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52화>
“흡성대법이요?”
“반쪽일 뿐인데 뭔들 어떻겠느냐. 네가 본좌의 제자가 된다면 정식 무공명과 함께 완전한 신공을 전해 줄 것이나 네가 싫다니 대충 그리 알고 있거라.”
“……예.”
속 좁은 사람으로 보이진 않았겠지.
남운적은 표정이 담담한 것이 당최 속을 알 수 없는 아이였다.
“앞으로는 발작을 일으키지 않도록 열심히 수련하거라. 본좌는 이만 가 보도록 하마.”
“저기 교주님. 한 가지 여쭐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제 외조부님에 대해 알려 주실 수 없겠는지요?”
“할아비가 어떤 무인이었는지 알고 싶은 것이냐?”
남운적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는 젊은 시절 몇 차례 무공을 겨루며 교류했을 뿐 본좌도 아는 바가 많지 않다.”
“조금이라도 부탁드릴게요.”
그저 얼굴도 보지 못한 외조부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다.
눈빛에서는 어떤 목표 의식이 느껴졌다.
“혹시 독패존을 목표로 삼고 싶은 것이냐?”
“무림에서 살아가게 되었으니까요. 가능하면 그분보다 더 높이 올라가고 싶어요.”
“크하하하, 패기는 아주 좋구나.”
천하십대고수였던 외조부를 넘겠다니.
그 말은 천하 제일고수가 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아직 정확히 그 의미를 모르는 것 같지만.
“암, 무인이라면 응당 그 정도 목표는 가져야지. 내 독패존에 대해 알려 주마. 그의 무공부터 성정, 가치관까지 아는 대로 말이다.”
“감사합니다, 교주님.”
적사결은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어디서부터 말해 줄까…… 흠. 일단은 무위부터 설명해 주는 것이 좋겠지. 그는 말이다, 일인군단이라고 불렸던 극강의 고수였다. 본좌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잠시나마 넘어설 수 없는 벽이라 느꼈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지.”
서두를 시작으로 적사결은 사소한 것 하나도 흘릴 새라 꼼꼼히 기억을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이야기는 한참이나 계속되었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끝날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본좌가 알려 줄 수 있는 전부다.”
“감사합니다, 교주님. 이 은혜 잊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다, 본좌도 그와의 과거 얘기를 하며 되짚어 본 것이 많았다.”
몇 차례밖에 만나지 않았으나 무의 뜻이 통했던 관계는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교류한 것.
적사결은 연무흔과의 논검을 떠올리며 무의 열망이 넘치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 것이었다.
“네가 갈 길은 독패존이라 불렸던 위대한 무인을 뛰어넘는 것이다. 항상 그 사실을 잊지 말고 정진, 또 정진하거라.”
적사결은 그 말을 끝으로 남운적을 남겨 둔 채 밖으로 나섰다.
‘천하제일인이라. 쉽진 않을 것이야. 동세대에는 사파의 백류혼, 그 녀석이 있다. 더구나 본좌가 직접 절정으로 이끌어 준 정파의 백리황, 그 애송이도 둔한 감이 있지만 확실하게 정진하는 부류이니 앞으로 얼마나 더 성장할지 알 수 없지. 더구나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잠룡들도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앞으로가 기대되는구나, 후후후.’
다음 세대도 참으로 흥미로울 것 같았다.
적사결은 젊은 시절의 열망을 떠올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거처로 향했다.
남운적은 깍지를 머리 뒤로한 채 침상에 드러누워 있었다.
‘신교의 지존이라고 하시더니 과연 배포가 다르시구나.’
자신의 병은 모두가 불치병이라 했고 방법이 없는 나머지 저주 받았다고 손가락질을 할 정도였다.
한데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무공을, 비록 반쪽이지만 조건 없이 가르쳐 준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듣기로 무공은 의발을 이을 전인이 아니면 수련을 보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 무림의 불문율이라니까 말이다.
‘더구나 할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도 정성을 다해 알려 주셨어.’
보통은 적당히 아는 만큼 알려 주고 말 것이나 적사결은 말투 하나하나도 되새겨 가며 설명해 준 것이다.
그래야 자신의 심상에 생생하게 그릴 수 있다는 첨언을 덧붙여서.
