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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이혼대법-146화 (146/206)

<기적의 이혼대법 146화>

흑사광이 안내한 장소는 산이었다.

그것도 해남도에서 가장 높은 고도를 자랑하는 곳.

해남도의 민초들은 그 산을 오행산이라 불렀다.

다섯 개의 봉우리가 마치 손바닥을 세워 놓은 듯 보이는 산세.

천하를 뒤져도 보기 힘든 독특한 지형이었다.

“어디까지 가는 거지?”

적사결의 물음에 흑사광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거의 다 왔습니다.”

좁은 협곡을 굽이굽이 지나 다다른 곳은 다섯 손가락의 가운데 해당하는 봉우리였다.

흑사광은 그 봉우리를 오른 것이 아닌 절벽 아래로 안내를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중지의 뿌리에 해당하는 지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음? 이건…….”

적사결은 절벽을 주시하며 위화감을 느꼈다.

“역시 지존께서도 한눈에 알아보시는군요.”

흑사광을 한 손을 들어 올리더니 강기를 발출했다.

시커먼 강기는 마치 검은 불꽃을 쏘아 올린 듯 하늘로 향했다.

그러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절벽에 새겨진 글자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오직 마기에만 반응하는 술법. 저는 해남도에서 우연히 이곳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흑사광은 고개를 들어 절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천년지한(千年之恨), 원천우인(怨天尤人). 천 년의 한으로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한다.”

거대한 글자는 봉우리 전체에 걸쳐 새겨져 있었지만 두 고수의 안력은 그 글귀를 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암흑천마공을 수련 중이던 저는 이 글귀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성취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극악한 난이도의 암흑천마공.

천재라 불렸던 흑사광조차 혼자만의 힘으로는 그 신공을 익힐 수 없었다.

해서 그는 암흑천마공의 단초를 찾아 천하를 떠돌았고 해남도까지 왔던 것이었다.

“자네 해남도에 암흑천마공과 관련된 무언가가 있다고 짐작하고 온 것이었군?”

“그렇습니다. 지존께서도 천마신교의 전신인 마교. 그 기원에 대해 알고 계시지요?”

“물론, 천마조사께서 마교를 개파하시며 천명하셨다지. 자신은 고대의 무맥, 신마의 절교를 이었고 절교의 대적자였던 선불의 천교. 그들의 후예를 말살할 것이라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당시 천교의 후예는 십이도문이었지요.”

그들은 구백 년 전 있었던 정마대전에 대해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것은 강호에 무림이 생겨나고 정과 마가 은원을 가지게 된 최초의 대전쟁이었다.

“절교와 천교는 수천 년 전 고대의 무맥. 해서 거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겠지 언제인지 짐작하기도 힘든 고대로부터 기록을 남기긴 힘드니까. 더구나 천마조사께서도 마교를 개파하시고 절교에 대한 자료를 남기지 않으셨지.”

“그렇습니다. 해서 저는 천하를 떠돌며 십이도문에 대해 조사를 했었습니다. 그들 중 무당, 화산, 공동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물론 지금은 적사결의 감숙 정벌 당시 공동파를 멸문시킨 상황.

해서 현재 남은 곳은 무당과 화산이 유일했다.

하나 흑사광이 신교를 떠났을 당시엔 그들 세 개의 도문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다 멸문한 십이도문의 하나인 해남파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게 뭐지?”

“해남파가 섬이라는 불리한 지형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해남도에 뿌리를 내리게 된 이유였습니다.”

무림문파 역시 사람이 모인 집단.

하니 필연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가 발생한다.

해남도가 일성에 필적할 정도로 크다지만 섬이라는 점은 분명 해가 되는 요소였다.

“해남파가 중원 땅에서 멀고 먼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신마의 절교가 이유였습니다.”

“자세히 말해 봐.”

“해남파가 이곳에 자리 잡기 전 해남도는 해남도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이름이 있었지요. 바로 금오도입니다.”

“금오도!”

고대 절교의 선인들이 거했다는 장소.

지금은 신화 속 전설로 치부되는 이름이었다.

“그렇습니다. 해남파는 바로 멸문한 신마의 절교가 재림할 것을 대비해 이곳에 문파를 세웠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해남파에 그런 비사가 있었다니.

