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50화>
동굴 입구를 들어서자 과연 적사결의 말대로였다.
바깥과는 차원이 다르게 기운을 빨아들이는 힘이 강해진 것.
하나 보리연화공은 내공의 응집력이 강한 성질이 있기에 나름대로 저항하고 있었다.
‘이 아이가 정말 전설로만 전해지는 그것일까?’
기운을 흡수하는 병세부터 열 살부터 시작했다는 발작.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매개체가 땅이라는 것이 자신의 추측을 확신으로 바꿔가는 중이었다.
물론 제대로 진맥을 해 봐야 알겠지만 그녀는 어느 정도 병의 원인을 짐작하고 있었다.
‘저기 있구나.’
동굴 속은 어두컴컴했지만 그녀의 안력은 어려움 없이 사물을 구별해 주었다.
한쪽 구석에 쓰러져 있는 작은 체구의 아이는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아이의 맥을 살폈다.
한데 신체에 닿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손끝을 통해 기운이 쑥 하고 빨려 나갔기 때문이었다.
‘직접적으로 만지니까 더 심하구나.’
하나 차고 넘치는 내공은 아직도 단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당연희는 문제없겠다는 판단에 아이를 안고 동굴 밖으로 향했다.
햇빛 아래 드러난 아이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옷은 해지다 못해 바스러져 거의 형체도 남지 않았고 피골이 상접한 것이 뼈만 남았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주위에서 빨아들일 기운이 부족하니 본신이 지닌 생기마저 빨아먹은 거야.’
자기 자신과 주변까지 모든 걸 죽음에 이르게 하는 체질.
그녀는 아이가 오대지체의 하나라는 결론을 내렸다.
“너 혹시 그 아이의 병세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적사결이 다가와 물었다.
그녀의 눈빛에서 그것을 읽은 것이었다.
“저도 반신반의 했는데 정토마맥이 분명해요.”
“정토마맥? 그게 뭐지?”
“구백 년 전 의선께서는 처음으로 오대지체라는 특이 체질의 개념을 정립하셨죠. 정토마맥은 그중 한 가지예요.”
“하면 이 아이가 태양신맥이나 구음절맥 같은 것이라는 말이냐?”
“맞아요. 한데 일단은 혈맥부터 닫고 얘기를 나누죠. 이대로라면 얼마 못 버텨요.”
“알았다.”
적사결은 소매를 걷으며 아이에게 다가갔다.
한데 그녀가 급히 그를 제지했다.
“잠깐만요.”
“또 왜?”
“독성을 배제하고 내공을 쓸 수 있어요? 혈맥을 닫아도 독성이 남아 있으면 얘가 중독되잖아요.”
아차.
그걸 까먹고 있었군.
독공이 워낙 생소하다 보니 독에 대한 위험성이 아직 잘 와닿지 않는다.
“내공을 쓰지 않고 혈맥을 닫으마. 그럼 되겠지?”
당연희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그가 외공을 다루는 이상한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을 알기에 믿고 맡기는 것이었다.
스윽.
적사결은 천축유가신공을 사용하기 위해 아이의 머리를 짚었다.
한데.
‘허억, 닿자마자 십 년 공력을 빨아먹다니!’
빼앗길 것을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장심혈을 통해 기운이 빨려 나간 것이다.
정말 엄청난 흡입력이 아닐 수 없었다.
‘전신의 혈맥이 미친 듯이 기운을 갈구하는구나.’
빼앗긴 기운을 통해 아이의 몸을 관조한 결과였다.
마치 무저갱과 같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어둠.
활짝 열린 전신혈맥은 아귀처럼 기운을 잡아먹고 있었다.
‘일단 닫자. 임독양맥을 시작으로 기경팔맥과 십이경락을 잡고 세맥까지 틀어막아야겠어.’
보통 사람이 혈맥을 모두 닫으면 죽게 된다.
하나 이 아이는 반대로 닫아야 살 수 있었다.
파아앗.
적사결의 이마에 삼지안이 떠올랐다.
하나,
푸스스슷.
“뭐야, 이거!?”
삼지안이 완성되기 전에 기운이 흡수당한 것이다.
마치 태풍에 휩쓸린 산들바람 같았다.
“젠장. 골 아프게 하는구먼.”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의념을 집중.
삼지안의 도움을 받지 못하자 꽤 오랜 시간이 걸려 모든 혈맥을 닫을 수 있었다.
아이는 그제야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잠이 들었다.
하나 앙상한 몰골은 보기 힘들 정도였다.
“염마천, 호심단 있으면 하나 먹이거라.”
비상시 내상을 다스리고 기운을 북돋는 단약.
