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53화>
암룡신존 당백산.
수십 년 만에 당가에서 배출된 절대 고수다.
독술과 암기술을 주로 다루는 당가는 초절정 고수도 몇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개천에서 용 났다 표현해도 될 정도로 특출난 무인이었다.
오직 십여 명.
독과 암기가 아닌 진짜 독공을 익힐 수 있는 체질을 지니고 태어난 직계 혈족 중에서도 당백산은 가장 뛰어난 독인이었다.
결국 그 능력을 바탕으로 가주가 되었고, 정사지간이라는 애매한 위치를 당당한 천하 사대세력의 한 자리로 끌어올렸다.
사천당가를 넘어 사천회를 조직해 천하의 모든 정사지간의 문파와 연합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흘렸던 수많은 피.
그중에는 정도는 물론 흑도, 심지어 마도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을 가로막는 자는 그 배경이 무엇이든 가리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그는 정사지간의 인물임에도 사도와 마도에 못지않게 손속이 잔혹하다 하여 사마오대존의 일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자가 암룡신존.’
적사결은 눈앞의 노인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호승심을 느꼈다.
그가 사천회를 조직하기 위해 활동을 한 당시는 자신이 교주가 되기 이전.
사마오대존 중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유일한 인물이 당백산이었는데, 지금에서야 만나게 된 것이었다.
“눈빛을 보아하니 정말 내 조카가 아니군. 신기한 일이네, 그려.”
당백산은 적사결의 겉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또한 눈을 통해 진체를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적사결이라 하오. 신존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
“당백산이네. 노부 역시 그대에 대한 소문은 자주 들었지. 이리 만나 아쉽지만, 또한 반갑군.”
그의 말에 적사결의 한쪽 눈썹이 휘었다.
“아쉽다? 무슨 뜻인지 물어도 되겠소?”
“알면서 뭘 묻는가. 그대나 나나 싸움에 미친 것들이니 당연히 만남을 가지고도 못 싸우는 것이 아쉽다는 뜻이지. 클클.”
“큭큭, 같은 마음이었군. 본좌는 상관없는데 잠깐 땀 좀 흘려 보는 것이 어떻소?”
“노부가 상관있네. 그 몸뚱이가 아끼는 조카의 것인데 상하게 할 순 없지.”
그는 피식 웃으며 손수 찻잔에 차를 따랐다.
그러고는 그것을 손도 쓰지 않고 건넸다.
허공섭물로.
‘이 양반이.’
적사결도 허공섭물로 응대.
빠르게 날아오던 찻잔은 무형기의 벽에 가로막혀 그 속도가 느려졌다.
그럼에도 찻잔 속의 찻물은 한 방울도 튀지 않았다.
‘과연 대단하군. 연희의 몸을 완벽하게 다루다니.’
그는 적사결이 어느 정도 경지인지 시험한 것이었다.
한데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허공섭물은 내기와 외기의 조화를 이루는 무형기의 기예.
그 섬세한 조절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행한 것이다.
그것도 남의 몸으로.
“연희야.”
“네, 숙부님.”
“혹시 암화십이수의 심법 구결까지 그에게 알려 준 것이냐?”
서신을 통해 도반삼양귀원공을 전해 주었다는 내용은 들었다.
녹주독혈사의 독정을 취하기 위함이었고, 그것이 조카의 신체에 도움이 되기에 넘어간 것.
하나 암화십이수는 다르다.
당가의 상승 무공 중 하나였으니 당연히 외인에게 알려 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니요.”
당연희는 망설이지 않고 짧게 답했다.
당백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적사결에게 시선을 돌렸다.
“암화십이수의 구결도 없이 이 정도까지 내기를 다루다니. 암혼마제의 말대로 대단한 천재로군.”
“전대 교주께서 본좌의 얘기를 하신 적이 있소?”
“그가 한 번 언급한 적 있었지. 신교에 대단한 새끼 늑대 한 마리가 입교했다고. 녀석이 성체가 되어 교주에 오른다면 사천땅도 안전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이야.”
“소랑이라…… 오랜만에 듣는 아명이로군. 후후.”
지금의 이름을 얻기 전인 어린 시절.
자신은 분명 새끼 늑대라는 뜻으로 소랑이라 불렸었다.
이제 보니 전대 교주였던 암혼마제는 그때부터 자신을 눈여겨 본 모양이다.
“그럼 인사는 이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당백산은 적사결을 직시하며 물었다.
“듣자 하니 본회의 힘이 필요하다던데 그것이 맞는가?”
“맞소. 회주께서도 신강의 본교가 혈교라 공표한 것을 들었을 터. 그들을 막으려면 사천회의 도움이 필요하오.”
“의천맹이 있지 않은가. 그들의 저력은 무시할 수 없네. 중원이라는 비옥한 대지를 차지한 덕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재를 품고 있으니까.”
