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이혼대법 148화>
“모든 것이 교주님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저의 불찰입니다.”
염마천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는 적사결을 지근거리에서 지키는 호교대법사로서 죄책감이 든 것이었다.
“내 너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나 네가 그리 마음 쓸 일이 아니니 스스로를 책하지 말거라.”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는 후회하고 있는 것이리라.
자신이 무허를 상대할 정도로 강자였다면 감숙대전 당시 적사결이 나서지 않게끔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또 영혼을 바꾼 무허를 일찍이 알아보았다면 놈의 흉계를 막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제 목숨을 버려서라도 무허, 그 흉적의 목을 베어 교주님께 바칠 것입니다.”
염마천이 내뿜는 살기는 지독했다.
그 기운에 건물이 삐걱거릴 정도였다.
“무슨 소린가? 그 자식은 본좌의 몫이야. 당사자인 본좌가 자네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것인가? 하하하.”
적사결의 농에 염마천은 머쓱한 얼굴로 살기를 갈무리했다.
“속하가 주제넘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아니야. 본좌는 자네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어. 해서 호위를 맡겼고 말이야. 하니 멋대로 목숨을 버릴 생각하지 말게. 자네가 목숨을 버릴 때는 본좌를 대신해 죽을 때, 그때뿐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염마천은 무릎을 펴고 적사결의 옆에 자리 잡았다.
그는 지금부터 한시도 주군의 곁을 떠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 두 장로와 벽은 단주는 나가서 강호 무림에 본교의 건재함을 알릴 준비를 하도록 하게. 그리고 소민과 당연희, 사월, 그녀들을 따로 불러 주고.”
“알겠습니다.”
세 사람이 밖으로 나선 후.
소민과 당연희가 수라혈검대원의 안내를 받고 내실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그래, 지내기는 어떠하냐? 내 그간 경황이 없어 안부를 묻지도 못했구나.”
“저는 괜찮습니다만 아이들이 마기 때문에 조금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마기는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심기가 상한다.
수만 명의 마인들이 지내는 곳에 있으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조금만 참거라. 평교도로서 교리를 익히고 사상 검증이 끝나면 마공을 익힐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이니.”
“교주님의 은혜, 하해와 같사옵니다.”
소민은 허리를 숙이며 포권했다.
이제 죽으나 사나 신교의 교인으로 살아야 한다.
그녀는 철저한 마인이 될 생각이었다.
“내 너를 이리 부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반선주와 이혼대법에 대해 묻기 위함이다. 그에 대해 아는 바가 있다면 말해 보거라.”
잠시 생각하던 소민은 입을 열었다.
“아는 바가 많지 않지만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이혼대법의 기초는 하오문주셨던 은소령 님께서 닦아 놓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 노사가 이후 그분께 합류해 반선주로 완성하셨지요.”
“기초를 닦았다? 하면 당대 하오문주도 술사인 것이냐?”
“아닙니다. 은소령 님께서는 술법을 모르십니다. 다만 그분께서는 이혼대법의 이론을 알고 계셨습니다. 기초를 닦았다는 것은 한 가지를 제외하고 이혼대법에 필요한 요건을 그분이 다 모았다는 뜻이었습니다.”
“한 가지를 제외? 그게 무엇이냐?”
“그건 저도 모릅니다. 도 노사께서 그것을 지니고 함께하셨고 덕분에 반선주로 완성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그 필요한 요건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반선주의 제조법은 돌아가신 두 분만 공유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난감한 상황이다.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이 정작 죽어 버렸으니……
적사결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자 당연희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잠깐만요. 돌아가셔? 그럼 그 반선주라는 것의 제조법을 아는 사람이 다 죽었다는 말인가요?”
그 물음에 소민은 딱딱한 어조로 답했다.
“그래요.”
“……헉.”
당연희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숨을 내뱉었다.
아무런 미사여구 없이 사실이라는 말에 충격 받은 것이었다.
그 말은 곧 절망과 같은 의미였으니까.
“넌 좀 가만히 있거라.”
적사결의 말에 당연희가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방법이라도 있는 거예요!?”
“찾아야지.”
“무슨 수로 찾아요?”
“천하는 넓다. 그걸 그 두 연놈만 알겠느냐?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야. 당장 백가 애송이 놈에게 요청한 전대 하오문주와의 만남도 있지 않느냐. 그리고 그 외에도 아주 단초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게 뭐죠?”
