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54화>
엽사들은 주로 홀로 움직인다.
하나 그들도 사람인지라 다른 이들과 교류하지 않고 살 수는 없었다.
예를 들어 사냥한 동물을 구매해 주고 대신 그들에게 필요한 곡물이나 생필품을 지급하는 중개업자.
또는 같은 엽사들이 교류 대상이다.
가끔은 사람들을 해치는 호랑이나 곰 같은 악수가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해서 엽사들도 조합이란 단체를 운용하고 있었다.
깊은 산속에 주인이 없는 오두막이나 임시 거처가 있는 것은 엽사들로 구성된 조합에서 마련해 놓은 것이었다.
적사결이 찾아가는 장소가 그러한 곳이었다.
산의 지형을 감안하면 반드시 사람이 모이게 되는 장소, 그곳엔 엽사들의 중간 거점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존재했다.
“역시 이쯤에 있을 것이라 짐작했지. 흐흐.”
적사결은 낡은 모옥을 중심으로 동물 가죽을 걸친 자들이 오고가는 곳을 확인했다.
지형적으로 이곳을 기점으로 지형이 험준해지기에 근방의 엽사들은 모두 이용하는 듯 보였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적사결은 마당의 입구로 들어서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대상은 엽사들 중 가장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다.
“허허, 이런 산속에 어여쁜 처자가 어인 일이신가?”
노인이라 하나 그는 엽사답게 체구가 장대하고 양 옆으로 사냥개 한 마리씩 대동하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엽사들 중 연륜이나 경험에 있어 그를 따를 자는 없어 보였다.
“사람을 찾고 있는데 애꾸눈을 한 삼십 대가량 되는 사내를 본 적 없으신지요?”
“찾는 사람이 엽사인가 보군?”
“그렇습니다.”
노인은 주변을 둘러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누구든 애꾸눈 엽사를 본 사람 있는가? 있으면 이 처자에게 말 좀 해 주시게. 서방을 찾는 모양인데 딱하지 않은가.”
엽사질을 하다 보면 맹수에게 당하거나 절벽에서 떨어지는 등 목숨을 잃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해서 그런 남편을 찾는 과부들은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장노, 이 근방에 애꾸 엽사들은 죄다 사천회에서 잡아 갔잖소.”
“타지에서 넘어오는 자들도 있지 않은가. 그들 중에는 없던가?”
장 노인의 물음에 엽사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들었다시피 무림인들이 최근 혈안이 되어서 애꾸눈을 한 자들을 잡아들이고 있다네. 하니 무림문파에 한 번 가 보게. 처자가 찾는 사람이 그곳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알겠습니다, 어르신.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적사결은 꾸벅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섰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는 엽사들의 눈빛은 날카로워졌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저 여자, 사천회에서 보낸 정탐꾼이 분명해. 망할 놈들이 이젠 미인계도 쓰는구먼그래.”
“엽사 마누라로는 과한 용모지. 멍청한 무림인 놈들. 골라도 저런 미녀를 고르다니, 쯧쯧.”
그 말에 장 노인이 곰방대를 입에 물며 말했다.
“무림인이야 팔자 좋게 무공이니 뭐니 익히며 좋은 것들을 처먹으니 다들 늘씬하고 피부도 좋다지 않는가. 그들 기준으로는 평범하다 여긴 것이겠지.”
“하면 저 얼굴이 평범하다 이 말이우?”
“왕가 자네, 부러운가 보이? 흘흘.”
“내 참, 다음 생애는 무림인으로 태어나야지 서러워서 원.”
왕가가 혀를 차며 한 숨을 쉬자 옆에 앉은 엽사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하긴 자네 상판으로는 이번 생은 글렀지. 저런 여인을 품으려면 골백번은 죽었다 깨어나야 할걸?”
“이 새끼가 진짜! 확 오늘 골백번 죽여 줘?”
왕가는 검지와 중지를 세워 눈깔을 후벼 팔 기세로 내밀었다.
“농지거리는 그쯤 하게.”
장 노인은 곰방대를 탈탈 털고는 말을 이었다.
“왕가 자네가 산이에게 어서 알리도록 해. 사천회에서 위장 정탐꾼까지 쓰고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라고.”
“알겠수다.”
왕가는 활과 화살통을 챙겨 일어났다.
