음마를 배우듯 말이네.”
“하면 독공은 무엇이오? 그저 내공이 독성을 띠는 것이 전부인 것이오?”
“그건 아니네. 당가의 초대 가주께서는 자네처럼 천하 삼대극독의 하나인 인면지주의 내단을 취하시고 후천적인 독인이 되신 분이셨네. 그리고 그분께선 체내에서 생성되는 독을 다룰 수 있는 무공을 창안하셨지. 도반삼양귀원공도 그중 하나이고 말일세.”
“체내의 독을 다룬다니?”
“내공이 독성을 띠는 것은 독인이 된 데 따른 부가적인 현상일 뿐이네. 아까 노부가 화골산 같은 극독을 직접적으로 배출한 것 그게 독공이지.”
“……!”
그런 것이구나.
독공은 혈맥의 독기에 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내공만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독을 배출하는 무공이었다.
마치 뱀의 독니를 짜면 독이 뚝뚝 떨어지듯이 말이다.
“이제 이해했나 보구먼. 본디 인간은 독을 생성하는 신체기관이 없지. 해서 아무리 자네였어도 알기 어려웠을 것이네. 우리와 달리 자네는 후천적인 독인이니까.”
“한데 신체 내부를 관조해 보아도 달리 이상한 부분은 없었소. 어째서 그런 것이오?”
아침저녁 습관적으로 행하는 명상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신체 내부를 관조하게 된다.
무인은 몸이 재산이니까.
한데 그런 관조를 통해 전신을 훑어도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반삼양귀원공으로 만들어진 독주머니는 이곳에 있네.”
당백산은 가슴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설마 심장?”
“그렇지. 실상 독은 전신 혈맥에서 생성되나 그것이 모이는 곳이 심장이지. 자네가 관조를 통해서도 알 수 없었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독성분이 심장 전체에 돌고 있기 때문이라네. 자전만독수를 비롯한 본가의 독공은 그 독을 하나로 뭉칠 수 있게 해 주지. 그리되면 그저 독성을 띤 내공을 발출하는 것보다 독기가 몇 배는 진해진다네.”
“알려 줄 순 없겠구려?”
“당연하지. 본가의 비전무공인 것을 어찌 외인에게 알려 주겠는가?”
적사결은 겉으로 담담함을 유지한 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천축유가신공이라면 피 한 방도 의지대로 다룰 수 있지 않은가.
눈에 보이지 않는 독성분이라도 피에 섞여 있다면 천축유가신공으로 뭉칠 수 있었다.
하나 당백산은 그걸 알 리가 없었다.
“자네가 그 비법이 궁금하면 내 알려 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그는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거, 신존께서는 어지간히 조건을 좋아하시나 보오?”
“노부가 아무에게나 조건을 달진 않네. 자네나 되니까 그런 게지. 흐흐.”
“누가 보면 본좌가 신존 아래인 줄 알겠소?”
“말했다시피 사적인 자리이지 않은가. 자네가 노부보다 한 배분 낮은 것은 사실이지.”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 수하들이 있을 때는 어조에 신경 좀 써야겠구려. 염마천이 있었다면 소란이 일었을 것이오.”
“끌끌. 내 그걸 알기에 염 대주를 떼어 놓은 게지.”
“뭐, 그건 그렇고 조건이 무엇이오? 얼마나 대단하길래 비전을 가르쳐 줄 수도 있다는 것이오?”
원리를 알아냈으니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독공의 비전이라니 호기심이 동한 것이었다.
“자네 우리 가문에 장가오지 않겠는가?”
적사결은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지금 본좌에게 데릴사위가 되라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