‘마교라 불리는 곳의 수장답지 않게 자상한 면이 있으셔.’
남운적은 아비가 죽은 후 처음으로 따뜻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는 흠모하는 흑사광에게도 받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그날 밤, 남운적은 절륜창을 꼭 끌어안고 삼 년 만에 처음으로 단잠을 잘 수 있었다.
* * *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해남도는 시간의 흐름도 잊을 정도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나 중원은 다른 시간 속에 있는 듯 바쁘게 흐르고 있었다.
결국 정사대전이 시작된 것이다.
오대세가와 사무련은 장강 일대에서 공방을 주고받았다.
세 명의 가주를 잃은 복수심 때문인지 하북팽가, 황보세가,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사기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몸을 사리지 않는 것은 물론 목숨을 던질 정도로 격렬한 공세에 사무련은 여러 전장에서 패색이 짙은 상황.
하나 오대세가의 최고수 북천대제 모용학과 통천제 제갈표, 두 가주가 적극적으로 전장에 나서지 않아 기선을 잡고도 승기를 취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파황무존 백천악과 의문의 신진고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견제만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떠오른 사무련의 소련주, 백류혼.
그는 신조를 타고 동분서주하며 수많은 오대세가의 고수들을 격파했다.
그의 활약 덕분에 전선은 일진일퇴의 공방을 이어 갔다.
“해서 전대 하오문주라는 놈이 당장은 만날 수 없다 말했다고?”
적사결은 미간을 찌푸리며 사월의 보고를 받았다.
“그렇습니다. 하오문주 은소령의 죽음 후 다음 대 문주를 선출하지 못한 상황에서 전쟁이 벌어져 시간을 내기 힘들다 전해 왔습니다.”
“하면 전쟁이 끝나야 만나 주겠다 이 말이냐? 백가 이 애송이 놈이…….”
“송구합니다. 전쟁이 워낙 격렬해지고 있어 연락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다시 접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적사결은 한숨을 길게 쉬며 손을 휘저었다.
다음 건으로 넘어가라는 의미였다.
“다음으로 본교에 대한 건입니다. 현재 흑영단의 정보망은 이전의 구할 수준으로 복구되었습니다. 보름 이내 완전한 체제를 구축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하면 혈교의 눈과 귀는 막혔겠구나. 놈들이 다른 정보 단체와 접촉하는 기색은 없느냐?”
천하에는 개방과 하오문 외에도 정보를 전문으로 다루는 집단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여인들로 구성된 화영문이 있으며 풍문에 따르면 중원 기녀들의 절반은 하오문을, 나머지 절반은 화영문을 따른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였다.
또한 그들은 고관대작이나 거상들의 정실부인이나 첩으로도 침투해 있어 정보의 양이나 질, 두 가지 모두 뛰어나기에 천하 삼대정보 단체의 한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일월이 파악한 바, 정보 단체와 접촉은 물론 정보대조차 꾸리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신궁을 방어하는 수비대조차 타격대에 편성하고 있으며 천하정화작업이라는 기치 아래 전쟁 준비를 하는 중입니다.”
“천하 정화작업…… 어휴.”
“그리고 지존의 말씀대로 혈마열반결을 익힌 자들은 모두 이전과 다른 인격을 보였다는 첩보가 있었습니다. 현재 신궁의 마인들 중 팔 할 정도가 그 마공을 익힌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놈들이 신강을 나올 시기가 언제쯤일 것 같으냐?”
“저희들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육 개월 이내 출진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육 개월이라…… 생각보다 빠르구나.”
족히 일 년은 걸릴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절반이라니.
아무리 무림인이라는 존재가 관군에 비해 병참의 영향을 덜 받는다지만 너무 빠르다.
“무허가 첫 번째 폐관 수련을 끝낸 당시부터 중원 거점지로 일련의 움직임이 있었다 합니다. 하여 그것을 감안한 것입니다.”
“요소요소마다 병참지를 만든 것이구나.”
“그렇습니다.”
“무허 이 새끼, 반미치광이가 된 줄 알았더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이군. 아니면 싸우는 쪽으로만 머리가 트인 건지.”