가장 많은 인구, 그리고 그에 따르는 경제력.
당백산의 말대로 중원은 그 자체로 끝없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하나.
“그 인재들 중 가장 뛰어났던 놈이 그들을 공격할 것이오. 아직 여물지 않은 기재들이 무허를 막을 수 있다 보시오?”
“그리 단정 짓진 말게. 북숭소림, 남존무당. 소림에 인재가 없다면 그간 숨죽이고 있던 무당이 나설 것이야.”
“본좌가 침공할 때만 해도 고작 스물 남짓한 검수만 파견했던 말코들이오. 한데 그들이 나서려 하겠소?”
무당파는 이백 년 동안 봉문에 가깝게 대외 활동에 폐쇄적이었다.
풍문에 따르면 그 이유는 무당의 파문 제자가 사파의 기둥인 사무련을 세웠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었다.
물론 소문만 무성했기에 아직 그들에게 남존무당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자네가 있을 당시에는 무허대사가 있지 않았나. 이번에도 무허대사를 막을 누군가가 나올 걸세.”
“누군가든 무당이든 막연하오. 그리 허술하게 대비하다가는 수천수만의 인명이 희생될 것이오.”
“그렇다고 본회가 그간의 관례를 깨고 동맹을 맺을 순 없네. 노부로서는 그 무허대사가 마공을 익혔다는 것도 믿기지 않고 미쳤다는 것도 믿기 힘드니 말이야.”
천하사괴라지만 취불이 누구인가?
정도제일인, 아니 암룡신존은 그가 천하제일인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사천회와 관련해 그가 활동할 때 한 차례 마주친 무허대사.
당시 그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패배를 떠올리게 만들었던 인물이었다.
‘미치겠구나. 신마결을 모르니 저런 반응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당백산이 대단한 인물이라지만 어찌 지금의 심각성을 알까.
하나 어찌 되었든 지금은 반드시 그를 끌어들여야 한다.
“신존께서 조건을 말해 보시오. 본좌는 혈교를 저지하기 위함이라면 무엇이든 협조할 것이니.”
절대로 관례를 깰 생각이 없었다면 애초에 만나지도 않았을 터.
그것에 걸 수밖에 없다.
“그런 것 없네. 한 번 관례를 깨면 두 번 세 번 본 회에 동맹요청이 줄을 이을 터. 그리되면 천하 사대세력의 균형이 깨지고 무림은 혼란에 빠지겠지.”
“이미 천하 사대세력의 균형은 깨졌소. 오대세가는 사활을 걸고 정사대전을 일으켰고, 혈교는 뒤를 생각하지 않는 살육으로 천하를 어지럽힐 터. 결국 사천회도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오. 하니 미리 대비하길 권하는 것이오.”
당백산은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당가의 식솔들은 물론 천하의 정사지간 문파들의 안위가 두 어깨에 달린 것.
그런 연유로 그의 고심은 생각 이상으로 길었다.
그리고 결국.
“세 가지 조건이 있네.”
쉽지 않겠지만 조건이라는 말이 나왔다.
일단 절반은 성공이다.
“수락하겠소.”
“듣지도 않고 말인가?”
“설사 본좌의 목숨을 달라 해도 들어줄 것인데 뭐든 못하겠소.”
“허허허허. 이거 생각보다 더 화통한 사람이었군, 그래.”
“단, 도의적이지 못한 조건을 건다면 본좌도 가만있지 않겠소. 장담컨대 당가는 내일의 해를 보지 못할 거요.”
“지금 당가의 심처에 있으면서 도리어 노부를 협박하는 겐가?”
“그대가 합당한 조건을 말한다면 협박이 아니겠지.”
그 말에 당백산은 실소를 흘렸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대들이 말하는 패도가 이런 것인가?”
“그렇소.”
“무식한 듯 보이나 사내대장부의 길이라 생각하면 매력이 있군.”
그는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펼쳤다.
그것은 한 애꾸눈 사내의 용모파기였다.
“첫 번째 조건일세. 그자를 잡아 노부의 앞으로 데려오게.”
“이자가 누구기에 당가가 직접 나서지 않는 것이오?”
천하 십대고수 중 한 명을 잡아 오라는 것도 아니고 새파랗게 젊은 놈이라니.
조건으로 걸기에는 격이 너무 낮다.
“근자에 사천회 소속 문파들을 공격하는 자인데 아직 추포하지 못하고 있네. 당한 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해결하겠다며 당가의 개입을 원하지 않고 말이야.”
자존심 탓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한 놈에게 집단이 당했는데 그걸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더 큰 문파에게 잡아 달라 청한다면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당가의 개입을 원치 않는데 조건으로 걸어도 되는 것이오?”
“놈을 잡는 것은 사천회 소속 문파를 위해서이지 않은가. 그대는 본회와 동맹을 맺으려 하고 있고 노부는 회주로서 본회를 위한 조건을 걸었네. 안 될 게 무에 있겠나?”