“한데 천마조사께서는 왜 이곳을 수복하지 않으신 거지? 자네 말대로라면 이곳은 마교의 성지나 마찬가지인데.”

“제 추측이지만 이곳에서는 중원을 도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절교와 천교만 존재했던 고대와 달리 당시 십이도문은 중원 각지에 흩어져 있었으니까요.”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다.

천마조사가 활동했던 시기는 당이라 불리던 시대.

그때 경제의 중심이 되었던 것은 비단길이었다.

신강은 서안이 위치한 산서성과 더불어 비단길의 재화가 모이던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

“허허, 하면 수천 년의 시간이 흐르며 절교에서 마교로, 다시 천마신교로 이어져 우리가 이곳에 자리한 것이로군.”

적사결은 감상적인 얼굴로 절벽의 글귀로 눈을 돌렸다.

그러고는 그것을 보고 처음 떠올렸던 것을 입에 올렸다.

“이 글귀 말이네. 분명 천마조사께서 이곳을 들러 남기신 것이겠지? 필체가 그것과 동일하군.”

“맞습니다. 신당 뒤편에 남은 조사님의 글귀와 이어지는 내용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천마봉 아래 천마를 모시는 사당인 신당.

대대로 그곳은 천마신교의 대장로가 정기적으로 제를 올리고 관리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 신당 뒤 천마봉의 절벽 전체에 걸쳐 ‘천마재래(天魔再來), 평천귀마(平天歸魔)‘라 새겨진 글귀가 있었다.

“그 글귀와 이어진다? 흐음…….”

천마재래(天魔再來), 평천귀마(平天歸魔).

천마로 다시 태어나고, 평천은 마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본래 평천이라 불렸던 그는 이 글귀대로 천마로 다시 태어났고 천마로서 죽었다.

“이어붙이면 천 년의 한으로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하니 천마로 다시 태어나고 평천은 마로 돌아간다가 되는군. 이 정도면 추정이 아니라 확실한데?”

적사결의 말에 흑사광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는 천마재래 평천귀마라는 글귀는 알고 있었으나 이곳의 글귀를 보고 천마조사의 비통함을 엿보았습니다. 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지요.”

적사결이 보기에도 그랬다.

같은 필체이나 신당의 글귀가 복수를 다짐하듯, 패도적이고 웅혼함이 있었다면, 이곳의 글귀는 절규하듯 원통하고 참담한 심정이 녹아 있었다.

“수천 년을 이어 온 한이라…….”

적사결은 글귀에 서린 분위기로 미루어 짐작은 하지만 흑사광과 달리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애초에, 일평생을 한이라는 단어와 담을 쌓고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경험이라고 해 봤자, 전대 교주와 사무련주의 비밀 회동 당시 직속 수하인 적랑대가 몰살당했을 때다.

하나 그것은 적랑대에게 주어진 임무였고, 자신은 수하들을 지키진 못했지만 임무의 목적인 교주의 호위에는 성공했다.

신교의 교도로서 교주를 지키고 죽은 것은 순교자가 되는 길.

개인적인 슬픔은 있었지만 그것은 영광스러운, 또 명예로운 죽음이었다.

“역시 천마신공은 자네에게 연이 닿은 모양이야. 기연은 다 주인이 있는 게지.”

적사결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신형을 돌렸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흑사광은 나직이 읊조렸다.

“지존께서도 언젠가 깨닫게 되실 겁니다. 사람마다 때가 있는 법이니까요.”

흑사광은 적사결이 기연을 얻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열흘 후.

반가운 얼굴들이 해남도에 도착했다.

바로 사월과 이두한백, 그리고 소민이었다.

그들은 고아들을 데리고 무사히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다들 무탈해 보이는구나.”

적사결의 말에 사월이 답했다.

“지존의 하해와 같은 은혜 덕분이옵니다. 지존의 반려영물이 아니었다면 곤욕을 치를 뻔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더냐?”

사월은 사대금강과 이두한백 간에 있었던 전투를 말해 주었다.

그녀는 직접적으로 그 싸움을 지켜보지 못했지만 다쳐서 돌아온 이두한백의 모습을 보고 조사를 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시체의 신원을 확인한 그녀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소림의 숨겨진 힘이라 불리던 사대금강이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하. 과연 내 새끼들이로구나. 사대금강을 이겼단 말이지. 크하하.”

적사결은 그 어느 때보다 통쾌하게 웃었다.