무림인들은 품에 구명단 하나쯤은 지니고 다니는 정도로 필수품이다.
호심단을 아이에게 먹이고 내기를 주입해 약기운을 전신에 퍼트렸다.
약성이 빠르게 흡수되도록 도운 것이다.
“자, 이제 말해 보거라.”
적사결의 물음에 그녀는 천천히 설명을 시작했다.
오대지체란 달리 오행지맥이라 부른다.
오행의 기운을 띠는 맥이라는 의미.
그중 가장 유명한 체질은 음양을 대표하는 태양신맥과 구음절맥이다.
전신혈맥이 양기를 띠는 태양신맥은 양강의 무학을 익힌 자에게는 최적의 신체였다.
반대로 음기를 띠는 구음절맥은 음유의 무학에 적합한 신체지만 맥이 얼어붙는 탓에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열 살을 넘기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다만 그 덕에 오성이 발달하고 두뇌회전이 뛰어나기에 살아만 남는다면 태양신맥보다 장점이 많다고 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목령선맥.
이 체질은 전신혈맥이 목의 기운을 띠며 달리 선인지체라고도 하기에 선맥이라 부른다.
목령선맥은 끊임없이 생명력이 솟아나기에 수명이 길고, 그 탓에 불로불사의 전설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된 체질이라 했다.
무림인이 타고난다면 무한한 내공을 발휘할 수 있다 알려져 있었다.
네 번째는 금강천맥.
금의 기운을 띠는 이 체질은 인외의 신력과 함께 강철 같은 신체를 지니게 된다.
이는 신체 외부의 피부뿐만 아니라 뼈와 내장 등 내부 역시 강철같이 변하는 것이었다.
또한 금강의 정신력은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환술과 같은 류의 정신침식에도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금강역사를 대변하며 하늘이 내린 맥이라 하여 천맥으로 불렸다.
“과거 이 네 개의 체질은 실제로 존재했었죠. 특히 태양신맥과 구음절맥, 그리고 목령선맥은 아주 유명하죠. 구백 년 전, 정마대전을 막아 낸 자들이었으니까요.”
“삼왕무신. 검선과 함께 천마조사의 앞을 막았던 개자식들이지.”
적사결도 그 셋은 익히 알고 있었다.
태양신맥의 열제, 구음절맥의 빙후, 목령선맥의 검왕.
그들은 천마조사에 의해 다 꺼져 가던 정파, 십이도문의 불꽃을 되살린 놈들이었으니까.
“맞아요. 동세대에 세 개의 체질이 한꺼번에 등장했고 그들 덕분에 의선께선 오대지체의 개념을 확립하실 수 있었죠. 연구대상이 바로 눈앞에 있었으니까요.”
“한데 넌 의선에 대해 어찌 그리 잘 알지?”
의선 역시 구백 년 전 인물.
의술이 신선의 경지에 올라 너무 뛰어난 나머지 제대로 전인을 남기지 못한 자였다.
“본가가 의선의 모든 것을 잇지는 못했지만 의발을 잇기는 했으니까요.”
“뭐? 의선의 진전을 이었다고? 어떻게? 당가가 개파한지는 고작 이백 년 남짓인데.”
“반만 이은 거예요. 그분의 의술은 너무 방대해 약맥과 침맥으로 나뉘어져 전수되었고 조사님께서 그중 약맥을 이었거든요.”
“당가가 의선의 일맥을 이었었군…….”
과연, 뛰어난 용독술과 연단술은 역시 그만한 배경이 있었다.
사천당가는 개파 당시부터 이미 수준 높은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고 알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 있었던 것이다.
“한데 정토마맥이라 했나? 그건 뭐지?”
“오대지체 중 유일하게 이론으로만 남았던 체질이에요.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던 체질로 기운을 흡수하는 현상이 대표적인 특징이죠. 전신혈맥이 토의 기운을 지니고 있기에 천지간의 모든 기운을 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거예요.”
“하면 의선은 추측만으로 정토마맥이라는 개념을 남긴 것인가?”
“네. 하나 세 개의 체질을 토대로 분석한 가설이라 어느 정도 맞을 거예요. 실제로 그분의 사후 나타난 금강천맥 역시 거의 들어맞았으니까요.”
소림에서 나왔던 금강천맥의 소유자.
그는 금강승이라 불리며 자신의 체질을 바탕으로 완성한 무공인 금강나한기공을 남겼다.
하여 소림승들은 금강천맥의 체질이 아니더라도 무공으로 금강불괴를 구현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하면 정토마맥에는 또 어떤 가설이 있지?”
