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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151화 (151/206)

<기적의 이혼대법 151화>

“연. 무자 흔자 쓰십니다. 뵌 적은 없지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알려 주셨습니다.”

“……!”

적사결의 눈이 번쩍 떠졌다.

설마 그 독패존 연무흔의 외손자였다니.

“네 외조부가 어떤 분인지도 아느냐?”

“모릅니다. 아버지께서도 그분이 무림인이라는 것만 짐작할 뿐 존함 외에는 아는 바가 없다 하셨습니다.”

“하면 네 어미에 대해서는 얼마나 아느냐?”

“성함이 연미려라는 것 외에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머니의 과거에 대해서도 전혀 말해 주지 않으셨거든요.”

그때 당연희가 입을 떡 벌렸다.

“연미려라면 혈루신창! 그분이 네 어머니라고?”

“어머니를 아세요?”

“천하의 여걸이자 여협이지! 무림에 적을 둔 여인 중에 그분을 흠모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고.”

적사결은 무린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넌 알아?”

“네. 혈루신창이라면 십오 년 전 석가장을 풍비박산 냈던 여고수입니다. 단신으로 일가를 멸문시키고 의천맹의 추격을 받는 중에 종적을 감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독패존의 딸이라서 유명한 게 아니었군?”

“두 사람의 관계는 저도 처음 들었습니다. 과연 혈루신창이 강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군요.”

당연희는 목소리를 높이며 첨언했다.

“연 여협은 무공만 강한 게 아니에요. 그분은 석가장의 명성 때문에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홀로 그들을 상대했던 협객이었으니까요.”

“석가장이 뭔 짓을 했었나 봐?”

“석가장주의 아들이 망종으로 유명했거든요. 그자에게 강간당한 여인이 수도 없이 많았으니까요. 그런 그를 단죄하고 석가장을 상대로 물러서긴커녕 도리어 멸문시킨 분이 연 여협이었어요.”

“호부 밑에 견자 없다더니 독패존과 판박이로군.”

독패존도 그런 불같은 성정과 물러설 줄 모르는 기질.

그리고 독보 강호하는 점 때문에 혈루신창과 같은 상황에 빠졌었다.

다른 점이라면 그는 의천맹의 추격대조차 몰살시킨 극강의 고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 양반의 혈육을 만나다니.”

이런 게 인연인 것인가.

적사결은 자신이 독패존의 독문병기, 절륜창을 얻은 것이 우연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제 외조부께서 독패존이라 불리나 보죠?”

아이는 고개를 똑바로 들고 물었다.

“그렇다.”

“무림에서 높으신 분인가 봐요?”

“높았지. 정점을 다퉜던 사람이니까.”

“그 말은 돌아가신 모양이군요.”

“삼 년 전에 운명하셨다.”

“역시 그랬군요.”

아이의 눈빛은 담담했다.

세상에 완벽히 홀로 남게 되었음에도 개의치 않는 모양이다.

“혹시 외조부를 원망하느냐?”

“아뇨, 뭔가 이유가 있었겠죠. 말씀하시는 걸 보니 적잖게 은원을 쌓으셨을 테니 우리에게 해가 될지도 몰라 찾지 않으신 건지도 모르고요.”

허, 제법이다.

보통은 버림받았다는 마음에 원망하게 마련인데 담담히 넘기다니.

그것도 나름의 이유를 들면서.

판단력이 남다르다는 방증이었다.

‘무엇보다 정신력도 강인하구나. 마맥이 주는 시련을 이겨 낸 탓이겠지.’

저주받은 아이라 괄시받고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그러한 것은 타고난 성정이 올 곧고 굳건하지 않다면 불가능하다.

적사결은 아이의 성정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더구나 백리황과 진무백을 가르치며 그동안 제자를 들이고 싶은 마음이 한구석에 있었기에 더 마음이 쓰이는 지도 몰랐다.

인연에 더해 마음이 생겼고, 지금 이 아이의 특출난 면모가 적사결을 움직인 것이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남운적이요.”

“본좌를 따라가지 않겠느냐?”

“말씀은 감사하지만 전 이곳에 있어야 해요.”

“어째서 그런 것이냐?”

남운적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제가 있는 곳엔 모두가 죽어요. 풀도 나무도 동물들도. 심지어 사람들도요. 저와 같이 있으면 아줌마도 죽을지 몰라요.”

왈칵.

적사결은 얼굴을 구기며 이마를 짚었다.

한데 나선 것은 당연희였다.

“야! 아줌마라니! 내 얼굴이 어떻게 아줌마야!”

“네? 아저씨가 왜 그러세요? 혹시 두 분 혼인한 사인가요?”

“아니야!”

