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55화>
적사결은 전방에서 일어난 기세를 감지하고 걸음을 멈췄다.
시야에 들어온 그곳에는 검은색 활을 든 애꾸눈의 궁사가 있었다.
“이제 보니 저 활을 가지러 여기까지 온 거로군.”
사람 키만 한 크기의 대궁.
시위에 걸린 활도 장군시라 생각될 정도로 거대하다.
하나 체격이 있는 놈이라 그런지 꽤 잘 어울렸다.
‘온다.’
아니나 다를까 쏘아진 화살이 공간을 뛰어넘으며 다가왔다.
큐웅. 쾌애애애애액.
이전처럼 소리를 숨기는 것이 아닌 마치 대기를 찢는 듯한 굉음.
곡사도 아닌 일직선으로 오직 속도와 파괴력에 중점을 둔 경로로 다가왔다.
절정 고수라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절정 고수였다면 그랬겠지.’
적사결의 오른손이 느릿해진 시간 속에서 천천히 올라갔다.
손바닥을 펼친 장심 바로 앞에는 어느새 도착한 거무튀튀한 화살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수라멸천장으로 움켜쥐었다.
콰악. 지지지지지지직.
활을 움켜쥐었으나 그 속에 내포된 거력에 신형이 정신없이 밀려났다.
바닥이 긁히며 고랑이 생기고 먼지더미가 하늘로 비산했다.
‘제법 날뛰는데?’
잠재 근력으로 억누르고 화경으로 힘을 흘리는 데도 여력이 남아 있다.
적사결은 더 밀려나면 수치라는 생각에 발끝에 힘을 주고 수라천랑보의 진각을 밟았다.
콰아아앙.
수라천랑보의 공능으로 바닥으로 모든 힘이 전이.
그러자 마치 운석을 맞은 듯 오장가량 바닥이 함몰되었다.
“휘유, 제법이야.”
호신강기로 보호하고 있었음에도 손이 화끈거렸다.
적사결은 손바닥을 호호 불며 애꾸눈의 사내에게 다가갔다.
한데 그는 더 이상 도망가지도 않고 활을 겨누지도 않았다.
“그래, 도망가도 소용없고 저항해도 무의미하지. 흐흐.”
기특하게 상대의 수준을 알아본 것인가.
“당신은 누구요? 내가 알기에 당신 정도의 여고수는 사천회에 없는데 말이오. 설마 외지인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면 사천회의 의뢰로 날 잡으러 온 것이오?”
“잘 아는군. 본좌 말고 다른 놈들도 있었나 봐?”
“사천회에서 현상금을 걸어 놓았으니 돈에 혹해 덤비는 놈들이 있었소.”
사내는 여유롭게 흑철목 대궁의 시위를 풀어 팔에 감았다.
그러고는 대궁을 바닥에 버렸다. 그러자 대궁이 파스스 하는 소리와 함께 썩은 가지로 변해 버렸다.
그것은 적사결이 쥐고 있던 화살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설마 술법인가?”
“그렇소. 본가에 전해 내려오는 비술이오.”
“신기하군, 나무의 술이라니. 하면 어떤 나무든 다 적용할 수 있는 건가?”
“그런 건 왜 궁금해 하는 거요? 날 잡으러 왔으니 잡아 가기나 하시오.”
“궁금하면 물어볼 수도 있지. 그리고 뭘 믿고 그렇게 배짱이지? 듣자 하니 사천회 무인들 여럿 골로 보냈다던데 가면 무사하지 못할 텐데 말이야.”
“나는 경고했고 그들은 내 경고를 무시했소. 해서 충돌이 있었을 뿐이오. 그 일로 그들이 나를 죽인다면 어쩔 수 없겠지. 내 힘이 모자랐던 것이니까.”
호오? 사상도 괜찮은데?
“하면 죽어도 괜찮다는 건가?”
“죽어도 괜찮은 사람이 세상천지 어디 있겠소? 약해서 죽는 것이 비통할 따름이지.”
“큭큭큭큭.”
적사결은 절로 웃음이 났다.
놈의 말은 곧 천마신교의 신념인 강자존에 닿아 있었다.
사상 교육도 받지 않은 놈이 패도에 걸맞은 생각을 품고 있으니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겠는가.
“왜 갑자기 웃는 거요?”
애꾸눈의 사내는 이상한 눈으로 적사결을 바라보았다.
“네가 마음에 들어서.”
“뭐…… 뭐요?”
사내는 그 말에 얼굴이 벌게졌다.
적사결의 외모는 당연희의 얼굴을 평범하게 만들었다지만 그래도 미인이라 불러야 할 정도였다.
더구나 몸매는 건드리지도 않았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너 본좌의 수하가 되거라.”
