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49화>
해남도의 일상은 평화로웠다.
하나 이는 수련에만 매진하는 적사결에게 해당되는 사항인지도 몰랐다.
수하들은 각지에 흩어져 있는 교도들과 연락하며 천하의 정세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
특히 구양패를 비롯한 수뇌부는 혈교와 관련하여 천마신교의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허가 현 교주의 신분으로 천마신교가 혈교로 재탄생하였음을 공표하였으니 그에 맞서는 명분은 빈틈이 없어야 했다.
그래야 교도가 아니더라도 마도를 흠모하거나, 또는 독자적으로 따르는 자들이 자신들을 지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력이 반으로 갈라진 마당에 지지자들까지 잃는다면 신교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바삐 돌아가는 장원에 어느 촌로가 방문했다.
“저기…… 송구하오나 흑사광 님을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
그의 말에 정문을 지키던 마인이 되물었다.
“노인장은 누구시오? 무슨 일이기에 흑랑대주님을 만나려 하시오?”
혹시 기운을 숨긴 고수인가 싶었으나 아무리 봐도 평범한 촌로다.
그는 노인이 일반 백성임을 확신했다.
“그것이…… 적아가 발작했다고 말씀드리면 아실 것입니다.”
“적아라는 자는 누구고 발작이라니? 자세히 설명해 주시오. 흑랑대주님께선 폐관 수련 중이기에 급한 사안이 아니면 만날 수 없소.”
“시…… 시급을 요하는 일입니다. 어서, 어서 그분을 만나야 합니다.”
촌로는 말까지 더듬으며 다급한 얼굴을 했다.
자세한 정황을 설명하기엔 어렵다는 것이 드러날 정도였다.
“……허어. 하면 흑랑대주님 말고 노인장을 아는 사람은 없소?”
“있습니다. 무린 님이라고 다른 분들이 그분을 조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흐음. 흑랑대 일조장님도 알고 계신 것이군. 하면 일단 들어오시오. 그분을 먼저 만나게 해 드리겠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촌로가 접객실로 안내되자 곧이어 무린이 들어왔다.
“상 노인, 어쩐 일인가?”
“무린님. 적아가 발작을 했습니다.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요.”
“정말인가? 언제부터?”
“그것이…… 대략 사흘은 지난 것 같습니다.”
“사흘이나!? 하면 사흘 동안 아무도 낌새를 몰랐던 것인가?”
“요즘 물때가 좋아 다들 손이 모자라는지라…….”
“그렇다고 삼 일이나 확인하지 않은 것인가!”
“요…… 몇 년은 상태가 좋았기에…….”
“큰일이군. 사흘이 지났다면 대주님 외에는 발작을 다스릴 수가 없을 텐데…….”
무린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었다.
“흑사광님께서는 무슨 일이 있으신 건지요?”
“지금 폐관 수련 중이시네. 언제 나오실지 알 수가 없어.”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주실 순 없으신 겝니까?”
“아주 중요한 일이네. 본교의 존망이 걸렸으니 부하된 도리로 그분을 방해할 수는 없어.”
“하면 어찌한단 말입니까? 이대로라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벌써 산 아래까지 침식되는 중입니다요.”
“뭐? 산 아래까지!?”
산 아래라면 마을 어귀가 코앞이다.
자칫 어촌 마을까지 영향 아래 들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기다리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들 좀 살려 주십시오.”
촌로는 허리를 깊이 숙이며 머리를 조아렸다.
무린은 곧바로 접객실을 나서 적사결의 거처로 향했다.
흑사광 대주가 쉬이 움직일 수 없는 지금, 그를 대신할 수 있는 고수는 그분이 유일했으니까.
“흑랑대 일조장 무린입니다. 지존께 알현을 요청드립니다.”
“들어오거라.”
안에는 적사결과 염마천, 그리고 당연희가 있었다.
“무슨 일이냐?”
“지존께 청할 것이 있어 찾아뵈었습니다.”
“청이라니?”
“송구하오나 이동 중에 설명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워낙 사안이 시급하여…….”
무린의 요청에 염마천이 일갈했다.
“네 이놈! 감히 조장급 주제에 뭐라? 네놈이 본교를 오래 떠나 있어 지존에 대한 예도 잊은 것이냐!?”