당연희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설명을 하고 싶어도 꼬이고 꼬인 이 상황을 아이에게 이해시키기 어려웠다.

“시끄러우니까 조용히 좀 해.”

“이게 다 맨날 야외 수련한답시고 햇빛을 많이 받아서 그런 거잖아요! 햇빛이 피부에 얼마나 안 좋은데! 연공실에서 하라니까 말을 안 들어!”

“그깟 피부 얼마든지 탱탱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그만 좀 닥쳐!”

“진짜죠?”

“입 닫아.”

당연희는 검지와 엄지로 입술을 꽉 잡았다.

적사결은 한숨을 푹 쉬고는 남운적에게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같이 있어도 아무도 죽지 않을 것이다. 본좌가 네 저주받은 체질을 축복받은 체질로 만들어 줄 테니 말이다.”

“제…… 제 병을 고쳐 주신다고요?”

“지금 네가 발작을 멈추고 정신을 차린 것이 누구 덕분이라 생각하느냐?”

“혹시 아줌마가 도와주신 건가요?”

“……크흠. 그 아줌마 소리는 좀 빼거라.”

“그럼 누…… 나?”

“하아…… 그냥 사부님이라 부르거라.”

“설마 저를 제자로 받으시려는 건가요?”

“영광인 줄 알거라.”

“죄송하지만 싫습니다.”

“뭣!?”

당연히 승낙할 것이라 여겼는데 거절을 하다니.

“저는 스승으로 삼고자 마음먹은 분이 있습니다.”

“그게 누군데?”

“흑사광 님요. 저는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야! 흑사광보다 본좌가 더 높은 사람이야! 무린, 네가 말해 봐!”

적사결이 턱짓으로 가리키며 명했다.

“적아, 그분 말씀대로 대주님보다 높으신 분이란다. 너에게도 나쁜 일이 아니니 얼른 절을 올리거라.”

“싫어요. 저는 흑사광 님이 좋은 걸요.”

대쪽 같은 성정은 독패존을 쏙 빼닮았다.

적사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으며 말했다.

“본좌가 이런 말까진 안 하려 했는데 말이다. 흑사광은 네 병을 못 고친다. 천하에서 오직 본좌만 가능한 일이야. 하니 어서 구배지례를 올리거라.”

“흑사광 님도 지금까지 제 발작을 다스려 주셨어요. 그분은 저를 고쳐주실 수 있을 거예요.”

이런 고집불통 같으니.

“이놈아, 흑사광은 그간 병세를 늦췄을 뿐이라니까. 그리고 오늘 발작은 그가 왔어도 못 다스렸을 거다. 이건 본좌의 명예를 걸고 말할 수 있다.”

“근데 흑사광 님이 정말 수하예요?”

“진짜라니까!”

이런 여인네 몸이니 도대체가 위엄이 안 서는구나.

“그럼 치료만 해 주시고 흑사광 님께 저 좀 제자로 삼으라고 말해 주시면 안 될까요? 흑사광 님의 주군이시니 저도 충성을 다해 모실게요.”

이런 영악한 놈.

감히 본좌와 흥정을 하려 하다니.

“젠장, 무린!”

“네.”

“일단 데려가자. 도저히 말이 안 통하는 놈이구나.”

“알겠습니다.”

무린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운적을 등에 업었다.

*   *   *

장원으로 복귀하자마자 적사결은 사월을 불렀다.

그녀에게서 절륜창을 돌려받기 위함이었다.

“주군 여기 있습니다. 한데 절륜창은 갑자기 왜 찾으시는지요?”

“아까 본좌가 데려온 아이 봤느냐?”

“네. 흑랑대와 꽤 친한 듯 보였습니다.”

“그 아이가 연무흔, 그 양반의 외손자더구나.”

“네? 독패존의 혈육이 이런 벽지에 있었단 말입니까?”

“세상 참 좁지 않느냐? 마치 그 양반의 혼이 이 절륜창에 깃들어 본좌를 여기로 이끌었다고 생각되더구나, 흐흐.”

애초에 수하들이 해남으로 향했다는 정보를 듣고 움직였지만 그런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만큼 남운적과의 만남은 운명처럼 느껴졌으니까.

“독패존과의 인연이 남달랐으니 그리 느껴지신 것입니다. 지존께선 자상한 면이 있으시니까요.”

“뭐? 본좌가 자상해? 푸하하하. 다른 사람들 앞에선 그런 말 말거라. 널 비웃을까 염려되는구나.”

피도 눈물도 없는 마도지존에게 자상?

웃기지도 않는 농이다.

‘진짠데…….’

사월은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   *   *

“지존을 뵈옵니다.”

흑랑대의 거처를 찾은 적사결을 발견하고 대원들이 예를 올렸다.