“엥? 수하?”
“본좌 역시 약해서 죽는 것이 비통하다는 너의 생각과 다르지 않다. 또한 그와 같은 생각을 지닌 형제들이 본좌 아래 수도 없이 있지. 물론 힘을 원한다면 줄 것이다. 하니 본좌와 함께하지 않겠느냐?”
“그대가 힘을 줄 수 있다 이 말이오?”
“강해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마. 이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강자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적사결은 진중하고 담대한 눈빛으로 사내를 직시했다.
“대관절 당신이 누구이기에 그리 장담하는 거요?”
“본좌는 마도의 하늘. 천마신교의 교주다.”
그 말에 애꾸눈의 사내가 입을 떡 벌렸다.
* * *
“숙부님! 그분이 돌아왔어요.”
당연희가 가주 집무실을 들어오며 화색을 띤 얼굴로 말했다.
“그래? 벌써 돌아왔단 말이냐?”
나선 지 고작, 사흘이 채 되지 않았다.
당백산은 과연 광혈존이라는 생각에 입꼬리를 올렸다.
“네. 애꾸눈의 궁사도 잡아 왔으니 어서 나와 보세요.”
“녀석, 그리도 좋으냐?”
“네. 멋있지 않아요?”
“......”
삶이 직진인 건 알았지만 이리 대놓고 답하다니.
당백산은 자신의 조카지만 참 민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무슨 생각을 그리 하세요?”
“아무것도 아니다. 그만 나가 보자꾸나.”
“한데 숙부님, 나머지 두 개의 조건은 뭘 거실 건가요?”
“그건 왜 묻느냐?”
“하나만 저 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된다. 본회와 본가를 위해 써야지 어찌 사적으로 쓰겠느냐.”
“숙부니이임.”
당연희는 당백산의 팔에 매달려 간청했다.
“이 녀석아, 냄새나는 사내놈이 그런 애교가 가당키나 하더냐. 썩, 떨어지거라.”
“겉모습이 남자라고 사내 취급하기예요!? 근데 냄새나요? 킁킁. 씻었는데.”
“하는 짓도 사내놈이지. 이제야 제 성별을 찾은 것 같은데 평생 그리 지내는 게 어떠하냐?”
“뭐라고요? 진짜 그렇게 놀리실 거예요?”
“농은 무슨. 진심이니라.”
당백산은 그녀의 팔을 뿌리치고 휙 하니 가 버렸다.
“같이 가요!”
당가의 연무장에는 당가의 가솔들은 물론 사천회에 속한 여러 문파의 문주들이 자리해 있었다.
그간 그들을 무던히 괴롭혔던 흉수를 잡았으니 그 처벌을 위해 모인 것이었다.
한데 군웅들의 얼굴에는 어딘가 수심이 깃들어 있었다.
“회주님 오셨습니다. 길을 터십시오.”
당가의 무인들이 자세를 잡으며 외치자 인파가 좌우로 갈라졌다.
바다가 갈라지듯 길이 열리고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당백산과 당연희가 걸어왔다.
당백산은 연무장 단상 위에 준비된 의자에 앉아 모두를 굽어보았다.
단상 아래에는 적사결과 염마천, 그리고 애꾸눈의 사내가 있었다.
“그럼 심문을 시작하겠습니다.”
당가 암왕대의 대주 당하성은 당백산에게 짧게 읍한 후 단상 아래로 내려갔다.
“이름이 무엇이냐?”
애꾸눈의 사내는 당당한 자세로 대답했다.
“강산.”
“무슨 연유로 사천회의 무인들을 공격한 것이냐?”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금지에 발을 들였기에 합당한 조치를 취한 것이오.”
“우리라? 다른 동조자가 있다는 것이냐?”
“나는 강족의 산. 이만하면 무슨 말인지 알 텐데?”
“강족…… 산!?”
당하성은 애꾸라는 특징에 가려져 있던 외모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세월이 흘렀다지만 과거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알아보시는 겁니까?”
“오랜만이구나. 너무 세월이 흘러 바로 알아보지 못했다.”
“이십 년이나 지났으니까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눈은 어찌 그런 게야?”
“저들에게 물어보시지요.”
강산은 연무장 한쪽에 자리한 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수천무가, 창의문, 벽호문의 무인들이 있었다.
“수천무가, 창의문, 벽호문의 문주들께선 앞으로 나오시오.”
당하성의 말에 세 문파의 수장들은 긴장한 기색을 띠며 걸어 나왔다.
“묻겠소. 그대들은 강족의 금지를 범하였소?”
“…….”
세 사람은 아니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하시오!”
당하성은 단호한 어조로 답을 재촉했다.
“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무슨 짓을 했소?”