당백산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또한 문도들을 잃은 문주들이 현상금도 걸었다 하네. 그대는 현상금도 얻고 동맹을 위한 사천회의 마음도 얻는 것이지. 해남도에서 터를 잡으려면 자금이 필요할 것 아닌가?”
“신강 말고도 각지에 본교의 비밀사업장은 많소. 코 묻은 돈이 필요할 정도로 궁하진 않소.”
“혈교 때문에 사업장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시간이 걸리게 않겠나. 한 푼이라도 챙기시게. 흘흘.”
음흉한 늙은이 같으니.
말하는 걸 보아 애초에 동맹을 염두에 두고 있었군.
‘하긴 그도 천하 사대세력의 수장, 천하정세가 급변하고 있음을 모를 리 없지.’
적사결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면 주는 돈 마다하지 않겠소. 하나 그것으로 동맹의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여기지 마시오.”
“허허, 이를 말인가. 그저 여기까지 직접 걸음을 해 준데 대한 작은 성의일세.”
“거, 천하 오대거부라면서 너무 쪼잔한 거 아니오? 성의를 남의 돈으로 치르다니.”
“십만 냥이네. 그만한 금액을 남의 돈으로 생색내는 게 쉬운 줄 아는가?”
“천하 오대거부가 되려면 대단한 짠돌이가 되어야 하나 보군.”
“아낄 때 최대한 아끼고 쓸 때 과감하게 쓸 수 있어야 천하 오대거부가 될 수 있지.”
“하면 쓸 때 얼마나 과감한지 내 지켜보겠소.”
“허허허, 아마 깜짝 놀랄 걸세.”
적사결은 그 너스레에 피식 웃었다.
지금까지의 대화로 보아 그는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였다.
하니 나머지 두 가지 조건도 큰 어려움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이 애꾸 놈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원한 관계요?”
“문주들이 함구하고 있기에 우리도 모르네. 늙으면 호기심이 많아지는지 노부는 그 이유를 알고 싶으니 반드시 살려서 데려오게.”
“그리하겠소.”
적사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참! 이 애꾸 놈이 어느 정도의 고수인 것이오? 여러 문파들이 현상금을 걸 정도면 좀 하는 것 같은데.”
“고수라기보다는 상성이 좋지 않은 것 같네.”
“상성이라니?”
“놈이 꽤 뛰어난 궁사라더군. 장거리에서 공격을 한 후 도망쳐 버리기 일쑤니 낭패를 보는 게지.”
“궁사라…….”
군문에서나 사용하는 궁이라니.
초식이 필요 없는 궁은 무림인이라면 보통 사용하지 않는 무기다.
무림인이 무공의 절반인 초식을 버린다면 어찌 무림인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 * *
적사결은 염마천을 대동한 채 빠르게 움직였다.
“교주님, 당가의 정보에 따르면 놈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곳이 이 근방입니다.”
염마천이 주변 지형을 확인하며 말했다.
두 사람은 신법을 멈추고 산세를 읽기 시작했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앞서 둘러본 장소들도 그렇고 놈은 반드시 능선을 끼고 도주로가 많은 곳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분명 하루 이틀 산을 경험한 놈이 아닙니다.”
“그래. 상당히 노련한 지형 선택이지. 어쩌면 엽사일지도 모르겠군.”
목표물은 궁사라 했고 지형을 선택하는 수법까지 종합해 보면 엽사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나 그것만으로 단정지을 순 없지 않겠습니까? 현상금 사냥꾼들도 엽사들을 조사했을 것입니다.”
“그렇겠지. 하나 그들이 단서를 놓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 그들도 사람이 아닌가?”
“그렇군요. 속하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적사결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염마천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나 그 말도 틀린 것이 아니니 거시적으로 접근할 필요도 있을 것 같군.”
“하오시면?”
“자네는 팔월과 접선해 보게. 녀석은 오랫동안 사천성에서 정보 수집을 했으니 뭔가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야. 본좌는 직접 이 근방의 엽사나 약초꾼들과 접촉해 보도록 하지.”
“하나 교주님…….”
“괜찮네. 고작 궁사 나부랭이가 본좌를 어찌할 수 있을 것이라 보는가? 그리고 탐문을 하려면 자네처럼 무림인 티가 나는 사람보단 여인의 모습을 한 본좌가 낫지 않겠나?”
어느 쪽이 경계심을 높일지는 자명하다.
적사결은 억지로 사왕을 쥐어 주며 염마천을 보냈다.
평범한 여인이 보도를 지니고 있으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일단은 외모부터 바꿔 볼까.”
사천제일미로 불리는 만큼 당연희의 얼굴은 너무 팔렸을 터.
적사결은 천축유가신공으로 평범한 여인으로 외모를 변형시켰다.
하나 그럼에도 미모는 그리 퇴색되지 않았다.
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