그러고는 산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장노, 산이에게 이제 그만두라고 해야 하지 않겠소? 더는 위험할 듯싶은데.”
왕가와 티격태격하던 엽사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서게. 그 녀석이 어디 내 말이라고 듣는다던가? 나도 골치 아프네.”
“미치겠군. 사천회가 어디 동네 무관도 아니고 언젠가는 꼬리가 잡힐 텐데. 자칫 우리도 경을 칠 수 있는 거 아니요?”
“그렇다고 산이를 발고할 것인가? 여기서 산이 아비한테 목숨 빚 안 진 사람이 없는데 말이야.”
“그 목숨이 홀라당 날아갈 수 있으니 말하는 거 아니오.”
“무서우면 사천 땅을 뜨시게나. 이 땅에서 엽사질하면서 산이를 발고하다간 자네는 제 명에 못 살 테니 말이네.”
장 노인의 말에 엽사들의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아니, 누가 발고한다 했소? 나도 걱정이 돼서 한 말이지! 눈에 힘들 좀 풀게. 나도 돌아가신 엽주와 호형호제한 사이 아닌가. 산이는 내 조카나 다름없다니까!”
그는 진땀을 뻘뻘 흘리며 엽사들에게 술 한 잔씩 돌렸다.
* * *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는군.’
엿들을 당시 외모에 대한 말이 나왔을 땐 실수를 자책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미의 기준이 높다는 것을 그제야 자각한 것이었다.
신교의 지존으로서 미인이 아니면 상대를 하지 않았으니 그쪽으로는 너무 무뎌져 있었다.
한데 그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다니.
역시 될 놈은 엎어져도 황금을 줍는다.
‘응? 나무?’
왕가라는 엽사가 걸음을 멈춘 장소.
그곳엔 마치 신목이라 불러야 할 듯 거대한 위용의 느티나무가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산아, 있느냐?”
왕가는 느티나무를 보며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하나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때.
‘음?’
서늘한 감각과 함께 시선이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흘렀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 순간, 그곳에는 언제 날아왔는지 화살 한 대가 있었다.
‘헉!’
번개처럼 반응하며 고개를 숙이자 뒤통수를 스치며 화살이 지나갔다.
퍼어어어억.
화살은 나무를 관통한 채 꽂혔다.
손가락 두께의 가는 화살임에도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소리도 없이 화살이 날아오다니. 더구나 은신을 정확히 알아차리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르륵 흐를 정도.
은신이 아무리 체질에 맞지 않아도 피부 호흡으로 기척까지 죽이고 있었는데 알아챈 것이다.
놈이 일개 엽사라는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수준이었다.
“웬 놈이냐!”
왕가도 그제야 추적자가 있었음을 눈치채고 활에 시위를 걸었다.
하나.
파파팟.
적사결은 한 달음에 다가와 그의 점혈을 짚었다.
노련한 엽사의 눈을 가진 왕가도 무림인, 그것도 천하십대고수의 움직임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그 여인이잖아. 이렇게 고수였어?’
왕가는 눈을 위아래로 굴리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새끼가 어딜 훑어!”
적사결은 왕가의 머리통을 후려치고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강화된 시각으로 전 방위를 살피는 것이었다.
‘찾았다. 한데 정말 저기서 쏜 건가?’
절로 의문이 들 정도로 먼 거리.
대략 오십 장은 될 정도였다.
그곳에서 숨어 있던 자신을 발견하고 머리를 조준해 쐈다는 것이었다.
그때 또다시 시선이 반사적으로 왼쪽으로 흘렀다.
아까와는 달리 의식하고 있기 때문인지 이번엔 날아오는 화살이 보인다.
화살은 정면이 아니라 측면 나무 사이를 지나 날아왔다.
방금 전 측면에서 화살이 날아든 것과 같은 기예였다.
‘곡사? 그것도 이런 먼 거리를?’
궤도가 휘어지는 사격술, 곡사.
직사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은 고급궁술이다.
터텁.
하나 눈에 보였으니 적사결의 실력으로 잡는 것은 문제없었다.
“뭐야, 이 화살은?”
화살촉이 없다.
아니, 없다기보다 화살촉도 나무로 되어 있었다.
더구나 깃은 또 나뭇잎으로 되어 있다.
“여러모로 특이하네.”
적사결은 히죽거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디 실컷 재주부려 보라는 듯한 모습.