적사결은 과거 강소성 백리세가에서 조사했던 것에 대해 알려 주었다.
당시 얻었던 단초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제갈세가. 이혼대법에 대한 내용이 있었던 고서의 출처가 멸문한 모산파였고, 제갈세가의 초대 가주가 모산파와 인연이 있었다는 것.
두 번째는 회족. 이혼대법이 서역의 연금술을 바탕으로 발전된 주술이 맞다면 서역인의 후예인 회족에 그 단초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이었다.
“하나는 가능성이 낮고 또 하나는 너무 방대하잖아요.”
“뭐가?”
“제갈세가의 초대가주에 대해서는 저도 들어 봤어요. 진법과 술법의 천재로 불렸고 심지어 무공까지 뛰어난 신인이었다죠. 하나 그분 이후 제가세가는 무공에 집중했고 지금은 술법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한 상황이에요. 다른 무가들과 다를 바 없다는 거죠.”
“고서 같은 기록물은 남아 있을지도 모르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니고 제갈세가의 서고를 보겠다? 그게 가능할 것이라 보세요?”
무공 비급이 존재하는 한 무가의 서고는 금역이나 마찬가지.
외인은 어떤 이유로도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
“허락 따윈 구하지 않는다. 만약 본좌가 제갈세가로 간다면 그들은 서고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할 것이야. 죽고 싶지 않다면 말이지.”
광오한 대답에 당연희는 대답 없이 침을 꼴깍 삼켰다.
광동혈사를 겪으며 그가 한다면 하는 인물이란 것을 알았기에……
“하면 회족은요? 한족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소수민족이 장족, 그리고 회족이에요. 회인들은 천하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고요. 그 많은 회인 중에 누가 단초를 지니고 있을지 어떻게 아나요?”
“그래서 다 뒤지기에는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렇죠.”
“그걸로 끝이냐?”
“네?”
“난 또 부정적인 의견을 내기에 네게 좋은 방법이 있는 줄 알았지. 이건 안 좋다. 저건 별로다. 그건 너무 힘들다. 어려워서 못한다. 불가능하다. 또 해 볼까?”
적사결이 똑바로 바라보며 묻자 그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런 불평은 당가에 가서 하도록 해. 본교에서 불평은 훈련이 너무 편할 때나 하는 거니까. 그리고 회족의 수가 많다 했나? 많기야 많겠지. 하나 신강의 모래알이 몇 개나 되는지 세는 것보다 많을까?”
도리도리.
“그럼 본좌를 믿고 따라와라.”
끄떡끄떡.
“사월.”
“네, 교주님.”
“뇌조의 내단을 다오.”
“네.”
적사결은 사월에게서 목함을 건네받았다.
그 속에는 푸른빛의 내단이 들어 있었다.
그것을 품에 넣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백가 애송이가 전대 하오문주와의 접견 자리를 만들 때까지 여기서 대기한다. 사월, 너는 일월과 함께 적월의 정보망을 총동원하거라. 흑영단이 이곳에서 제 기능을 하기 전까지 너희의 임무가 중요하다.”
“존명.”
“정사대전부터 시작해 혈교의 개파까지 천하의 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이는 그간 굳혀져 온 천하 사대세력의 판도를 뒤흔들지도 모를 일이야. 당연희.”
적사결이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암룡신존에게 연통을 넣어다오.”
“숙부님을 만나시려고요?”
“천하가 혼란에 빠지는데 사천이라고 영향이 없겠느냐? 사천회도 똥줄이 탈 게야.”
“어쩌시려는 거죠?”
“동맹.”
“천마신교에서 본회에 동맹을 요청한다고요?”
“안 될 거 있느냐? 너희들은 정사지간이니 누구와도 손잡을 수 있지 않느냐.”
“그건 그렇지만…….”
반대로 누구와도 손을 잡지 않는 이들이 또한 사천회다.
그런 면이 그들을 정파와 사파의 중간이라는 회색분자로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이유였다.
“네가 생각하는 걸 본좌가 모를 것 같으냐? 그저 자리만 만들거라. 이후는 본좌가 알아서 할 테니.”
적사결의 거침없는 화법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 회의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그녀는 그가 주도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흠흠, 좀…… 멋있네.’