“그것이 아니오라 사정을 말씀드리면 교주님께서 분명 도와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불합리한 일이라면 속하의 목을 내어 놓겠습니다.”
곧바로 무릎을 꿇는 무린은 담담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알았다. 하면 가면서 설명하거라.”
“하오나 교주님.”
“염마천, 무린의 성정을 모르나? 저 녀석이 아니라면 아닌 거고, 맞다면 맞는 거야.”
“하나 이리 쉬이 움직이시면 지존의 위엄이…….”
“본좌는 곧 교주직을 내어 놓을 텐데 위엄 챙겨서 어디다 써? 흐흐.”
적사결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서둘러 가지. 참, 견마지로도 데려 와. 멀리 갈 모양인데 이럴 때 써야 하지 않겠나.”
견마지로는 사악진을 비롯한 네 사람을 부르는 호칭이었다.
개와 말처럼 살며 충성을 다하라는 의미에서 적사결이 이름 붙인 것이었다.
“저도 따라가도 되나요?”
당연희가 일어나며 물었다.
“그냥 여기서 쉬지 그래?”
“그래 놓고 거기서도 웃통 까고 다니려고요?”
“아, 거참. 알았으니 조용히 하고 따라와. 쯧.”
그녀의 주의를 몇 번이나 받고서도 상의를 탈의한 채 수련하다 적발당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여러 가지로 귀찮네, 정말.
* * *
다다다닷.
견마지로 네 사람의 속도는 말을 타는 속도에 조금 못 미칠 정도로 빨랐다.
그래도 그들은 광동성 대문파의 수장들이었다.
그렇게 그들 네 사람은 적사결, 당연희, 무린, 촌로를 태우고 사족경공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염마천이 조용히 뒤따랐다.
그는 적사결의 호위를 위해 견마지로를 타는 것을 거부한 것이었다.
그것은 혹시나 있을 위험 상황에 대비해 긴급히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무린아, 이제 말해 보거라. 도대체 무슨 일이냐?”
“저 노인이 사는 마을에 한 아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좀 이상한 병세가 있습니다.”
“이상한 병세라니?”
“그 아이의 곁에 있으면 기운을 잃게 됩니다. 녀석의 부모도 그 탓에 죽었고요.”
그 말을 들은 당연희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기운을 잃게 되는 이유가 그 아이라고요? 확실해요?”
“그렇소. 나도 그 아이에게 기를 빼앗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오.”
“……기를 빼앗는다.”
당연희는 손톱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하면 본좌가 도울 일이 무엇이냐?”
“기공을 사용한 점혈로 그 아이의 혈맥을 닫아 주시면 됩니다.”
“그 정도는 너도 할 수 있지 않느냐.”
“발작하지 않은 상태라면 가능하지만 지금은 발작한 지 사흘이 지났다 합니다. 제가 내공을 주입해 봤자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발작할 때마다 흑사광이 나섰고?”
“그렇습니다.”
“그랬었군. 당분간 이곳에 터를 잡을 예정인데 이 땅의 민초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야지. 이랴!”
더 빨리 달리라는 호령.
견마지로는 단전이 터지도록 내공을 끌어올렸다.
재갈을 하지 않았기에 대신 잡힌 머리채가 당겨지자 머리칼이 뽑힐 것 같았으나 참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
* * *
“뭐야, 이거.”
아이가 있다는 장소는 마을 어귀에 위치한 야산이었다.
한데 그곳의 초목은 누렇게 변했고 마치 겨울을 준비하는 늦가을의 산처럼 보였다.
바스락.
적사결이 산길에 난 풀을 만지자 발생한 소리였다.
마치 낙엽같이 바싹 말랐기에 바스러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그 아이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냐?”
“그렇습니다요.”
촌로가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 아이가 올해 몇이더냐?”
“십삼 세입니다.”
십삼 세라면 백리황보다 어리다.
한데 부모도 없는 아이가 이런 야산에?
“그 어린애가 왜 이런 곳에 혼자 있는 것이지?”
“그…… 그것이.”
“병세 때문에 마을에서 지내지 못하도록 한 것이냐?”