그들의 곁에는 남운적이 고개를 숙이며 자신의 눈치를 보았다.

‘새끼, 데려갈까 봐 눈치 보긴.’

적사결은 눈을 흘기고는 뒷짐을 지며 들고 있던 절륜창을 앞으로 내밀었다.

“받거라.”

“이게 뭐죠?”

“네 외조부의 유품이다. 그가 생전에 쓰던 독문병기지.”

남운적은 힘겹게 절륜창을 받아 들었다.

아직 피골이 상접하고 근력이 모자라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보였다.

“저기…… 나중에 받으면 안 될까요?”

“왜? 무거워서 그러느냐?”

“그게 아니라 제가 지니고 있으면 뭐든 삭거나 녹슬어 버리거든요.”

“흐흐, 걱정 마라. 그건 보통의 무기와는 차원이 다르니까. 내 장담하는데 끄떡없을 것이니라.”

무려 만년한철을 통째로 제련한 신병이기다.

특히 장창이기에 그 양이면 만년한철 검을 십여 자루는 만들 수 있을 정도.

이름값이 아니더라도 병기 자체의 가치로만 본다면 천하십대기병의 수위를 차지하는 기물이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한데 어찌 외조부님의 독문병기를 교주님께서 가지고 계시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하하하, 본좌가 네 할아비를 죽였다면 복수라도 하려고 그러느냐?”

“저도 눈치가 있으니 아니라는 것쯤은 압니다. 그저 그분의 죽음에 대해 알고 싶을 뿐입니다.”

역시 영특한 놈이다.

“재미없는 녀석. 그것은 네 외조부를 살해한 놈을 본좌가 죽이고 얻은 것이다. 예전 인연도 있고 해서 대신 원수를 갚아 준 것이지.”

“그랬군요. 할아버님을 대신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교주님 덕분에 편히 눈 감으실 겁니다.”

남운적은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예를 표했다.

“절륜창을 받았으니 앞으로는 허리를 숙이지 말거라. 독보강호의 대명사가 네 할아비였다. 하니 그분처럼 당당한 무인이 되어야 할 것이야. 앞으로는 무림에서 살아가야 할 테니 말이다.”

“제가 무림의 예법에 익숙지 못합니다. 하면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포권이면 족하다.”

남운적은 어설프게 절륜창을 겨드랑이에 끼고 포권했다.

서투르지만 창을 내려놓지 않는 것은 녀석이 타고난 무인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듯했다.

‘볼수록 탐나는구나.’

적사결은 흐뭇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따라 들어오너라. 흑랑대는 바깥에서 호법을 서고 누구도 들이지 말거라.”

그러고는 남운적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가부좌를 틀고 침상에 앉아라.”

“저기 교주님 저는…….”

남운적은 자신에게 무공전수를 할까 봐 말끝을 흐렸다.

“그냥 앉으라면 앉거라. 설마 본좌가 강제로 제자 삼겠느냐?”

“……네, 송구합니다.”

남운적은 그제야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어쨌든 너를 본교에서 거두었으니 네 체질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한 가지 구결을 알려 줄 것이다. 그것이면 침술이나 내공운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혈맥을 조절할 수 있을 게다.”

“무공이 아닌 건가요?”

“일종의 심공이라 할 수 있지. 하나 네 의지가 강하다면 육체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야.”

“어쨌든 무공인 거네요?”

“그놈 참, 조막만한 놈이 질기기가 쇠심줄이구나. 너에게 알려 줄 구결은 완전한 것도 아니고 이걸 전수받은 자가 너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들이 본좌의 제자인 것도 아니고. 이제 됐느냐?”

“……네.”

녀석에게 알려 줄 구결은 천축유가신공의 반쪽인 세수경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혈맥을 다스리는 데 문제없을 것이다.

적사결은 천천히 구결을 불러 주었다.

“다시 한번 불러줄 테니 확실하게 외우거라 한 자라도 틀리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니.”

“괜찮아요. 다 외웠는걸요.”

어쭈, 오성도 제법인데.

“확실한 것이냐?”

“읊어 볼까요?”

“됐다. 스스로 그리 확신한다면 맞겠지.”

사부도 아닌데 뭐하러 확인까지 해 주겠나.

본좌는 그렇게 자상하지 않다, 커험.

“한데 이 무공은 이름이 뭔가요?”

뭐라고 할까.

세상이 알고 있는 가짜 세수경이 아닌 진짜 세수경? 천축의 무학?

아니다, 괜히 이것이 소림과 관계있는 것이라 떠벌리면 귀찮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기운을 흡수하는 체질을 개선하기 위한 대법 같은 것이니……

“일단 흡성대법이라 해 두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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