자신이 직접 사대금강을 죽였어도 이처럼 기분 좋을 순 없을 것이다.

적사결은 그렇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두한백을 쓰다듬으려 했다.

한데.

-크르르릉!

녀석들은 그르렁거리며 그의 손을 피했다.

그러고는 당연희의 곁으로 가 머리를 내밀었다.

마치 쓰다듬어달라는 듯 자세를 취하는 것이었다.

“어머? 얘들 나한테 왜이래?”

당연희는 히죽 웃으며 이두한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방금 전 소림의 사대금강을 발라 버렸다는 영물들.

그 영물들이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다니.

마치 남이 애지중지 키운 영물을 자신이 꿀꺽한 기분이었다.

“이걸 어쩌나? 나 완전, 수지 맞았네. 호호호.”

당연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적사결을 쳐다보았다.

“이런 우라질!”

적사결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분개했다.

그러자 이두한백이 자신을 보며 또다시 이를 보였다.

아, 이 배신감.

“교, 교주님 속하가 잘 교육하겠습니다.”

사월은 진땀을 뻘뻘 흘리며 이두한백을 당연희에게서 떼어 놓았다.

“확실히 가르치거라. 힘들게 키워서 남 좋은 꼴 볼 순 없지 않느냐.”

빌어먹을.

새끼 때부터 무허의 몸을 주인이라 인식하고 있었으니 이 사달이 난 것이다.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당연희가 아니라 무허였다.

모든 것이 해결된 후 자칫 이두한백이 무허를 따르게 되면 큰일이니까.

‘무허, 이 새끼. 죽여야 할 이유가 또 생겼군.’

안 그래도 죽일 이유가 넘치는데 거기서 또 생기다니.

정말 예상을 뛰어넘는 호래자식이다.

*   *   *

“이것이 천령마기의 구결이다.”

적사결은 소민이 정리한 천령마기를 흑사광에게 넘겼다.

거기에는 천령마기를 입수한 경위부터 역대 하오문주들의 주해가 달려 있었다.

“지존의 하해와 같은 은혜, 목숨으로 다할 것입니다.”

흑사광은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비급을 받아 들었다.

그의 얼굴은 감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천마신공의 복원은 본교의 숙원이다. 반드시 암흑천마공을 완성해 신교의 위명을 강호 전역에 떨치거라.”

“신교출세, 만마앙복. 신, 흑사광. 지존의 지엄한 명을 받들겠습니다.”

흑사광은 자리에서 일어나 적사결에게 읍한 후 거처로 향했다.

그는 그대로 폐관수련에 들 생각이었다.

“교주님. 천령마기의 구결을 보셨습니까?”

구양패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적사결에게 물었다.

“봤네.”

“어떠했습니까?”

그는 현재 암흑천마공과 천령마기 두 가지 구결을 모두 본 유일한 마인이었다.

하니 구양패를 비롯한 수뇌부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의 입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딱 집어서 말할 순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지.”

“무엇입니까?”

“자네들도 암흑천마공은 보았었지?”

암흑천마공은 반쪽이지만 천마조사의 신공.

하나 그 무공은 교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었다.

난해함 때문에 보더라도 익히기 어려울뿐더러 신공의 복원이 교의 숙원이었기 때문.

즉, 교도 모두에게 개방해 의견을 모은 것이었다.

“단언컨대 암흑천마공을 보고도 익혀 내지 못했다면 천령마기를 보면 안 돼. 십중팔구 마성에 빠져 자신을 잃어버릴 것이야.”

자신은 극마결을 익혔기에 마성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더구나 신체에 마기가 없기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

분명 천령마기는 수라진결로 익힌 마기를 폭주시키는 공능이 있었다.

이는 마치 강의 상류에서 갈라진 개울이 하류에서 합쳐지며 근원의 격류에 휩쓸리는 경우였다.

마의 조종은 천마조사였으니까.

“허허, 참으로 아쉽군요.”

관패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탄식을 내뱉었다.

하나 무공에 관한한 교주의 의견은 틀린 적이 없으니 입맛만 다실뿐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자신만의 안타까움을 드러낼 때였다.

“교주님. 잠시 나가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수라혈검대원이 들어오며 보고를 올렸다.

“무슨 일이냐?”

적사결의 물음에 그는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흑영단이 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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