* * *
“후욱. 후욱.”
적사결은 자신의 다섯 배는 됨직한 바위를 짊어지고 있었다.
다음 행보를 걷기 전 생긴 여유.
그는 그 시간을 늘 그랬듯이 수련에 쏟았다.
수련의 목적은 육체 단련이었다.
자신이나 무허의 신체와 달리 당연희의 외공이 형편없기 때문.
천축유가신공이 신체의 잠재 능력을 끌어내는 신공이라 하나 기본이 안 되면 그 효율을 십분 발휘할 수 없는 법.
지금은 뇌조의 내단을 취하는 것보다 신체를 완벽히 다듬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땀 흘리니 기분 전환도 되고 좋군.’
그는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며 오행산을 오르고 있었다.
다섯 봉우리 중 중지에 해당하는 가장 높은 곳.
오른쪽 절벽에는 술법에 의해 가려져 있지만 ‘천년지한, 원천우인’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즉, 한 발짝만 잘못 뗐다가는 그대로 만장단애로 추락인 것이다.
‘등산이 끝나면 저 절벽을 오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겠군.’
지금의 수련이 하체 위주라면 절벽 등반은 상체에, 그리고 전신 근력의 균형을 잡는 데 그만이다.
물론 지금의 바위는 절벽을 오를 때도 메고 행할 작정이었다.
“끄응차.”
꾸웅.
어느새 도착한 정상.
적사결은 바윗돌을 내려놓고 턱을 따라 흐르는 땀을 훔쳤다.
오행산 정상에서 보이는 해남도는 운치가 있었다.
드넓게 펼쳐진 녹색 수림과 주변을 둘러싼 쪽빛 물결.
산과 바다의 정기가 온몸에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해방감을 만끽하는 그때였다.
“교주니이이임!”
뒤를 돌아보니 당연희가 황금빛 궤적을 남기며 달려오고 있었다.
보리연화공의 내력 덕분인지 그녀의 신법은 가히 금빛 섬광이었다.
“이거 봐! 내 이럴 줄 알았어!”
“뭐가 말이냐?”
적사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위에 아무것도 안 입었어요!”
산 중턱에서 적사결을 본 마인이 이미 소문을 낸 상황.
그는 코피를 쏟으며 모두에게 산을 오르지 말라 일렀다.
그 이유를 들은 그녀는 득달같이 달려온 것이었다.
“귀찮으니까 그렇지. 땀 빼는데 의복이 얼마나 거추장스러운지 모르느냐?”
별 시답잖은 걸로 호들갑이네.
“적어도 속곳이라도 입었어야죠! 그거 내 몸이잖아!”
“걱정 마라 본좌를 보고 불경한 생각을 가질 마인은 아무도 없다.”
당연희는 말이 안 통하자 울상을 지으며 강제로 속곳을 입혔다.
“거참, 거추장스럽다니까.”
“조용히 해욧!”
“누가 본다고 그러느냐. 여기 본좌와 너 말고는 아무도 없다.”
“이미 본 사람이 있다고요! 그리고 여인에게 보정 속곳이 얼마나 중요한데 이걸 안 입어요?”
“중요해? 이게? 왜?”
적사결은 이해불가라는 듯 되물었다.
고작 가슴가리개가 왜 중요하다는 거지?
“안 입으면 처진단 말이에요!”
“처져?”
적사결은 양손바닥으로 가슴을 잡고 올렸다 내리며 무게를 가늠했다.
음, 꽤 묵직하긴 하다.
“에이 씨! 만지지 마!”
“알았다, 알았어. 귀찮아 죽겠네, 증말.”
적사결이 당연희의 팔을 뿌리치자 그녀는 놀란 토끼 눈으로 더 다가왔다.
그러고는 팔을 만져대고 가슴과 복부, 옆구리를 더듬었다.
“왜…… 왜 이렇게 딱딱해?”
“그만 좀 더듬거라. 뭐가 문제기에 그러느냐?”
“가만히 좀 있어 봐요!”
이전의 탄력 넘치던 몸이 아니다.
마치 돌덩어리를 쑤셔 넣은 것만 같았다.
한데 하체를 더듬자 당연희는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종아리에 알 박혔잖아! 이거 어떡해!”
멋있다는 말, 취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