“정토란 극락을 의미하며 달리 깨끗한 세상을 이르는 말이죠. 정토마맥은 세상의 불온한 기운을 없애 깨끗하게 만들 수 있지만 그 방법이 파멸적이기에 마맥이라 이름 붙였다고 해요. 당시 의선이 보았던 마교는 마주하는 모든 것을 파괴했기에 그 이름을 따서 마맥이라 불렀다고 하기도 하고요.”
“이름 말고 특징만 간단하게 설명해 다오.”
“일단 보시다시피 모든 기운을 흡수하여 없애 버려요. 다만 의선께선 스스로 혈맥을 조절할 수 있다면 받아들인 기운을 자신의 힘으로 치환할 수 있을 것이라 보셨어요. 대지는 모든 죽음을 받아들이지만 또 생명을 잉태하는 힘이 있으니까요. 다만…….”
그녀는 잠시 말끝을 흐렸다.
“쉽지 않다는 것이냐?”
“그래요. 혈맥을 조절하려면 침술과 운기라는 두 가지 방법이 있죠. 한데 그 두 가지 모두 불가능해요.”
“어째서?”
“방법은 다르지만 두 가지 모두 혈자리를 자극해 내부의 기운을 유도하는 것은 일맥상통하니까요. 한데 정토마맥은 기운을 유도하지 못하도록 있는 힘도 흡수해 버리니 도인 자체가 안 되는 거죠.”
“그 말은 무공을 익히지도 못한다는 말이군.”
“축기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 단전도 만들지 못하는데 어떻게 무공을 익히겠어요.”
“치료는 불가한가?”
“구음절맥은 이미 과거에 등장한 적이 있었고 빙후를 진단했던 의선께서 치료법을 내놓으셨죠. 한데 정토마맥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체질이에요. 아니, 사실 정토마맥이 세상에 나올지도 의문이셨다고 해요.”
“왜 그렇지? 사대지체도 아니고 오대지체라 명명했다면서?”
“정토마맥은 태아일 때부터 어미의 기운을 갉아먹거든요. 보통의 여인은 물론 무공을 익힌 여인이라도 열 달 동안 그런 아이를 품으면 살아남지 못해요.”
“만약 어미가 절정 고수라면?”
“그럼…… 가능하겠죠.”
적사결은 촌로를 돌아보았다.
뭐 아는 게 없냐는 얼굴로 쳐다보았기에 그는 바로 입을 열었다.
“적아의 어미가 무림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녀가 외지인이긴 합니다.”
“아비는?”
“남가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 토박입니다요.”
“흐음…… 이곳에서 두 사람이 만나고 살림을 차린 것이군. 하면 그녀를 찾아온 자들 중에 특별해 보이는 사람은 없던가? 복색이나 장신구나 뭐든 말이다.”
무림인이라면 문양이나 기타 표식 등으로 은근히 자신들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그것이 집단이든 개인이든.
“딱 한 분 있었습니다.”
“말해 보거라.”
“굉장히 풍채가 좋은 노인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장군님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적아의 어미도 어딘가 기품이 있었습죠.”
이웃으로 얼굴을 맞대고 살아갈 땐 모르다 시간이 지나면 이렇듯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은 늘 대하는 이에게 무뎌지는 법이니까.
“한데 왜 그것만으로 장군일 것이라 생각한 것이냐?”
“그게 보통 관군이 창을 쓰지 않습니까. 그 노인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창을 지니고 있었습니다요.”
벽지인 해남도의 어부라면 능히 그리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창을 다루는 무인은 많지 않으니까.
“뭔가 다른 점은 없었느냐?”
“글쎄요…… 적아를 임신했을 때 딱 한 번 방문을 하고 이후엔 오시지 않아서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최대한 기억해 보려 노력하였으나 워낙 오래전이라 떠오르는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면 어미의 이름은 무엇이냐?”
“이름은 모르고 저희들은 연씨라 불렀습니다.”
“연씨? 그녀의 성이 연가란 말이냐?”
“그렇습니다요.”
만약 노인이 여인의 아비라면 연씨 성을 쓰는 창수인 건가?
자연스럽게 생각이 그렇게 이어졌다.
아니야, 천하에 연씨 성을 쓰는 창수가 한둘도 아닌데 그럴 리가.
만약 그렇더라도 그의 딸이 왜 이런 벽지에서, 그것도 촌민과 혼인을 하고 살았단 말인가.
애초에 그에게 딸이 있다는 말도 들은 바가 없었다.
그때였다.
“혹시 할아버님을 아십니까?”
눈을 뜬 아이가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정신을 차리는 중에 촌로와 자신의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적사결은 반신반의하며 되물었다.
“네 외조부의 존함을 아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