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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147화 (147/206)

<기적의 이혼대법 147화>

“흑영단!?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지금 해안 정박지에서 대기 중입니다.”

적사결의 얼굴에 놀라움이 번졌다.

정보를 다루기에 유연한 사고를 지닌 흑영단이지만 충성심만큼은 외골수인 그들이다.

자신조차도 무허가 자신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이상 변절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기에 더 놀란 것이었다.

“가보자. 정말 흑영단이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적사결은 한달음에 정박지로 향했다.

그곳에는 흑영단과 기존 마인들이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중 적사결의 눈에 띈 자는 흑영단주 벽은이었다.

그는 수라혈검대의 호위를 받는 적사결을 발견하고는 다가와 부복했다.

그러자 그를 따라 흑영단원들이 같은 자세를 취했다.

“신교출세, 만마앙복. 신, 벽은 이하 흑영단, 신교의 지존께 인사 올립니다.”

부복한 자세로 포권. 그리고 숙인 고개.

그들은 마치 한 몸처럼 동시에 예를 올렸다.

적사결이 여인의 외모를 하고 있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은 이미 이곳의 사정을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어찌 된 것이냐?”

다짜고짜 묻는 물음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하나 벽은의 대답은 주저함이 없었다.

“뒤늦게 진정한 주군을 알아보고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저희들의 무지를 벌하여 주십시오.”

“그런 말을 듣고자 물은 것이 아님을 알지 않느냐?”

“무허, 그 흉적이 신교의 형제들에게 몹쓸 짓을 저질렀습니다. 하여 저희들은 그가 지존이 아니신 것에 확신을 내렸고 신궁을 떠난 것입니다.”

벽은의 이어지는 말에 좌중은 경악했다.

무허가 퍼트린 구결, 혈마열반결.

그것은 신교의 교도라면 무조건 익혀야 했다.

거부하는 이는 신궁에 끌려가 무허에 의해 억지로 익힐 정도로 그 명은 철저하게 행해졌다.

그의 한 마디면 마인들은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강제성이 있었기에 익히고 싶지 않아도 익히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혈마열반결을 익힌 마인들이 생겨나며 부작용은 속출했다.

이성을 잃고 광기에 휩싸인 마인들이 늘어나고, 살육에 취한 마귀들이 탄생한 것이었다.

그 누구도 혈마열반결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하면 너희들은 혈마열반결이란 것을 익히지 않은 것이냐?”

“그렇습니다. 초기에 익힌 자들이 광인이 되자 제가 익히지 말라 명을 내렸습니다.”

벽은의 판단은 빨랐다.

정확히는 수라진결을 익힌 마인들 중 마성에 빠진 자들을 선별해 탈마동에 구금시키는 업무를 진행했기에 누구보다 빨리 이상 현상을 눈치챈 것이었다.

“이후 저희들은 무허의 눈을 피해 신궁을 탈출했고 이곳에 다다른 것입니다.”

구양패 일행과 달리 흑양단 모두는 은신에 뛰어났고 지리에 해박했다.

흑영단원이라면 자신만이 아는 탈출로를 가지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말이다.

그들은 각자 신궁을 탈출해 지하 비밀 통로를 사용하지 않고 십만대산을 무사히 빠져나온 것이었다.

“하나 본좌가 신마결을 익힌 부작용으로 주화입마에 빠졌을 수도 있지 않느냐. 해서 그런 무공을 강제로 익히게 만들었을 수도 있고 말이다. 한데도 그가 정말 무허라 확신했느냐?”

적사결의 물음은 벽은의 충성심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에게 요구하는 기준은 다른 교도들보다 확연히 높았고 그것은 당연한 이유였다.

벽은이 다루는 정보가 신교를 패망으로 이끌 수도 있으니까.

“그것은 그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변경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주화입마로 미치게 되더라도 지존이시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이니 말입니다.”

“호칭이라니?”

“처음 그가 폐관 수련을 끝냈을 때 그는 스스로를 미륵이라 칭했습니다.”

“미륵이라…… 중놈다운 생각이로구나.”

“한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혈마열반결을 익힌 마인이 대다수를 차지하자 자신의 칭호를 공식적으로 천명했습니다. 자신은 지금부터 혈마라고 말입니다.”

벽은의 얼굴에서는 침통함이 묻어났다.