“그…… 금혈사를 잡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오? 그대들도 강족과 본회가 맺은 협약을 알 텐데 어찌 그런 것이오?”
그 물음에 벽호문의 문주가 답했다.
“창의문주의 어머니께서 병환이 깊으시어 그리했습니다. 의형제지간으로서 대모님의 병세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 말에 당하성이 당가 의선각 소속 의원에게 물었다.
“창의문주 대모님의 병명이 무엇이냐?”
“여러 지병이 있으나 노환이 가장 주된 요인입니다.”
의선각은 당가 소속이나 가문 밖의 일반인이나 무림인을 대상으로도 의술을 펼쳤다.
또한 사천뿐만 아니라 천하에서 가장 고명한 의술로 정평이 난 곳이었다.
“노환인 대모님을 위해 금혈사를 잡았다?”
당하성이 따지듯 묻자 수천무가의 가주가 답했다.
“금혈사는 양기를 북돋아 몸을 보하며 예로부터 장생에 그만한 영물이 없다 했습니다. 해서 그리했습니다.”
“일시적인 강장 작용이 있는 것은 분명하나 노화에 도움이 되는지는 확실하지 않잖소! 일가의 수장이라는 자들이 허황된 미신을 믿고 금혈사를 잡았다?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이오? 오히려 금혈사의 내단을 노렸다는 것이 더 맞을 듯한데?”
“정말입니다! 저희들은 대모님을 걱정하여 금혈사를 얻고자 한 것입니다!”
그들의 호소에 당하성은 미간을 찌푸린 채 시선을 강산에게 돌렸다.
“너는 어찌 그 사실을 당가에 바로 알리지 않은 것이냐? 하면 불필요한 충돌은 없었을 것 아니냐.”
강산은 긴 한 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강족은 수렵 민족입니다. 해서 사냥철이면 대부분 각지로 흩어지지요. 그런 탓에 금혈사의 서식지를 비롯한 여러 금지를 철저히 지킬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빈틈을 저들만이 아니라 많은 사천회의 무인들이 노렸습니다. 강족과 사천회의 협약을 모르지도 않으면서 말입니다.”
영물이 눈앞에 있는데 무림인이 참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급이라 취급받는 내단이라도 몇 달을 고련해야 얻을 수 있는 내공을 취할 수 있으니까.
하니 강족의 금지에 군침을 흘리는 무인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협약? 자고로 나만 안 걸리면 되는 거 아닌가.
“해서 밀렵꾼들에게 강족의 힘을 보여 주려 했다?”
“예.”
“휴우…….”
당하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소속 문도들이 죽어 나가도 당가의 직접적인 개입을 원치 않는다 했다.
당사자들은 강족과의 일이 공론화되지 않길 바란 것이었다.
연이은 희생으로 결국 알려지긴 했지만 말이다.
“회주님. 심문이 끝났습니다.”
당하성은 당백산에게 포권한 후 옆으로 물러섰다.
이제 좌중의 시선은 상석에 앉은 회주 당백산에게 집중되었다.
“본회에 속한 무인들 중 강족의 금지를 범한 자들은 삼 년의 뇌옥행에 처한다. 또한 그간 취한 장물에 대한 피해 보상을 두 배로 책정해 강족에게 치르도록 하라.”
당백산은 좌중을 둘러보며 다시 한번 강력하게 경고했다.
“이후! 또다시 강족의 금지에 발을 들이는 자들은 목숨으로 그 죄를 묻겠다!”
추상같은 엄명에 몇몇 군웅들은 고개를 떨구며 어두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당백산은 이번엔 강산을 향해 판결을 내렸다.
“비록 갈등이 있었으나 아무런 통보를 하지 않고 본회의 무인들을 공격하다니. 이는 서로가 맺은 협약을 깰 수도 있는 무례한 처사다. 너는 이를 인정하느냐?”
“인정합니다.”
“너에게 목숨을 잃은 무인들이 스물에 달한다. 하여 본 회주는 너의 양팔 근맥을 잘라 다시는 활을 쥘 수 없게 할 것이다. 이의 있느냐?”
“없습니다.”
강산은 거침없이 답하고는 사천회의 군웅들을 둘러보며 당당하게 외쳤다.
“강족을 대변하여 이 자리에서 선포하오. 부족의 금지를 범하는 자들에게는 앞으로도 그에 합당한 대응을 할 것이오. 당가의 손에 죽기 전에 강족의 화살에 죽게 될 것이니 목숨이 아깝지 않은 자, 금지를 넘어오시오.”
그 말에 적사결은 마음에 드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암, 응당 그래야지. 신입교도답게 패기가 넘치는구나.’
어서 근맥 잘라라.
예쁘게 붙여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