“…….”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는 부모도 잡아먹은 저주받은 아이로 보였을 것이다.
“마을에서 지내게 했다면 증세를 미리 알고 대비했을 것을. 너희들의 무지한 두려움이 일을 키운 것이다!”
“저…… 저희로서는 도리가 없었습니다. 용한 의원을 불러도 적아의 병세는 손을 쓸 수 없었으니까요.”
“휴우, 하면 그 아이가 저 산에서 홀로 지내게 된 것이 언제부터냐?”
그 대답은 무린에게서 나왔다.
“삼 년 전입니다. 아비가 죽고 홀로 남겨진 후 줄곧 저곳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하면 아비가 삼 년 전까지 살아 있었다? 그 아이와 십 년을 함께 지냈음에도?”
“아비가 보기 드문 강골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적당한 때에 무공을 익혔다면 천하를 주름잡는 고수가 되었을 정도로요. 하나 그런 그도 아들이 발작하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해서 저희들에게 부탁을 했었지요.”
그 말에 당연희가 물었다.
“언제부터 발작을 시작한 것이죠?”
“삼 년 전이오. 지금이 딱 세 번째 발작이지.”
그녀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일단 그 아이를 만나 보자꾸나.”
적사결이 사악진의 머리채를 꽉 당기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견마지로는 이곳까지 달려온다고 내공을 거의 소진한 상황에 산까지 올라야 하니 죽을 맛이었다.
더구나 정상에 다가갈수록 이상하게 점점 기력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들은 네 발로 경공을 쓰는 데 집중하느라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기에 연유를 알 수가 없었다.
결국.
쿵.
견마지로는 정상에 도착해 혀를 길게 빼물고 쓰러져 버렸다.
“야! 안 일어나!?”
머리채를 당겼으나 그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죽었어요.”
당연희가 맥을 짚어 보고는 말했다.
“겨우 그 정도 달리고 뒈지다니. 이런 허약한 놈들. 쯧쯧.”
적사결이 혀를 차며 말하자 염마천이 말했다.
“저들을 타고 오셔서 모르시겠지만 산을 오르면서부터 대지가 기운을 조금씩 빨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뭐? 땅이 기운을 빨아들여?”
사악진의 등에서 내려서니 과연 발바닥의 용천혈에서 기운이 쑥하고 빨려 나갔다.
“정말이구나. 노인장은 등 위에 그대로 앉아 있거라. 죽었지만 아직 약간의 생기는 남아 있을 테니까.”
촌로는 사색이 된 채로 손발을 오므렸다.
“다들 괜찮나?”
적사결의 말에 염마천과 무린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솔직히 조금 버겁습니다.”
“저도 더 다가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내기로 용천혈의 혈맥을 막아도 기운이 빨려 나가는 것이다.
그들이 그런데.
“끄떡없는데요?”
당연희는 말똥말똥한 표정으로 적사결을 바라보았다.
“넌 당연히 끄떡없겠지!”
“당연히? 지금 나 놀리는 거예요!?”
“놀리긴! 오갑자에 대롱 꽂고 쪽쪽 빨아 봤자 얼마나 빤다고. 네 기운이 달리려면 단전에 바람 구멍은 나야겠지!”
“……아.”
맞다, 오갑자였지.
“무린아, 아이가 지내는 곳이 저 동굴이냐?”
“그렇습니다.”
“어찌 초옥이라도 하나 지어 주지 않은 것이냐?”
“지어 주었지만 얼마 못가 허물어졌습니다. 그 아이가 기운을 빨아들이는 대상은 구분이 없습니다. 그나마 바윗돌로 둘러싸인 천연동굴이라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겁니다.”
하긴 주변 초목을 보면 그럴 법도 했다.
“당연희, 네가 가서 아이를 데리고 나오거라.”
“제가요?”
“동굴 안은 기운을 빨아들일 대상이 마땅치 않으니 더 지독하게 빨아먹겠지. 하니 네가 제격이지 않느냐.”
바싹 말랐지만 초목이 있는 바깥이 그나마 나을 터.
해서 적사결은 이곳에서 아이를 치료할 생각이었다.
“알겠어요. 다녀올게요.”
당연희는 동굴 내부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