“스스로를 천마라 칭하지 않는 자가 어찌 천마신교의 지존이란 말입니까? 저는 그제야 구양 장로의 주장이 사실이라 확신한 것입니다.”

적사결은 빠드득 소리가 나게 어금니를 갈았다.

그러자 의복이 넘실거리고 비취색 독기가 체외로 뻗어 나왔다.

그 분노는 하늘에 닿을 듯 무시무시했다.

“교…… 교주님. 자중하십시오. 자칫 교도들이 다칠지도 모릅니다.”

구양패가 화들짝 놀라며 그를 제지했다.

독정을 취한 그의 내공은 발현하는 것만으로 주변을 중독시킬 정도였다.

‘이…… 이런.’

적사결은 다급히 내공을 갈무리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너무 격한 감정에 자신도 모르게 기세를 흘린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염마천의 걱정스런 물음에 적사결은 손을 살짝 들었다.

“염려 말거라. 내 이 정도 심화는 이제 익숙하니.”

무허에 대한 원독도 이쯤 되면 극에 달했다.

감히 자신의 얼굴을 한 채 천마가 아니라 부정하다니.

‘개새끼가 아주 사람을 바닥까지 끌어내리는구나…….’

더 이상 죽일 이유를 달 수 없을 것이라 여겼는데 또 하나가 생겼다.

그것도 그 어떤 것보다 더 강렬한 살의를 품을 정도로.

한데 이어지는 벽은의 말에 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존께서 아셔야 할 사안이 있습니다. 저희들이 해남으로 오는 길에 확인한 정보입니다.”

“또 무엇이냐?”

“놈은 강호의 무림 문파에 공표했습니다. 천…… 천마신교는…….”

벽은은 이를 악물고 뒷말을 잇지 못했다.

“천마신교는 뭐냐! 또 뭐냔 말이다!”

적사결의 재촉에 벽은은 땅에 머리를 찧으며 외쳤다.

“앞으로 혈교라 칭할 것이라 천명했습니다.”

“혀…… 혀…… 혈교.”

뒷목이 절로 잡히고 하늘이 팽팽 돈다.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리고 호흡이 가빠지며 눈동자가 눈꺼풀 위로 회까닥 넘어갔다.

“지…… 지존이시어!”

“교주님을 뫼셔라! 어서!”

*   *   *

스르륵.

적사결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하나 움직이지 않고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기만 했다.

“교주님, 기운 내십시오.”

곁을 지키고 있는 자는 염마천이었다.

자신의 직속 호위이자 최측근, 그리고 이따금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이기도 했다.

물론 교의 기강이 있으니 친구라 칭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염마천. 본교의 역사에 나처럼 교의 얼굴에 똥칠한 자는 없었어. 처음으로 자괴감이란 것이 어떤지 느껴져.”

“바로잡으시면 됩니다. 늘 그랬듯이 말입니다.”

실패는 문제가 아니다.

무너지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염마천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늘 그랬듯이…… 말인가…….”

적사결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자신이라고 어찌 실패가 없었을까.

하나 염마천의 말대로 불굴의 의지로 모든 난관을 헤쳐 온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강한 정신력이 되어 극마결을 완성하는 토대가 되었었다.

한데 지금의 절망감은 그간의 경험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본좌의 입으로 혈교라 천명했는데 그걸 다시 주워 담는다고?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해?”

“세인들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언제 우리가 그들의 눈치를 보았습니까. 본교의 교도들이 진실을 알면 그것으로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염마천의 위로에 적사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설사 그렇더라도 무림의 역사는 본교의 오명으로 이 일을 남길 것이야.”

황궁서고에서 보았던 강호 무림사.

그것을 본 적사결은 그 책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기록이 남을 것이라 확신했다.

아니, 기록이 아니면 구전으로라도 남아 오욕으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교주님. 후대에 교주님을 어떻게 평가하든 지금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속하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됩니다.”

“그래. 스스로 부끄럽지 않아야겠지.”

적사결은 침상에서 일어나 걸터앉았다.

“대장로와 이장로, 그리고 벽은을 불러오게.”

염마천은 짧게 읍한 후 수하를 시켜 세 사람을 불렀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적사결의 거처로 달려왔다.

“다들 앉아. 중요한 얘기를 해야 하니.”