적사결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는 왼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이장로, 흑마검귀 관패가 있었다.
“관장로. 그대가 기습 부대를 편성해 봐. 주특기잖아.”
“맡겨 주십시오.”
“최대한 혈교의 출진 시기를 늦춰야 해. 흑사광의 폐관수련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니 말이야.”
천마신공을 완성해 마성에 빠진 교도들을 되돌릴 유일한 희망.
지금은 그에게 신교의 미래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구양 장로.”
“예.”
오른편의 구양패가 읍하며 대답했다.
“자네가 이곳에서 전권을 맡아 교도들을 돌보고 있도록 해. 본좌는 잠시 다녀올 곳이 있으니.”
“무슨 일이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어제 사천으로부터 서신이 도착했다. 한번 만나자고 하는군.”
당연희를 통해 넣었던 연통.
그에 대한 답신으로 사천당가로부터 초대가 온 것이었다.
“정말 사천회와 동맹을 맺으실 생각이십니까?”
“무허, 그 미친놈이 튀어나오면 가장 먼저 부딪힐 곳이 어디야? 의천맹이다. 한데 지금 그곳에 놈을 막을 인물이 있나?”
의천오무제 중 셋이 죽고 남은 건 둘.
한데 그들은 모두 정사대전에서 발을 빼지 못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본교를 가로막던 가장 큰 벽이었던 무허가 적이 되어 버린 어이없는 사태가 아닌가.
즉, 지금의 의천맹은 혈교의 진군을 막을 만한 전력이 없었다.
“제대로 된 절대 고수도 없는 상황인데 심지어 종리천, 그 맹추놈이 지금 의천맹주다. 하니 사천회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혈교의 불길을 잠재울 수 없어.”
제정신이 아닌 교도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도 모르고 무허를 따르게 될 터.
한데 천하정화작업은 무림인만이 아니라 일반인도 그 대상이라 했다.
혈교도라 칭하고 있지만 자신을 따랐던 교도들이 죄 없는 민초들의 피를 손에 묻히게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적사결은 그 꼴은 죽어도 보고 싶지 않았다.
* * *
성도.
그곳은 사천성의 수도이자 사천당가가 뿌리 내린 곳이다.
수도인만큼 과거에는 수많은 무관이 존재했고 셀 수 없이 많은 문파가 세워졌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오로지 당가만이 유일한 무림 문파로 존재했다.
그것은 이백년 전 있었던 세력 다툼 때문이었다.
당시 신흥 세력인 당가와 구파일방에 속한 청성, 아미, 점창은 아귀다툼을 벌였었다.
그 결과, 당가는 그들을 멸문시키고 그들을 따르는 군소 방파조차 멸문시켜 버린 것.
그 과정에서 성도는 당가 외에는 그 어떤 문파도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으리으리하군.”
적사결을 사천당가의 정문인 당천문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자금성도 가 보았지만 그곳은 엄연히 명국의 황성.
전체적인 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당천문만큼은 그에 못지않은 위엄이 있었다.
“본가는 그 자체로 천하 오대거상의 한 곳이니까요.”
당연희는 어깨를 펴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 사천당가는 무림 문파이며 또한 상단이다.
천하에 존재하는 수많은 약방 중 당가와 거래하지 않는 약방은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으니 말이다.
“똥개도 제 집에서는 먹고 들어간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 없군.”
“뭐라고요!?”
적사결은 그녀가 도끼눈을 뜨자 본체만체하며 휘적휘적 걸어갔다.
“사람 무시하는 거예요!?”
그녀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얄미웠다.
“소저, 교주님께서는 천하 오대거상을 싫어하십니다. 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하십시오.”
염마천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왜요?”
“그들은 신강을 거들떠도 안 보기 때문입니다. 서역과의 교역이 단절되면서 돈이 안 되는 지역이 되었으니까요. 거상들이 등한시하니 자연히 경제력이 축소되고 신강의 백성들은 궁핍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지요.”
그나마 천마신교가 있어 치안을 철저히 하고 반강제로 상단을 끌어모아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해서 천마신교는 신강의 백성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럼 그렇게 말하면 될 것이지. 왜 저렇게 말한대요?”
그 물음에 염마천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정말 그걸 모르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