궁사를 상대로 빠르게 거리를 좁히려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걸을 뿐이었다.
파파파팟.
연사를 했는지 허공에 십여 발의 화살이 뿌려졌다.
여전히 화살 특유의 파공음은 없었으나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하나.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금나수와 퇴법으로 대응하는 방어는 철벽.
곡사든 직사든 연사든 속도가 얼마나 빠르던 인지한 이상 절대 고수를 어찌할 순 없었다.
“그놈 참, 화살이 얼마나 많은 것이냐.”
소용없음을 알 텐데 포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놈은 움직이지도 않고 계속 화살을 날려댔다.
한 걸음마다 화살 십여 발이 툭툭 떨어졌다.
“이것이 전부더냐? 이게 끝이면 재미없는데.”
한데 그 말을 들었을까.
십장 남짓이 되자 시위를 건 놈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리고 시위에서 손을 놓자마자 화살이 사라져 버렸다.
스르륵.
‘엇?’
적사결은 흠칫 놀라며 반사적으로 손을 심장께로 들어 올렸다.
주먹을 꽉 쥔 손아귀에는 사라졌던 화살이 잡혀 있었다.
“어쭈, 이형환위?”
화살로 이형환위의 기예를 펼치다니.
이런 깜찍한 놈.
“이제 보니 제대로 된 무공을 익혔구나.”
무공을 익혔으면서 궁사가 되었다니.
여러모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놈이다.
파팟.
적사결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이형환위로 십장의 거리를 단축했다.
한데 지척에서 드러난 놈은 빛나는 화살을 시위에 걸고 있었다.
‘어쭈? 이번엔 강기?’
후욱, 쩌어엉.
적사결은 그것마저 수강으로 쳐 내버렸다.
한데 놈은 그 순간을 타 달아나고 있었다.
“경공도 제법이네? 이거 점점 더 마음에 드는걸?”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했다는 듯 적사결은 히죽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 * *
파파파팟.
애꾸눈의 사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신법을 전개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기세를 숨기지 않는 그자가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엄청난 고수다. 온몸에서 여유가 넘쳐.’
자신의 화살을 대한 자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굳었었다.
무림인이라도 예외는 없었다.
소리 없이 사각으로 날아오는 화살은 암살자의 암습과 같은 것이었다.
때문에 일격에 즉사하지 않은 자들은 백이면 백 거리를 좁히려 애를 썼다.
한데 정체불명의 여인은 애쓰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넘친다는 뜻이었다.
‘이형환시를 잡아채고 지척에서 기공시마저 막아 냈다. 이 활로는 무리야.’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자신의 기예는 두 가지가 전부.
하니 활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활은 느티나무로 만든 수렵용.
느티나무는 단단하고 좋은 재료지만 평이하다.
하니 저 여인에게 타격을 주려면 뛰어난 재료가 있어야 했다.
‘흑철목이 근처에 있었는데…….’
자단목과 함께 나무 중에서는 최상급의 인장력과 강도를 자랑하는 재료가 흑철목이다.
흑철목을 활대로 쓰면 지금의 것보다 족히 열 배는 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있다.’
사내가 도착한 곳엔 적갈색 철목이 모인 곳에서 유일하게 거무튀튀한 나무가 있었다.
나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언뜻 불에 새카맣게 탄 것으로 오해할 수 있을 정도.
하나 이는 철목이 뿌리내린 대지에 현철이 풍화된 철성분이 있어 그것을 흡수했기 때문이었다.
해서 흑철목은 달리 현철목으로 불렸다.
타탁.
사내는 왼손을 흑철목에 대었다.
그러자 나무몸통 부위가 꿈틀거리더니 주욱 늘어나며 흑철목으로 된 목궁이 분리되었다.
사내가 오른손에 쥐고 있는 느티나무 활과 같은 모양이지만 크기는 두 배 정도였다.
사내는 그 즉시 시위를 풀고 흑철목 대궁에 옮겨 걸었다.
천잠사를 특수 처리해 만든 시위는 크기가 배로 큰 활에 걸었음에도 끊어지지 않았다.
‘이거면 가능해.’
이번엔 오른손을 흑철목에 대자 이번엔 거무튀튀한 화살이 쑥 분리되었다.
그러고는 곧장 흑철목 대궁에 화살을 걸고 시위를 당겼다.
트트트트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