적사결의 말에 네 사람은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그의 무거운 분위기는 좌중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벽은. 혈마열반결이라는 무공 구결, 가지고 있느냐?”

“그렇습니다.”

소매에서 꺼낸 쪽지는 여러 방향으로 접혀 있었고, 벽은은 그것을 펼쳐 그에게 건넸다.

적사결은 한자 한자 곱씹으며 구결을 읽어 내려갔다.

고작 종이 한 장의 구결이었으나 그 시간은 꽤 길었다.

해석이 끝났는지 적사결은 미간을 찌푸리며 쪽지를 구겼다.

“빌어먹을, 역시 신마결의 심득을 담았구나.”

“혈마열반결에 신마결의 심득이 담겼단 말입니까?”

“확실하다. 하니 이것을 익히면 백이며 백, 모두가 마성에 빠질 수밖에. 그것도 아주 작정하고 수작을 가해 놓았어.”

“수작이라니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신마결이 사다리를 타고 마음에 난 구멍으로 내려가는 것이라면 이건 그냥 구멍으로 던져 버리는 거야. 미치든 말든 상관 없다라는 악의가 물씬 풍겨.”

신마결을 익히진 못했으나 수년 동안 연구를 했었기에 알 수 있는 부분.

혈마열반결에는 분명한 악의가 있었다.

그리고 그 구결을 통해 적사결은 무허의 심상을 약간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웃기는구나. 무허, 이 새끼 분명 신마결을 익히며 제정신이 아니게 된 게야. 한데 그럼에도 승으로서 마를 배척하는 마음이 작용해 악의를 불어넣은 것이 분명해.”

마를 배척하는 악의가 도리어 마성에 빠트리는 모순적인 결과.

이를 통해 놈의 심상은 혼돈 그 자체라는 추측이 머릿속에 떠돌았다.

“교주님. 마성에 빠진 교도들을 구할 수는 없겠습니까?”

구양패의 물음에 적사결은 고개를 저었다.

“신마결도 익히지 못한 나로서는 무리다. 하나 흑사광이라면 일말의 희망은 있지. 그는 천마조사의 무공을 익히는 중이니까.”

이미 암흑천마공을 익히고 있으며 천령마기까지 얻은 흑사광.

그 두 가지 무공을 결합해 천마신공이 복원된다면 희망이 보일지도 몰랐다.

“과연! 천마신공이라면 분명 형제들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구양패는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믿음에 무릎을 탁 쳤다.

하나 관패가 밝지만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 좋게만 볼 수는 없을 것이오. 마의 본류에서 갈라져 나왔다지만 신마결은 마의 근원에 가까운 무공. 만류귀종이라 했으니 결과는 알 수 없는 노릇이오.”

“이보게 관 장로. 하면 다른 방안이 있는가?”

구양패의 물음에 관패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도 별다른 수가 없음은 인지하고 있으나 낙관할 수만은 없기에 의견을 낸 것이다.

침묵하는 두 사람의 분위기를 읽고 염마천이 말을 꺼냈다.

“지금은 흑랑대주를 믿어야지 어쩌겠습니까.”

그리고 적사결이 그 말을 받았다.

“그 말대로다. 지금은 그가 본교의 희망이지. 해서 내 그에게 교주직을 곧바로 넘길까 한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모든 일이 해결되면 그리하신다 이르지 않으셨습니까?”

구양패의 물음에 적사결은 고개를 흔들었다.

“해결하기 어렵게 꼬여 버렸으니 지금 그리하려는 것이야. 놈이 혈교를 개파한 이상 이미 쏟아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해서 본좌는 흑사광이라는 새로운 교주를 중심으로 이곳에 천마신교가 아직 존재한다 천명할 생각이야. 마침 흑사광은 전대 교주의 아들이니 적통을 내세우기도 좋겠군.”

적사결은 스스로를 버리고 천마신교를 지키려 하고 있었다.

“교주님! 어찌 그러십니까!? 그리되면 모든 오명은 교주님께서 뒤집어쓰게 되지 않습니까!?”

염마천이 비통한 심정으로 외쳤다.

그리되면 천마신교는 공식적으로 반으로 갈라지고 적사결 교주는 혈교를 세운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될 것이다.

“염마천. 스스로 부끄럽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하하하.”

그것이 패도를 걷는 자의 희생 정신이다.

적사결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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